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 각자의 싸움 (3)
(184/210)
184화 : 각자의 싸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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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화 : 각자의 싸움 (3)
2022.09.03.
“휴!”
현석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달칵!
그의 옆에 집채만 한 크기의 인형이 누워있었다.
“제에길…….”
그리고 녹의 노인이 인형에 깔린 채, 현석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노인이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이제 인형을 일으켜 세울 힘이 없었다.
설사 인형을 일으켜 세운다 해도, 인형화 효과로 말도 안 되는 강도와 말도 안 되는 속도를 지니게 된 현석을 쓰러트릴 수 없었다.
“제길…….”
주룩!
거기다 인형 아래에 깔리면서 큰 상처까지 입어, 몸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의 몸은 아주 빠르게 식기 시작했다.
당연히 현석은 노인을 구해주지 않았다.
“…….”
그는 그저 말없이, 인형을 조종해 자신을 죽이려 한 노인의 최후를 확인했다.
“…….”
결국 노인이 완전히 침묵하자.
달칵!
현석의 품에서 손바닥 크기의 인형이 튀어나왔다.
“무슨 일이냐?”
그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제 인형에게 물었다.
녹의 노인은 죽었지만 아직 거대 인형이 남아있다.
물론 주인이 죽었으니 이제 더는 움직이지 않겠지만, 혹시 모를 일.
그게 아니어도 굳이 별다른 목적 없이 거대 인형에게 다가갈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이유가 있었다.
우우웅!
“음?”
현석의 인형이 거대 인형 쪽으로 다가가자, 거대 인형의 몸에서 녹색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기운은 천천히 작은 인형 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너?”
현석이 깜짝 놀란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단순히 자신의 인형이 처음 보는 기운을 흡수했기 때문에 놀라는 게 아니었다.
그 기운이 거대 인형에게서 제 인형 쪽으로 이동할 때마다.
스륵!
“허?”
거대 인형의 크기도 차츰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광경.
스르륵!
현석은 살짝 입을 벌린 채, 그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달칵!
마침내 모든 기운을 흡수한 현석의 인형이 양팔을 위로 길게 뺐다.
마치 큰일을 마치고 한껏 기지개하는 것처럼.
“…….”
현석은 입을 다문 채 눈동자만 옆으로 돌렸다.
집채만 했던 거대 인형이 어느새 녹의 노인이 처음 조정했던 사람 크기의 인형으로 줄어들었다.
“믿을 수 없군.”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잠깐!?”
현석이 한참을 줄어든 인형을 지켜보다 갑자기 다시 제 인형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녀석이 거대 인형의 기운을 흡수해 거대 인형의 크기를 줄였단 말은, 반대의 경우도?
달칵!
인형이 주인의 생각을 읽은 듯, 바로 몸을 잔뜩 움츠려 마치 뭐가 마려운, 그러니까 기운을 모으는 자세를 취했다.
녀석은 그 상태로 부르르, 가볍게 몸을 한 번 떨더니.
스륵!
차츰 커지기 시작했다!
“허어?!”
현석은 이미 몇 번이나 놀랐음에도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르륵!
이 와중에도 녀석은 점차 몸집을 불렸다.
그러나 원래부터 크기가 작아서일까?
현석의 인형은 딱 사람 크기, 그러니까 현석과 똑같은 눈높이까지 와서 성장이 멈췄다.
이 이상으로는 못 크는 걸까?
달칵!
녀석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달칵달칵!
그리고 곧바로 양손을 빠르게 움직여 뭔가 의사를 전달하려 했다.
다행히 그 뜻은 통했다.
“당장은 힘이 부족해서 더 크지 못한다고?”
달칵!
“그럼 나중에 힘을 더 모으면 이것보다 더 커질 수 있겠네?”
달칵!
목각 인형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현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깐만…….
‘그 말은, 이 녀석이 나중에 저 거대 인형처럼 커지면?’
제 인형도 말도 안 되는 위력을 선보일 수 있다는 건가?
그럼 자신은 녹의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인형의 머리에 타서 녀석을 조정해야 하나?
달칵달칵!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빠르게 흔들었다.
그런데 그건 부정의 의미가 아니었다.
뭐랄까? 필요 없다?
‘뭐가 필요 없다는 거지?’
달칵!
‘응?’
달칵달칵!
“뭐?”
달칵달칵!!
“……!”
아쉽게도 여기서부터는 녀석이 손짓 발짓으로 하는 게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좀 더 자세히 표현해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쯤 되자 인형도 열불이 났는지 갑자기 땅에 발을 구르다, 현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웅!
녀석의 손에서 녹색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거대 인형에서 흡수한 바로 그 기운.
“무슨?!”
현석이 깜짝 놀라 뒤로 피하려다, 녀석에게 적의가 없음을 깨닫고 움직임을 멈췄다.
우우웅!
그는 녹색 기운이 제 몸을 훑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스륵!
“?!”
정말 놀랍게도!!
스르륵!
‘내 몸이 커지고 있어?’
현석의 몸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허나 커지는 시간은 정말 짧았다.
시간이 짧은 만큼 커지는 정도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보다 머리 하나 이상 커진 건 분명했다.
달칵!
목각 인형이 이 이상은 힘이 부친다며, 바로 손을 내렸다.
그러자 둘 다 늘어난 몸이 다시 원래 크기로 되돌아왔다.
현석이 그제야 조금 전 녀석이 몸짓으로 무슨 설명을 하려 했는지 알아챘다.
“그러니까 커진 네놈의 몸에 내가 올라탈 필요 없이, 네가 날 크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거냐?”
달칵달칵!
녀석이 바로 그거라며, 고개를 세차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드디어 완전히 의사소통을 끝났다.
스윽!
현석이 목각인형에게 말해 인형화를 풀게 했다.
뚜둑!
“큭!”
인형화를 풀자, 바로 부작용이 밀려왔다.
처음 인형화를 걸기 전에 녀석이 알려주었다.
너무 인형화 효과만 믿고 날뛰다간, 인형화가 풀린 직후 온몸이 박살 날 거라고.
경고를 듣고 어느 정도 각오를 했지만, 역시 부작용은 상당했다.
그래도 인형화 효과로 얻은 이득을 생각하면 충분히 견딜 만했다.
아니, 무조건 견뎌야 했다.
“후우!”
현석이 온몸의 뼈와 근육 그리고 장기가 뒤틀리는 격통을 참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기껏 고개를 들고 보니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시력이 나빠진 게 아니라, 무언가 그의 시야를 막고 있었다.
손을 들어 살피자, 얼굴의 반절이 무언가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건 얼굴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억지로 떼려고 하면, 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달칵!
목각 인형이 즉시 온몸을 흔들며 이를 방해했다.
“왜?”
달칵!
“떼면 큰일 난다고? 왜?”
달칵달칵!
“아아, 그러니까 이 가면 같은 게 내 몸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고?”
그러니까 얼굴을 가린 나무 가면은 부작용과 별개인 목각 인형의 또 다른 힘인 것 같았다.
확실히 나무 가면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지만, 여기서 녹색 기운이 희미하게 흘러나와 몸으로 흡수되는 게 느껴졌다.
이 가면만 있으면, 인형화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 같았다.
그럼?
“나나 네놈을 크게 하는 힘도 시간이 지나면 가능해지는 거냐?”
달칵!
아쉽게도 이 질문에 목각 인형은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현석도 아마 그러리라 생각했다.
이만한 힘이 단순히 시간만 지난다고 쉽게 얻어지면 그거야말로 사기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부족한 힘을 더 모을 수 있지?”
달칵달칵!
목각 인형이 다시 손짓발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부족한지, 이번에 녀석은 바닥에 손가락으로 그림까지 그려가며 뭔가를 설명하려 했다.
대충 커다란 사람과 작은 사람을 그리고, 커다란 사람에서 뭔가가 나와 작은 사람에게 흡수되는 모습을 그렸다.
그다음에는 뭔지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더니, 또 거기에서 뭔가가 나와 작은 사람에게 흡수되는 그림을 그렸다.
이를 본 현석이 약간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그러니까 앞의 그림은 네가 거대 인형에게서 녹색 기운을 흡수하는 걸 그린 것 같은데?”
달칵!
맞았는지,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맞다면 뒤의 그림이 문제였다.
커다란 사람, 그러니까 거대 인형 대신 기운을 흡수하는 무언가.
여전히 그 무언가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이 그림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인형을 흡수해야 한다고?”
달칵!
목각 인형이 그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달칵달칵!
분명 녀석의 얼굴은 아무것도 조각돼 있지 않은 민얼굴이건만.
달칵!!
어째서일까?
현석은 목각 인형이 아주 해맑게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 * *
당장 다른 인형을 찾는 건 힘들었다.
현석은 일단 헤어진 수하들과 합류하기로 했다.
휙!
그는 거대 인형이 막은 통로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에 복도를 따라 한참 나아갔는데도 련의 무인들의 기척은 찾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달려갔나 보군.’
이럴 줄 알았으면 따로 합류 지점을 정할 것을.
아니지.
자신이나 수하들이나 다 여기가 처음이니 합류 지점은 정할 수 없었다.
그것보다는 추적에 용이하게 흔적이나 남겨두라고…….
‘그것도 힘들겠군.’
혹시나 자신이 거대 인형에게 당했을 경우, 적이 바로 뒤따라오게 흔적을 남기는 멍청이는 련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수하들은 지극히 냉철하게 몸을 뺀 게 정답이었다.
다만 너무 뛰어난 수하를 둔 탓에, 현석은 어쩔 수 없이 몸이 고생해야 했다.
그저 몸만 고생했다면 괜찮았으련만.
멈칫!
현석이 잘 나아가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갈림길.
그것도 세 갈래 길.
‘어느 쪽이지?’
그는 바로 길 위에 남은 흔적을 찾았다.
“??”
그런데 흔적을 찾는 도중 더 의문이 깊어졌다.
“이게 뭐야?”
오른쪽, 중간, 왼쪽.
세 방향 모두에 흔적이 남았다.
분명 셋째 사제에게 련의 무인들을 이끌고 소교주를 쫓아가라고 했는데, 왜 여기서 갈라지지?
사제가 제 명을 따르지 않았을 가정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직했던 그는 이런 위급한 순간에 독선을 보일 자가 아니었다.
‘그럼 중간에 인원을 나눠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건가?’
도대체 어떤 상황이 벌어졌길래?
현석은 설마 그들 앞에 천마가 튀어나왔을 가능성은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든, 진심으로 제 수하들이 걱정됐던 그는 바로 눈을 감고 기감을 찾는 데 집중했다.
꽤 시간이 많이 지난 터라 기감을 붙잡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현석이 누구인가?
‘찾았다!’
휙!
그는 바로 갈래길 중앙으로 몸을 날렸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수록 그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지독히도 희미한 기척이군.’
지금도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려지면 언제든 놓칠 정도로 희미했다.
그러나 현석은 절대 그것을 놓칠 수 없었다.
극히 희미한 기척이나 그것은 분명 자신이 아는 기척이었다.
그렇기에 기척이 희미하다는 건, 자칫 위험한 상황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현석이 더욱 속도를 올렸다.
‘저기!’
그러다 갑자기 허리춤의 마도를 뽑고 바로 옆의 벽으로 휘둘렀다.
쾅!
굉음과 함께 벽이 무너지고, 그는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
벽 너머에 누군가 서 있었다.
그런데 제 수하도, 그렇다고 소천마 쪽 사람도 아니었다.
헌데 왜 지금도 계속 기척이 낯이 익은 거지?
슥!
상대가 현석을 발견하고 무기를 들었다.
타구봉.
‘개방인가?’
그렇담 더더욱 이상했다.
왜 개방 거지가 자신과 낯이 익지?
더군다나 저자는 아무리 봐도 어디 부유한 가문의 병약한 도련님으로 보이지, 거지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긴, 내가 저쪽을 못 알아봐도, 서로 아는 사이가 분명하면 저쪽이 먼저 자신을 알아볼 경우도…….
“누구냐?”
안타깝게도 그럴 일은 없었다.
뒤늦게 현석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면!’
나 지금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
일단 급한 마음에 회복을 늦추더라도 가면을 벗으려는 찰나.
휙!
현석이 갑자기 상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자 상대 역시 몽둥이를 들고 현석 쪽으로 몸을 날렸다.
서로 정체를 알아내는 걸 그만두고, 싸우기로 마음먹은 건가?
팟!
그런데 그 둘은 서로를 스치듯 그대로 비껴 지나가더니.
쾅! 퍽!
서로 반대편에서 튀어나온 적의 대가리를 깨부쉈다.
-호오, 그걸 막다니?
그 직후, 공간 전체에 어디선가 듣기 힘든 낮고 껄끄러운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진짜 대가리를 깨부숴야 하는 진짜 적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