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 비무 (1)
(156/210)
156화 : 비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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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 비무 (1)
2022.06.29.
현석은 당황스러웠다.
-련으로 간다.
어렵게 마도를 구해 돌아온 그날, 사부는 짧은 한마디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는 오는 내내 당당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지금 이 순간도 바뀌지 않았다.
“우, 움직이지…….”
“머, 머, 멈춰…….”
짧은 기간이지만 사부에게 몇 가지 무공을 전수받고, 마도에게 물려받은 기운으로 감각을 개안하면서, 현석은 제 주위를 둘러싼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무인인지 느낄 수 있었다.
‘하나같이 괴물 같은 자들이다.’
그랬다.
능히 맨손으로도 집채만 한 바위도 우습게 부술 사나운 괴물이 수십도 아닌 기백이나 모여 이빨을 드러냈다.
헌데도 자신의 사부는 여전히 태연했다.
“훗!”
아니, 오히려 낮게 코웃음까지 치며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괴물들이 곧바로 뒤로 다섯 발씩 물러났다.
“감히!”
“후환이 두렵지……!”
괴물들이 더욱 사납게 이빨을 드러내며, 소리를 높였다.
허나 현석은 그런 그들이 되레 겁에 질린 소동물로 보였다.
‘어째서?’
그리 느끼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선 자는 련의 고수들조차 상대가 안 될 만큼 아득히 높은 곳에 선 진짜 괴물이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길래?’
현석이 다시 황당한 눈으로 사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슥!
그때, 그의 사부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큭!”
“모두 무기를!!”
이에 놀란 련의 고수들이 즉시 무기를 뽑아들려는데,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사부가 먼저 입을 벌렸다.
그 벌어진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에, 현석은 물론이고 련의 고수들 전원 몸이 굳었다.
그대로 그들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부가 다시 한번 입을 열어, 믿기지 않는 말을 반복했다.
“잡아가라니까.”
“…….”
역시나 련의 고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꿈틀!
그러다 잠시 사부의 눈썹이 움직이자, 맨 앞에 선 이가 기겁하듯 입을 열었다.
“저, 정말, 이대로 순순히 잡혀주시는 겁니까?”
“너희는 날 잡으러 온 게 아니냐?”
“아니, 그게 아니라…….”
확실히 위에서 내려온 명령은 저자를 사로잡으라는 것이었다.
허나 여기 있는 이들은 그것을 그냥 나가 죽으라는 말로 받아들였다.
제 실력으로 저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여기 있는 기백 명 중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여전히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또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자 사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안 잡을 거냐?”
살짝 내려간 목소리.
그 소리를 듣고서 몇몇이 바로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들은 즉시 품에서 금줄을 꺼내, 사부가 앞으로 내민 팔을 묶었다.
덜덜덜!
금줄로 묶는 와중에도 련의 고수들은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도대체 누가 묶이고, 누가 묶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
“너, 너도……!”
그리고 잠시 뒤, 또 다른 이가 현석에게 금줄을 든 채 다가왔다.
현석은 자신도 이대로 묶여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지만, 그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슥!
그도 순순히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렇게 두 사제가 련의 정문에서 사로잡혀 안으로 끌려갔다.
* * *
철컹!
털썩!
련에 끌려온 현석은 바로 지하 감옥에 처박혔다.
“큭!”
련의 감옥은 꽤나 지독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건 물론이고 곳곳에 악취가 들끓었다.
그럼에도 그중 가장 지독한 건, 제 팔을 묶은 요상한 금줄이었다.
‘이 줄에 묶인 다음부터 내공이 모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 금줄에는 묶은 상대의 내공을 흐트러트리는 신비한 효능이 있는 게 분명했다.
어쨌든, 현석은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주위를 살폈다.
여차하면 탈출할 수 있게, 그게 아니더라도 언제 어떤 상황이 닥쳐도 대처할 수 있게.
그게 그가 기억을 잃고 지금까지 사부에게 무공 다음으로 주입받은 사파인의 자세였다.
-언제나 정정당당하게, 그래서 함정 따위에 당하면 비겁하다 욕하는 건 병신같은 정파 놈들이나 하는 거지.
하지만 사파는 언제든 그런 정파 놈들을 함정에 빠트릴 수 있게 주위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거기다 지금 자신이 가진 패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적어도 언제나 주위를 경계하라는 건 맞는 소리지.’
현석이 감옥 구석에 누워있는 남자를 찾았다.
“깨어 계십니까?”
“…….”
“지금 련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
“아는 만큼만 알려주면 따로 사례하겠습니다.”
“…….”
남자에게 몇 번이나 말을 걸었지만 대꾸는 없었다.
하지만 질문할 때마다 몸이 살짝 들썩이는 걸 보면, 죽었거나 정신을 잃은 건 아니었다.
이때, 또 사부의 말이 떠올랐다.
-사파 놈들은 술에 환장한다.
“술 좋아하십니까?”
진짜 혹시나 해서 물은 거였다.
“술?”
그런데 그게 이렇게 효과가 있을 줄이야.
휙!
남자가 언제 누워있었냐는 듯 바로 몸을 일으켰다.
막상 일어나니 덩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감옥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의 거한.
그가 현석의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진짜 술이 있다고?”
꽈악!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더해졌다.
여기서 술이 없다고 했다간 사단이라도 날 분위기.
허나 다행히도 술이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예, 여기.”
그는 거한에게서 손을 빼고, 품에서 작은 죽통을 꺼냈다.
기억을 잃기 전부터 자신의 품에 있던 물건인데, 이 안에는 싸구려 화주가 들어있었다.
감옥에 처넣을 때, 련은 딱히 소지품을 빼앗지 않았다.
심지어 가지고 있는 마도조차 그대로 지닌 채 감옥에 넣었기에, 이것도 무사할 수 있었다.
“겨우 이거?”
한편, 거한은 죽통의 크기를 보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걸 누구 코에 붙이려고.
하지만 저거라도 없는 것보단 낫다.
그가 바로 죽통을 가져가려는데.
휙!
“음?”
움켜쥐기 직전, 죽통이 손에서 빠져나왔다.
놀란 그가 다시 손을 뻗었지만, 역시나 죽통을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거한이 고개를 내리자, 현석이 무덤덤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술을 받고 싶으면, 제 질문에 답하십시오.”
“하! 이 쥐방울만 한 게 누구한테 이래라저래라야?”
거한이 코웃음치며 다시 손을 뻗었다.
다만 이번에 움켜쥐려는 건 죽통이 아니라 현석의 머리였다.
또다시 사부의 말을 떠올렸다.
-사파 놈들에게 명령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텁!
현석도 지지 않고 손을 뻗어, 거한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일단 부숴. 한번 가루가 될 때까지 쥐어 터지면, 사파건 아니건 다 알아서 기게 돼 있어.
“이놈이!”
거한이 감히 제 주제도 모르는 놈의 손모가지를 부서트리려 했다.
허나 그때!
뻑!
현석이 곧바로 놈의 다리를 걷어찼다.
그것도 정통으로 맞으면 가장 고통스러운 정강이를.
“억!”
우득!
거한이 외마디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현석은 녀석의 손모가지를 비틀었다.
우드득!
지하 감옥에서 뼈와 관절이 분리되는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큭!”
놀랍게도 거한은 손목이 끊어지기 직전임에도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는 것으로 고통을 참았다.
허나 현석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는 손에 더욱 힘을 실은 채, 낮게 물었다.
“질문에 답하시겠습니까?”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
이때만은 거한도 놀란 듯 몸서리를 쳤다.
“너?”
자신이 잘 아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를 떠올린 것만으로 거한의 태도가 돌변했다.
“……네, 모두 설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곧바로 거한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련에 반란이 일어났다.
좀 더 정확히는, 련주가 키운 세 명의 제자 중 첫째가 련을 뒤엎었다.
현재 련주는 수년째 련에서 두문불출 중.
그래서 그 틈을 노리고 둘째와 셋째가 손잡고 련주를 향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이 반란은 정확히 열여덟 번째다.
“음?”
뭔가 이야기가 조금 이상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둘째, 셋째가 첫째와 권력다툼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현재 련에도 없는 련주를 향해 반란을 일으킨 것도 의아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뭐?
“열여덟 번째 반란?”
무슨 반란이 그렇게 잦지?
“그게 바로 련의 특징 아니겠습니까?”
뒤이어 거한이 교나 맹과 다른 련의 특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현석의 사부는 현석과 달리 련의 지하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
대신 위로, 더욱 위로 올라갔다.
련에서 가장 높은 장소.
바로 련주의 처소.
“돌아오셨습니까?”
처소 한가운데 서 있는 깡마른 체구의 청년이 연신 땀을 흘리며 방문자를 맡았다.
“환영식이 거칠구나.”
“수년 만에 돌아온 련주님을 맞이하는 건데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요.”
“그래, 너무 부족하더구나.”
현석의 사부, 아니 사도련의 련주가 가볍게 주위를 살폈다.
눈앞의 둘째 제자 옆에 셋째가 보였다.
사형과 달리 둘째는 바위처럼 단단한 체구의 소유자였다.
또한 외모만큼이나 둘째와 정반대의 성향이기도 했다.
그런 둘이 나란히 서 있다라?
“호?”
솔직히 이 광경은 조금 놀랐다.
‘저것들이 손을 잡다니?’
련은 교와 다르다.
천마가 제 뜻에 반하는 이를 남김없이 척살한다면, 련주는 되레 제 뜻에 반하는 이를 반겼다.
-제 맘대로, 제하고 싶은 걸 다 해야 사파지.
그러니까 반란도 마음대로 해야 했다.
그 때문에 련주는 사파놈들 중에 가장 지독하게 말 안 듣는 놈들만 제 제자로 삼았다.
즉, 제 말도 잘 안 듣는 제자 둘이 서로 손을 잡았다?
‘그것도 날 치려고?’
사도 련주가 상당히 뿌듯한 얼굴로 제자 놈들 뒤를 살폈다.
두 제자 뒤로 련의 장로와 단주들이 겁먹은 채 서 있었다.
그 수가 열을 넘겼다.
수년째 련주의 부재로 간부 대다수가 뿔뿔이 흩어지고, 웬만한 일로는 움직이지 않는 중립파까지 제외하면, 저 둘이 련의 간부 대부분을 포섭했다는 뜻.
그 점이 련주는 못내 기쁘면서도…… 화가 났다.
“설마 겨우 이 정도로 날 어찌할 생각은 아니겠지?”
만일 그렇다면, 진심으로 실망할지도 몰랐다.
허나 두 제자도 할 말이 있었다.
이 둘은 당장 사도련주를 칠 생각이 없었다.
련주는 한번 사라지면 쉽사리 돌아오지 않기에, 앞으로 이삼 년간은 련으로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 틈을 노려 련을 완전히 장악하려 했는데, 하필 처음 계획의 반의반도 이루지 못한 시점에 련주가 돌아온 것이다.
뿌득!
‘여기 있는 전원이 덤벼도 사부를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둘째가 이를 갈며 계획이 어긋남을 한탄했다.
앞서 말했듯 련은 반란에 있어 관대하다.
그렇기에 지금껏 열여덟 번이나 반란이 일어나고도 큰 피바람이 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멍청한 반란까지 관대할 리 없었다.
당장 수차례 반란을 일으켰던 첫째도, 마지막 반란에 성의가 없었다고 끔찍한 형벌을 부여받지 않았던가?
틀림없이 자신들도 이와 비슷한 형벌을 받을 게 분명했다.
어쩜 이리 운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때, 련주가 엉뚱한 말을 꺼냈다.
“너희는 아주 운이 좋아.”
“네?”
약 올리는 건가?
헌데 련주는 다시 엉뚱한 말을 꺼냈다.
“내가 마침 새 제자를 거뒀거든.”
“넷째인가요?”
둘째도 들었다.
련주가 련에 올 때, 동행이 있었다는 걸.
어쩌면 제 사제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지만, 당장 중요한 건 련주를 어떻게 상대하는 일이었기에 애써 무시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녀석에 대한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걸까?
“셋째!”
“네, 넷!”
련주가 장난기 어린 눈으로 셋째를 바라보았다.
“네가 삼 년 전에 내 제자가 되었던가?”
“아닙니다. 올해로 오 년째입니다.”
“쯧! 그런데 아직 첫째 놈이 일 년 만에 오른 경지에도 못 미쳐?”
“…….”
셋째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 정도면 천재라 불려도 부족할 것 없지만, 아쉽게도 이곳은 사도련이었다.
천하를 삼분하는 곳.
세간에 천재라 불리는 자가 사막의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었고, 특히 그중 첫째의 재능은 다른 천재를 평범한 기재로 만들 정도로 각별했다.
아무래도 련주가 반란을 열여덟 번이나 그냥 넘긴 것도 그런 점이 크게 작용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놈과 싸워라.”
“네? 저보고 넷째와 비무를 하라는 말씀입니까?”
“뭐든 상관없다. 싸워서 이겨라. 이기면 이번 일은 넘어가 주마.”
“정말이십니까!”
곧바로 셋째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즉시 련주의 셋째 제자와 마지막 제자인 현석 간의 비무가 준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