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 영물 대 영물
(171/210)
171화 : 영물 대 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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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화 : 영물 대 영물
2022.08.03.
“영물?”
진천우는 사도련주가 남긴 말을 곱씹었다.
잠시 뒤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던 순간, 그는 급히 팔로 입을 틀어막았다.
“독!”
자칫 주위에 퍼진 독을 흡입할 위험까지 감수하며 소리친 이유는 간단했다.
무진에게 경고하기 위해.
“윽!”
다행히 무진은 경고를 바로 알아듣고 숨을 조절했지만, 이미 한 호흡 독을 흡입한 뒤였다.
‘보통 독이 아니군.’
진천우도 소리를 지르느라 독을 한 모금 마셨다.
무인인 동시에 뛰어난 독인인 그조차 잠시 시야가 흐려질 만큼 강한 독이었다.
휘청!
바로 옆에 있던 무진이 잠시 몸을 비틀자, 진천우는 얼른 손을 뻗어 잡아주었다.
그 뒤, 소매에서 작게 접힌 흰 종이를 꺼냈다.
‘삼켜!’
무진은 진천우가 내민 종이를 보고서 바로 입에 털어넣었다.
종이 안에는 쓰고 매운 흰 가루가 들어있었는데, 효과가 탁월했다.
흐렸던 시야가 그 즉시 회복되었다.
사실 당연한 일.
진천우는 무인이면서 독인이고, 독인이면서 의원이다.
해독에 있어 탁월할 수밖에 없었다.
휙!
그 순간, 그 둘을 향해 무언가 날아왔다.
둘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그들에게 날아온 건 아주 강한 독이었다.
치익!
독과 충돌한 바닥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하마터면 속절없이 저 독을 뒤집어쓸 뻔했다.
그러나 저걸 피한 덕에 독의 숙주를 찾을 수 있었다.
‘길고 검은 다리.’
그런 게 무려 여덟.
그 여덟 다리 위에 검고 윤기 나는 검은 몸체가 보였다.
허나 진천우가 가장 놀란 건 다리도 몸도 아닌 녀석의 눈이었다.
스륵! 스르륵!
잠시도 쉬지 않고 상하좌우로 빙글빙글 도는 수백 개의 금색 눈이 정확히 절반은 자신을, 나머지 절반은 반대편으로 달아난 무진을 노려보았다.
휙!
무진이 여덟 다리의 시선을 느낀 동시에 신검을 뽑아 놈에게 달려들었다.
챙!
놀랍게도 신검은 놈의 다리를 자르지 못했다.
“?!”
예상 외의 상황에 놀랐는지, 무진은 순간 잠시 멈칫했다.
더 놀라운 일이 잠시 뒤에 벌어졌다.
휙휙!
“!?”
여덟 다리가 가장 앞의 두 다리로 무진을 찔렀다.
움직임이 보통이 아니다.
흡사 무인이 쌍검을 휘두르듯 날쌔고 정교했다.
진천우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어 힘차게 검을 뽑았다.
휙!
그러자 곧바로 그에게도 다리가 날아왔다.
이때도 무진은 계속 두 다리를 상대 중이었다.
그 말인즉?
챙!
‘도대체 몸 구조가 어떻기에?!’
진천우가 제 쪽으로 날아오는 두 개의 다리를 상대하며,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여덟 다리 중에서 가운데의 네 다리로 몸을 지탱한 채, 앞의 두 다리로는 무진을, 뒤의 두 다리로는 진천우를 상대했다.
놈의 다리는 전부 웬만한 명검보도에 뒤지지 않는 강도와 날카로움을 지녔고, 휘두르는 속도는 아주 뛰어난 고수를 연상시켰다.
거기에 남은 네 다리로 움직이는 모습 역시, 노련한 고수의 움직임과 다름없었다.
챙챙챙!
진천우와 무진 모두, 여덟 다리를 상대하며 황당함과 감탄을 동시에 느꼈다.
그걸 녀석도 느낀 걸까?
챙챙챙챙챙!!
놈은 점점 더 다리를 찌르는 속도를 올리다가 그 한계에 다다르자.
휙!
갑자기 입에서 검은 액체를 뿜어냈다.
아마 둘이 제 움직임에 정신이 팔린 틈에 독을 뿜어 단숨에 끝내려는 속셈이겠지.
지금까지 이곳에 들어온 인간들 모두 그런 식으로 사냥당했다.
끼긱!
비록 오늘 가장 처음 들어온 인간이 근처에 다가오자마자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껴 몸을 숨겼지만, 그 인간이 물러나고 남은 두 녀석은 여태껏 만나온 다른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놈의 착각이었다.
휙휙!
진천우와 무진은 동시에 몸을 날려 날아오는 독을 피했다.
무진은 이래 봬도 무왕의 재능을 타고나 맹이 전력으로 키우는 기재.
그리고 진천우는 누구보다 독에 민감한 독인이었다.
-?!
그제야 여덟 다리도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지만, 이미 늦었다.
채챙!
녀석이 아무리 다리를 빨리 휘둘러도 결코 무진의 검을 뚫을 수 없었다.
스르륵!
그리고 아무리 입에서 독을 토해도 진천우에게는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물론 무진은 진천우와 달리 독인이 아니기에, 주위에 독이 퍼질수록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걸 씹어라!”
진천우는 빠르게 여덟 다리의 독을 분석하고, 그 자리에서 가지고 있던 약초와 독초를 조합해 해독제를 만들어 무진에게 넘겼다.
“감사!”
무진은 최소한의 의사표현으로 감사를 표하고 바로 해독제를 삼켰다.
그 후, 진천우가 새 해독제를 만들 동안, 무진은 자진해서 진천우의 몫까지 막아주었다.
여덟 다리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
스르륵! 스륵!
놈이 어디 누가 이기는지 보자는 식으로 제 몸에 있는 독을 한꺼번에 내뿜었다.
그 수는 무려 여덟.
전부 지독한 극독으로, 그중 특히 마지막 둘은 앞의 여섯과 궤를 달리했다.
“음……!”
이번만은 진천우도 놀랐는지, 눈살을 크게 찌푸렸다.
‘이건 해독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바로 해독할 수 없다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독이 계속 쌓인다는 소리.
아쉽게도 나가는 문이 닫힌 이상, 달아날 방법도 없었다.
그나마 자신은 독 내성이 높아 좀 더 견딜 수 있지만, 함께 있는 무진은 사정이 달랐다.
채챙!
“큭!”
그는 독에 중독돼 검게 변한 안색으로 힘겹게 여덟 다리의 공격을 막았다.
지금은 간신히 가지고 있는 내공으로 독을 태우며 견디고 있지만, 이대로 오래 견딜 수 없었다.
스르르륵!
한편, 여덟 다리도 시간을 끌면 자신이 불리하단 걸 알고 더욱 필사적으로 몸에 있는 독을 내뱉었다.
덕분에 얼마 안 가 시야를 가릴 만큼 주위에 검붉은 독무가 가득했다.
‘됐다!’
진천우가 바로 자신이 만든 해독제를 무진에게 넘겼다.
이것까지 모두 다섯.
해독제를 삼킨 무진의 안색이 다소 진정되었지만, 여전히 세 개의 독이 남았고, 그중 두 개는 이렇게 빨리 해독제를 만들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반드시 해독제를 만들어야 했다.
‘좀 더 빠르게, 좀 더 깊게 내가 가진 독괴와 의선의 지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꿈틀!
그런데 진천우가 독을 해독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와중, 품에서 엉뚱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사실 이 반응은 조금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워낙 급했고, 또 처음에는 단순한 착각이라 생각해 무시했다.
꿈틀!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거칠어졌다.
진천우는 도저히 다른 데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임에도 어쩔 수 없이 이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런데 매우 뜻밖에도.
꿈틀꿈틀!
‘이게 왜?’
진천우는 품에서 꺼낸 그것을 보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독고.
아니, 진화한 독고.
온몸을 스스로 토해낸 실로 칭칭 감아 단단해진 뒤부터 어떤 반응도 없었던 녀석이 계속 몸을 흔들었다.
놀랍게도 녀석은!
스스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주위의 독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거?’
아직 여덟 다리는 이변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틈을 노려 진화한 독고가 쉬지 않고 계속 독을 흡수했다.
순식간에 주위 공기가 맑게 정화되었다.
‘안 되지.’
휙!
진천우는 그걸 느끼자마자 바로 몸을 날렸다.
진화한 독고가 독을 흡수한다는 걸 여덟 다리가 눈치채서는 안 된다.
그걸 막기 위해서 그는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 움직이며, 어느 한 곳만 독의 농도가 옅어지지 않도록 했다.
-그륵!
갑자기 진천우가 달아나는 걸 본 여덟 다리가 입에서 쇠 끓는 소리를 냈다.
녀석이 보기에 지금 진천우의 움직임은 독에 중독돼 죽기 직전의 벌레가 보이는 마지막 발악 같았다.
원래 발악하는 놈을 마지막에 찍어 눌러야 하는 법.
스르륵!
여덟 다리는 진천우를 단숨에 중독시키기 위해, 몸속 깊숙이 숨겨두었던 독을 모두 꺼냈다.
덕분에 독무의 농도가 더 진해졌다.
‘여기서 더 농도가 짙어졌다간 무진이 견디지 못한다. 네 녀석만 믿는다.’
진화한 독고가 제 주인의 생각을 읽은 걸까?
꿈틀!
녀석은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독 흡수 속도를 올렸다.
-?!
그제야 여덟 다리도 자신이 내뿜은 독이 난데없이 사라진다는 걸 알아챘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걸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스!
오히려 녀석은 더욱 힘을 내 독을 뿜었다.
아마 저 인간이 품에 귀한 해독주라도 가지고 있는 모양인데, 겨우 그런 거로는 자신의 독을 완전히 해독할 수…….
스스스!
겨우 그런 거로는…….
스스!!
자신의 독을…….
스스스스!!
완전히 해독…….
-!!
하고 있잖아!?
어떻게?!
스!!
여덟 다리가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을 부정하며, 평소에는 절대 꺼내지 않는 곳에 숨겨 놓은 독까지 모조리 쏟아부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 모든 독이 전부 사라졌다.
결국, 녀석은 저 인간의 품에 자신보다 훨씬 격이 높은 무언가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계속 여기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영물 사이에 그러한 격의 차이는 절대적이다.
특히나 같은 독 속성의 영물이라면, 어떠한 경우에도 뒤집을 수 없다.
여덟 다리가 즉시 달아나려는 찰나!
휙!
-?!
방금 전에 중독시킨 인간이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분명 완전히 독에 중독돼 쓰러진 줄 알았는데!?
방심의 대가는 혹독했다.
슥!
무진은 단칼에 여덟 다리의 목을 벴다.
수백 개 황금 눈이 천지사방을 빠르게 훑더니, 어느 순간 단 한 곳에 집중된다.
바로 저 아래에 있는 목 잘린 자신의 시체에.
안 돼!!
여덟 다리가 제 몸을 보며 소리 없이 절규했다.
그 소리를 들은 걸까?
여덟 다리의 시체는 목이 떨어지고도 뒤로 빠르게 달아났다.
하지만 그건, 목이 잘리기 직전 머리가 내린 명령을 뒤늦게 수행하는 데 지나지 않았고.
쾅! 쾅쾅쾅!!
판단하는 머리가 없는 몸은 그대로 여기저기 벽에 혼자 처박더니, 결국 혼자 옆으로 꼬꾸라졌다.
“…….”
진천우는 녀석의 시체를 잠시 살피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녀석은?”
무진이 진천우를 향해 물었다.
그는 심각하게 중독된 상태였다.
이런 몸으로 마지막 힘을 발휘해 여덟 다리의 목을 벤 것.
‘그럼 보상을 줘야지.’
진천우가 손에 쥔 것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건 조금 전 여덟 다리의 몸에서 꺼낸 따끈따끈한 내단.
녀석이 마지막에 내단의 힘까지 사용해 독을 뿜은 탓에, 본래 내단에 담겨 있어야 할 기운의 십 분지 일도 남지 않았다.
원래 내단의 힘은 오늘 가장 큰 공을 세운 진화한 독고가 거진 다 먹어치운 셈.
‘그래도 영물의 내단이니, 제대로 흡수하면 독 내성을 얻을 수 있겠지.’
“먹어.”
진천우가 급하게 꺼내느라 표면에 검붉고 진득한 피가 잔뜩 묻은 내단을 무진의 입에 억지로 집어넣었다.
누가 봐도 역해 보이는 모양새지만, 어차피 자신이 먹을 것도 아니고, 피에 독이 녹은 것도 아니고, 근방에 물도 없고, 무엇보다 내단이 식기 전에 먹어야 가장 효과가 컸다.
“으읍!!”
느닷없이 강제로 내단을 삼키게 된 무진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무왕의 재능을 지닌 무진은 곧 상황을 받아들이고, 바로 내단의 기운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왕 돕기로 했으니, 끝까지 책임져주지.’
일단 진천우는 누구보다 뛰어난 독인이라, 무진이 내단의 기운으로 중독된 독을 완벽하게 몰아내도록 돕기 위해 조심스럽게 그의 기운을 보조해주려고 손을 뻗었다.
그때, 갑자기 눈앞에 푸른 현판이 나타났다.
[경계 너머에서 온 영물의 내단을 흡수했습니다.]
[중간광고를 시작합니다.]
‘응?’
잠깐, 내단을 흡수한 건 내가 아닌데?
[중간광고를 ‘공유’하겠습니까? (예 / 아니오)]
‘으음?’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