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 괴인의 호의 (3) (136/210)


136화 : 괴인의 호의 (3)
2022.05.14.


“당장 기운을 머리 쪽으로 돌려 쏘아내게!”

“네?”

학자라더니, 그래서 무공을 보는 눈이 없는 걸까?

이 상황에서 그런 뜬금없는 주문을 날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방금 그의 말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왜 머리 쪽이지?’

괴인은 소천마의 의문을 풀어주는 대신 더 큰 의문을 던졌다.

“그리하면 뇌전을 쏘아낼 수 있을 걸세.”

‘뇌전?!’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자신에게는 뇌공의 기운은 없었다.

그런 걸 따로 익힌 기억도 없다.

이때, 괴인이 또다시 폭탄 발언을 던졌다.

“자네는 뇌절초를 먹었으니, 뇌공의 기운이 머리 쪽에 몰려 있을 걸세?”

“무슨?!”

일반적인 풀과 달리 잎사귀가 샛노랗고, 단전에 있는 내공의 일부를 뇌공의 기운으로 바꿔주는 뇌절초는 준영약으로 구분되는 약초.

내가 언제 그런 걸 먹었단 말인가?

‘잠깐 설마!?’

자신이 뇌절초를 먹었다면 그때밖에 없다는 걸, 소천마는 곧바로 깨달았다.

“내가 마신 차가?”

“그래, 뇌절초를 약한 불에 한 번 볶은 뒤 달였지. 그걸 무려 석 잔이나 내리 마셨으니, 이번 한 번은 충분히 그 극양지기가 극음지기에 맞먹는 뇌공의 기운을 쏘아낼 수 있을 걸세.”

틀린 말은 아니었다.

허나 소천마는 지금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그런 걸 왜 아무 말도 없이 제게 먹인 겁니까?”

모르는 이가 들으면 기껏 귀한 영약을 줬는데 왜 역정이냐 하겠지만, 무림의 상식상 그것은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다.

일반적인 영약은 단순히 섭취하는 거로 끝나지 않고, 그 안의 기운을 제대로 몸에 갈무리하는 것까지를 제대로 된 ‘흡수’로 본다.

헌데 영약을 영약이라고 알리지 않았다는 건, 경우에 따라서는 독을 먹인 것보다 더 위험했다.

‘어떻게 영약을 먹은 걸 모를 수 있지?’

“뇌절초는 한 번 볶으면 그 기운이 모조로 잎맥에 응축되지. 그걸 다시 한번 차로 우렸으니, 효과는 약간의 시간을 두고 나온다네. 대신 그 효과는 평범하게 섭취하는 것의 배가 되지.”

“잘도 그런 걸 알고 계시는군요.”

역시 괴인은 평범한 학자 나부랭이가 아니었다.

탐구자 혹은 구도자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어쨌든, 당장 그를 탓할 겨를이 없었다.

휙!

남은 검은 천의 한 귀퉁이가 그녀의 향해 날아왔다.

피하려면 지금뿐이다.

그러나 이걸 피하면, 한동안 다시 검은 천을 공략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검은 천을 공략하는 데 이미 많은 내공을 소모해, 다시 위로 올라가려면 한 세월 걸릴 게 분명했다.

그럼 그사이 맹의 추적대가 접근해, 자신이 던진 발톱마저 회수할 가능성이 컸다.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괴인에게 속은 느낌이지만, 지금은 그냥 당해주기로 했다.

소천마가 곧바로 남은 내공을 머리 쪽으로 몰았다.

빠직!

과연 괴인의 말대로 머리에서 뇌공의 기운이 솟구쳤다.

이제 소천마가 할 일은 하나였다.

“이거나 먹어랏!”

그녀가 제 쪽으로 날아오는 검은 천 쪽으로 머리를 들이박았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검은 천이 멈췄다.

우르릉!

역시나 천에서 반탄력이 밀려왔다.

극양지공과 극음지공 그리고 뇌공까지.

각기 다른 세 기운을 쏘아냈다.

검은 천의 네 귀퉁이.

거기다 각기 다른 위치도 맞췄다.

이제 남은 건, 세 개의 힘을 한 치의 오차 없이 동일하게 맞추는 것 뿐.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우우웅!

“큭!”

소천마가 세 기운을 뿜어내며 눈살을 찌푸렸다.

본래 그녀는 제가 사용하는 기운의 균형을 맞출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뇌공은 오늘 처음 사용해보는 힘이다.

‘아니,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소천마는 처음 사용하는 생소한 기운을 완벽하게 사용했다.

헌데 그녀가 세 기운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애초에 내가 가진 뇌공의 힘이 너무 미약하다.’

극양지공을 이루는 근간은 반쪽이긴 해도 그 전설의 천마지체에서 비롯된다.

극음지공 역시 천마지체 못지않게 희귀한 구음절맥에서 나왔다.

반면 소천마가 사용하는 뇌공은 뇌절초라는 준영약.

급에서도 다른 둘과 큰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극양지공과 극음지공의 기운을 줄이려 하면 검은 천의 반발력에 도리어 역공을 당할 수 있었다.

“무얼 하나? 왜 뇌공을 더 뿜지 않는 건가?”

한편 괴인은 멀리서 지켜보는 탓에 이런 사정을 모르는지 아래에서 발만 동동 굴리며 소리쳤다.

“아니, 그냥 뇌공을 더 쓰면 되잖는가!”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쉽지. 자네 단전에 그만한 기운을 넣어주었는데, 왜 쓰질 못해?”

“뭐?”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마치 내 몸에 뇌절초 외에 또 다른 걸 넣었다는 투가 아닌가?

“응? 자네는 아까 내가 끓여준 차를 마시지 않았는가?”

마셨지.

뇌절초로 끓였다는 그 차.

그런데 그게 왜?

“그거, 볶은 뇌절초를 공청석유로 끓인 차라네.”

“미친!”

한 방울로 시체도 살린다는 희대의 영약으로 차를 끓여?

그리고 그걸 자신에게 무려 세 잔이나 주었다고?

허나 그 말이 사실이면, 소천마의 몸에는 능히 전설의 천마지체나 구음절맥에 비견할 만한 뇌전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빠직! 빠지직!

‘진짜다!’

시험 삼아 뇌전을 운용하던 소천마는 기겁하듯 두 눈을 치켜떴다.

이제 뇌공은 그녀가 지닌 세 기운 중 가장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셀지도?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소천마는 어떻게든 뇌공을 억제해 그것이 극양지공, 극음지공과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했다.

우르릉! 우릉!!

이 와중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 천의 반발력이 더 강해졌지만, 그건 아무 상관없었다.

‘균형만 맞추면 된다. 균형만 맞추면…….’

소천마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집중해서 제가 가진 기운을 조절했다

그리고 마침내.

팟!!

세 기운이 완벽한 균형을 이뤘다.

그러자 신비하게도 검은 천은 더는 반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뿜은 세 가지 기운을 모조리 흡수했다.

‘음?’

소천마도 그 변화를 눈치챘다.

허나 그것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소천마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였다면, 그녀는 본능적으로 기운을 거뒀을 게 분명했다.

우우웅!

세 기운은 각각 검은 천의 세 모서리로 흡수되었다.

그렇게 흡수된 기운은 마지막 남은 모서리.

그러니까 적룡의 심장으로 뻗어나갔다.

두근!

용의 심장이 강하게 요동쳤다.

평소보다 배 이상 빠르게.

두근두근두근두근!!

자칫 폭발하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빠르게 요동쳤다.

그러나 심장은 폭발하지 않았고, 그대로 세 개의 각기 다른 기운을 모조리 흡수했다.

뚝!

그러더니 갑자기 요동을 멈췄다.

심정지(心停止).

누가 봐도 평범하지 않은 현상.

“…….”

“…….”

소천마도 괴인도 이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설마하니, 이 난리를 피워놓고 그냥 심장이 정지하는 거로 끝난다고?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다행히 그들이 생각하는 최악은 일어나지 않았다.

쩌저적!

적룡의 심장이 난데없이 반으로 갈라졌다.

휙!

그리고 그 안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엄지손톱 크기의 무언가.

소천마는 그것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붙잡았다.

탓!

그리고 땅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반대 손에는 자신을 질리도록 괴롭힌 검은 천이 들려있었다.

“오오, 해냈군!”

그 즉시 괴인이 용의 심장을 얻은 걸 축하하러 다가왔다.

덥석!

소천마가 바로 그의 멱살을 잡았다.

“왜!”

왜 자신에게 영약을 먹였나!

솔직히 그녀의 반응은 선을 넘었다.

어쨌든 소천마는 뇌절초와 공청석유를 완벽히 흡수했다.

아니, 그 과정에 어떤 반발도 없었다.

아마도 괴인은 뇌절초를 볶고 공청석유로 끓이는 과정에서 영약의 효과를 보다 쉽고 간단하게 몸에 녹아내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게 분명했다.

사실 그래야만 했다.

애초에 괴인이 영약을 모은 이유는 아픈 아들을 위해서다.

환자조차 영약을 완벽하게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왜 내게 그러한 것들을 양보한 겁니까!”

난!

난 그에게 원래 제 목적도 아닌 용의 심장을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간신히 그와 싸우지 않아야 할 억지 이유까지 들어야 했는데.

어째서 괴인은 자신에게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영약을 준 건가?

이러면…….

이러면 자신이 얼마나 추하고 낯부끄러워지는지…….

“글쎄…….”

괴인은 살짝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곧 답을 말했다.

그리고 그 답은 소천마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냥 남 같지 않아서?”

남 같지 않다.

그녀도 똑같이 느꼈다.

이상하게 처음 볼 때부터 괴인이 남 같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신은 괴인을 경계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고, 오히려 영약까지 내주었다.

“큭!”

이러한 수치를 그녀는 참지 못했다.

휙!

소천마가 힘들게 얻은 적룡의 심장을 괴인에게 던졌다.

헌데 그녀도 생각지도 못한 게 있었는데.

딱!

“억!”

괴인은 한낱 문사 나부랭이였다.

아마 다른 사람, 하다못해 평범한 무인 정도만 돼도 당연히 붙잡았을 그것을 잡지 못해 이마에 맞고 떨어트렸다.

문제는.

따닥!

이마에 맞은 용의 심장이 그대로 반 토막 났다는 사실이었다.

다행히 그것들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소천마가 붙잡았다.

다소 황당한 얼굴로.

‘이게 이렇게 쉽게 토막 나는 물건인가?’

일단 담긴 기운을 보면, 틀림없는 영약.

그것도 돌에나 나온 영약이 이리 강도가 약할 줄 몰랐다.

그녀가 이를 보고 의구심을 품으려는데.

“아야야, 갑자기 무슨 짓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걸 드리려고.”

손으로 제 이마를 문대며 다가오는 괴인 탓에 그러지 못했다.

아무리 의도치 않았다고 해도, 이건 자신이 잘못한 게 맞다.

“자네가 얻은 영약을 왜 내게 줘?”

“됐습니다. 저는 원래부터 이 천이 목적이었으니, 적룡의 심장은 넘겨드리겠습니다. 아들한테나 주시죠.”

“왜? 자네도 내가 남 같지 않아서?”

“…….”

소천마는 아무 대꾸도 못 하고 그저 얼굴만 붉혔다.

평소 그녀를 아는 이가 봤다면 경악할 일.

한판 괴인은 그녀가 내미는 반 토막 난 용의 심장을 잠시 보더니, 그중 하나를 다시 소천마에게 내밀었다.

“난 하나면 충분하네. 그러니까 남은 반은 자네가 먹게.”

“아니.”

“어허, 어른이 좋은 걸 주면, 그냥 고맙다고 하고 받는 걸세.”

“고, 고맙습니다.”

“그럼 여기서 바로 먹게.”

“네?”

“굳이 나중에 먹을 이유가 있나? 그리고 원래 이런 영약은 안전한 곳에서 먹는 게 맞지 않나?”

설마하니 그가 지금 자신의 호법을 서주겠다는 건가?

소천마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비웃음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무척 생소하고, 가슴이 간질거리는 웃음이었다.

어쨌든, 용의 심장을 다 주겠다는데도 굳이 반을 나눠준 괴인이 자신에게 위험한 짓을 할 리가 없었다.

소천마는 알겠다고 말하며 그 자리에서 반쪽짜리 용의 심장을 제 입으로 던졌다.

휙!

그런데 그녀가 막 입을 벌리는 순간, 용의 심장의 남은 반쪽이 날아왔다.

그건 너무나 순식간이라 미처 막을 틈이 없었다.

반쪽짜리 심장 두 조각, 즉 온전한 심장 하나가 통째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속았다!’

소천마는 두 눈을 치켜떴다.

방금 반쪽짜리 용의 심장이 날아온 속도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괴인은 단순한 학사 나부랭이가 아니라, 뭔가 특별한 무공을 익힌 게 분명했다.

“어떻게 이런!!”

우우웅!!

그 순간, 방금 막 삼킨 용의 심장이 단전에서 기운을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제 입은 물론이고 눈조차 뜰 수 없었다.

그녀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그대로 단전에서 믿을 수 없이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쳤다.

* * *

우우웅?!

“응?!”

종리우 일행과 네 번째 지휘관이 용의 발톱을 얻지 못하도록, 진천우는 계속해서 함정을 조종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왜 갑자기 단전이 움찔거리는 거지?”

그 순간, 눈앞에 푸른 현판이 튀어나왔다.

[사용자의 ‘반신’이 ‘용의 심장’을 삼켰습니다.]

[현재 사용자는 ‘반신’과 신비한 힘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반신의 급격한 변화는 곧 사용자의 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우우우우웅!!

“큭!!”

난데없이 제 단전에서 신비한 힘으로 용솟음치는 기운을 느끼고, 진천우는 그 자리에서 기부좌를 틀었다.

16550978819341.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