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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화 : 경계 너머의 무인 (1) (168/210)


168화 : 경계 너머의 무인 (1)
2022.07.27.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한 줄 아느냐?”

둘째가 현석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딱히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

아니, 이건 오히려 기회다.

‘감히 내 자리에 서겠다고?’

이미 그는 현석이 셋째와 겨루는 걸 보았다.

당시 녀석의 실력은 명백히 자신보다 아래.

그 일이 있고, 불과 며칠이 흘렀다.

설마 그 사이에 자신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기연이 있지 않고서야…….’

순간, 둘째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내가 없는 동안, 련의 모든 이들은 이곳 출입을 금한다. 이를 어길 시 목을 내놓아라.

그의 사부, 사도련주가 떠나기 전 내린 엄명.

아무리 반역을 저지른 전적이 있는 둘째라도, 련주가 그렇게 진지하게 명한 이상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군. 너는 연무장에 혼자 남아 따로 기연을 취한 거구나. 그 기연이 무엇이더냐? 영약이더냐? 아니면 무공? 사부가 네가 무엇을 남기고 갔느냐?”

“…….”

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답할 이유가 없었다.

둘째는 그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곧바로 탐욕을 드러냈다.

‘사부가 저놈에게 무엇을 남겨줬는지 모르지만, 그건 내 거다.’

무공이라면 자신이 뺏어서 가진다.

하지만 무공이 아닌, 먹고 사라지는 영약이면?

‘여기서 저놈의 목을 벤다.’

자신이 먹을 수 없다면, 누구도 먹어서는 안 된다.

그야말로 사파인이나 할 법한 생각.

허나 둘째는 그야말로 정통 사파인이었다.

슥!

그는 아주 짧게 옆으로 곁눈질하자, 좌우에 대기하고 있던 두 명의 단주가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녀석이 아무리 따로 기연을 얻었어도, 나와 련의 단주까지 셋이 동시에 합격하면 어찌 당해내겠는가?’

심지어 그는 조금 전까지 소천마와 붙고, 또 죽음의 함정에서 막 빠져나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네놈의 반역…….”

둘째가 현석을 사납게 노려보더니,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여기서 처단해주마!”

휙!

그가 곧바로 현석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좌우의 단장들도 커다란 도와 곤봉을 앞세우며 달려왔다.

세 방향에서의 공격.

좌우 두 단장의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둘째 역시 아무리 몸보다 머리만 쓴다는 악평을 받아도 일단 사도련주의 둘째를 자칭할 실력자다.

휙!

련주에게 직접 전수받은 검법이 요사스러운 빛을 발하면서 현석을 향해 날아갔다.

검에 둘러진 붉은 기운이 현석의 심장과 그 외 주요 요혈을 노렸다.

“…….”

이를 현석은 묵묵히 지켜보았다.

아직 그의 손은 허리춤으로 향하지도 않았다.

전혀 반격할 자세를 취하지 않는 현석을 보고 둘째가 잠시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그는 놈이 갑작스러운 합격에 당황한 것이라며 애써 머릿속에서 의문을 지우고,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 한 번의 칼질로 련에 남긴 모든 불안을 베어버리겠다.’

그리고 다시 죽음의 함정을 준비하겠다.

한 번 반역이 실패하고, 기껏 준비한 함정에서 소천마를 놓쳤지만, 차라리 잘된 일이다.

모든 일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던가?

실패를 거름 삼아 다음에 성공시키면 된다.

“미안하지만.”

그때, 현석이 입을 뗐다.

“다음은 없다.”

꽉!

그리고 그가 허리춤의 마도로 손을 뻗었다.

“어리석은! 이제 와 무기에 손을 댄다고 우리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뽑을 시간도 주지 않겠다.”

둘째가 그것을 보고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하!”

이에 현석이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냐고?

설마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그도 그럴 게 이들 셋이 펼치는 공격은.

‘그녀의 것보다 훨씬 느리고, 훨씬 약하다.’

아무리 봐도 소천마의 천마수와는 비교조차 민망할 정도였으니.

휙!

그 직후, 현석이 마도를 뽑았다.

너무 늦게 뽑은 탓에, 한 사람의 공격이면 몰라도 셋의 공격을 동시에 막는 건 불가능해 보였지만.

슥!

“컥!”

“무슨?!”

“억!”

그는 일격에 좌우 두 단장을 몸째 베었다.

가운데 있던 둘째만이 맨 먼저 수하의 몸이 베일 때, 뒤늦게 몸을 빼 무사할 수 있었다.

주륵!

아니, 완전히 무사하지 않았다.

얕지만 분명하게 갈라진 가슴에서 쉼 없이 피가 솟았다.

“크으!”

그가 급히 한손으로 가슴 상처를 막고, 소매에서 금창약을 꺼내려는데.

슥!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현석의 것이었다.

“네, 넷째 공자!”

“아니 되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련의 간부들이 그제야 기겁해서 달려들었다.

허나 늦었다.

팟!

이들은 방금 막 달려들려던 자세 그대로 돌이 된 듯 멈췄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은 커다란 핏덩이를 보며 누군가가 참았던 숨을 힘겹게 내쉬었다.

“아아…….”

그렇게 현석의 반역이 성공했다.

방금 막 사도련에서 넷째가 사라졌다.

대신 원래 있던 이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새로 올라간 둘째만 있을 뿐.

* * *

“아직 멀었나?”

히이잉!!

진천우는 다리를 조이며, 타고 있던 말을 채근했다.

이를 본 무진이 자신의 말을 그의 옆으로 바짝 붙였다.

“자네, 너무 서두르는군. 진정하게.”

“내가……!”

진천우가 뭐라 말을 하려다 말았다.

말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음을 알았다.

두근!

아직도 가슴이 뛴다.

두근두근!

아니, 사도련에 더 가까워질수록 심박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이로써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사도련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예감이라 생각했다.

허나 진천우는 알았다.

이 불길한 감정이 단순히 예감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타이쿤이 있었다.

이 정체불명의 무언가는 결코 허투루 무언가를 알려주지 않는다.

타이쿤은 그에게 당장 서둘러야 한다고 계속 신호를 보냈다.

‘현석아!’

이상하게 자꾸 녀석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기에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랴!”

진천우는 다시 말을 채근했다.

히이잉!

말이 더 속도를 올렸지만,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 더! 좀 더 빨리!

히이잉!

하지만 아무리 말을 채근해도 이 이상 더 빨라지지 않았다.

‘차라리 말을 버리고 직접 달릴까?’

“사도련까지 남은 거리는?”

“아직 열흘 넘게 달려야 하네.”

“칫!”

아쉽게도 그건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당장 자신이 직접 달리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겠지만, 그의 내공은 무한하지 않았다.

한 번 내공을 다 쓴 뒤 다시 채우는 시간을 생각하면, 전체 시간은 더 들 수밖에 없었다.

‘현석아!!’

진천우는 다시 한껏 인상을 쓰며,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지난 며칠간 그를 계속 지켜본 무진은 자신이 나서야 할 때임을 자각했다.

‘무슨 이유 때문이지 모르겠지만, 이 이상 진 공자를 내버려뒀다간 필시 큰일이 터지겠어.’

당장 타고 있던 말이 언제라도 게거품을 물고 쓰러질 모양새다.

말이야 다시 보충하면 되지만, 그동안 소비하는 시간이 아깝다.

그리고 그가 진정으로 걱정하는 대상은 말이 아니었다.

‘저리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 자칫 낙마라도 하면, 그대로 주화입마에 빠질지도 모른다.’

무진은 진심으로 진천우를 걱정했다.

그는 자신이 처음 보는 색다른 인물로, 특히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이자 경쟁자였다.

그런 상대를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잃고 싶지 않았다.

“현석아!!”

급기야 진천우가 말 위에서 느닷없이 고함까지 질렀다.

현석?

누군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중요하지 않았다.

“안 되겠군. 자네는 그만 멈추게!”

무진이 급히 말을 몰아 앞을 막았다.

히이잉!

진천우의 말이 갑작스러운 방해에 놀라 앞발을 크게 쳐올렸다.

그래도 맹에서 신경 써 내준 말답게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몇 번 껑충 뛰는 걸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제야 무진은 진천우의 정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내게 달려들지도 모르겠군.’

그간 진천우의 격한 감정을 바로 옆에서 보아온 터라, 무진은 긴장한 자세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허리춤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

진천우는 달려들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후!”

‘웃어?’

“하하! 하하하!”

갑자기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에는 미친 줄 알았다.

‘잠깐, 난데없는 광증도 주화입마의 증상 중 하나인데?’

무진이 걱정돼 다가왔지만, 진천우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았다.

주륵!

그는 웃다 말고 눈물까지 보였다.

‘진짜 미쳤군.’

그걸 본 무진의 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허나 상관없었다.

‘살아있었구나.’

진천우는 흐려진 시야로 눈앞의 푸른 현판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며 웃었고, 그리고 다시 울었다.

‘살아있었어.’

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조련사가 ‘주종’으로 묶인 관계를 스스로 끊어냈습니다.]

관계를 끊는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조련사.

타이쿤이 현석을 명시하는 단어였다.

그동안 이 단어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최근 겪은 몇 가지 일로 어쩌면 현석이 살아있을 거라고, 더 나아가 녀석과 스쳐 지나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타이쿤이 현석의 생존을 명확히 알린 건 이번이 처음.

그래서일까?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췄다.’

아까까지 요동치던 심장박동이 거짓말처럼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에 진천우는 한결 편한 얼굴로 다시 웃고 울기를 반복했다.

“자네, 정말 괜찮나?”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진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어떻게 진정은 된 것 같은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지?’

일단 다행이다.

그는 때마침 진천우가 기분 좋을 때를 이용해 여기서 방향을 틀기로 했다.

“조금 전에 맹에서 먼저 출발한 선발대가 남긴 흔적을 확인했네. 아무래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모양인데, 그들과 합류해서 함께 움직이는 게 좋겠네.”

“그러지.”

진천우가 큰 불만 없이 그 제안에 동의했다.

가슴이 뛰는 게 멈춘 이상, 굳이 서둘러 사도련에 갈 필요가 사라졌다.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온 걸 보면 현석이 더는 거기 없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급하게 서두르기보다는, 확실하게 맹의 지령을 완수해 나중에 따로 맹의 정보력으로 현석을 찾는 게 더 확실했다.

둘은 그대로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무진이 선두로 나서 선발대의 흔적을 쫓았다.

과연 그의 말대로 그들은 얼마 안 가 선발대와 조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

진천우와 무진이 마주친 건 미리 도착해 진지를 구축한 선발대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처절히 박살 난 현장이었다.

“누가? 누가 이런 짓을?!”

무진이 매우 분노하며, 주위를 살폈다.

“으윽……!”

“?!”

그때, 어딘가에서 희미한 신음이 들렸다.

무너진 진지 아래.

“자네!”

무진은 문사 차림의 생존자를 알아보고 급히 몸을 날렸다.

허나 진천우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당장 검을 뽑아!”

그는 무진에게 경고함과 동시에 자세를 잡았다.

저벅!

반대편 무너진 막사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보통 이 경우, 또 다른 생존자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진천우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확신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고!]

타이쿤이 처음으로 푸른색이 아닌, 붉은 색을 띄며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판에 아주 빠르게 새로운 글귀가 나타났다.

[‘경계를 넘은 자’가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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