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 비밀수련 (1)
(161/210)
161화 : 비밀수련 (1)
(161/210)
161화 : 비밀수련 (1)
2022.07.11.
느닷없이 벌어진 사마대전.
허나 천마가 기분 내키는 대로 일으킨 건 아닌 듯했다.
-내려가 봐라. 네가 이끌어야 할 것들을 대기시켰다.
그 말대로 소천마가 아래로 내려가자, 중앙 연무장에 상당한 인력이 대기 중이었다.
“오셨습니까?”
사람들의 선두에 선 왼쪽 눈에 긴 검상을 지닌 중년인이 성큼 앞으로 걸어왔다.
그녀가 중년인을 알아봤다.
‘혈마도(血魔刀).’
혈마도는 교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고수.
그 외에도 교에서 백위권 내에 드는 이가 열 명이나 있었다.
이들 한 명당 배당 인원이 오십.
그렇게 총 오백이 넘는 인원이 중앙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그들의 눈빛이 그리 좋지 않았다.
“누구지?”
“누구길래 혈마도 님을 두고 우리를 이끈다는 거지?”
이들 중 상당수가 소천마를 몰랐다.
당연히 갑자기 나타난 인물이 자신들을 이끈다고 하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녀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저분은…….”
“흠……!”
“분명 전 교주의…….”
꽤나 시간이 흘렀건만, 전 교주의 금지옥엽인 소천마를 기억하는 이도 제법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불편한 눈빛은 바뀌지 않았다.
현재 교에서 천마의 위치는 살아 숨 쉬는 신과 다름없다.
그가 교주직을 강탈한 건 강자존의 법칙을 숭배하는 교에서 정당한 계승이었다.
그 뒤, 몇 번의 반란을 완벽하게 제압하며 천마는 자신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지금의 어린 모습.
명명백백하게 전설로만 전해지던 반로환동을 이룬 천마의 앳된 모습에, 마도인들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감동과 존경을 표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 교주의 딸이라고 나타난 소천마의 존재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훗!”
허나 소천마는 자신을 노려보는 오백 고수의 흉흉한 안광에 겁을 먹기는커녕 되레 코웃음 쳤다.
‘재밌군.’
게다가 그녀는 사람들의 이런 반응에 솔직히 안도하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천마가 함정을 판 건 아닌 모양이야.’
만약 이들 중 전 교주를 그리워하거나,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자들만 있다면?
그거야말로 함정을 의심해야 했다.
‘불순분자를 모아두었다가 이 기회에 단번에 쓸어버릴 생각은 아닌 모양이군.’
그러나 소천마는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니지. 천마가 굳이 그런 귀찮은 짓을 할 리가 없지.’
다른 이도 아닌 천마다.
그가 하려고 하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천마가 턱짓으로 죽어라고 명하면, 상대는 반드시 죽는다.
거기다 애초에 불순분자는 앞서 수차례 반란에서 모조리 썰려 나갔을 터.
“어디까지 들었지?”
소천마가 머릿속에서 잡생각을 지우고 혈마도에게 물었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질문에 답했다.
“여기 모인 이 중 대부분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렇군.”
아마 제대로 된 사정을 들은 건, 혈마도를 제외하면 얼마 되지 않는 모양.
그녀가 마인들 앞으로 걸어갔다.
소천마는 자신을 노려보는 마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내가 소교주다.”
……
반응은 없었다.
여기 모여있는 오백은 모두 정예 중의 정예.
쉽사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허나 그렇다고 아무 반응도 없는 건 또 아니었다.
스윽!
드문드문 눈매가 아까보다 훨씬 날카로워진 이들이 보였다.
전체 분위기도 날이 섰다.
의문이 분노로 바뀐 것.
그전까지는 전 교주의 여식이 왜 여기 있냐는 단순한 의문이었다면, 지금은 저게 교의 이인자라고? 라는 느낌이었다.
교는 철저한 강자존의 세계.
스스로 강함을 증명하지 않으면, 누구도 따르지 않는다.
“좋군.”
그 서슬 퍼런 기세에도 소천마는 입꼬리를 얕게 비틀었다.
그 미소가 너무나 처연하고 고혹적이라, 마주 본 몇몇 마인은 그만 얼굴을 붉혔다.
그중에는 놀랍게도 혈마도 또한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그가 얼굴을 붉힌 이유는 결코 저 아래의 마인들과 같지 않았다.
혈마도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때부터 교에 투신한 이였다.
뛰어난 실력의 그는 매우 빠른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런 혈마도가 젊은 나이에 부단주직을 임명받고 얼마 뒤, 전대 교주가 현 천마에게 축출되었다.
그 뒤, 전 교주의 금지옥엽이 교에서 쫓겨났다.
이때 몇 명의 단주가 새로운 주인에게 과잉 충성하겠다고, 떠나는 그녀를 공개적으로 희롱했다.
씩!
그 자리에서 소천마는 지금처럼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것들을 맨손으로 찢어 죽였다.
그녀는 그때 이미 벽을 넘은 상태였다.
그 일로 교가 발칵 뒤집혔지만, 의외로 천마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대신 그녀를 따로 자신만 아는 장소에 유폐시켰다.
그로부터 얼마 뒤, 혈마도는 단장으로 승격되었다.
소천마가 찢어 죽인 단장의 빈자리를 이어받게 된 것.
그 덕에 그는 교 역사상 가장 젊은 단장이 될 수 있었다.
‘그때와 봤던 것과 똑같은 웃음.’
부르르!
이전 일이 떠올랐는지, 혈마도가 붉어진 얼굴로 가볍게 몸을 떨었다.
이때, 마인들 중 누군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안 돼!’
혈마도가 바로 나서 그를 말리려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하필 그 순간 소천마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눈빛으로 명령했다.
-물러나라.
이를 따르지 않으면?
죽음뿐이다.
그리고 지금 앞에 나서는 저놈도, 행여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인다면 죽는다.
“나는……!”
‘아!’
혈마도는 놈이 입을 떼자마자 즉시 한숨을 쉬었다.
굳이 녀석의 말을 끝까지 들을 필요도 없었다.
지금 저놈의 눈빛과 자세만 봐도 다음 말이 예상되었다.
“당신을 인정할 수 없소!!”
놈의 말이 끝났다.
그 뒤, 곳곳에서 녀석의 말에 호응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아!”
결국, 속으로만 삭이려 했던 한숨이 입 밖으로 흘렀다.
씨익!
소천마가 입꼬리가 더욱 짙게 비틀렸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마음에 안 든다?”
“그렇소!”
‘미친놈!’
저놈은 이제 죽는다.
사실 저놈이 죽든 말든 상관없었다.
원래부터 교도들은 딱히 동료애가 깊지 않다.
문제는 달리 있었다.
“그래서 너희를 수하로 다루고 싶다면 먼저 내 능력을 증명해라?”
“바로 그렇소!!”
“아아!!”
또 입 밖으로 한탄이 튀어나왔다.
‘저놈 때문에 우리 모두 죽겠구나!’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디든, 특히 교나 련, 맹 같은 단체는 연대책임이 당연시되었다.
씨이익!
이때, 소천마의 입꼬리가 정점을 찍었다.
“오냐, 증명해주마.”
그녀가 자신을 노려보는 오백 무인들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덤벼.”
?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허나 아니었다.
그리고 소천마는 상대가 못 알아들었다고 해서 친절하게 다시 말해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퍽!
그녀는 가장 가까이 있는 교도의 갈비뼈를 일수에 부서트렸다.
퍽!
곧바로 바로 옆에 있는 무인의 정강이를 밟아 분질렀다.
퍽퍽퍽!
눈 깜짝할 사이 다섯이 당했다.
그제야 남은 이들도 소천마가 헛소리를 한 게 아니란 걸 인지했다.
“다 덤벼!”
그 직후, 그녀는 큰 소리를 지르며 오백 명의 한가운데로 몸을 날렸다.
* * *
“…….”
현석이 눈을 떴다.
“일어났느냐?”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부, 아니 사도련주가 보였다.
그는 연무장에 사람을 모두 물리고, 홀로 남아 제자의 호법을 서고 있었다.
휙!
그리고 방금 막 정신 차린 현석에게 뭔가를 던졌다.
우윳빛 강기.
“?!”
저걸 정통으로 맞으면 죽는다.
현석이 기겁하며, 허리춤에서 마도를 뽑았다.
슥!
마도가 강기를 단숨에 벴다.
“!?”
현석은 놀란 얼굴로 손에 쥔 마도와 제 몸을 번갈아 보았다.
스스로도 방금 자신이 한 일이 믿기지 않는 모양.
물론 강기를 벨 때, 련주가 일부러 힘을 빼고 던졌다는 걸 느끼긴 했다.
그래도 강기는 강기다.
아무리 신비한 힘을 지닌 마도를 사용했다지만, 본래는 이렇게 쉽게 벨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걸 자신이 베다니.
확실히 믿기지 않는 일.
“강해졌구나.”
허나 제 사부까지 한마디 하자, 믿을 수밖에 없었다.
련주는 지금껏 단 한 번도 허튼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도대체 그 붉은 기운이 뭐길래?’
사도련주의 셋째 제자와 싸우다 느닷없이 가슴에 맺힌 신비한 기운.
그걸 흡수하고 눈을 뜨자 몰라보도록 강해졌다.
그 붉은 기운은 도대체 무엇이었던 걸까?
“당사자인 너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련주에게 물어봤지만, 그는 무심하게 고개를 저였다.
사도련주는 아마도 현석이 가진 마도와 붉은 천에 관계된 특별한 힘이 아닐까 짐작만 할 뿐, 더는 알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은 그걸 알아볼 때가 아니었다.
“네놈이 운공하고 있던 사이, 교에서 사자가 왔다.”
“그렇습니까?”
이번에는 현석이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교의 사자가 자신과 무슨 관계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현석은 어차피 무슨 일이 벌어지든, 사부의 명을 따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허나 그다음 이어지는 련주의 발언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사마대전!?”
“그렇게 됐다.”
확실히 교에서 온 사자의 용건은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었지만, 그 규모가 너무 컸다.
저만한 규모라면 누구든 휘말려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하나 다행인 게, 설령 교에서 천마가 튀어나오더라도 그 못지않은 절대고수가 련에 있으니…….
“난 곧 련을 떠난다.”
“네?”
내가 잘못 들었나?
“제대로 들었다.”
“말도 안 됩니다.”
조금 전에 사마대전이 벌어질 거라고 말해놓고 뭐?!
“사부가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행여나 교에서 천마가 튀어나오면…….”
“그건 걱정할 것 없다. 저쪽에서도 천마가 나타날 일은 절대 없을 거니까.”
어찌 그리 자신하는 거지?
설마 사전에 천마와 말을 맞추기라도?
“그럴 리가.”
뿌득!
련주가 갑자기 이를 갈았다.
거기다 진심으로 화난 표정까지 지었다.
무언가 그의 심기를 아주 크게 건드린 게 분명했다.
“아무튼, 이유는 밝힐 수 없지만, 난 당장 가야 할 곳이 있다. 다행히 교도 당장 쳐들어오지는 않을 거다.”
“그것도 예상입니까?”
“그래. 운이 좋다면 내 쪽에서 먼저 일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겠지만, 그건 솔직히 힘들다.”
그 말은 정말 사도련주 없이 사마대전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다행히 이번에 네가 셋째와 비무를 이긴 덕에 련에서 네놈의 신분은 확실해졌다. 그러니 아무리 내가 없더라도 둘째가 너에게 적절한 지위를 내주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쾅!
말을 계속하던 련주가 갑자기 발을 굴렸다.
그러자 연무장을 덮은 청강석 중 하나가 크게 위로 솟아올랐다.
그 아래에 계단이 숨어있었다.
“이건?”
“일단 강해져라. 강해지면 사람은 알아서 널 따라오게 돼있다. 이 아래에 네게 필요한 수행을 준비해 두었다. 교의 놈들이 오기 전에 더욱 강해져라.”
“아래에 뭐가 있길래…….”
현석이 고개를 들었지만, 어느새 련주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잠깐 사이, 완전히 기척이 사라졌다.
사도련주는 정말 떠난 것이다.
“…….”
현석은 홀로 남아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그의 선택은 하나였다.
슥!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둡고 깊었다.
그리고.
달칵달칵!
계속 내려갈수록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무언가 삐걱대며 돌아가는 소리?
그 소리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계단의 끝이 보이고, 그 너머에 환한 빛이 보였다.
“응?”
완전히 내려간 현석은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고 고개를 저었다.
“인형?”
그건 사람 크기의 커다란 목각인형이었다.
“저걸로 뭘 하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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