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 무한의 계단 (1)
(144/210)
144화 : 무한의 계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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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화 : 무한의 계단 (1)
2022.06.01.
“일단 우리 개방도들이 진법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아보겠네.”
“맹에서도 급히 진법가를 파견해달라고 연락하겠습니다.”
정철과 무진이 나름의 방법을 강구했다.
그러나 진천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
대신 그는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근처에 가장 진법의 기운이 강한 장소를 찾았다.
이미 금지에서의 경험과 맹의 진법시험을 치른 진천우는, 오래 걸리지 않아서 일반적인 자연상태로는 쉽게 보기 힘든 신비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곳을 찾아냈다.
“음? 자네, 무얼 찾고 있나?”
이를 본 정철이 다가왔다.
당연히 그 행동은 순수한 호의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근처에 있던 무진마저 관심을 가지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철에게는 자신이 가진 푸르고 희고 누런 천을 보여도 문제가 없었다.
그는 신의가 있는 인물로 이것에 대한 비밀을 지켜달라 부탁하면, 설령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반드시 입을 다물 인물이다.
허나 무진과의 만남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상대의 사람됨을 살필 시간이 없었다.
또한, 그가 그렇게까지 해줄 그럴 의리도 없었다.
하지만 진천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 같습니다.”
“여기?”
“네, 여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진법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 그럼 개방도들에게 당장 이곳을 집중적으로 살피라고 하겠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응?”
진천우가 정철에게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나 달라고 부탁한 뒤, 진법 근원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우우웅!
가까이 다가갈수록 희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여기 설치된 진법은 무언가를 숨기려는 의도였다.
‘그런 점에서 금지에 설치된 진법과 비슷하군.’
천옥산에 설치된 금지 역시 남의 이목을 가리는 용도였다.
그렇다는 말은 이곳의 진법을 해제하는 방법도 그와 유사하다는 소리.
스윽!
진천우가 앞서 뻗은 손 외에 다른 손도 앞으로 뻗었다.
우우우!
그러자 진동이 점점 강해졌다.
이대로면 진법이 발동해 그를 강하게 밀어낼 게 분명했다.
그러나 진천우는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내민 게 아니었다.
스르륵!
갑자기 그의 손이 공간을 갈랐다.
그 손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한쪽에는 푸른 기운이, 다른 손에는 하얀 기운이 맺혔다.
진천우는 천옥산 금지에 들어간 다음 상당한 경험을 쌓았다.
그중 몇 번이나 신비한 천을 사용했다.
덕분에 그는 굳이 천을 소매 속에서 꺼내지 않아도, 천의 기운을 제 손으로 옮기는 게 가능했다.
스륵! 스르륵!
“허헛?!”
한편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정철은 그저 헛기침만 나왔다.
‘진 공자가 언제 이런 능력을 얻은 거지?’
그는 크게 놀라며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
“…….”
반면 무진은 조금 가라앉은 눈빛으로 진천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무공으로 자신과 크게 뒤처지지 않는 또래가 이런 능력까지 지니고 있을 줄이야!
“…….”
그는 복잡한 감정이 섞인 눈으로 계속 진천우를 바라보았다.
스르륵!
그 순간, 진천우가 양손을 빠르게 아래로 내려쳤다.
그와 동시에 술렁거렸던 공간이 갈기갈기 찢겼다.
화아악!
공간이 찢긴 자리 너머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와!”
“헉!”
정철과 무진이 동시에 그 광경을 보고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뭐하십니까?”
진천우는 이미 자신이 찢은 공간 안으로 발을 디딘 후였다.
그가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옳기며 말했다.
“이 통로는 오래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들어오려면 서둘러라.
둘 다 바로 그 뜻을 이해했다.
진천우는 당연히 정철이 먼저 올 거라 생각했다.
그는 자신과 친분이 깊으며, 무엇보다 이중 가장 뛰어난 고수였다.
휙!
그러나 놀랍게도 먼저 몸을 날린 건 무진이었다.
그는 뭔가 커다란 결심을 굳힌 눈으로 공간 너머로 들어왔다.
그 뒤, 정철이 뒤따라 들어왔다.
“후후!”
그는 앞서 걷는 무진과 그보다 더 앞에 서 있는 진천우를 보며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진 공자가 무왕의 재능에게 항상심을 일깨운 듯하오.’
무진은 언제나 또래 중 최고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와 비견되는 재능은 오직 문왕의 재능인 현소뿐이었다.
허나 둘의 재능은 너무나 달랐다.
현소에게는 언제나 제갈세가, 사마세가, 종리세가 등 쟁쟁한 경쟁자가 함께였지만, 무진에게는 그러한 자조차 없었다.
애초에 맹이 무력으로는 교나 련에게 뒤처지는 탓도 있지만, 워낙 맹의 수뇌부에서 무진을 비밀리에 키운 탓이 컸다.
그런 그 앞에 등장한 진천우의 존재.
‘이는 필시 무왕의 재능에게 다시없을 자극이 되겠지.’
정철은 만족스러운 듯, 앞서 걷는 두 젊은이를 지켜보았다.
가장 뒤에 서 있던 덕분에, 그의 시야에 셋 중 가장 먼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거대한 버섯을 닮은 기이한 형태의 산과 그 꼭대기까지 연결된 끝없이 이어지는 나선형의 계단을.
* * *
자그만 초가집 처마 아래.
“허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조용히 제 수염을 쓸었다.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자신의 검은 머리가 새하얗게 변할 때까지.
우우웅!
그 순간, 초가집의 마당에서 강한 진동이 일었다.
“왔는가?”
스륵!
잠시 뒤, 진동이 멎고 누군가 모습을 보였다.
큰 체구의 청년.
낡은 갈옷 군데군데 피가 묻어있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노인의 시선을 끈 건 피 따위가 아닌, 청년의 깊고 단호한 눈빛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갑작스러운 등장이었지만, 노인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
오히려 다소 실망한 표정이었다.
아쉽게도 이 아이는 자신이 기다리던 이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곧 실망한 표정을 지웠다.
비록 기다리던 이가 아니더라도, 이곳 ‘검봉’에 오른 자라면 무언가 보상을 줘야 한다.
검선인 그에게는 그러한 의무가 부가되었다.
‘어디…… 이 아이에게는 어떤 걸 줘야…….’
그런데 상대는 이미 무엇을 받을지 정한 뒤였다.
슥!
청년이 검선을 향해 무언가를 내밀었다.
붉은 천.
“흠…….”
이를 본 노인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에 들어오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그가 세상에 숨겨둔 단서를 모아 오는 것이나, 저 붉은 천은 그러한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지금 자신이 기다리는 누군가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맺은 또 다른 약속 때문이었다.
“련에서 왔느냐?”
“모릅니다.”
“몰라?”
“그저 이 두 개를 보이면 그쪽이 알 거라 했습니다.”
“그놈답군.”
에잉!
검선이 더욱 인상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몸을 돌린 뒤, 그는 은근히 입꼬리를 비틀었다.
‘제법 강단 있는 놈이군.’
분명 처음 눈살을 찌푸릴 때, 저 나이 또래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살기를 내뿜었다.
그런데 저 아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걱정이다.
“과연 내가 네놈에게 이걸 내주는 게 옳은지 모르겠다.”
틀림없이 이것은 저놈에게 아주 큰 힘이 될 거다.
문제는, 저 녀석이 다름 아닌 사파놈이란 거다.
“그것은 어르신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뭐?”
화악!
검선이 다시 살기를 내뿜었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기세.
아마 이 같은 기운을 아무렇지 않게 받을 수 있는 자는 천하에서 열 손가락에 꼽는다.
‘허어?’
그래서 속으로 크게 놀랐다.
이놈은 자신의 진심을 받고도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정말 이런 놈에게 이걸 내줘도 되는 걸까?’
검선은 속으로 몇 번이나 고민하며 손에 든 검은 대도를 청년에게 건넸다.
그는 흑도를 받자마자.
털썩!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
검선이 급히 놈의 맥을 짚었다.
“허어?”
청년은 그대로 혼절했다.
확실히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을 뿜었다.
그런데 뒤로 물러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신음소리도 없이, 인상 하나 찌푸리지 않고 그 기세를 정면으로 받았다.
‘세상에 이 정도로 요령 없는 놈이 있다니?’
“재밌구나.”
바로 그 점이 검선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 이제부터 이건 네 거다.”
그는 결국, 기절한 청년의 손에 흑도를 확실히 쥐여주었다.
그렇게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검선이 지켜온 두 개의 신물 중 하나가 현석의 손에 들어갔다.
* * *
비록 가장 늦게 안으로 들어왔지만, 가장 먼저 버섯 모양 산으로 달려간 건 정철이었다.
“이게 도대체……?”
그는 개방의 후예답게 주위를 살피며 정보를 모았다.
“여기가 검봉인 모양입니다.”
“검봉?”
뒤따라 온 무진이 한마디 했다.
그는 곧 의문을 표하는 정철에게 검봉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확실히 그건 꼭 필요한 정보였다.
허나 정철이 가장 먼저 알고 싶어 한 정보는 아니었다.
“그것보다 우리보다 먼저 들어온 혈객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군.”
그제야 진천우도 의아함을 느꼈다.
분명 자신들은 혈객의 뒤를 쫓았다.
그 말인즉, 진법에 들어가자마자 혈객과 조우하는 하는 게 당연했다.
그렇지 않다는 건.
‘먼저 올라간 건가?’
진천우가 고개를 들었다.
휘이잉!
하늘에 닿을 듯한 기이한 버섯 기둥형 산에 계단이 나선형으로 깔려있었다.
아쉽게도 정상 부분은 버섯 머리 형태로 펼쳐져 볼 수 없었다.
‘일단 이 위를 올라야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있겠군.’
진천우가 조용히 계단 쪽으로 다가갔다.
우우웅!
예상대로 계단 주위에 낮은 진동이 느껴졌다.
여기에도 진법이 깔려있다.
슥!
그는 곧바로 손을 빠르게 휘둘렀다.
소매 안에 숨긴 신비한 천의 효과로 진법의 기운을 끊어냈다.
이걸로 계단에 숨은 비밀을 또 하나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스르륵!
“?”
아니었다.
‘분명 진법을 끊어냈는데?’
진천우가 끊은 진법은 곧바로 복구되었다.
그렇다고 복구되기 전에 무언가 특별한 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계단은 진법이 발동하기 전에도, 발동한 후에도 아주 평범한 계단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진천우가 고민하는 사이.
“이대로 가만히 있겠다면, 내가 먼저 올라가겠네.”
무진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즉시 첫 번째 계단을 밟았다.
휙!
그리고 곧바로 사라졌다.
“?!”
“무슨?”
남은 둘이 눈을 치켜떴다.
분명 무진은 상당한 고수지만, 남은 두 사람이 뻔히 보는 앞에서 모습을 감출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무진은 주로 살수나 도적이 익히는 은신술을 익힌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이게 계단에 설치된 진법의 효과인가?’
슥!
진천우가 다시 한번 계단의 진법을 끊었다.
그러나 여전히 무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가 기껏 끊은 진법도 곧 복구되었다.
“아무래도 직접 몸으로 겪어야만 어떻게 할 수 있는 진법 같습니다.”
수상하기 짝이 없지만, 이러한 진법은 일종의 시험이었다.
검선이 자신을 만나러 검봉을 찾는 이에게 부여하는 시험.
진천우는 이 시험을 치르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계단 쪽으로 다가갔다.
슥!
그리고 계단 위에 첫 발을 올린 순간.
푸른 현판이 나타났다.
[적룡의 능에 숨겨진 ‘검봉의 단서’와 ‘검선의 거처’가 서로 반응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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