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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화 : 뜻밖의 만남 (4) (143/210)


143화 : 뜻밖의 만남 (4)
2022.05.30.


“네놈, 정체를 밝혀라!!”

무진의 일격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그의 검날이 공기를 가르며 거칠 것 없이 뻗어 나갔다.

누구도 그 검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깡!

그런데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정체불명의 상대가 그것을 막았다.

그것도 검이 아닌 봉으로.

‘고수?!’

놀란 무진이 즉시 검을 회수했다.

그러나 그건 다음 일격을 날리기 위한 준비였다.

무진의 이격이 곧바로 날아가려던 찰나.

“그만!”

뒤에서 지켜보던 진천우가 이를 말렸다.

단순히 소리만 지른 게 아니었다.

목소리에 강한 내력이 담겨있었다.

내력만은 또래 중 발군을 자랑하는 진천우였다.

그 소리를 무시하고 다시 공격을 감행하다간 자칫 내상마저 각오해야 했다.

결국 무진은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어째서 말렸지?”

허나 자의가 아닌 타의로 물러난 탓에 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물론 그건 진천우가 알 바가 아니었다.

어쨌든, 둘이 계속 싸우게 놔둘 수 없으니까.

슥!

진천우가 조금 전까지 무진과 공세를 나눈 상대를 향해 먼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한쪽 주먹을 반대편 손으로 감싸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정중한 포권례에 상대 역시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똑같이 포권례를 보였다.

“어찌 내 정체를 아셨소?”

“어찌 모르겠습니까. 비록 타구봉 대신 평범한 봉을 들고 있다고 아니라 하나, 조금 전 움직임은 영락없는 개 잡는 몽둥이질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 천하에 이 정도로 뛰어난 몽둥이질을 펼칠 수 있는 이는 한 사람뿐입니다.”

둘이 짧게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대화 내용이 서로 아는 지인 사이를 나타냈다.

옆에 서 있던 무진도 대화를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진천우에게 상대를 정체를 물으려는 찰나, 저쪽이 먼저 얼굴을 가린 두건을 풀었다.

“?!”

무진은 상대의 얼굴을 보자마자 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럴 수가!

내가 저자, 아니, 저분에게 검을 겨누다니!

“무림 후배가 협개 어르신을 뵙습니다.”

“어르신은 무슨. 난 그저 개방의 거지일 뿐이니, 과한 예의는 필요 없소.”

“하지만!”

“나야말로 우책사와 백검대주가 심혈을 다해 키운 무왕의 재능을 보게 되어 큰 영광이오.”

무왕의 재능?

진천우는 문왕의 재능인 현소를 안다.

그는 총책사의 제자였다.

그런데 우책사와 맹 내 제일의 무력을 자랑하는 백검대주의 제자라?

‘왜 그가 맹주에게 따로 비밀 임무를 부여받고, 맹의 기밀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알겠군.’

그리고 이건, 아마 정철이 자신에게 넌지시 알려주기 위해 한 말임을 알았다.

상황이 마무리되자 진천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헌데 협개께서는 어인 일로 이곳에 오신 겁니까? 그것도 두건으로 얼굴까지 가리고.”

이는 무진 또한 궁금해하는 점이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자신이 기습까지 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협개라는 대단한 명성을 지닌 이가 이곳의 혈사를 자행했을 리는 없었다.

그럼 답은 하나였다.

‘개방에서 여기 일을 조사하기 위해 나왔구나.’

진천우의 질문은 이다음에 있었다.

정철 역시 이를 알아채고 바로 답해주었다.

“개방의 정보대로라면 이 혈사를 일으킨 자들은 교의 혈객이 분명하오.”

“혈객?”

“교에서 엄선한 자객들이지. 소수 정예 집단이라 자세한 정보는 별로 없지만, 우연히 며칠 전에 인근에서 혈객의 목격 정보가 있었소. 또 그들이 향하던 방향이 정확히 이곳을 지난다는 첩보도 함께 있었지.”

교에서 어째서 이런 혈사를 일으킨 걸까?

‘혹시나…….’

진천우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안 좋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길 바랐다.

왜냐하면, 이 생각이 맞다면 아주 곤란한 일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허나 정철은 곧바로 그의 얕은 기대를 무너트렸다.

“어째서 갑자기 혈객 무리가 교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소. 이를 알기 위해 나 역시 정체를 숨기고 파견 나온 거니까. 그런데 여기 와서 조사해 보니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했소. 그건 그들이 명백히 목적을 가지고 여기 산적들을 쓸어버렸다는 점이오.”

“그렇군요.”

진천우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냥 지나가다 산적 무리와 시비가 붙어 쓸어버렸다면 좋았을 것을.

무림에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 일어났다.

하지만 명백히 목적을 가지고 이곳을 쓸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게다가 그 상대가 어중이떠중이도 아닌, 교의 살수 집단이라니!

진천우가 이미 다 포기한 얼굴에 정철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녀석들은 아마 여기 산적들이 모아둔 보물을 노린 겁니까?”

“정확하오.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는 거지?”

“…….”

진천우가 대답 대신 옆에 있던 무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다음부터는 자신이 아니라 그가 답해야 할 사안이다.

어쨌든 이 일은 맹주가 직접 지명한 비밀 임무이고, 그 임무를 받은 당사자는 자신이 아니라 무진이었다.

솔직히 이미 단서를 놓쳤다는 마음에 만사가 귀찮아진 점도 한몫했다.

“협개 어르신. 죄송하지만 저도 자세한 사항은 밝힐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이오?”

“제가 받은 임무 때문입니다.”

무진은 그리 말하며 은밀히 정철에게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목패와 또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그걸 본 협개가 살짝 눈을 치켜떴다.

아무래도 맹주의 권위를 나타내는 무언가임이 분명했다.

“알겠소. 더 자세히 묻지 않겠소.”

“감사합니다.”

진천우도 막막해했지만, 무진은 더욱 그랬다.

적어도 적룡의 능에 숨겨진 단서라도 찾은 진천우와 달리, 그는 이번에도 연이어 눈앞에서 단서를 놓친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정철이 실망한 무진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말이오…….”

“네?!”

이를 들은 무진은 물론이고, 옆에서 귀동냥을 하던 진천우도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 * *

슥! 슥슥!

똘망똘망한 눈의 어린 소년이 제 몸의 수배가 넘는 화려하고 웅장한 크기의 책상에 앉아, 눈앞에 놓인 수십 장의 문서를 훑어보았다.

슥! 슥슥슥!

소년은 재빠르게 문서를 훑고, 필요한 부분을 결재하며, 곧바로 다음 문서를 훑었다.

이때, 검은 복면인이 허공이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소년을 향해 오체투지했다.

“천마시여, 혈객들이 지도를 입수했습니다.”

“그래?”

슥!

어린 소년, 아니 천마가 새 문서를 집으며 입을 열었다.

“젠장, 모처럼 돌아왔더니 결재해야 할 문서가 산더미군. 알겠다. 놈들에게 내친김에 검선의 행방까지 찾아오라고 전해라. 딱히 검선과 충돌할 필요는 없다. 위치만 알아 와.”

“존명.”

복면인이 안 그래도 땅에 박은 고개를 아예 땅속에 박아넣듯 더욱 아래로 숙였다.

그런 뒤 그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면서 천마에게 한 가지 물었다.

본래라면 감히 천마에게 먼저 질문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이 일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검선을 칠 생각이십니까?”

검선은 천마, 사도련주와 함께 천하에 세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

비록 그가 맹에 속하진 않았지만, 최근 맹에서 은밀히 검선을 찾고 있단 정보를 획득했다.

이때 천마가 먼저 검선을 친다면, 그대로 맹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과 같았다.

‘그렇게 되면 련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교와 맹과 련의 전쟁.

이는 가장 끔찍한 일이나, 언제가 반드시 벌어질 일이기도 했다.

복면인은 그에 대한 각오를 다져야 했다.

“궁금한가?”

천마가 여전히 문서를 훑으며 되물었다.

어조가 가볍다.

전쟁까지 생각하지는 않는 건가? 아니면 전쟁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걸까?

복면인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그때, 천마가 수하를 향해 뜻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교가 가장 늦을 수는 없기에 혈객을 움직인 것일 뿐이다.”

“?”

교가 가장 늦는다?

확실히 맹이 먼저 움직인 정보는 이미 포착했다.

‘그러나 아직 련의 움직임은…….’

슥!

이때, 천마가 손에 든 문서를 내렸다.

그의 눈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싹!

복면인은 느닷없이 척추를 타고 오르는 오한에, 더 이상의 문답이 허용되지 않음을 느꼈다.

“조, 존명!”

그 즉시 그는 천마에게 고개를 숙이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천마가 잠시 수하가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았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듯한 살벌한 기세.

그러나 그것은 사라진 수하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향한 살기였다.

‘슬슬 때가 무르익었군.’

때가 무르익었다?

‘곧 그곳에 오를 준비가 갖춰진다.’

오른다?

어딜?

그러고 보니 소천마도 천마를 향해 어딘가에 오를 준비를 한다고 말했다.

‘검선……. 녀석이 바로 그곳의 문을 열 열쇠다.’

슥!

천마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뒤편의 커다란 창을 열었다.

곧바로 맑은 바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천마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휙! 휙휙!

-따라오게.

진천우와 무진의 정철의 안내를 받아, 어딘가로 빠르게 이동했다.

-혈객의 이동 경로를 알아냈네. 놈들이 교로 복귀하지 않는다더군.

설마?

둘이 희망을 품고 정철을 따랐다.

슥!

이동 중, 정철의 손에 몇 번씩이나 서신이 들어왔다.

때로는 지나가는 행인에게서, 때로는 잠시 스쳐가는 다람쥐나 새를 통해.

모두가 천하제일 정보단체인 개방이 자랑하는 정보전달 수단이었다.

정철은 그 즉시 서신의 내용을 확인하고 진천우와 무진에게 공유했다.

-혈객들이 여기서 반대편으로 꺾었다는군.

-혈객들이 여기서 돌아갔다더군.

혈객은 산적 무리를 쓸어버린 후 곧장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개방은 놈들이 산적의 창고에서 무엇을 찾았는지 알아냈다.

-혈객들 중 하나의 손에 전에 없던 푸른 두루마리가 생겼다고 하네. 그들이 방향을 꺾을 때마다 두루마리를 펴서 안의 내용을 확인하는데, 멀리서 볼 때 어딘가를 가리키는 것 같다는군.

휙!

이때, 정철의 손에 또 새로운 서신이 도착했다.

그는 조금의 지체 없이 서신을 소리 내 읽었다.

“삼십 리 밖에 혈객들이 멈췄는데…….”

움찔!

잘 읽다 말고 입술이 멈췄다.

그러나 곧 약간의 떨림과 함께 다시 벌어졌다.

“거기서 그대로 사라졌다고 하는군.”

“사라져? 어떻게 말입니까?”

진천우의 물음에 정철이 다시 서신을 살피곤, 맨 아랫줄의 부가 설명을 읽었다.

“숨어있던 개방도가 지켜보는 눈앞에서, 말 그대로 연기처럼 휙 사라졌다는군.”

“?”

뒤따라오던 무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앞서 정철이 말했던 것처럼 천생 무인이다.

그렇기에 이런 기현상에 다소 생소한 게 있다.

허나 진천우는 달랐다.

그는 정철의 얘기를 듣자마자, 서신의 내용이 뭘 뜻하는지 바로 깨달았다.

휙!

셋은 전력으로 걸음을 옮겼다.

셋 다 범상치 않은 경공을 지닌 덕분에 삼십 리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그리고 이들 셋이 혈객의 마지막 목적지에 왔을 때, 진천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우우웅!

비록 집중하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낮은 진동음이지만, 분명히 들린다.

이 소리의 정체도 짐작되었다.

‘진법이다.’

그렇다면 혈객들은 눈앞의 정체 모를 진법을 통해 사라진 게 분명했다.

확!

그때, 갑자기 진천우의 소매 속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그는 곧바로 소매 안에서 빛을 일으킨 물건을 꺼냈다.

우우웅!

진천우의 소매 속에서 신비한 천들이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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