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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 무한의 계단 (3) (146/210)


146화 : 무한의 계단 (3)
2022.06.06.


스륵! 스르륵!

현석이 쥔 마도에서 끊임없이 검은 기운이 나와 그의 몸에 스며들었다.

“…….”

그 모습을 검선이 말없이 지켜보았다.

저 또한 시험이다.

마도가 제 주인을 판단하기 위한 시험.

첫 시험이 ‘몸의 고통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는가’를 평가한다면.

두 번째 시험은 마음의 고통을 확인한다.

아마 마도는 녀석에게 살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려 줄 것이다.

사실 두 번째 시험은 매우 상대적이었다.

살면서 겪어온 고통이 얼마나 끔찍한지 아닌지는 사람마다 달랐다.

허나 검선은 현석이 정말 극도의 고통을 겪으며 살아왔으리라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첫 번째 시험을 통과했을 리 없지.’

몸의 고통을 참아내는 시험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이를 참을 수 있는 정신력이 필요했다.

그 같은 정신력을 키워내려면 마음 수양이 필수였다.

‘특히나 이놈은 마도의 첫 시험을 한 번에, 그것도 큰 표정 변화 없이 끝냈다.’

도대체 어떤 끔직한 과거가 있었기에 그게 가능할까?

스르륵! 스륵!

“큭!”

이때, 기절한 현석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부터는 반응을 크게 보이는군.’

검선이 그럴 줄 알았다며, 자신 있게 현석을 노려보았다.

“크윽!”

시간이 지날수록 현석이 더욱더 인상을 찡그렸다.

“흐음!”

검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 목석같은 놈이 이리도 괴로워할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는 거지?’

허나 그는 몰랐다.

현석이 최근 몇 달간의 기억 외, 그 이전의 기억을 완전히 잊었다는 걸.

그렇기에 마도의 두 번째 시험이 그에게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지도.

* * *

흉년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굶주렸다.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원래 흉년은 수년 주기로 찾아오는 것.

사람들은 항상 이를 대비했다.

부모님은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일해 그해 흉년을 이겨냈다.

그런데 다음 해에 또 흉년이 들었다.

흉년이 연속되는 일은 극히 드문 일.

마을 어른들이 말하길, 이런 일은 백 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부모님은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작년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정말 쉬지 않고 일했다.

얼마 뒤 뼈만 앙상하게 남게 됐지만, 그래도 두 분은 일을 멈추지 않았다.

어린 나도 최대한 열심히 일을 도왔다.

그러다 마침내 괴로운 시간이 다 끝나갈 때쯤,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정말 사소한 사고였다.

만약 두 분의 몸이 정상이었다면 이렇게 끔찍한 결과는 나지 않았을 텐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그 눈물은 하루도 채 되지 못해 모두 말라버렸다.

눈물을 흘릴 기력도 남지 않은 탓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며칠간은 이웃이 도와주었다.

하지만 이 년 연속 들이닥친 흉년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아무리 친절한 이웃도 남의 집 아이를 계속 도와줄 수 없었다.

-꼬르륵!

배가 고팠다.

아직 부모님 장례도 다 치르지 못했지만,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꼬르륵!

일을 했지만, 배를 채울 수 없었다.

흉년은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모조리 빼앗았다.

-꼬르륵!

털썩!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쓰러졌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배고픔에 기억이 가물거렸다.

내가 뭘 하려고 했지?

오늘, 아니 요 며칠 뭘 먹긴 했던가?

-꼬르륵! 꼬르륵!

계속 배가 아팠다.

이러다 정말 굶어 죽겠구나.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느새 빛도, 소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알 수 있는 건, 배가 계속해서 울고 있다는 것뿐.

-꼬르륵! 꼬륵! 꼬르르륵…….

그런데 그 소리조차 점점 더 작아졌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이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

‘아!’

이제 이 소리마저 멈추면, 난 죽겠구나.

죽으면…… 뭐가 있을까?

극락정토? 신선이 사는 세계?

어쩌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뭐든 상관없었다.

‘그래도 이대로 죽어버리면 더는 배고픔을 느끼진 않겠지.’

그래, 그러면 된 거다.

“…….”

-꼬륵…… 꼬르륵…….

점점…… 점점 더 배의 소리가 작아졌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도 한 번, 아니면 두 번, 아무튼 절대 셋은 넘지 않게 꼬르륵 소리가 울린 다음부터 이 소리는 멎을 거다.

-꼬르륵…….

한 번.

남은 소리는 아마 두 번.

‘꽤 오래 견디네?’

아이는 남은 두 번의 소리를 기다리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꼬륵…….

두 번.

아직 한 번이 더 남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정말 사람은 막상 죽으려 하면, 죽기가 힘들구나.

그래도 여전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꼬…….

마지막 세 번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순간.

정말 오랜만에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아직 내 몸에 흘러내릴 수분이 남아있다는 데 놀랐다.

그리고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자, 그 즉시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극락정토?

신선들의 세상?

다 필요 없다.

그저…… 그저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두 분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됐다고!

왜 진작에 떠올리지 못한 걸까?

너무나 후회되고, 후회됐다.

그러나 아이가 아무리 후회한다 한들, 결국 마지막이 찾아왔다.

-르르르…….

‘아아!’

끝이구나.

이제 정말 끝이라 여긴 아이가 모든 희망을 놓아버렸다.

그런데 그 순간.

-여기! 아이가 쓰러져 있어요!!

‘……?’

완전히 정신을 놓으려는 순간, 아주 크고 뚜렷한 소리가 아이의 귓가에 선명하게 박혔다.

* * *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일어났어?

시야에 제 또래로 보이는 어린 얼굴이 드리웠다.

아는 얼굴이다.

‘진씨세가의 소가주님?’

이 어려운 시기,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런데 진씨세가에서는 이 시기에도 일을 내주었다.

정말 유일하게 근방에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내준 가문이었다.

자신도 진씨세가에서 간신히 일을 받아 며칠간 허기를 면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운좋게 소가주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다행이다! 일단 이거부터 먹자.

‘먹어?’

바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오랜 굶주림으로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일어나지 마. 급하게 탕약을 먹여 급한 위기는 넘겼지만, 정신을 차려도 얼마간 거동이 힘들 거라고 했어.

‘약을 먹였다고?’

어쩐지 여전히 몸에 힘이 없지만, 죽기 직전인 그때보다 정신이 또렷했다.

슥!

코끝을 간지럽히는 냄새.

음식?!

먹을 거다!!

진씨세가의 소가주가 직접 미음을 가져와 숟가락으로 떠, 앞으로 내밀었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미음 쪽에 집중되었다.

아마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바로 고개를 내밀었을 텐데.

여전히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걱정 마. 이거 네 거니까.

진가의 소가주는 그리 말하더니.

-후! 후!

입으로 숟가락에 든 미음을 세게 불었다.

그 덕에 코끝에 미음의 향이 더욱 짙게 맡아졌다.

이제 아이의 눈은 아예 핏발이 선 것처럼 붉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자!

꿀꺽!

아이는 살짝 식혀진 미음을 거의 삼키지도 않고 넘겼다.

-야! 그리 급하게 안 먹어도……. 에휴! 됐다. 됐어.

진씨세가의 소가주가 뭐라 말하려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저럴까 싶어 바로 다음 숟가락을 앞으로 내밀었다.

슥!

꿀꺽!

슥!

꿀꺽!

그렇게 몇 번 더 미음을 떠주는 대로 먹다 보니.

-쿨럭!

너무 급하게 먹은 나머지, 사레가 들렸다.

-쿨럭쿨럭!!

아이는 연신 기침을 했다.

너무 허약해진 몸은 기침 몇 번에도 경기를 일으켰다.

“…….”

허나 아이는 제 몸의 떨림보다 방금 제가 한 기침으로 입에서 터져 나온 미음이 더 아쉬웠다.

그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조금 전에 제가 뱉은 미음이 누구의 얼굴로 날아갔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에휴!

진가의 소가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더럽혀진 제 얼굴을 닦지 않고,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을 했다.

-옛다. 여기, 차!

진씨세가의 소가주는 서둘러 아이가 누워있는 침상 옆 탁자에서 차갑게 식힌 차를 찻잔에 따랐다.

그리고 그 찻잔을 아이의 입가에 천천히 따라주었다.

꿀꺽꿀꺽!

아이는 부들부들 떠는 몸으로 간신히 식힌 차를 마셨다.

-그래, 그래, 안 뺏어 먹을 거니까, 이제 좀 천천히 먹어.

그리고 다시 미음을 떠먹여주었다.

또륵!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때, 아이는 결심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진씨세가를 위해, 그리고 진가의 소가주를 위해 살겠다.

그날, 현석은 굳게 결심했다.

* * *

“헉!”

현석이 눈을 떴다.

푸른 하늘이 보였다.

슥!

곧바로 노인의 얼굴이 하늘을 가렸다.

“눈을 떴느냐?”

검선이 잔뜩 인상을 쓰며 물었다.

‘무슨?!’

그는 속으로 크게 놀라고 있었다.

또르르!

믿을 수 없게도, 현석의 두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맺혀있었다.

‘마도의 첫 번째 시험을 단번에 통과한 녀석이 눈물을 글썽인다고?’

도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렸기에?

“하아……! 하아……! 하아……!”

현석은 정신을 차린 뒤에도 연신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몸 상태가 많이 달라졌다.

“네놈은 방금 마도의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 그 말은 마도가 지닌 특수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상태란 거지.”

검선은 곧바로 현석의 몸에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 알려주었다.

이것의 그의 역할이었다.

검선이 굳이 검봉에 오랜 세월 처박혀 있어야 하는 이유.

“…….”

그때, 그의 시선이 잠시 자신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검선의 허리춤에는 항시 두 자루의 검이 걸려 있었다.

하나는 그가 애지중지 아끼는 철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뽑은 적 없는 검이었다.

이 검의 주인을 찾고 나면 검선은 이곳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신검의 주인이 누가 될지, 과연 그러한 자가 나타나기는 할지 모르겠군.’

“……아직 마도의 기운을 완전히 다 받아들이지 못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기운이 완전히 네놈 몸에 적응할 거다. 그때까지 천천히 몸을 추스르며 새로운 기운에 적응하거라.”

잠깐의 상념을 마치며, 검선이 남은 설명도 끝마쳤다.

“…….”

이때, 현석은 다시 처음 등장했을 때의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눈가의 눈물도 모두 사라졌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전까지 검선의 설명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큭!”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제 관자놀이를 눌렀다.

“진…… 진…….”

그 순간, 갑자기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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