소설리스트

127화 : 천마 대 소천마 (2) (127/210)


127화 : 천마 대 소천마 (2)
2022.04.23.


휙!

소천마가 손을 내질렀다.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였다.

처음에는 실력을 숨겼다는 소리.

세상에!

천마를 상대로 실력을 숨길 생각을 하다니!

그러나 천마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느린’ 게 좀 더 ‘빠르게 느려진’ 정도였다.

슥!

천마가 고개만 까딱거리며 소천마의 공격을 피했다.

그대로 두 번째, 세 번째 공격이 날아왔다.

역시나 통하지 않았다.

네 번째 공격.

“하암!”

여기서 천마는 하품을 터트렸다.

이딴 지루한 공격이나 하다니.

괜스레 자신이 이깟 걸 보려고 그녀를 살려두었나 싶어 자괴감마저 들었다.

다섯 번째 공격이 그의 안면을 향해 날아왔다.

‘안 되겠군.’

천마가 하품으로 감았던 눈을 떴다.

단숨에 소천마를 제압하고 그녀가 익힌 천마신공을 강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즉시 몸을 움직이려는데.

우뚝!

“?”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째서?

씨익!

그 순간, 소천마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를 본 천마가 상황을 파악했다.

‘이걸 노렸구나.’

앞서 쓸데없이 다섯 수나 낭비한 게 사실 다른 노림수가 있었다.

앞의 다섯 수는 철저히 계산된 수법으로, 그 다섯 수만에 제 움직임이 제한되었다.

‘나조차 당하고 난 뒤에야 눈치챌 정도의 수라니?’

확실히 대단했다.

아마 교의 장로, 아니 이 수법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천하를 뒤져도 손꼽힐 수밖에 없을 터.

허나 안타깝게도 그 손꼽힐 숫자에 천마가 포함돼 있었다.

우뚝!

여전히 몸이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몸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렵게 움직이면 그뿐이다.

그것마저 안 된다면.

‘그냥 힘으로 쓸어버리면 그뿐.’

뚝!

천마의 몸 안에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근육? 혈관? 기맥?

뭐든 상관없다.

그 정도로 자신을 어쩌지 못했다.

뚜둑!

그것들이 몇 개 더 끊어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침내.

휙!

천마가 몸의 자유를 되찾았다.

그가 곧바로 손을 휘둘렀다.

소천마가 내지른 손을 향해.

우우웅!

그때, 소천마의 손끝에서 기이한 빛이 감돌았다.

천마는 과거에 저 빛을 본 적이 있었다.

맨 처음 그녀와 조우했을 때, 비수 끝에 맺힌 바로 그 빛.

천마지체로 천마신공을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그 신비한 빛이었다.

천마수(天魔手).

과거 위대한 초대 천마가 사용한 천마신공의 원초.

그중 가장 간결하면서 날카로운 일격.

“그래, 난 바로 그것이 보고 싶었다!!”

쉬이익!

천마는 천마수의 위용에 몸을 떨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내뻗는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쾅!!

손과 손이 부딪쳤다고 믿기지 않는 굉음이 터졌다.

굉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쾅! 쾅! 쾅!!!

연거푸 세 차례 굉음이 이어졌다.

그 말은 첫 굉음과 함께 무려 네 차례나 소천마의 천마수가 천마의 손을 가격했다는 소리.

“칫!”

그녀가 한껏 인상을 쓰며 뒤로 물러났다.

성과는 있었다.

주륵!

천마의 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천하제일인으로도 평가받는 천마에게서 피를 흘리게 했다.

믿을 수 없는 성과.

허나 그 대가는 아주 혹독했다.

‘제길!’

소천마가 슬쩍 제 오른팔을 살폈다.

겉보기에는 멀쩡했지만, 그 안은 전혀 멀쩡하지 않았다.

최소 일곱 군데 이상 뼈가 부서졌다.

‘그에 반해 내가 한 거라곤 그저 놈의 피부를 한 꺼풀 벗겨낸 것뿐.’

천마신공의 원초라고 너무 자신했다.

상대는 당대 천마였다.

전대 교주를 쓰러트려 천마신공을 빼앗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완벽히 정립한 괴물.

이미 그가 지닌 천마신공은 원초에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그것은 초대 천마와 다른 깨달음으로 만들어진 ‘다른 천마신공’이었다.

그런데도 천마는 더더욱 원초를 탐했다.

만일 그가 소천마에게서 이것을 빼앗으면, 천마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천마신공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걸 다시 하나로 합쳐 더욱 강한 천마신공을 만든다.

아무리 뿌리가 같은 무공이라도 다른 두 무공을 하나로 합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그러나 상대는 천마였다.

하늘조차 거꾸러트리는 마에게 불가능은 없다.

그야말로 강해지는 것에 대한 끝없는 탐욕이 엿보였다.

그것이 현재의 천마를 이룬 모든 것이었다.

“재밌구나.”

씨익!

천마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 웃음이 한없이 기괴하고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소천마도 보통이 아니었다.

씩!

그녀 또한 마찬가지의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팟!

곧바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이미 넝마가 된 오른손을 다시 뻗었다.

쾅!

굉음이 다시 터졌다.

쾅쾅쾅!

이번에도 충격이 연달아 터졌다.

쾅쾅쾅쾅쾅!

한번 시작된 굉음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쾅!

“…….”

쾅!!

소천마가 계속 천마수를 뻗었다.

쾅!!!

“칫!”

놀랍게도 먼저 손을 멈춘 건 천마였다.

그가 피에 젖은 팔을 회수하며 호통쳤다.

“무슨 짓이냐!”

부르르!

목소리에 상상조차 하기 힘든 내력이 담겨있다.

덕분에 하늘과 땅이 동시에 요동쳤다.

“……뭘?”

그러나 소천마는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다시 오른손을 들었다.

천마신공의 기이한 효과 덕분에 겉은 멀쩡하지만, 그 안은 이미 넝마나 다름없었다.

이제 얼마나 많은 뼈가 부서졌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최소 수십?

본래라면 그 손을 드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녀는 상상조차 수 없는 고통을 인내하며 다시 손을 들었다.

바꿔 말하면, 소천마는 천마수 외에 다른 기술을 사용할 생각이 없다는 소리.

그랬다.

이는 명백히 천마의 의향에 반하는 행동이었다.

그는 그녀가 지닌 천마신공의 원초를 더 많이 접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짓을 해!

“죽기 싫으면 다른 천마신공을 펼쳐라.”

“내가 가진 걸 다 내놓으면 죽일 생각이면서.”

“……살려줄 수도 있다.”

“일없다.”

팟!

소천마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다는 걸 몸소 보이기 위해 다시 몸을 날렸다.

“!!”

천마가 눈썹을 치켜들며 손을 뻗었다.

쾅!!!!

앞의 굉음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아주 커다란 굉음이 터졌다.

주르륵!

마침내 소천마의 팔에서 피가 터졌다.

이제 그녀의 팔은 보기에도 끔찍할 정도로 검게 변했다.

형태를 유지하는 것도 용했다.

그러나 소천마는 끝까지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고 태연했다.

스윽!

오히려 한술 더 떠서, 또다시 오른손을 들었다.

하다못해 왼손으로 바꾸는 것도 하지 않았다.

오직 ‘오른손의 천마수’만 쓰겠다는 의지.

‘설마 다른 천마신공은 못 쓰는 게 아니겠지?’

휙! 휙!

천마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가 본 그녀는 대단했다.

재능은 물론이고, 특히 지독한 독심과 한계를 모르는 심계는 자신조차 감탄할 지경.

그런 소천마가 겨우 천마수 하나만 믿고, 일부러 교의 장로에게 제 정체를 노출해 자신과 대면하게끔 했다?

절대 생각 없이 그럴 리 없었다.

“원하는 게 뭐냐?”

마침내 천마가 생전 처음으로 적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원하는 거라…….”

설마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걸까?

소천마가 힘겹게 든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천마에게 믿을 수 없는 제안을 던졌다.

“날 소교주로 임명해라.”

“뭐?”

소교주?

교주의 바로 아래, 그러니까 천마의 후계자.

천마도 설마하니 소천마가 그런 지위를 원할 줄 몰랐다.

도대체 그녀가 원하는 게 뭘까?

무공?

확실히 소교주는 당대 천마에게 무공을 전수받는다.

허나 천마는 제 깨달음이 담긴 천마신공을 남에게 넘길 생각이 없었다.

소천마도 이를 알고 있는 데다, 그녀는 이미 천마신공의 원류를 가졌다.

아니면 소교주가 되면 자신이 건드리지 못하리라 여긴 걸까?

천마는 교에서 절대적이며 지고지순한 위치다.

소교주 따위는 어디까지나 천마의 대용품.

이 역시 천마가 건재하다면 아무런 가치조차 지니지 못했다.

그럼 지위? 명성?

하!

가장 하찮은 그것에는 천마도 소천마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잠깐, 지위?’

그런데 천마가 잠시 뭔가를 떠올리고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하니, 저게 그걸?

천마가 소천마를 노려보았다.

“…….”

그녀에게는 어떤 표정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천마는 일체 미동하지 않는 얼굴에서 무언가 찾아냈다.

“너도 오르려고 하는 거냐?”

오른다?

어딜?

“…….”

소천마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미미하게 고개가 흔들렸고, 천마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하하하!

천마가 웃었다.

정말 오랜만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저게 어떻게 ‘그 존재’를 알았을까?

그게 너무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답을 들을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분명한 건, 그녀가 ‘그곳’에 오르려고 한다는 것.

자신처럼.

자신도 아직 오르지 못한 그곳으로.

감히!

“좋다.”

슥!

어느새 천마가 소천마의 배후를 빼앗았다.

그녀도 이건 반응하지 못했다.

소천마가 급히 몸을 돌렸지만.

푹!

천마의 손이 먼저 그녀의 몸을 파고들었다.

확실히 천마에게 먼저 거래를 제안하게 만든 건 놀라운 성과였다.

허나 천마는 너무나 강하기에 지금껏 제대로 된 거래란 걸 하지 않았을 뿐이지, 결코 거래에 미숙하지 않았다.

“무슨?!”

“너의 제안에 조건을 걸겠다.”

으지직!

천마가 소천마의 몸속에 파고든 손을 우악스럽게 비틀었다.

다행히 그녀를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랬다면 진작에 소천마의 몸은 양분되고 말았을 것이다.

대신 천마는 그녀의 단전을 봉인했다.

단전 주위의 기혈을 모조리 막았다.

허나 기혈을 부수지 않았으니, 소천마의 성취를 생각하면 사흘이면 자력으로 봉인을 풀 수 있었다.

그 말을 반대로 하면, 앞으로 사흘간 소천마의 단전은 완전히 봉인된 셈이다.

“찾았다!”

그때, 저 멀리서 커다란 함성소리가 울렸다.

“……!”

소천마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얼마 안 가 난입자들의 정체를 알아챘다.

‘맹?’

아마도 가까운 맹의 지부에서 파견된 무인들.

그런데 그 수가 적지 않고 그 수준도 결코 낮지 않았다.

어째서?

맹이 왜 추격대를 보낸 거지?

안타깝게도 오래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놈들을 붙잡아라!”

“와아아!”

맹의 무인들이 이쪽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달아나야 한다.

멈칫!

이런 단전이 봉인된 걸 잠시 잊었다.

내공을 못 쓰는 상태로 맹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까?

게다가 그녀는 홀몸이 아니었다.

“한동안 이것들은 내가 맡아두지.”

소천마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어느새 이동한 천마가 백의 여인과 화후를 각자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둘은 점혈 당했는지, 눈만 부릅뜬 채 꼼짝하지 못했다.

“잡아라!”

“안 달아날 건가?”

“조건은?”

일촉즉발의 순간이지만 소천마는 결코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천마에게 조건을 듣지 못했다.

그걸 들어야 뭐든 할 수 있었다.

천마가 가만히 그녀의 굳은 눈을 바라보더니.

“적룡의 능, 거기서 내가 원하는 물건을 가져오너라.”

“어떤 물건이지?”

“그건…….”

소천마가 천마의 답을 듣고 두 눈을 치켜떴다.

순간, 그녀는 천마가 자신을 놀리는 줄 알았다.

그만큼 황당한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그런 게 왜 필요한데?’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16550978212789.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