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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 아버지 (1) (154/210)


154화 : 아버지 (1)
2022.06.25.


진화라니?

이게 뭔 말이지?

‘아니, 그것보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

이게 만약 독이라면.

‘아, 이 녀석에게 독은 오히려 약이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만약 몸에 좋지 않은 거면.

진천우는 그동안 독고에게 매우 많은 도움을 받아왔기에, 가장 먼저 녀석이 괜찮을지부터 걱정되었다.

츄!

역시나!

독고가 갑자기 기침을 해댔다.

“그것 봐라. 아무거나 먹으니까 그런 거잖아.”

그는 얼른 독고의 등을 두드렸다.

“뱉어! 뱉으라니까!”

츄!

“이 정도로는 약한가? 아플지도 모르겠지만, 더 세게 두드릴 거니까 참아라.”

츄! 츄츄!

그대로 몇 번 더 독고의 등을 세게 두드렸지만, 녀석은 연신 재채기만 할 뿐, 방금 삼킨 첫 번째 심장을 뱉지 않았다.

츄츄츄!

시간이 지날수록 재채기가 심해졌다.

이러다 정말 잘못되면 어떡하지?

매일 자신의 소매 안에 움츠려 있지만, 때때로 손가락 끝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함께 지냈던 녀석이었다.

적어도 이렇게 어이없게 잃고 싶지 않았다.

츄!!

그 순간, 독고가 다시 기침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그냥 기침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후두둑!

“?!”

독고가 기침과 함께 한 뭉치 검은 실을 토해냈다.

‘이건 전에 독공매니아 때 뱉은 그 실이잖아?’

오래전 독고는 천장에 붙어 이만큼 실을 토해낸 적이 있었다.

그때 실 끝부분이 제 양손과 연결되었고, 그 실을 통해 내려오는 색색의 독을 손끝으로 튕기며 독괴의 독공을 익혔다.

치이이!

그간 독고도 성장해서, 이제 실 자체가 하나의 강한 독과 다름없었다.

땅에 실이 닿자, 땅이 조금씩 녹을 정도.

원래라면 진천우도 서둘러 독고에서 멀리 떨어져야 했다.

하지만.

‘이까짓 거!’

그는 서둘러 독고를 껴안을 뿐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제 손을 녀석의 입에 넣어 검은 실을 꺼내려고까지 했다.

치익! 치이익!

맨손으로 실을 만지는 만큼 손끝이 검게 변했다.

다행히 진천우는 독인이다.

그것도 독괴의 진전을 이은 진짜 독인.

이 정도 독은 손이 검게 변하는 것 정도로 견딜 수 있었다.

츄!

허나 독고의 재채기는 멈추지 않았다.

츄츄!

계속 실을 빼내지만, 그 이상으로 실이 더 튀어나왔다.

“이런!”

온몸을 부르르 떠는 독고를 끌어안고서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하는데, 마침 눈앞에 현판이 나타났다.

[현재 만독의 지존인 독고가 진화 중입니다.]

[진화가 끝날 때까지 건드리지 마십시오.]

[곧 독고가 몸 안의 헌 실을 모두 뱉어내고, 깨끗한 새 실로 온몸을 둘러 진화를 시작할 겁니다.]

뭐?

“그러니까…….”

진천우가 현판과 제 품에 안은 독고를 번갈아 보며, 다시 입을 뗐다.

“이제 진화인지 뭔지 하는 과정이라고?”

……

아쉽게도 현판은 이 이상 답해주지 않았다.

대신 독고가 행동으로 진천우의 질문에 답했다.

휙!

녀석이 갑자기 제 품에서 몸을 날렸다.

“엇?!”

깜짝 놀라 손을 뻗었지만, 독고는 공중에서 허리를 튕기며 그 손길을 피했다.

바로 다시 손을 뻗었다.

휙!

이번에도 독고는 그 손길을 피했다.

진천우는 세 번째로 손을 뻗지 않았다.

“건드리지 말라는 거냐?”

독고는 말이 없었다.

애초에 말을 할 수도 없다.

츄!

하지만 연신 기침하고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떠는 몸으로 자꾸 제 손을 피하는데, 어떻게 다시 손을 뻗을 수 있을까.

행여 저리 힘들게 움직이다 더 탈이 나는 게 아닐까 겁이 났다.

“오냐!”

털썩!

결국 진천우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녀석이 원하는 대로 건드리지 않는 대신, 여기 앉아 끝까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독고도 제 주인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여전히 떨리는 몸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 뒤.

츄! 츄츄!

다시 재채기를 시작했다.

츄츄츄! 츄!!

작은 독고가 냈다고 하기에는 너무 큰 재채기 소리.

츄!!!

이번에는 아예 몸이 위로 튕겨나갈 정도로 컸다.

그걸 볼 때마다 진천우가 눈살을 일그러트렸다.

조금 전 독고에게 다짐받지 않았다면, 진작 몸을 날려 녀석을 끌어안았을 텐데.

뿌득!

하지만 이미 약조한 바가 있기 때문에, 진천우는 그저 나지막이 이를 갈 뿐, 끝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츄!

이 와중에도 독고의 기침이 계속 이어졌다.

녀석이 기침을 할 때마다 입에서 실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얼마 뒤, 독에 절어 검게 빛나던 실의 색이 변했다.

새하얀 흰색.

‘저게 새 실인가?’

새 실은 단순히 색깔만 흰 게 아니었다.

점성이 있는지 겉이 살짝 끈적였고 또 시간이 지나면 딱딱하게 굳었다.

츄!

독고가 여전히 재채기하며 새 실을 제 몸에 감았다.

츄츄! 츄츄츄!

‘그런데 저대로 내버려 둬도 되나?’

아까 말했듯, 지금 독고의 입에서 나오는 실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실이 딱딱해진다고 했다.

그런 실로 온몸을 계속 두르면.

츄! 츄츄!!

“자, 잠깐!”

진천우가 더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상 내버려 뒀다간 독고가 실 범벅이 된다.

그리되면 딱딱하게 굳은 실 때문에 못 움직일 텐데?

이대로 실이 다 굳기 전에 얼른 실을 뜯어내야 했다.

츄!!

그때, 독고가 다시 재채기했다.

이전과 달리 진천우를 향해.

“…….”

그는 바로 독고의 생각을 알아챘다.

“나는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츄! 츄츄!

이미 상당한 양의 실로 덮여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독고가 정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녀석이 저렇게까지 하니, 진천우는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멈춰야 했다.

……츄!

결국, 독고가 마지막 재채기를 뱉으며 온몸을 실로 꽁꽁 감쌌다.

두꺼운 실타래가 몸을 완전히 감싸자, 독고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그 실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끝났나?”

진천우가 조심스럽게 독고를 살폈다.

원래는 주먹만 했던 게 주먹 두 개 정도로 커졌다.

그리고 겉도 아주 단단해졌다.

누가 이 안에 자그마한 벌레가 들어있다고 생각할까?

자신도 처음부터 지켜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거다.

얼마 뒤, 그의 눈앞에 푸른 현판이 나타났다.

[진화가 끝났습니다.]

[만독의 지존, 독고가 독철(毒鐵)이 되었습니다.]

“끝났다고? 이게?”

진천우가 현판의 글귀를 읽고 고개를 가로질렀다.

정말 이대로 끝?

그는 일단 흰 고치로 변한 독고를 조심스럽게 손으로 들었다.

가볍다.

원래 녀석의 몸에 있는 실을 토해 몸에 두른 거니, 무게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내 말이 들려?”

……

혹시나 싶어 말을 걸었지만, 역시나 독고, 아니 독철은 답이 없었다.

진천우는 몇 번 더 말을 걸고 가볍게 흔들어도 봤지만, 아무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당장은 아니지만, 분명 다시 전처럼 움직여 주겠지.’

일단 타이쿤이 별말을 하지 않았기에, 진천우는 독철의 무사를 믿었다.

‘여차하면 이 껍질을 내 손으로 뜯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얼굴을 봐주마.’

그러니까 부디 그 상태로 오래 있지 말거라.

그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독철을 제 소매에 넣었다.

어쨌든 이로써 첫 번째 심장을 얻었다.

‘그럼 다른 두 심장은 그때 얻지 못했던 다른 패왕의 알인가?’

분명 검은 불꽃의 알과 검은 식물의 알.

아쉽게도 그것들의 행방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당장 자신은 다른 할 일을 찾아야 했다.

‘세 개의 심장이 아니라면, 다섯 깃발과 두 개의 무구인데…….’

그런데 진천우는 지금 자신이 지닌 세 개의 천 외 다른 두 개의 천과 신검 외 무기의 위치도 알지 못했다.

“깜깜하군. 그나마 여기서 내려가서 바로 할 수 있는 일은 검선께 신검 외 다른 무기에 대해 묻는 정도인가?”

그렇다 해도 과연 검선에게 만족할 만한 답을 들을 수 있을지.

그때 진천우는 다섯 개의 깃발, 두 개의 무구, 세 개의 심장 외 또 하나 자신이 찾아야 할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진가의 의지를 모아라.

진가의 의지.

적어도 이게 어디에 있을지는 확실히 예상되었다.

‘기회를 봐서 가문으로 돌아가 봐야겠군.’

다른 찾아야 할 것 중 그나마 가장 단서가 명확함에도 곧바로 찾지 않는 이유는 분명했다.

진가의 의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이가 당장 진씨세가에 없었다.

‘아버지.’

진천우의 아비, 그러니까 진씨세가의 가주.

제 아들의 병구완 때문에 언제나 가문 밖을 떠도는, 심지어 최근 몇 년째 소식조차 끊긴 한 사람.

‘아버지, 지금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진천우가 죄송스러운 얼굴로 묵묵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 *

“휴!”

낡고 해진 학사의를 입은 중년인이 숨을 몰아쉬었다.

돌아왔다.

드디어 돌아왔다.

“하하, 드디어 돌아왔구나!”

나의 집, 나의 가문 진씨세가에!

그는 진가 뒤편에 위치한 천옥산 중턱에서 자신의 가문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저곳.

“후우! 휴!”

허나 이미 천옥산을 오르는 데 상당한 체력을 소모했기에, 바로는 달려가지 못하고 일단 조금 앉아 쉬기로 했다.

“휴!”

그래도 잠시 앉아 쉬니 금방 체력이 차올랐다.

“후후!”

체력이 돌아오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번 외유는 생각보다 성과가 좋았다.

‘비록 마지막에 적룡의 능에 갇혀 상당히 시간을 지체했지만.’

그래도 그간 모은 약재와 다른 도구를 사용하면, 아들의 병을 상당히 치료할 자신이 있었다.

어쩌면 완치까지는 아니어도 더 악화하는 걸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만 되면, 앞으로 한 번만 더 나갔다 오면 천우의 병을 완전히 고칠 수 있을 터.’

비록 그 한 번이 지금까지와 비교도 되지 않게 위험하고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상관없었다.

자신은 아비니까.

아픈 아들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 자신은 약하지만, 아비는 강했다.

“아, 또 녀석이 이것들도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는데…….”

진씨세가의 가주가 잠시 제 소매를 들여다보았다.

그의 소매 안에는 정말 많은 게 들어있었다.

당장 눈에 띄는 건 여러 서책이지만, 그보다 더 안으로 눈길을 돌리면, 어째서 학자라는 자의 소매 안에 저런 게 들어있는지 이해되지 않는 게 보였다.

검이나 주사위 그리고 여러 장신구들.

‘아들놈의 몸이 건강해지면 제 또래 남자들이 그러듯 무림을 동경할지 모르니까, 이런 검을 주면 좋아하겠지. 그리고 주사위 놀음이나 검패 놀이 같은 건, 나중에 세상 밖을 나서면 언제든 돈벌이 수단으로 좋으니까 이 아비가 철저히 가르쳐 줘야지. 그러다 만약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선물하라고 괜찮은 장신구도 사뒀고…….’

여자 장신구라고 하니, 갑자기 적룡의 능에서 만난 처자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 처자랑 내 아들이랑 어떻게 잘되면…….’

그러면 정말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관상을 보니, 그 처자는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물론 내 아들 녀석도 절대 평범하진 않지.’

그래도 그 처자랑은…… 음…….

“에라 모르겠다. 이런 걸 나 혼자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보다는 당장 여우 같은 마누라가 가장 보고 싶었다.

다행히 이제 이 산만 내려가면 금방이다.

중년인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산 아래로 내려가려는데.

“응?”

저게 뭐지?

산 위에서는 가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래서 이상한 게 한눈에 보였다.

“우리 집 주위에 웬 잡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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