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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화 : 무한의 계단 (2) (145/210)


145화 : 무한의 계단 (2)
2022.06.04.


‘무한의 계단?’

이건 또 뭘까?

아무리 봐도 그저 평범한 계단이다.

그런데 무한이라니?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이라는 건가?’

진천우가 고개를 들었다.

원체 높은 계단이었지만, 이렇게 아래에서 직접 위를 올려다보니 확실히 하늘 끝까지 닿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끝없이 이어진 걸까?

‘헛갈리면 방법은 하나지.’

슥!

진천우가 몸을 움직였다.

언제나 모르겠으면 일단 직접 부딪치고 본다.

두 번째 계단을 밟았다.

“…….”

변화는 없었다.

‘뭐지?’

슥!

다시 걸음을 옮겼다.

세 번째 계단.

“…….”

네 번째 계단.

“…….”

다섯 번째.

“…….”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여덟 번째.

“내 착각인가?”

정말 그냥 평범한 계단인가?

슥!

진천우가 또 걸음을 옮겼다.

아홉 번째.

이제 착각이란 가정이 설득력을 갖기 시작했다.

슥!

열 번째.

가정이 확신으로 바꿨다.

‘젠장!’

타이쿤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로 자신을 속일 타이쿤이 아닌데?

‘뭔가 다르게 계단을 올랐어야 했나?’

다시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리고.

휙!

즉시 몸을 날렸다.

대나이신법.

천하에서 가장 자유로운 신법.

진천우는 곧바로 신법의 묘용을 최대한 발휘해 하늘 위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백 개도 넘는 계단을 뛰어넘었다.

그러나 사람은 하늘을 날지 못한다.

진천우가 대나이신법의 첫발을 떼고, 다시 계단 위에 발을 내딛는 순간.

휙!

갑자기 주위 풍경이 빠르게 바꿨다.

“?!”

그는 느닷없는 변화에 즉시 주위를 경계했다.

허나 변화는 한순간이었다.

다행히 주위에 뭔가가 공격해올 낌새도 없었다.

“무슨?!”

하지만 진천우는 곧바로 경악성을 내뱉었다.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즉시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땅이 보였다.

분명 한 발은 계단을 밟고 있는데, 다른 발은 부드러운 땅을 밟고 있다.

“그러니까…… 다시 첫 계단으로 돌아왔다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가!

아, 물론 진천우는 이러한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음을 인지했다.

우우웅!

분명 그가 대나이신법을 펼치고 얼마 뒤, 계단에 설치된 진법이 발동됐다.

그 직후 주위 경관이 뒤집혔고, 자신은 첫 계단으로 돌아왔다.

상당히 특이한 현상이었다.

휙!

진천우가 대나이신법을 다시 펼쳤다.

“…….”

또 첫 계단으로 돌아왔다.

‘그럼!’

휙!

이번에는 그가 펼칠 수 있는 최상위 경신법인 여덟 걸음을 운용했다.

“…….”

역시 결과는 똑같았다.

한쪽 발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땅의 감촉이 당황스럽다.

슥!

맨처음처럼 그냥 평범하게 계단을 올라보았다.

슥!

세 번째 계단.

슥슥!

네 번째, 다섯 번째 계단.

‘역시 평범하게 계단을 오르면 문제없이 올라가 진다.’

하지만 경공을 펼치면 그 즉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아니지. 어쩌면 내가 특정한 계단을 밟아서 그런 게 아닐까?’

중간에 대나이신법을 펼쳐 밟은 계단은 대략 백을 넘겼다.

‘그렇다면.’

희미한 기억을 의지해 대충 백에서 좀 더 넉넉하게 십여 계단을 더 올랐다.

‘특정 계단을 밟아서는 아니었군.’

진천우가 걸음을 멈추고, 앞뒤를 살폈다.

지나온 계단도 앞으로 올라갈 계단도 특별한 점은 없었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돌아가는 조건은 경공을 펼치는 게 분명했다.

‘그럼 정상까지 경공 없이 올라가야 하는 건가?’

고개가 들자, 여전히 계단 끝은 높디높았다.

그러나 이 정도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까짓 거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정상에 닿을 거니까.

진천우가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고, 다시 계단을 오르려는데.

휙!

또 주변 풍경이 뒤집혔다.

턱!

간신히 중심을 잡았을 때, 그의 몸은 어느새 첫 번째 계단으로 돌아갔다.

‘이건 또 뭐야?’

분명 경공은 쓰지 않았는데?

‘아니, 이번에는 다음 계단을 밟지도 않았는데?’

경공 외에 처음으로 돌아가는 또 다른 조건이 있다는 뜻.

진천우가 황당해하며, 일단 백 번째까지 올라갔다.

거기서부터 조심스럽게 위로 올라갔다.

순식간에 이백 번째까지.

하지만 그때까지 시야는 뒤집히지 않았다.

경공 때문은 아니다.

특정 계단을 밟아서도 아니다.

‘그럼 두 번째 조건은 뭐지?’

어떻게든 그 조건을 찾아야 했다.

‘만약 그 조건을 찾지 못하면, 기껏 위로 올라가봤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걸 반복할 뿐이다.’

“으으으!”

진천우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까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냥 주위를 살폈을 뿐인데…….’

시야를 계단 외에 다른 곳으로 돌려서?

하지만 자신은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이미 몇 번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아갔다.

그것도 아니면 도대체 뭣 때문에…….

휙!

이때, 또다시 시야가 뒤집혔다.

“왜?!”

이번에는 따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미동도 안 한 채 주위를 살폈을…….

‘잠깐!’

급히 다시 계단을 올랐다.

단, 그리 많이 올라가진 않았다.

대충 십여 계단.

우뚝!

진천우는 거기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딱히 주위를 둘러보지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나, 둘.’

그저 속으로 천천히 수를 셌다.

‘셋.’

휙!

정확히 셋까지 세자, 시야가 뒤집혔다.

역시 첫 계단으로 돌아왔다.

이걸로 두 번째 조건을 알아냈다.

‘두 번째 조건은 계단 위에서 삼 초 이상 머물지 말 것. 그럼 첫 번째 계단에서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첫 계단에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시야는 멀쩡했다.

슥!

하지만 딱 한 계단만 오른 뒤에 삼 초 대기하면.

휙!

조금의 예외 없이 시야가 뒤집혔다.

‘그러니까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멈추지 말고 계속 올라가라는 건가?’

이후, 진천우는 계속 계단을 올랐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첫 계단으로 돌아가는 세 번째 조건도 찾았다.

우우웅!

휙!

‘내공을 쓰면 안 되는군.’

딱히 경공이 아니어도, 단전의 내공을 조금만 움직이려 하면 여지없이 처음으로 돌아갔다.

이건 계단을 오를 때, 내공 없이 순수한 체력만 사용해서 올라가라는 게 분명했다.

“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러한 조건은 다른 누구보다 자신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었다.

아니, 누군가 딱 자신을 저격해 이런 조건을 만든 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무한의 계단에만 적용되는 조건은 또래보다 월등한 내력을 지니고, 천하제일의 신법을 지닌 진천우에게 천적과 다름없었다.

‘그래도 영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슥!

진천우가 가볍게 한 손을 올렸다.

그의 손에 푸르고 흰 기운이 맺혔다.

앞서 말했듯, 무한 계단 주위에 진법이 설치돼 있었다.

진천우는 언제든 이 진법을 찢을 수 있었다.

“…….”

하지만 그는 곧 위로 든 손을 아래로 내렸다.

“좋아, 해주지.”

그리고 곧장 걸음을 옮겼다.

진천우에게는 딱히 제 몸을 일부러 혹사시키는 취미는 없었다.

허나 그는 딱 한 가지 확신하는 게 있었다.

그것은 타이쿤의 절대 법칙.

-확실한 성과에는 명확한 보상을.

진천우는 다른 누구보다 이 법칙을 믿고 따랐다.

이 법칙대로라면, 조건이 가혹하면 가혹할수록 그 조건을 극복할 때 보상은 달고 값졌다.

“어디 갈 때까지 가보자!”

그렇게 진천우의 무한도전이 시작되었다.

* * *

“큭!”

현석이 눈을 떴다.

“일어났나?”

눈을 뜨자마자 웬 노인이 보였다.

검선(劍仙).

맹, 교, 련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천하에 세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

그가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그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현석이 의아한 얼굴로 그 시선을 따라갔다.

자신의 오른손에 묵직한 뭔가가 들려있다.

‘이건?’

거대한 흑도.

-검봉을 올라, 검선을 만나, 도 하나를 받아와라.

분명 사부가 가져오라는 그것이다.

‘이걸 가져가면 되는군.’

그는 별 생각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슥!

흑도는 보기보단 무겁지 않았다.

“?!”

허나 현석은 다른 이유로 놀랐다.

왜 이 흑도가 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거지?

그는 급히 흑도를 든 손을 살폈다.

도 자루와 자신의 손에 무슨 아교를 바른 것처럼 딱 붙어있었다.

“도 자루에 무언가…….”

현석은 검선에게 이유를 물으려다 말았다.

애초에 도 자루에 아교가 발라져 있든 무슨 상관인가?

자신은 이것을 가지고 사부에게 돌아가면 그뿐.

흑도를 손에서 떼는 건, 가는 길에 어디 강가에서 아교를 씻으면 될 일이었다.

“마도(魔刀)와 빠르게 동화하는 모양이구나.”

“마도?”

“그렇다. 그게 네가 지금 쥐고 있는 흑도의 이름이다.”

“그렇군요.”

현석은 검선의 말에 짧게 답한 뒤, 바로 등을 돌렸다.

딱히 이것의 이름이 궁금하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이 흑도를 가지고 돌아가는 일뿐이었다.

그러자 되레 당황한 건 검선이었다.

그는 설마 저놈이 이리도 담백하게 등을 돌릴 줄 몰랐다.

“이, 이대로 놔두다간 네놈의 몸은 마도에 완전히 잠식될 거다.”

“그렇습니까?”

이때, 현석은 자신이 여기까지 올라왔던 계단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잠식돼도 크게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검선이 다시 한번 당황했다.

‘아니,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검선은 결국 현석에게 마도의 침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원래라면 이렇게 쉽게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바로 알려주지 않으면, 현석은 아무런 미련 없이 검봉을 내려갈 기세였다.

‘그리되면 이 녀석은 필시 마도에 잠식돼 죽는다.’

검선은 차마 그렇게까지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마도의 잠식을 떨쳐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마도를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 주인의 자격을 증명하면 된다.”

“…….”

“당장 해보거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느냐?”

맞는 말이다.

현석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보다 좀 더 어렵고 복잡한 방법이었다면, 우선 도를 사부에게 보인 다음에 잠식 문제를 어찌할까 고민했을 것이다.

슥!

현석이 그 자리에서 천천히 도를 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보기와 달리 그리 무겁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을 하늘 높이 들자마자.

쿵!

갑자기 흑도의 무게가 천근만근으로 늘어났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면 됩니까?”

그러나 현석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그 무게를 견디며, 다시 한번 검선에게 마도의 잠식을 떨쳐낼 방법을 물었다.

검선은 현석을 다시 봐도 독한 놈이란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석이 바로 마도를 내려쳤다.

스륵!

내려치는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단번에 휙하고 내리면 될 텐데.

사실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으득! 으드득!

만근의 무게로 현석을 내려찍는 마도를 아래로 내리자, 온몸 근육이 으스러지듯 아팠다.

그 고통은 마도를 아래로 내릴수록 더욱더 커졌다.

이건 분명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흑도의 특수효과가 분명했다.

애초에 사람의 몸에 잠식하는 무구이니, 그 같은 능력이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스륵!

그럼에도 현석은 마도를 아래로 내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슥!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말 그대로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하지만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으……!”

처음으로 현석의 입에서 얕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극심한 격통에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것이다.

슥!

그렇지만 마도를 아래로 내리는 건 멈추지 않았다.

분명 아프다.

미치도록 아프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아프면 아플수록 머릿속이 맑아졌다.

그리고 맑아진 머리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다.

어떤 고통 앞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누군가가.

휙!

마지막 순간, 현석이 마도를 빠르게 내려쳤다.

쾅!

마도는 그대로 땅에 부딪히며 커다란 소음을 터트렸다.

“무슨?!”

그 모습을 검선이 기가 찬 얼굴로 바라보았다.

분명 자신의 입으로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제 몸을 침식한 마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쳐 주인으로 인정받는 게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님을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다.

‘분명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격통이 밀려왔을 텐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한 방에 성공시킨다고?

‘저놈은 도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허나 그저 감탄만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스르륵!

그 순간, 현석이 손에 쥔 마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방금 막 주인으로 인정한 몸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우드득!

그 직후, 갑자기 현석의 온몸의 뼈와 근육이 부서지고 찢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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