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 검박자(劍拍子) (1)
(149/210)
149화 : 검박자(劍拍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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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화 : 검박자(劍拍子) (1)
2022.06.13.
우우웅!!
“뭐지?”
검선이 당황한 얼굴로 신검을 움켜쥐었다.
신검은 당장이라도 검집에서 튀어나올 듯 거칠게 진동했다.
맹세컨대, 그가 신검을 맡은 뒤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설마 저 녀석이 네 주인이라는 거냐?’
정말 그런 건가?
검선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기절한 진천우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뚝!
“?”
갑자기 신검의 떨림이 멈췄다.
‘뭐지?’
기껏 이전에 없던 반응을 보이다가 다시 침묵하다니.
검선이 황당한 얼굴로 제 허리춤에 매달린 신검을 노려보았다.
이후, 시간이 지나도 신검은 다시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우웅!
다른 곳에서 반응이 일어났다.
이건 검선도 익히 아는 현상.
‘또 누가 넘어오는가?’
하룻밤 사이에 셋이나 검봉을 찾다니.
믿기 힘든 일이다.
허나 검선은 아무래도 조금 전, 신검의 특이한 반응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휙!
그 탓에 지금 막 무한의 계단을 넘어 제 앞에 나타난 세 번째의 등장에도 그저 무덤덤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검선이십니까?”
“그렇다.”
하지만 세 번째가 두 번째와 다르게 자신을 보자마자 예의를 갖추고 고개를 숙이자, 검선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그냥 평범한 놈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놈으로.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무림 말학인 무진이라고…….”
하지만 역시나 이놈도 무한계단을 통과하면서 가진 체력을 모두 소모한 게 틀림없다.
‘용케 계단을 다 올라오고도 내게 몇 마디 말을 건넨 것 같지만.’
털썩!
무진은 그대로 기력을 다해 옆으로 쓰러졌다.
“……하!”
검선이 제 앞에 쓰러진 두 청년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모처럼 검봉에 오른 이가 나타났건만.
“휴! 괜히 내 일만 늘어났군.”
자신은 그저 귀찮기만 했다.
일단 혼절한 둘을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검선이 둘을 한 손에 한 명씩 들었다.
분명 노인의 몸이지만, 마치 옷가지를 들듯 너무나 가볍게 들었다.
그렇게 모처럼 인적이 뜸한 검봉에 검선의 손님맞이가 시작되었다.
* * *
-……그러니까!
“으음…….”
-……제발!!
“큭!”
진천우가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보였다.
‘여긴?’
“큭!”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고통이 몰려왔다.
주로 등에.
그 외에도 전신이.
“후!”
그렇지만 진천우는 용케 고통을 참고 몸을 일으켰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는데 다짜고짜 쓴소리가 날아왔다.
“환영에 당한 상처 가지고 엄살이 심하구나.”
엄살?
아니, 그것보다 환영?
검선이 황당하단 눈을 한 진천우를 보며 설명해주었다.
“무한의 계단 후반부에서 날아오는 단검에 당한 모양인데, 그것들은 모두 환영이다.”
“분명 실체가 느껴졌는데?”
진천우가 즉시 반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환영일 수 없었다.
틀림없이 그것들은 제 몸을 파고 들었다.
그때, 느꼈던 고통과 몸을 타고 흐르는 피의 감촉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무래도 검선이 뭔가 크게 착각하는 게 분명했다.
“아니, 전부 환영이다.”
허나 그는 칼같이 진천우의 생각을 부정했다.
“무한의 계단은 오롯이 진법으로만 이뤄져 있다. 단검을 날리는 기관 같은 건 없다.”
“그럴 리…….”
“아직도 못 믿겠다면 네놈의 소매를 걷어 봐라.”
“?”
진천우는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일단 시킨 대로 따랐다.
“?!”
그런데 소매를 걷기도 전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소매가 멀쩡하지?’
지금 그의 소매는 혼절하여 쓰러졌을 때, 묻은 흙먼지 투성이였다.
그러나 그것 외에 처음 무한의 계단을 올랐을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단검이 박힌 자국도, 아니면 다른 단검을 피하다 찢어진 흔적도, 심지어 몸에 단검이 박히면서 흘러나온 핏자국조차 없었다.
‘이 무슨?’
“그러니까 전부 환영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무한계단에서의 환영은 실체를 가진 환영이다. 다시 말해 찔리면 고통을 느끼고, 그게 너무 많으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는 환영이란 거지.”
“그런?!”
진천우가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방금 검선의 말이 무슨 뜻인지 머릿속으로 이해는 했다.
그러나 아무리 이해했어도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모두 환영이란 게 쉬이 믿기지 않았다.
한편, 그런 진천우를 보며 검선이 혀를 찼다.
“쯧, 아무리 그래도 여기 올라올 수 있었을 정도면 기껏해야 단검에 두세 번, 많아도 열 번 이상 맞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엄살을 부리다니.”
두셋? 열 번?
처음 단검이 몸에 박힐 때, 자신이 센 것만 스물이 넘었다.
그다음부터는 오직 계단을 오르는 데만 집중하느라 까먹었다.
하지만 진천우는 여기서 발끈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비밀 루트를 통해 여기로 왔다는 걸 모르는 모양인데?’
그럼 이 사실을 굳이 밝혀야 할까?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때, 그의 바로 옆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검선 어르신!”
“아, 됐다니까!”
“제발 부탁드립니다!”
“싫다고!”
고개를 돌리자, 무진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흙투성이 옷차림으로 검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었다.
둘의 반응을 보아하니 꽤 오래 전부터 저러고 있던 모양.
그러고 보니 눈을 떴을 때, 저와 비슷한 대화를 들었던 것 같다.
‘하긴, 그는 나와 달리 따로 맹주에게 받은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이니 필사적일 수밖에.’
“천하를 위한 일입니다! 제발 맹의 힘이 되어주십시오.”
“됐다니까!”
“어르신!!”
무진이 울부짖었다.
천하에서 세 손가락 드는 절세고수인 교의 천마와 련의 사도련주를 상대하라면, 마찬가지로 그들과 동등한 절세고수인 검선을 반드시 맹으로 영입해야 했다.
“절대 싫다!!”
허나 당사자가 이리도 극렬히 반대할 줄이야.
“그러면 최소한 맹에 들러주시기라도 해주시면!!”
급한 마음에 영입에서 맹으로 초대로 목표를 낮췄다.
일단 맹으로 데려만 가면, 나머지 설득은 맹주나 총책사의 몫이다.
무진은 그 둘이라면 이 꼬장꼬장한 늙은이도 능히 설득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거길 왜 가? 안 간다!”
문제는 검선은 아예 무진의 말을 들어줄 생각조차 없다는 점이었다.
“아니, 제발!”
“안 해!”
계속된 부탁에도 소용없자, 무진이 급히 진천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단 맹주의 비밀 임무는 그도 함께 수행 중이다.
그러니 뭐라도 좋으니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
진천우는 검선과 무진이 서로 실랑이를 벌이든지 말든지,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는 지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뚫어지게 바라보느라 다른 데 정신을 팔 틈이 없었다.
[‘무한의 계단’을 공략했습니다.]
[사용자가 공략한 ‘무한의 계단’의 난이도는 무려 ‘최상위’입니다.]
[보상으로 ‘신검(神劍)의 의지(意志)’가 몸에 깃듭니다.]
‘신검의 의지?’
이게 뭘까?
일단 지금 자신의 몸 어디에도 검(劍)이라 할 건 없었다.
그리고 ‘의지’?
몇 번이나 다시 현판을 확인해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검선이 소리쳤다.
“어허, 아무리 내게 부탁해봤자 소용없다니까. 게다가 난 사정이 있어서 아예 검봉에서 내려갈 수조차 없어!”
“무슨 사정이십니까?”
둘이 아직도 실랑이 중이었다.
조금 전, 검선이 지른 고함에 잠시 고개를 돌렸던 진천우가 다시 현판을 확인하려는데.
“그러니까 난 신검의 주인을 찾기 전까지 여기서 한 발자국도 내려갈 수 없다니까!”
‘신검?!’
공교롭게도 검선의 입에서 중요한 단서가 튀어나왔다.
이건 우연일까?
‘절대 그럴 리 없지.’
진천우는 틀림없이 타이쿤 보상과 방금 검선이 말한 신검이 서로 연관이 있으리라 확신했다.
때마침 옆에 있던 무진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면 제가 그 신검의 주인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검선 어르신도 검봉에서 내려올 수 있고, 또 맹에 들를 수 있을 것 아닙니까?”
“허! 네놈이 신검의 주인이 되겠다고?”
“네!”
다소 섣부르게 약조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무진이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게 아니었다.
그만큼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현재 맹의 사정이 심각했다.
‘이럴 때 맹이 흔들리면 천하가 도탄에 빠진다.’
그리고 그는 천하의 안위를 생각해 기꺼이 제 한 몸 희생할 각오가 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명의 검수로서, 검선이 직접 신검이라 언급한 검에 개인적인 흥미 역시 느꼈다.
대의와 사심이 모두 충족되니, 망설임 따위 있을 리 없었다.
“저도 조금 전 말씀은 흥미롭군요.”
여기서 진천우도 은근슬쩍 한 발 걸쳤다.
휙!
그러자 무진이 곧바로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한소리하려나?’
방금은 자신이 생각해도 꽤 치사한 짓을 저질렀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기회를 넘길 수 없었다.
‘까짓 거, 얼굴에 철판 깔고 욕 좀 먹지.’
그렇게 욕먹을 각오까지 마쳤는데.
“고맙네!”
“응?”
엉뚱하게 감사를 받아버렸다.
‘뭐지?’
진천우가 진지한 눈으로 무진의 안색을 살폈다.
아무래도 마음과 다른 소리를 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나 혼자 검선 어르신을 맹에 초청하기가 벅찼는데, 이렇게 먼저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해주다니,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네.”
무진은 아예 은혜까지 들먹이며 쐐기를 박았다.
진천우는 황당했지만,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자기도 신검을 얻으려고 나섰는데, 되레 상대가 감사를 표하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자네, 바보인가?”
“네? 무슨 소리십니까?”
“쯧!”
옆에서 지켜보던 검선도 기가 차서 한마디 했지만, 상대의 맥없는 반응에 그저 혀만 찼다.
‘사실 나야 둘 중 누가 신검의 주인이 되든 상관없지.’
자신은 그저 아무나 신검의 주인을 정하고, 검봉을 내려가면 되었다.
그렇기에 검선 역시 진천우의 참가를 허락했다.
“따라오게.”
그는 곧바로 둘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검봉 정상에는 검선이 기거하는 낡은 초가집과 너른 공터가 있었다.
바로 이 공터에서 조금 전에 현석이 마도의 시험을 치르고, 검봉을 내려갔다.
두 사람도 여기서 신검의 시험을 치를 것이다.
“신검의 시험을 상당히 힘들 걸세.”
“각오한 일입니다.”
“끌끌!”
자신의 경고에도 당차게 대꾸하는 무진을 보며 검선이 낮게 웃었다.
언뜻 비웃음 같기도 하고 혹은 기대를 갖는 웃음 같기도 했다.
“…….”
이때, 진천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곳…….’
그는 공터에 발을 들이자마자 주위를 살피는 데 집중했다.
‘진법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것도 무한의 계단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범상치 않은 기운.
‘그럼 이곳도 내가 지닌 신비한 천으로 끊을 수 없는 진법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그 말은 곧, 신검의 시험도 무한계단처럼 직접 몸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소리다.
이번에는 그때처럼 누군가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다.
“…….”
진천우가 무한계단 마지막에서 자신을 도와준 자를 떠올랐다.
아쉽게도 그자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아마도…….
“따로 정신을 팔 겨를이 없을 텐데?”
이때, 검선의 큰 목소리로 상념에 빠진 진천우를 깨었다.
중요한 순간을 방해받았지만, 화낼 수 없었다.
“그럼 바로 신검의 시험을 시작하겠다.”
검선이 그리 말하며, 공터 중앙에 놓인 커다란 바위에 신검을 꽂았다.
그러더니 곧바로 초가집 지붕 위로 날아갔다.
처음에는 그대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 알았는데.
……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뭐지?’
뭔가 잘못된 건가?
아무래도 그런 듯해, 진천우가 급히 검선에게 항의하려는 순간.
확!
“무슨?!”
느닷없이 자신의 두 손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눈앞에 푸른 현판이 등장했다.
[‘신검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사용자에게는 현재 ‘신검의 의지’가 깃들어 있습니다.]
[조금 다른 형식의 시험으로 치러집니다.]
[특수 이벤트 ‘검박자(劍拍子)’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