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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화 : 뜻밖의 선물 (170/210)


170화 : 뜻밖의 선물
2022.08.01.


“아악……!”

사패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눈부셨지만.

“응? 뭐야 이 지저분한 건.”

슥!

갑자기 나타난 거한은 제 쪽으로 다가오는 사패를 단숨에 베어버렸다.

순식간에 사람이 절반으로 갈렸는데 전혀 피가 튀지 않았다.

사패의 몸속에는 피 한 방울 없다는 뜻.

어찌 인간이?

하지만 진천우와 무진이 놀란 건 따로 있었다.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 둘은 거한이 사패를 베는 걸 눈앞에서 보고도 언제, 어떻게 벴는지 전혀 보지 못했다.

즉, 저자는 자신들이 경지를 가늠조차 하기 힘든 절대 고수란 뜻.

무진이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십니까?”

“사도련주다.”

흠칫!

무진이 상대의 이름을 듣자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설마하긴 했지만, 정말 련주 본인이라니.’

꿀꺽!

이제 어떻게 하지?

다른 이도 아닌 사도련주가 맹에서 나온 자신을 가만 둘 리 만무했다.

허나 조금 전 련주가 보인 실력을 생각하면, 달아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검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상대에게 목을 내줄 수는 없는 노릇.

‘적어도…….’

무진이 조심스럽게 옆으로 곁눈질했다.

‘적어도 이번 일과 크게 관련 없는 진 공자만은 달아나게 해야 한다.’

자신이 검선에게 배운 검법을 최대한 발휘하면, 어쩌면 련주를 상대로 삼초지적은 펼칠 수 있을지 몰랐다.

다행히 진천우에게는 매우 뛰어난 신법이 있으니, 그 틈을 타 달아난다면?

슥!

그때, 진천우가 겁도 없이 사도련주 앞에 섰다.

“방금 제게 경계에 대해 알려준다고 하셨지요?”

그는 련주의 말을 똑똑히 기억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파인의 정점?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만, 지금 진천우에게 중요한 건 타이쿤이 몇 번이나 경고한 ‘경계’에 대한 정보였다.

사도련주는 당돌하게 제 앞으로 걸어와 자신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진천우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좋군!”

천만다행으로 그는 지금 기분이 좋았다.

정확히 말하면, 사도련주는 제 뜻에 반하는 모든 걸 좋게 받아들였다.

누가 반역을 좋아하는 괴물이 아니랄까 봐.

“단, 그 설명은 가면서 하도록 하지.”

어딜?

툭!

“!?”

진천우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어느새 점혈을 당했다.

“무슨 짓입니까!”

무진이 이를 보고 바로 검을 뽑았다.

검선에게 배운 검법 중 가장 빠른 초식.

이거라면 아무리 상대가 사도련주라도 당황케 할 자신이 있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물러서는 기색을 보이면 그 즉시 진천우를 빼 올 생각이었다.

슥!

“무슨?!”

하지만 련주는 아무렇지 않게 오른손 집게와 엄지손가락으로 검을 붙잡았다.

설마 이걸 맨손으로 붙잡다니.

도대체 감각이 얼마나 뛰어나면 그리고 몸을 어떻게 단련하면 이런 게 가능하지?

“걱정 마라. 너도 데려가 줄 테니.”

“뭐?”

툭!

그 직후, 무진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읏차!

사도련주가 오른 어깨에 진천우, 왼 어깨에 무진을 들쳐 멨다.

“아!”

그는 그대로 몸을 돌리려다 잠시 잊은 게 생각난 얼굴로 고개만 뒤로 돌렸다.

화륵!

그러자 조금 전 자신이 떨궈 놓은 세 고깃덩어리와 아까 반으로 갈랐던 고깃덩어리가 갑자기 저 혼자 불타올랐다.

삼매진화(三昧眞火)와 허공섭물(虛空攝物)의 수법을 섞어 허공격발(虛空擊發)을 일으킨 것.

그 살덩어리들은 기름에 잔뜩 절여졌는지 순식간에 거센 불길을 피워올리더니, 얼마 안 가 재도 안 남고 깨끗이 타버렸다.

휙!

사도련주는 그걸 모두 확인하고 바로 몸을 날렸다.

그는 어딘가로 빠르게 이동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군. 원래는 넷째 제자 놈을 데려가려고 했는데.’

때마침 사도련으로 향하는 도중, 제자 대신 자기 일을 도울 수 있는 놈들을 발견했다.

“난 정말 운이 좋아.”

휙!

마음이 급해진 사도련주가 점점 더 속도를 올렸다.

* * *

“으음……?”

진천우가 눈을 떴다.

눈앞에 낯선…… 문이 보였다.

“이건?”

“일어났군.”

털썩!

사도련주는 진천우가 정신 차렸다는 걸 알자마자 바로 제 어깨에서 떨궜다.

“이 녀석도.”

“컥!”

무진도 그와 함께 땅에 떨어졌다.

저 녀석도 붙잡힌 건가?

련주는 곧바로 눈앞의 문을 열었다.

그그극!

딱 보기에도 평범한 문이 아니라 집채만 한 돌로 이뤄진 문이 손쉽게 밀려났다.

문 너머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들어가지?”

사도련주가 홀로 먼저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다.

이때, 진천우와 무진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금일세. 함께 달아나세!’

‘아냐.’

진천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서 달아나다니, 안 될 말이다.

‘일단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동안 정신을 잃은 탓에 이곳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그 상태로 달아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달아나야 할 대상이 사도련주라면, 도주에 성공할 가능성은 전무했다.

하지만 그가 도주를 포기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제 경계에 대해 알려주시겠습니까?”

“아직도 그걸 묻는 거냐?”

잠깐 사이 얼마나 내려갔는지 사도련주의 목소리는 한참 아래에서 울렸지만, 그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 어차피 가는 동안 심심하니, 원하는 질문에 답해주기로 하지.”

‘질문에 답해주겠다?’

그냥 처음부터 다 설명해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상대는 사도련주다.

그가 질문에 순순히 답하겠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경계란 무엇입니까?”

“하늘과 땅 사이.”

“…….”

“…….”

“……설마 그게 끝입니까?”

“그런데?”

“그럼, 경계 너머에는 뭐가 있습니까?”

“나도 모른다.”

“사패검주의 정체가 뭡니까?”

“글쎄? 경계 너머와 관련돼있는 것 같긴 한데, 그 이상은 나도 잘?”

처음에는 련주가 얼버무리거나 실제로는 아는 게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의 답을 듣고, 생각이 달라졌다.

‘사패검주가 경계 너머에서 왔다는 건 타이쿤이 알려준 정보와 일치한다.’

아무래도 질문이 잘못된 모양.

‘좀 더 명확하게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 필요하다.’

“련주님! 좀 더 명확하게 답해주실 수 없습니까?”

그때, 결국 둘을 뒤따라온 무진이 질의응답에 끼어들었다.

사도련주는 약조대로 무진의 질문에도 답해주었다.

“없다.”

“무슨! 이 정도 정보는 맹의 정보력을 이용해도 얻을 수 있겠습니다.”

“네놈, 맹의 사람이었나?”

흠칫!

뒤늦게 무진이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어째서 사도련주에게 자신들이 맹에 소속된 걸 말한 걸까?

무진은 자신이 너무 큰 실수를 했다며 크게 낙담했지만, 진천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련주님, 질문하는 건 저희입니다.”

그가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은 곧 ‘너는 우리 질문에 답만 해라’ 하는 말과 진배없건만, 사도련주는 그런 태도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는지 냉담했던 목소리를 원래대로 돌렸다.

“알겠다.”

진천우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조금 전 무진의 질문에 큰 영감을 얻은,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경계에 대해 맹과 교는 어디까지 알고 있습니까?”

“너……?”

련주는 잠시 웃음 섞인 소리를 내더니, 곧 그 질문에 솔직히 답해주었다.

“어느 정도.”

즉, 맹과 교가 경계에 대해 전혀 모르는지 않는다는 뜻.

그렇다면 그 어느 정도의 정보를 무진을 이용해 알아내는 게 가능했다.

이것만 해도 아주 큰 수확이다.

그러나 진천우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수확을 얻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 아래에는 무엇이 있기에 저희를 데려온 겁니까?”

“도착했다.”

‘벌써?’

대답은 어디까지나 가는 동안에 한 질문만.

확실히 좀 더 내려가니, 계단이 끝나고 처음 들어온 입구의 배가 넘는 커다란 문이 들어서 있었다.

사도련주가 문 앞에 서서 둘을 불렀다.

“여기에 네놈의 검을 갖다 대면 된다.”

“예? 제 검을 왜?”

“안 부러트릴 테니까 걱정 마라.”

그리 말하며 련주가 손을 뻗었다.

당연히 무진은 그 손을 피하려 했지만, 아무리 그가 무왕의 재능을 지녔어도 절대고수의 손길을 피할 수 없었다.

휙!

결국, 신검이 사도련주의 손에 들어갔다.

그는 빼앗은 신검을 눈앞의 문에 내던졌다.

쾅!

“얘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안 부서졌잖아?”

신검은 문과 부딪치며 커다란 굉음을 냈지만, 다행히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신검은 문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 무슨?”

무진이 그 기현상을 놀란 눈으로 지켜보는 사이, 사도련주가 문에 손을 갖다 대었다.

허나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역시 꿈쩍하지 않는군. 다음은 네가 문에 손을 갖다 대라.”

“저 말입니까?”

“그래, 너!”

련주가 정확히 진천우를 지목했다.

‘아무래도 사도련주는 신검이 저 껍데기와 내가 가진 신검의 의지로 나뉘었다는 걸 아는 모양인데.’

그럼 저 문을 여는 데 신검이 필요한 건가?

“멀뚱이 서서 뭐해? 어서 여기에 손을 갖다 대라니까.”

아무래도 거부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긴, 거부해도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상대가 아니었다.

진천우가 천천히 문에 손을 댔다.

그러자.

쿠쿵!

그 크고 무거운 문이 정말 홀로 열리기 시작했다.

“됐군. 수고했다.”

휙!

사도련주가 그 즉시 문 안으로 몸을 날렸다.

진천우도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몸을 날리진 않았다.

신법에 자신 있는 그였으나, 달아날 길 없는 공간에서 사도련주와 다툴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그러면 지금 당장 집중해야 하는 신체 장기는 발이 아니다.

휙!

사도련주가 안에서 뭔가를 빠르게 낚아챘다.

‘저건 지도?’

진천우는 문 앞에서 특히 눈에 집중한 덕분에, 그가 무엇을 낚아챘는지 볼 수 있었다.

거기다 아주 잠깐이지만 지도의 내용까지도.

‘저긴 분명…….’

진천우가 련주가 챙긴 지도가 가리키는 장소를 떠올리려는 그때.

“난 간다! 참, 가기 전에 수고비로 아까 네가 한 질문에 답해주지. 여기에는 내가 방금 챙긴 지도랑 또 아주 재밌는 게 있다. 그건 내게 필요 없으니 너희에게 주마.”

“재밌는 거?”

어째서일까?

사도련주가 그 말을 꺼낸 순간, 진천우의 목 뒤로 스산한 기운이 올라왔다.

쾅!

그 직후, 방금 들어왔던 문이 닫혔다.

“헉!”

사도련주가 나가면서 문에 붙은 신검을 뜯어 무진에게 돌려줬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그는 무진을 문 안으로 강제로 집어넣었다.

뚝! 뚝! 스르륵!

그리고 문이 닫히자마자 저 안에서 무언가 전혀 다른 불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거기다 매캐하고 불쾌한 냄새까지 올라왔다.

진천우와 무진이 경계하며, 무기를 들었다.

이때, 사도련주가 문밖에서 점점 멀어지는 목소리로 마지막 전언을 남겼다.

“그 안에 영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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