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 천마 특급
(177/210)
177화 : 천마 특급
(177/210)
177화 : 천마 특급
2022.08.17.
“넌 누구냐?!”
선인 사내가 괴물을 향해 소리쳤다.
“분명 아래에 선백사(仙白蛇) 무리와 그 무리를 이끄는 진백사(眞白蛇) 세 마리가 있을 터인데, 어떻게 올라온 거지?”
선백사와 진백사, 이는 여기로 오르는 통로에 상주하는 괴물들의 이름이었다.
원래는 평범한 백사 무리였던 그것들은 우연히 경계의 틈에 흘러들어온 다음부터, 경계 너머에서 새어 나오는 신비한 기운을 받아들여 순식간에 영물로 탈피했다.
원래는 자신 같은 선인들이 그것들을 처리하려 했지만, 단숨에 영물로 격상한 뱀은 상당한 고위 선인이 아니고서야 쉽게 치울 수 없었다.
그러자 선인들은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자신들은 이 통로를 통해 들어오는 침입자만 막으면 된다.
그런데 그 통로에 저런 괴물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되레 제 손을 쓰지 않고도 침입자를 막을 수 있었다.
그렇게 결론 내린 선인들은 선백사와 진백사를 일부러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
물론 혹시나 이 뱀들이 경계 너머로 넘어올 걸 대비해 녀석들의 생태를 확실히 조사하는 걸 잊지 않았다.
‘처음 저놈이 들어왔을 때는 때마침 백사 무리가 경계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시기와 겹쳤었다. 그래서 운 좋게 올라왔을 거라 생각한 것인데……. 그럼 지금 나타난 저 괴물은 어떻게 올라온 거지?’
사실 그의 생각은 틀렸다.
원래 진천우는 운 나쁘게 백사 무리가 돌아오는 순간에 정확히 통로를 지났지만, 그것들은 되레 진천우를 피해다녔다.
일전에 말했듯, 영물 사이에는 명백한 격이 존재했다.
게다가 선백사와 진백사는 하필이면 독을 다루는 영물.
진천우의 품 안에 있는 독고의 기운을 느낀 뱀 무리는 그의 그림자만 보여도 기겁하고 물러났다.
그 뒤, 진천우가 통로를 빠져나가고 한참 뒤에야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는데.
하필 그 직후 만난 상대가 말도 안 되는 괴물이었다.
허나 백사 무리들은 그것도 모르고, 자신들이 진천우를 피해 다니다 얻은 짜증을 그 괴물에게 풀려고 했다.
그 결과는 전멸.
“그러는 너야말로 누구냐?”
진정한 괴물, 그러니까 천마가 한껏 귀찮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난 이곳을 지키는 선인이다.”
“아, 그래?”
휙!
답을 들은 천마가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선인 사내는 처음에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그는 제 몸이 갑자기 반으로 썰리는 순간에도 그것을 몰랐다.
“억?!”
선인 사내가 상황을 파악한 건, 멀쩡한 제 오른쪽 시야와 잘린 왼쪽 시야가 어긋난 다음이었다.
“…….”
그는 그렇게 제대로 된 비명 하나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천마는 제 앞을 막는 모든 것을 망설이지 않고 전부 박살 냈다.
“그럼 넌?”
그가 진천우를 향해 물었다.
이때, 답을 잘해야 한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
대부분 절대자는 기다림을 싫어하니까.
“전……!”
진천우는 무슨 말을 꺼낼지, 한 호흡, 딱 한 호흡만 고민한 뒤 바로 입을 열었다.
“전 안내자입니다.”
“너가 뭘 안내할 수 있지?”
“경계까지. 가는 경로는 방금 저놈에게 모두 들었습니다.”
“그럼 함정이겠군?”
천마는 바보가 아니었다.
방금 자신이 죽인 놈과 진천우가 적대적인 관계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진천우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네,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그런데 네가 뭘 안내한다는 거냐?”
“함정을 안내하겠습니다. 이 선인 놈들이 경계로 넘어오려는 이를 맞이하려고 준비한 함정을.”
진천우는 천마가 제 답변에 눈매가 가늘어지는 걸 보고, 즉시 한 번 더 호흡을 가다듬은 뒤, 다시 빠르게 입을 뗐다.
“아마도 멀리 돌아가는 것보다 그 함정을 모조리 박살 내며 나아가는 게 경계로 가는 가장 빠른 경로일 겁니다.”
“…….”
진천우의 답에 천마는 즉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그는 자신의 답에 아주 조금이지만 눈꼬리를 비틀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상황이 풀렸다는 건 아니었다.
과연 천마는 어떻게 답할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진천우가 몸을 내뺄 준비를 취하려던 찰나.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됐다!!’
답을 들은 즉시 진천우가 속으로 크게 환호를 질렀다.
그는 그렇게 경계로 넘어가는 데 있어 가장 빠르고 편한 천마 특급 마차에 올라탔다.
* * *
“둘째 놈이 죽었다고?”
“그렇습니다.”
다시 사도련으로 돌아온 사도련주는 련의 장로에게 놀라운 보고를 받았다.
보고한 장로가 고개를 숙이며 몸들 바를 몰라 했다.
이걸 어떻게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련주의 둘째 제자는 방랑벽의 사도련주와 첫째 제자가 없는 동안 실질적으로 사도련을 이끌며 련의 대소사를 주관한 장본인이었다.
그런 그가 하필 사제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아무리 련주라도 이 일은 심각히 받아들일 텐데.
“그렇군.”
“?”
그게 끝?
“그럼 한 자리가 남은 건가?”
‘한 자리?’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허나 장로는 이 이상 들을 권한이 없었다.
그런 권한은 그가 아닌 그 옆에 선 자에게 있었다.
둘째를 죽임으로써 넷째에서 둘째로 올라온 사내.
현석이 련주에게 물었다.
“한 명,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
“광견입니다.”
“아, 그 미친개? 그놈이 아직 살아있었나?”
“조금 전에 뇌옥에서 꺼내게 해두었습니다.”
“그렇군.”
사도련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미친개가 뇌옥에 갇히기 전까지 단주의 자리에 있었지만, 원체 수하들을 신경 쓰지 않는 그가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대단했다.
“충!”
잠시 뒤, 뇌옥에서 나온 광견이 즉시 제 주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허나 그가 고개를 숙인 쪽은 놀랍게도 사도련주가 아니었다.
“이!”
“미친!”
주위 다른 련의 간부들이 두 눈을 치켜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저놈이 미친 거야, 광견이란 별호만 들어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미쳤어도 그렇지, 어찌 사도련주를 앞에 두고 그가 아닌 그 제자에게 고개를 숙인단 말인가?
이건 이미 몇 번이나 련주에게 반란을 일으킨 죽은 둘째 제자도 감히 하지 못한 짓거리다.
아니, 이런 짓을 하면 되레 제 주인에게 해를 입힌다는 걸 모르는 건가?
-하하하하!!
그 순간, 사방에 커다란 웃음이 울렸다.
“큭!”
“크윽!”
그 소리를 듣고 련의 간부들이 화들짝 놀라며 귀를 가렸다.
웃음소리에 내공이 잔뜩 실려, 그저 듣는 것만으로 가벼운 내상을 입을 정도였다.
허나 이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은 귀를 막지 않고 여전히 고개를 현석에게 숙인 채 꿈쩍하지 않았다.
“하하!”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사도련주의 웃음이 그쳤다.
다행히 그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든 모양.
“그래, 모름지기 충견이라면 이래야지.”
턱!
련주는 오히려 한손으로 광견의 어깨를 가볍게 잡아주며 칭찬까지 건넸다.
이를 본 다른 련의 간부들은 크게 놀란 동시에 인정했다.
‘역시…….’
‘넷째 공자님께서…….’
사도련주의 신뢰를 받고 있구나.
그러나 이러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럼 누가 후계자로?’
‘첫째 공자님은?’
사도련주 못지않게 방랑벽이 심한 첫째 제자.
허나 그 방랑벽만 제외하면, 첫째는 그야말로 사도련의 희망이자 등불이었다.
그 때문에 간부 중에서 둘째 공자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첫째 공자에 대한 호의를 품을 정도였다.
“사실 남은 하나는 이미 정했다.”
“누굽니까?”
“그건 직접 확인하지.”
그러나 사도련주는 애가 타는 간부들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현석과 어깨동무까지 하며 련을 떠났다.
이들이 지금 향하는 장소는 한 곳뿐이었다.
사도련에서 찾은 통로.
인원수가 극히 제한된 이곳에는 현석과 셋째, 그리고 실력순으로 뽑은 련의 정예들이 모였다.
“이들의 책임자는 너다.”
사도련주가 곧바로 일행의 책임자로 현석을 임명했다.
분명 그의 지위상 당연한 일이지만, 딱 하나 변수가 있었다.
련주의 셋째 제자.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현석보다 높은 지위에 있던 그가 이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
놀랍게도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사도련에서 누구보다 다혈질인 셋째가 어떤 불평불만 없이 입을 다문다는 게 그 증거였다.
그런데 그는 그것 가지고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슥!
“어?!”
함께 따라온 간부 중 누군가가 짧은 신음을 낼 정도로 놀라운 일을 벌였다.
셋째가 먼저 현석을 향해 고개를 숙일 줄이야.
“잘 부탁……합니다.”
그리고 그는 말까지 높이며, 완전히 현석의 아래로 들어갈 것을 모두에게 공표했다.
자신은 이미 현석과 비무에서 졌다.
그리고 이전 둘째는 언제나 자신을 버릴 패로 사용했다.
현석은 그런 둘째를 꺾고 그 자리에 앉았다.
비록 확실한 무언가는 없었지만, 여러 정황이 겹겹이 쌓여, 셋째는 그를 인정하기로 결심했다.
좋은 일이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현석은 이 자리에서 그를 확실히 꺾어버렸을 테니까.
“훗!”
사도련주도 제자들이 확실히 위계를 정리하는 걸 보고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귀여운 것들.
그렇지만 어쨌든 제 제자들이다.
아웅다웅하며 싸우는 것도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었다.
“…….”
순간, 련주는 죽은 둘째를 떠올렸다.
비록 비겁하고 멍청했지만, 그래도 둘째인가?
아주 잠깐이지만 씁쓸한 감정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선출된 사람들만 날 따라오도록.”
여기서부터는 사도련주만이 가는 방법을 알았다.
현석과 셋째 제자, 그리고 열 명도 채 안 되는 무인들이 그를 따랐다.
길은 생각보다 훨씬 험했다.
아니, 그걸 길이라고 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후!”
현석조차 련주의 뒤를 따르며 저도 모르게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산을 오르고, 수풀을 헤치고, 절벽도 올랐다.
콰콰콰!!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주 커다란 폭포 아래에 도착했다.
“설마?”
현석은 폭포를 보자마자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의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었다.
“안으로 들어간다.”
“그렇군요.”
풍덩!
사도련주가 먼저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 몸을 날렸다.
풍덩! 풍덩!
련주가 몸소 물에 몸을 날렸는데, 다른 이들이라고 멈칫할 리 없었다.
모두 련주를 따라 물에 들어간 뒤, 천천히 폭포 속으로 들어갔다.
콰콰콰콰콰!!!
위에서 떨어지는 엄청난 물의 압박.
게다가 폭포 아래에는 십여 개가 넘는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며 그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컥! 크윽!”
“내 손을 잡아!”
예상대로 따라오는 이 중 물에 빠지는 자도 나왔다.
그래도 모두 련의 정예 무인이니 물에 빠져 죽지는 않겠지만, 한번 저렇게 물살에 휩쓸리면 다시 돌아오는 데 한세월이 걸릴 게 분명했다.
“커억!”
“후우!”
잠시 뒤, 간신히 폭포를 빠져나온 무리가 물 위로 올라왔다.
폭포 뒤에 작은 동공이 있었다.
여기가 숨겨진 통로인가?
“련주님, 이대로 들어갑니까? 아니면, 물살에 휩쓸려간 사람들을 기다립니까?”
물살에 휩쓸린 이는 정확히 다섯.
그들이 다시 되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현석의 질문에 대한 답은 엉뚱하게 동공 안쪽에서 들려왔다.
“뭐야, 겨우 다섯이야?”
“?!”
현석이 즉시 마도를 뽑았다.
동굴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