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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 적룡의 능 (1) (128/210)


128화 : 적룡의 능 (1)
2022.04.25.


“쫓아라! 절대 놓치지 마라!”

휙!

“오른쪽으로 달아났다. 바짝 쫓아라!”

휙! 휙!

“왼쪽 아니, 오른쪽이다. 놓치지 마라!”

‘제법이군.’

소천마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맹의 추격대는 여러모로 예상을 상회했다.

‘내 예상보다 그 수가 몇 배로 많다.’

처음 드러낸 숫자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물론 따로 더 인원을 숨겼을 거라고는 짐작했지만, 드러낸 숫자의 열 배가 넘는 인원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거기다 그 수는 지금도 계속 늘고 있었다.

‘천라지망이라도 펼칠 셈인가?’

천라지망(天羅地網).

그 뜻은 하늘과 땅을 잇는 그물이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천라지망은 그물 따위가 아니었다.

압도적인 수의 폭력.

한 마리 사나운 담비는 열 마리, 백 마리 쥐도 너끈히 사냥할 수 있다.

허나 그 쥐가 천 마리, 만 마리라면?

심지어 담비가 달아날 수 없게 사방에서 옥죄인다면?

담비의 이빨과 발톱이 아무리 단단하고 날카로워도 숫자의 폭력 앞에는 산산조각 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소천마의 상황이 그랬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어째서 맹이 자신 하나를 붙잡기 위해 이리 많은 인원을 동원한 걸까?

“저년이 전대 교주의 딸이다.”

“천마의 일족이다. 절대 놓치지 마라!”

‘그렇군.’

그제야 그녀는 현 상황을 이해했다.

소천마는 천마와 만나기 위해 일부러 교의 장로에게 제 정체를 밝혔다.

교의 장로는 모두 뱃속에 독사 수십, 수백 마리를 숨긴 이들.

당연히 그녀의 소식은 천마에게 들어갔다.

그런데 그 정보가 맹에게도 흘러 들어간 모양.

소천마가 이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무리 교의 장로라도 감히 맹에 이 소식을 전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교의 장로를 믿어서가 아니었다.

아무리 교의 장로라도 천마라는 전무후무한 괴물이 선사하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은 천마가 두려워서라도 자신의 정보를 다른 곳에 퍼트리지 않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천마 자신이 내 정보를 맹에 흘릴 줄은 몰랐지.’

교의 장로 따위야 소천마의 손아귀였다.

그러나 천마만은 그녀도 가늠하지 못했다.

맹도 현 천마와 전대 교주 간의 불화를 모르지 않았다.

허나 아무리 맹이라도 교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리 없었다.

어쨌든 소천마는 전대 교주의 유일한 핏줄.

다시 말해 교의 정통이다.

이를 생각하면 맹에서 이만한 인원을 내보낸 것도 이해되었다.

“쏴라!”

파파팟!

이젠 활까지 동원되었다.

무림에서 활을 사용하는 문파는 손에 꼽았다.

그러나 맹의 방대함은 그 희귀성마저 손에 넣었다.

정면에 열 명, 배후에 스물.

무려 서른 명의 일급 궁사가 소천마를 노렸다.

저 활을 해결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그럴 리 없다.

활을 넘으면 그 이상의 난관이, 또 그것을 넘으면 다시 그것을 뛰어넘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헉!”

소천마가 잠시 가쁜 숨을 내쉬었다.

추격자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됐다. 드디어 저년도 지쳤다. 이대로 쉬지 말고 몰아쳐라!”

“역시 네놈이 문제군.”

막 맹의 지휘관이 공격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믿기 힘들게도 소천마가 몸을 돌렸다.

그녀는 그대로 자신을 쫓아온 맹의 추적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 숫자와 이 상황에?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이, 이런!”

“막아라!”

“앗!”

쫓기던 자가 갑자기 제 품으로 날아온 뜻밖의 상황에 추적자들의 반응이 어긋났다.

소천마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안 돼!”

“안 되긴!”

그녀가 추적대의 틈을 파고들어 지휘관의 앞으로 날아갔다.

당연히 맹의 지위관은 평범한 책사가 아니었다.

그는 맹 소속으로 어느 정도 무공을 쌓아 두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소천마와 비할 바는 아니었다.

설사 그녀가 단전을 봉인 당해 제 실력의 십 분지 일도 발휘하지 못한다 해도.

휙!

지휘관은 그저 빠르게 제 쪽으로 날아오는 여인의 고운 섬섬옥수를 바라만 봐야 했다.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었다.

팟!

그 직후, 핏빛 비가 뿌려졌다.

한 사람의 몸에 그리 많은 피가 들어있다는 걸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허나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맹의 무인들.

조금 전까지 자신들을 지휘하던 동료가 죽자, 그들의 머릿속에 이성이라는 얕은 줄이 끊어졌다.

“저년이!”

“죽여라! 절대 살려두지 마라!”

“와아아!”

이성을 잃은 무인은 맹수와 다름없다.

그 수만 수십에 달하는 맹수들.

그것들이 내뿜는 살기는 절로 오금이 저릴 정도였지만, 소천마는 되레 그 살기를 받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휙!

“저년이 왼쪽으로 달아난다. 쫓아라!”

휙! 휘리릭!

“오른쪽, 아니 왼쪽인가? 아니, 오른쪽이다!”

“아니다. 왼쪽이다!”

“뭐야? 어디로 가란 거야!”

“오른쪽이다!”

“아니, 왼쪽!”

역시 그녀는 틀리지 않았다.

머리 잃은 짐승은 결국 짐승일 뿐.

소천마를 귀찮게 했던 건 짐승에 어울리지 않는 머리였지, 너무나 짐승다운 그것들의 이빨과 발톱이 아니었다.

맹의 추적대가 분노로 추적 속도를 배로 올렸지만, 소천마의 심계는 결코 얕지 않았다.

그들은 두 눈 뻔히 뜨고 그녀의 노림수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맹은 추적대에 지휘관을 겨우 한 명만 두지 않았다.

“지금부터 내게 지휘한다. 모두 왼쪽으로 틀어라. 가증스러운 천마의 혈족을 그곳으로 몰아라!”

두 번째 지휘관이 등장했다.

그러나.

“컥!”

소천마는 그 또한 놓치지 않고 목을 벴다.

이후 세 번째, 네 번째 지휘관이 차례로 등장했다.

이들은 앞의 지휘관처럼 방심하지 않았다.

주위에 몇 겹의 벽을 쌓아 습격을 방비했다.

휙!

“저년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빠릅니다.”

그러나 앞에 벽을 쌓았다는 건, 그만큼 시야가 막혔다는 뜻.

게다가 세 번째 네 번째라는 건, 첫 번째 두 번째보다 능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다.

“젠장, 놓치면 안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리가 벌어지자, 결국 세 번째 지휘관은 성급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쌓은 벽을 박차고 나섰다.

팟!

그 직후, 소천마의 일수에 또 목이 날아갔다.

“…….”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본 네 번째는 절대 벽을 풀지 않았다.

물론 제 목숨이 아까운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벽을 풀지 못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이제 남은 지휘관은 나뿐이다.’

안타깝게도 다섯 번째는 없다.

여기서 자신마저 당하면, 기껏 모은 추적대가 허무하게 천마의 후예를 놓치게 된다.

이는 맹의 수치.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다행히 지금 이 순간에도 맹의 지원은 끊이지 않았다.

천마의 후예가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그 앞에 새로운 지부의 지원이 쏟아졌다.

그러나 아무리 지원을 받아도, 소천마와의 거리를 더 이상 벌리지 않는 데 급급할 뿐이었다.

그렇게 추적이 사흘간 이어지던 무렵, 본 맹의 지원이 도착했다.

“이곳 지휘관이십니까?”

“그렇네. 내가 이곳 지휘관이네.”

“본 맹에서 지원 나왔습니다.”

“그래? 누구지?”

네 번째가 반색하며 상대의 이름을 물었다.

“종리우입니다.”

아쉽게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허나 이름 앞의 성은 결코 처음 듣는 게 아니었다.

“종리세가!”

제갈세가, 사마세가와 함께 무림에서 가장 이름난 책사 가문의 후예.

그곳 출신이라면, 비록 상당히 젊은 외양이라도 그 저력을 기대할 수 있다.

“여기 저와 함께 본 맹에서 지원 나온 서른 명입니다.”

종리우가 곧바로 자신과 함께 여기까지 온 다른 이들을 소개했다.

그중 진천우가 있었다.

* * *

-두 번째 천마, 아니 천마의 후예가 나타났다.

맹주의 첫마디에 진천우는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그는 초인적인 자제심으로 속내를 숨겼다.

-이미 대대적인 추격대를 보내두었네.

당연한 일.

후예라지만, 천마는 천마.

그 같이 큰일을 이제 막 입맹한 신참자들로 처리할 리 없었다.

맹의 수많은 지부가 비밀리에 움직였고, 그들은 여기에 지원하는 형태를 취했다.

그저 지원이지만, 아까 말했듯 천마와 관련된 일.

여기서 조금이라도 성과를 내면, 파격 출세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제가 가겠습니다.

종리우의 참가는 의외였다.

이미 우책사 직속으로 들어간 그에게 이 이상의 출세는 큰 쓸모가 없었다.

정말 출세를 원한다면, 천마의 후예 추적보다 우책사가 내려주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편이 더 좋았다.

그러나 종리우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는 제갈가를 넘을 수 없다.’

상당히 오랜 기간 제갈세가를 의식해온 종리가의 고집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종리우와 진천우 두 명의 책사와 나머지 서른 명의 무인이 본 맹의 지원 인력으로 참가했다.

“처참하군요.”

종리우가 현장을 살피고 눈살을 찌푸렸다.

“…….”

진천우도 입은 열지 않았지만,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어째서?’

그는 소천마를 잘 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어째서 그녀가 아직도 추격당하고 있지?’

소천마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무공이면 무공, 심계면 심계로 당해낼 자가 없다.

특히나 그녀의 독심은 진천우가 아는 이 중 최고였다.

자신이 아는 소천마라면 이런 어설픈 참상 따위가 펼치지 않는다.

‘벌써 맹의 추적을 비웃듯 따돌렸거나, 아니면 아예 추적대를 모조리 전멸시켰겠지.’

이렇게 사흘을 내리 쫓기며 수십의 사상자를 내는 어정쩡한 결과는 그녀와 어울리지 않았다.

‘추적 대상이 내가 아는 소천마가 아닌가?’

그리 착각할 정도.

“드디어 저년의 발이 멈췄다!”

“천마의 후예를 한곳에 몰았습니다.”

“그년은 절벽에 가로막혀 퇴로가 막혔습니다!”

그때, 저 너머에서 맹의 무인들이 소리쳤다.

“오오! 드디어!”

네 번째 지휘관이 화색이 되어 앞으로 달려갔다.

진천우도 그 뒤를 쫓았다.

‘이런!’

그리고 거기서 차마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을 목격했다.

“헉! 헉!”

세상에!

그녀가 숨을 헐떡이다니!

그녀가 피를 흘리다니!

그녀가 적에게 달려가지 못하고 멈춰서다니!

진천우가 빠르게 눈알을 굴려 소천마의 상태를 살폈다.

그는 의안으로 단번에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단전이!!’

누가 감히 소천마의 단전을 봉인했는가!

누가 감히!!

“붙잡았군요.”

이때, 종리우가 낮게 한마디 했다.

본래 그는 네 번째에게 지휘권을 이양받으려 했다.

신참자로서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이지만, 지금 네 번째는 말도 할 수 없이 지쳐있었다.

그만큼 지휘관으로서의 능력도 현격히 떨어졌다.

이런 상황이니 종리세가의 이름을 사용하면 충분히 지휘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종리우도 경우를 모르지 않았다.

그는 남이 다 잡은 사냥감을 마지막에 빼앗는 악독한 취미가 없었다.

정말 아쉽지만, 할 수 없었다.

“그래, 드디어 저년을 붙잡았어!”

네 번째도 참으로 기쁜 듯, 입가에 긴 호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는 쉽게 방심을 풀지 않았다.

‘달아나면서 무려 세 명의 지휘관의 목을 벤 년이다.’

네 번째는 몇 번이나 확인의 확인을 거쳐, 그녀가 지금 정말 지쳐 쓰러지기 직전이란 걸 확신했다.

드디어 마지막 명령을 내리기 위해 손을 하늘 위로 들었다.

“전원, 천마의 후예를…….”

그의 손이 막 아래로 떨어지려는 찰나!

“잠깐!!”

느닷없이 진천우가 뛰어들었다.

설마 말리려는가?

그렇다면, 이는 맹에 대한 명백한 반역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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