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 뜻밖의 만남 (3)
(142/210)
142화 : 뜻밖의 만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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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화 : 뜻밖의 만남 (3)
2022.05.28.
“넌…….”
진천우가 조심스럽게 눈앞의 상대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지?”
갑자기 나타나 검봉을 언급하다니.
허나 솔직히 검봉 자체는 그리 특별한 단어가 아니었다.
어느 명산이든 쉽게 볼 수 있는 단어.
그렇기에 바로 검봉에 대해 묻는 것보다는 상대의 정체부터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다.
슥!
청년도 무너진 입구에서 진천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본의 아니게 내가 그를 기습했지.’
진천우도 인정했다.
아무리 의도치 않은 실수라지만, 자신이 느닷없이 그를 공격한 건 사실이었다.
저렇듯 경계심을 품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바로 제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한 뒤, 자신의 정체를 먼저 밝히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휙!
갑자기 청년이 진천우에게 달려들었다.
“?!”
‘이놈이!’
자신이 기습당했다고 보복하려는 걸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자신이라도 그리할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당해줄 수 없지!’
휙!
진천우가 급히 몸을 날렸다.
휙!
그러자 상대도 그를 쫓았다.
‘빠르다!’
적룡의 능을 빠져나올 때도 느꼈지만, 역시 보통 고수가 아니다.
허나 진천우와 똑같은 생각을 상대 역시 했다.
‘대단하다!’
청년이 호승심을 숨기지 않고 더욱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러자 진천우도 지지 않고 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큭!”
먼저 신음을 흘린 건 청년이었다.
그의 신법도 대단히 훌륭했지만, 진천우의 대나이신법이 좀 더 빨랐다.
그렇다고 쉽사리 포기할 순 없었다.
휙!
청년이 소매에서 비수를 던졌다.
그 속도가 놀랍도록 재빨랐다.
진천우가 급히 비수를 피했다.
“잡았다!”
그러자 어느새 다가온 청년이 진천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찰나의 틈을 노려 이렇게 접근하다니.
그러나 상대는 진천우였다.
휘리릭!
그가 대나이신법을 펼친 상태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묘한 한 걸음을 내딛었다.
여덟 걸음.
소림의 비전인 대나이신법조차 뛰어넘는 경신법.
그중 단 한 걸음뿐이지만, 제 코앞까지 날아온 청년에게서 몸을 빼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허!”
이를 본 상대가 허탈함에 신음을 흘렸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는 그야말로 다 잡은 물고기를 눈앞에서 놓친 심정이었다.
허나 그의 신음은 곧 비명으로 바꿨다.
휙!
“헉!”
진천우가 몸을 빼다 말고, 느닷없이 그에게 달려드는 게 아닌가?
‘이대로 달아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진천우은 저자가 방금 말한 검봉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었다.
그가 말한 검봉이 자신이 아는 검봉이 아닐 수 있다고?
‘아니지.’
진천우는 그런 우연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
아마 조금 전 청년이 말한 검봉은 틀림없이 적룡의 능에 단서로 남겨진 검봉이 분명할 터.
지금 눈앞의 청년에게서 달아나면 이후 단서 찾기가 막막해진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 자리에서 상대를 제압하고, 검봉에 대해 듣는 게 상책이었다.
진천우의 손에 어느새 타구봉까지 들렸다.
“하!”
한편, 달아날 줄 알았던 물고기가 무슨 까닭인지 다시 제 쪽으로 팔딱거리며 뛰어드는 걸 본 청년이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도 어느새 한 자루의 검이 들려있었다.
쾅!
검과 봉이 부딪치면서 큰 폭음이 터졌다.
본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둘 다 무기에 잔뜩 내공을 둘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크!”
“핫!”
둘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진천우가 세 걸음, 상대가 두 걸음.
검법과 봉술에 있어서 청년이 한 수 위였다.
휙!
허나 진천우에게는 그 한 걸음의 차이를 좁힐 경공이 있었다.
쾅! 쾅쾅!
폭음이 몇 차례 더 울려 퍼졌다.
진천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숫제 벽을 때리는 느낌이군.’
말 그대로다.
눈앞의 청년은 단단한 벽이었다.
그만큼 자신의 공격을 완벽히 막아냈다.
그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그 즉시 반격이 날아왔다.
‘흡사 그녀를 보는 것처럼……. 아니지. 아냐!’
진천우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세상 어디에도 그녀와 같은 사람은 없었다.
더군다나 눈앞의 청년은 그녀와 같은 또래이지 않은가?
그가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진 사이, 눈앞의 상대가 갑자기 검을 검집에 넣고 양손을 펼쳐 보였다.
‘뭐지?’
처음에는 저게 새로운 공격 자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경계하는 진천우를 향해 조금의 거리낌 없이 다가왔다.
‘뭐야?’
휙!
진천우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반쯤 반신반의하며 타구봉을 휘둘렀다.
그것도 그냥 휘두르는 게 아니었다.
우우웅!
타구봉에 내공을 잔뜩 둘렀다.
여기에 타구 스킬의 효과까지 더해졌으니, 이걸 맞았다간 절대 멀쩡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제 쪽으로 계속 다가왔다.
여전히 양손은 좌우로 펼친 채로.
슥!
“…….”
“역시 멈췄군.”
타구봉이 상대의 관자놀이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
“뭐 하자는 거지?”
진천우가 잔뜩 목소리를 깔며 물었다.
어쨌든 먼저 기습 비슷한 형태를 취한 것도 자신이고, 적룡의 능이 무너질 때 이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빠져나오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면, 눈앞의 청년은 제 은인이나 마찬가지.
무방비한 상태로 다가오는 은인에게 다짜고짜 타구봉을 휘두를 수는 없었다.
“역시 자네는 그럴 줄 알았지.”
“날 알아?”
“방금 기억났네.”
“어디서 날 봤지?”
“맹의 시험장에서.”
“뭐?”
거기서 봤다고?
진천우가 기억을 더듬었지만, 역시 눈앞의 청년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만한 실력자.
게다가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범상치 않은 기세뿐 아니라 외모 또한 헌앙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이 맹의 시험장에서 그를 봤다면 결코 잊었을 리 없었다.
“당연히 넌 날 모르겠지. 난 널 봤지만, 넌 날 보지 못했으니.”
“무슨?”
“난 처음부터 합격이 내정돼 있었기에, 멀리서 참관만 했거든. 그때는 특히 재밌었네. 자신이 독을 풀어놓고 ‘맹이 독을 풀었다’고 소리 지르다니.”
“?!”
진천우가 잔뜩 인상을 찡그리면서 타구봉을 내렸다.
그 사실을 아는 걸 보니, 분명 맹의 시험장에 있던 게 분명했다.
‘게다가 내가 독을 푼 것까지 보았다니.’
뭐, 아까 보인 상대의 실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할 듯했다.
무엇보다 눈앞의 상대는 진천우를 향해 확실한 증거를 내보였다.
슥!
그가 천천히 손을 움직여 소매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평범한 목패였는데, 앞면에 크게 맹(盟)이라 새겨져 있었다.
허나 진천우가 주목한 건 그 아래에 아주 작게 적힌 세 자리의 숫자였다.
슥!
진천우도 소매에서 목패를 꺼내 보였다.
맹의 시험에서 합격하면서 맹주에게 직접 받은 목패였다.
거기에도 맹이란 글자 아래에 세 자리 숫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눈앞의 상대와 같은 숫자였다.
이 숫자가 같다는 건 곧 같은 해, 같은 시기에 합격한 자를 뜻했다.
정말 눈앞의 청년은 자신과 같은 시험을 치른 합격자였다.
“내 이름은 무진이네.”
“……진천우.”
스스로 무진이라 밝힌 청년이 곧바로 용건을 밝혔다.
“나는 합격하자마자 맹주께 비밀 임무를 받아 수행 중이었네.”
“비밀 임무?”
“그래. 원래라면 누구에게도 밝히면 안 되는 임무지만, 자네는 다행히 맹 소속이지. 그리고…….”
이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비밀 임무라고 했음에도 숨기지 않고 밝힌 것부터 눈치챌 수 있었다.
“자네는 아마 내가 놓친 검봉의 단서를 찾았겠지?”
여기서 뭐라 답해야 할까?
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진천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그렇담 이후부터 자네도 나와 같이 이 임무를 수행하지.”
“……그럼 이제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자로서 묻고 싶군.”
어차피 숨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진천우는 자신이 아는 것을 밝히는 대가로 받을 수 있는 보상을 명확히 알아야 했다.
“정확히 그 임무가 뭐지?”
맹주가 진정 찾는 게 검봉의 장소인지? 그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무진이 바로 답을 알려주었다.
“맹주께서 내게 내리신 비밀 임무는 ‘검선’을 찾으라는 거였다네.”
* * *
교의 최고 고수는 천마이고, 련의 최고 고수는 사도련주다.
이 둘은 교와 련뿐 아니라 천하를 기준으로 세 손가락에 드는 고수였다.
반면 현 맹주는 아예 무공을 모르고, 맹의 최고수인 백검대주는 천하십대검수로 꼽히나 천마와 사도련주에 비하면 살짝 부족했다.
“그래서 부족한 무력을 해결하기 위해 검선을 찾고 있다?”
“맞네.”
“검선이 머무는 장소가 바로 강호 삼대 비경으로 불리는 검봉이고?”
“그래.”
“그런데 검선을 어떻게 설득할 생각이지? 얘기를 들어보니, 그는 딱히 맹과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건 기밀이라 알려줄 수 없군.”
진천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밀히 따지면 자신은 중간에 참여한 사람이다.
모든 정보를 요구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무진과 손을 잡는 선택은 옳았다.
그는 맹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검선의 행방을 쫓고 있었다.
즉, 무진은 맹의 모든 정보를 열람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지?’
아무리 맹주의 허락이 떨어졌어도, 제 또래의 청년에게 이만한 권한이 주어진 건 믿을 수 없는 일.
허나 진천우는 그 점을 따질 수 없었다.
어쨌든 자신은 그 덕에 큰 수혜를 받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진천우가 조용히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는 무진을 따라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렇게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약간 험한 산세를 지닌 높은 봉우리였다.
아쉽게도 진천우가 찾던 검봉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여기 있을 산적 무리가 검봉에 대한 단서를 안다?”
“정확히는 여기 산적들이 그 단서를 지니고 있다지. 아마 그것들은 자신들의 창고에 검봉의 단서가 있다는 사실도 모를걸?”
신빙성 있는 답이었다.
여기 산적이 누구도 모르는 신비 단체가 아닌 이상, 평범한 산적 무리가 검봉과 검선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이 산에 있는 자들이 그냥 평범한 산적인 게 그들에게는 더 좋았다.
“쓸어버릴 건가?”
“그래야지. 어차피 산적 따위를 처리하는 건 맹의 일이니까.”
무진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한다.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어렵게 갈 필요는 없었다.
슥!
하지만 산에 첫발을 내딛은 순간, 둘은 동시에 인상을 찡그렸다.
“…….”
“…….”
둘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더니.
파팟!
곧바로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이건…… 혈향?’
산에 발을 내딛은 그 순간, 미약하지만 피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그 냄새는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더 진해졌다.
이윽고 둘은 산적들이 머무는 산채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한층 더 짙어진 피 냄새와 몇 구의 시체가 둘을 반겼다.
그리고.
휙!
저 안쪽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누구냐!!”
급히 무진이 사자후를 터트리며, 그림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