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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 : 비무 (5) (160/210)


160화 : 비무 (5)
2022.07.09.


“?!”

예상치 못한 이변.

그러나 그걸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현석은 곧바로 붉은 기운이 이끄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휙!

조금 전까지 꼼짝도 하지 않던 마도가 하늘로 솟구쳤다.

쩡!!

“크핫!”

셋째가 자신이 휘두른 검과 마도와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피를 토했다.

그대로 그의 검은 멈췄지만, 마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쫙!

가슴을 길게 가른 사선.

원래라면 그 선을 따라 몸이 갈려야 하는데.

번쩍!

어느새 련주가 둘 사이에 나타나 셋째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그 덕에 종이 한 장 차이로 치명상을 피했다.

휙!

곧바로 혼절한 셋째를 둘째에게 던졌다.

“살려라.”

“어엇!?”

둘째는 잠깐 당황했지만, 즉시 련주의 명을 따랐다.

점혈로 출혈을 막고, 금창약을 상처에 발랐다.

함께 있던 장로도 가지고 있는 내상약을 꺼내 셋째의 구명을 도왔다.

‘역시 사부는……!’

둘째는 처음에는 련주가 사제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린 줄 알았다.

아니었다.

아, 사제를 구하려 한 건 맞았다.

다만 셋째가 아닌 넷째를.

“가만히 있어라.”

“…….”

현석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열 기력도 없기 때문.

그 사이, 련주는 현석의 자세를 가부좌로 바꿨다.

우우웅!

잠시 뒤, 가슴의 붉은 기운이 폭발했다.

“……!”

조금 전과 비교도 되지 않는 압박!

이대로면 몸이 터질 것 같았다.

“참아라.”

툭!

이때, 련주가 그의 가슴과 어깨, 등을 가볍게 눌렀다.

특정 혈도로 기운을 유도하기 위한 점혈.

우웅!

덕분에 압박이 상당히 줄었다.

허나 쉽게 방심할 수 없었다.

“……!”

현석은 눈을 감은 채 폭발하는 기운을 진정시키는 데 집중했다.

눈 깜짝할 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스륵!

대신 흘린 땀만큼 가슴에 뭉친 붉은 기운도 줄었다.

그것들은 모두 현석의 단전에 빠르게 녹아들었다.

‘이 녀석은 이대로 놔두면 알아서 일어나겠군.’

조치를 마친 련주가 그제야 현석에게서 눈을 뗐다.

그는 곧바로 둘째 쪽으로 다가갔다.

“어떠냐?”

둘째가 곧바로 질문에 답했다.

“셋째의 상태 말입니까? 다행히 조치가 빨라 위험한 고비는…….”

“아니, 네 차례 말이다.”

“네?”

“뭘 모르는 척하는 거냐. 셋째가 졌으니, 다음은 너다.”

“……그러니까 저보고 넷째와 비무하라는 말씀입니까?”

이 녀석도 착각하고 있군.

련주가 셋째 때와 달리 한마디 덧붙였다.

“아니, 싸워라.”

그가 이런 조언을 하는 이유는 특별히 둘째를 셋째보다 더 아껴서가 아니었다.

이제 이런 조언이 없으면 싸움이 공정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

그 사실을 둘째도 깨달았다.

‘설마!?’

그리고 경악했다.

‘셋째 때와 달리, 이제 내가 넷째를 상대로 불리하다고 여기는 건가?’

웃기는 소리!

자신은 셋째와 달랐다.

오 년 차인 셋째보다 오 년 더, 총 십 년을 련주 아래서 수련했다.

재능과 노력 역시 셋째와 비교할 수 없다.

‘그런 내가 진다고?’

당장 본 것처럼 셋째를 간신히 이긴 넷째에게?

둘째는 이에 지독한 분노를 느꼈지만, 용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아마 이 말을 한 이가 련의 다른 자였다면, 분명 분노에 몸을 맡겼을 것이다.

허나 자신에게 조언을 한 이는 바로 사도련주였다.

자신의 사부.

그리고 련의 주인.

마지막으로 천하에 당해낼 자가 없는 절대자.

그가 그렇다고 하면, 무조건 그런 것이다.

적어도 련주는 이런 걸로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째서?’

둘째가 아직도 가부좌를 틀고 있는 넷째를 노려보았다.

우우웅!

놈의 가슴에 뭉쳐있는 붉은 기운.

넷째가 전과 다른 평가를 받을 이유는 저것뿐이다.

그렇다는 말은?

“넷째에게 영약을 준 겁니까?”

“뭐?”

“그게 아니면 저 붉은 기운은 뭡니까?”

그는 련주에게 따지듯 물었다.

영약이 아니고서야 저런 강한 기운이 느닷없이 솟구치는 걸 뭐라 설명할까?

게다가 련에는 저처럼 붉은 기운을 드러내는 영약이 몇 개 있었다.

‘적왕삼인가? 그게 아니면 혈천수? 그것도 아니면…….’

“적룡옥을 생각하는 거라면 틀렸다. 그리고 적왕삼도 혈천수도 아니다.”

련주가 귀신같이 둘째의 생각을 읽었다.

“그럼 어떤 영약을?”

“욕심 많은 네놈이라면 알 텐데?”

“…….”

욕심 많다.

이는 사파인에게 욕이 되지 않았다.

사파인에게 욕심이 많다는 건 오히려 칭찬이었다.

거기다 애초에 련주는 둘째를 책망하거나 칭찬하려고 그 말을 꺼낸 게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그 말대로의 의미.

련주의 제자들 중 가장 욕심이 많은 둘째는 련이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보물의 종류와 효능을 모조리 꿰차고 있었다.

그런 그조차 지금 현석의 가슴에 뭉친 붉은 기운을 만들 수 있는 보물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설마하니, 련주께서 넷째에게 아무런 영약도 주지 않았다는 말씀이십니까? 영약이 아니더라도 다른 비슷한 효과를 지닌 어떤 보물도 내준 적 없다고? 그럼 저 붉은 기운의 정체는 도대체 뭡니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닐 텐데? 난 분명 네놈에게 저놈과 싸우라고 말했다. 그럼 넌 녀석을 이길 수 있나?”

“…….”

둘째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가슴에 차올랐던 자신감이 빠르게 꺼졌다.

사부가 자신에게 이길 수 있냐고 물었다.

……이길 수 있나?

저런 정체불명의 기운을 만들어낸 놈을 상대로?

게다가 녀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저 붉은 기운을 제 것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슥!

셋째가 고개를 돌려 련주와 눈을 맞췄다.

이것만으로 사부는 이제 자신이 무슨 짓을 할 건지 눈치챌 터.

“…….”

하지만 그는 자신과 계속 시선을 맞추고도 어떤 말도,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저 행동의 의미가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는가?

만일 그렇다면?

슥!

조심스럽게 손을 검 쪽으로 가져갔다.

“…….”

련주는 여전히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됐다.’

둘째가 바로 몸을 날렸다.

넷째가 붉은 기운을 완전히 흡수한 뒤에 싸워 이길 자신이 없다면, 붉은 기운을 흡수하기 전인 지금 처리하면 된다.

마침 놈은 운공 때문에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비겁하다고?

사파인이 그깟 걸 신경이나 쓸 것 같은가!

휙!

곧바로 둘째의 검 끝이 현석을 심장을 노렸다.

그런데 그 순간!

쾅!

느닷없이 중앙 연무장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러나 둘째는 여전히 검을 멈추지 않았다.

어떤 놈이 감히 련주가 있는 여기서 소란을 일으키는지 알 수 없으나, 이 기회를 놓치면 두 번째 기회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터.

여기서 반드시 놈의 심장을 꿰뚫어야 한다.

하지만 연무장 문이 열리는 동시에 안으로 들어온 련의 무인이 다급하게 지르는 목소리가 그의 발길을 붙잡았다.

“지, 지금, 교에서 사자가 도착했습니다.”

뭐?

“교에서 사자가 왔다고?”

교(敎).

그 불길한 울림에 결국, 둘째는 발길을 멈추고 말았다.

* * *

슥슥슥!

어린 외모의 천마가 언제나처럼 제 탁자 위에 산처럼 쌓인 결재 문서를 처리하던 중이었다.

쾅! 쾅쾅쾅!

‘무슨 일이지?’

바깥이 심상치 않다.

하지만 이곳은 교의 중심.

어떤 미친놈이라도 함부로 난동을 부릴 수 없는 절대 성역이었다.

그런데.

쾅!!

웬 미친놈, 아니 웬 미친년이 성역의 문을 박차고 천마의 처소 안으로 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교주님!”

한발 늦게 수하들이 몰려왔다.

천마가 그들을 향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물러나라.”

“하, 하지만!”

“내가 물러나라고 했을 텐데?”

“존명!”

곧바로 미친년을 에워쌌던 수하들이 바람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쓸데없는 구경꾼이 모두 떠나자, 그녀가 다시 천마를 향해 걸어왔다.

“여깄소!”

미친년, 아니 소천마가 적룡의 능에서 가져온 검은 천을 천마에게 던졌다.

펄럭펄럭!

검은 천이 공중에서 크게 흩날렸다.

그런데 천은 엉뚱하게 천마가 아닌 소천마에게 다시 돌아갔다.

“?!”

그녀도 이건 조금 당황했는지 두 눈을 치켜떴다.

이곳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실내.

게다가 이런 천쪼가리조차 원하는 곳에 던지지 못할 소천마가 아니었다.

“이게!”

그녀가 다시 검은 천을 내던졌다.

펄럭!

그러나 그것은 또다시 소천마에게 돌아왔다.

마치 제 주인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개처럼.

이러면 안 된다.

그녀가 천마와 한 약속은 검은 천을 그에게 넘기라는 것이다.

“걱정 마라.”

이때,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천마가 천천히 입을 뗐다.

“흑룡기를 교로 가져왔으니, 약조를 지킨 것으로 하겠다.”

흑룡기?

그게 검은 천의 진짜 이름인가?

사실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그 말은 날 소교주로 인정하겠다는 건가?”

“그래, 인정해주지.”

천마가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곧바로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눈앞의 결재서류를 살폈다.

휙! 휙!

그 상태로 손을 흔들며 이만 물러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를 본 소천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이걸로 끝?

“왜? 따로 증서라도 써주길 원하느냐? 그게 아니면, 십만교도들 앞에 네가 소교주라고 공표해주길 원하나?”

둘 다 필요 없다.

그녀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였다.

대대로 교에 내려온 소교주의 증표.

진짜 소교주는 그것을 천마에게 요구할 자격이 주어졌다.

“훗!”

허나 천마는 그것만은 순순히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이건 약조와 다른데?”

“난 분명 이제부터 네가 소교주라고 인정했다.”

천마의 인정과 소교주의 증표는 별개라는 건가?

만일 정말 그리 생각한다면, 이는 상당히 치졸한 수였다.

“훗! 착각하지 마라. 증표를 주기 싫어 내주지 않은 게 아니다.”

“무슨 뜻이지?”

“너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뭐?”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내게 되묻는 것부터가, 네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소천마는 천마의 영문 모를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명색이 천마라는 작자가 혀가 길다.

“내게 똑바로 설명하지 않으면…….”

그녀는 즉시 양손을 모았다.

적룡의 능에서 소천마는 적지 않은 깨달음을 얻었다.

보다 원초에 가까운 천마신공.

이를 사용하면, 설령 상대가 역대 최강의 천마라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막 천마신공을 운용하려는 찰나, 천마가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그가 짧게 몇 마디만 했을 뿐인데.

“뭐?”

소천마는 경악한 듯 양 눈썹을 치켜떴다.

한순간 그녀는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았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허나 천마가 허튼 소리를 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제 귀가 잘못됐을 리는 더더욱 없었다.

천마가 말했다.

“천마로서 명한다. 소교주는 지금 당장 련을 쓸어라. 이에 필요한 인원은 이미 준비해두었다. 필요한 전권도 모두 너에게 넘기겠다.”

“정말인가?”

“난 분명 천마로서 명했을 텐데?”

“정말이라고?”

소교주가 두 눈을 치켜떴다.

방금 천마가 제 입으로 사마대전(邪魔對戰)을 선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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