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 구조 요청 (2)
(193/210)
193화 : 구조 요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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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화 : 구조 요청 (2)
2022.09.24.
‘그게 사실이라면!’
진천우는 몸을 일으켰다.
저쪽이 하는 이야기가 정말이라면, 당장 가봐야 한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뒤에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는 소천마가 보였다.
그녀를 혼자 두고 갈 수 없었다.
혹시나 소천마가 정체불명의 불꽃을 모두 흡수하지 못하고 주화입마라도 빠졌을 시, 반드시 자신이 있어야 했다.
“진정하게.”
그때, 가면의 사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는 이미 진천우도 깨달았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짚어줘야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함정일 수 있네.”
“…….”
맞는 말.
상식적으로 이렇게 중요한 순간, 때마침 저쪽에서 꼭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게 가능할까?
“설사 함정이 아니어도, 저쪽에 의사를 전달할 방법도 없지 않은가? 저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그랬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울린 목소리는 전음과 비슷했지만, 전음이 아니었다.
아마도 무슨 특수한 보패를 사용해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 같은데, 그건 곧 경계 너머의 선인들이 파둔 함정일 가능성이 컸다.
달칵!
그때, 갑자기 가면의 사내의 품에서 목각 인형이 튀어나와 부산을 떨었다.
“뭐지?”
“뭔가 할 말이라도?”
달칵달칵!
녀석이 어린아이 주먹 크기의 검은 나무 공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뭐지?”
달칵달칵!
“자네와 만나기 전에 나와 따로 싸운 선인이 있네. 그 선인의 품에서 빼왔다는군.”
현석이 목각 인형의 생각을 해석해주었다.
설명이 끝나자 녀석은 그걸 서둘러 쥐어보라는 듯 흔들었다.
그런데 그 대상이 현석이 아니라 진천우였다.
“나?”
달칵!
그래, 너!
“흠…….”
진천우는 살짝 어리둥절해했지만, 어쨌든 가면의 사내의 신수인 목각 인형이 자신에게 해가 될 짓을 할 리 없다는 믿음에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이거면 되나?
그 직후, 갑자기 머릿속에 제 목소리가 울렸다.
-아?!
곧바로 상대 쪽에서 반응이 왔다.
-누, 누구? 아니, 이 목소리는 낯이 익은데……. 잠깐! 네놈, 입맹 시험에서 난리 친 그 미친놈이냐?
-그걸 기억하는 걸 보니 함정은 아닌 모양이군.
-그렇게 말하는 네놈이 함정을 판 게 아니라는 증거는?
이 상황에 도리어 자신을 의심하다니.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믿을 만했다.
-맹이 독을 풀었다!
-그 미친놈이 확실하군.
진천우가 한마디로 상대의 의심을 풀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지껄였던 저 말은 미친 짓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고, 경계 너머의 선인들이 이를 알 리도, 예상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것보다 제갈민, 자네가 방금 한 말이 전부 사실인가?
모든 의심이 거둬지자, 진천우는 함께 입맹 시험을 치른 동기라고 할 수 있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용건을 물었다.
상대는 과연 제갈세가의 후예답게 바로 핵심만 간추려 알려주었다.
-그래, 문제가 생겼네. 아무래도 우리가 도착한 장소는 온갖 괴물을 키우는 사육장 같은데, 여기 있는 괴물들 모두 이미 경계 바깥으로 나간 상태야. 아, 자네가 알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전에 맹에서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 미리 특정 장소에 맹의 정예 무인을 대기시켜 놓았네.
-그럼 문제없지 않나?
-아니, 문제가 생겼어. 아까 우리가 있는 장소가 사육장이라고 했지? 그곳 깊숙이에 아주 특별한 장치가 있더군. 무언가 괴물을 조정하는 특수 장치 같은데……. 어쨌든 중요한 건, 거기에 따로 기록이 남겨져 있다는 거야. 마침 이곳에 나 외에도 종리우와 현소 등 다른 책사들도 함께 와 그 기록을 해석했는데…….
잘 설명하다 말고 제갈민이 잠시 말을 흐렸다.
영민한 그이기에, 말문이 막힌 건 아닐 터.
그만큼 해석 결과가 매우 충격적이란 뜻이다.
허나 그렇다고 이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육장 가장 깊숙이 봉인된 괴물이, 우리가 여기 도착하기 직전에 풀려난 것 같네. 그것의 위력은 맹의 예상을 한창 뛰어넘었어. 어떻게든 이 사실을 외부에 알려야 하네. 하지만 우리는 당장 여기서 나갈 수 없어. 아직 이곳에는 따로 더 해석해야 할 기록이 남아있어서야. 그러니 자네가 우리 대신 밖으로 나가…….
-그럴 필요 없네.
그때, 현석이 진천우가 쥔 검은 구에 손을 올려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전까지 대화는 그도 모두 들었다.
저쪽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이라면 검은 구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건 자신의 독접이나 그의 목각 인형이 대신 듣고 전해주었다.
-누구?!
-난 련에서 왔네. 정확한 신분은 사도련주의 둘째지.
-그래?
갑자기 엄청난 거물이 튀어나오자 제갈민의 목소리도 다소 굳어졌다.
진천우도 살짝 놀란 눈으로 현석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는 가면의 사내의 정체를 지금 처음 들었다.
‘보통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상대였다.
그와 동시에 가슴 한쪽에 조금 실망의 감정이 튀어나왔다.
잠깐이지만, 그를 보고 누군가를 떠올렸다.
허나 사도련주의 둘째라면 무엇보다 신분이 확실할 터.
진천우는 련의 사정을 알 수 없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 그는 현석이 아니다.’
어쩌면…… 저 가면 너머의 얼굴이 자신이 아는 그 얼굴이길 바랐는데…….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걸로 실망할 때가 아니었다.
-왜 그럴 필요가 없지?
저 너머에서 제갈민이 마음을 가다듬고 물었다.
설령 상대가 누구든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그는 맹의 대표로 나온 책사 중 하나인 만큼, 이에 대해 반드시 이유를 들어야 했다.
-그건…….
그리고 현석이 천천히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그것은 과연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 * *
콰쾅!! 쾅!! 쾅콰콰쾅!!!!
사방에서 요란한 폭음이 터졌다.
-크라라!
-크락!
-크라라라라!!
폭음의 한가운데에서, 결코 인계에서는 볼 수 없는 괴물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아무리 녀석들이 단단한 비늘로 몸을 지킨다 해도, 관이 사용하는 화포에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어서 새 포탄을 장전해라!”
“장전이 끝났습니다.”
“좋아, 쏴라!”
콰콰쾅!!
관의 무장들은 병사들을 닦달해 쉬지 않고 포를 쏘았다.
본래 철저히 전쟁용으로만 다뤄지는 화포는 관이 철저히 보관하는 물건 중 하나다.
특히나 나라 안에 따로 존재하는 무림이란 이질적인 존재에게 혹시나 화포가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면, 관이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이를 관리하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만큼 귀한 화포를 무제한으로 분출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다니.’
쾅쾅쾅!!
“…….”
사방에서 귀를 먹먹하게 하는 화포의 포격 소리를 들으며, 삼만 관군을 통괄하는 지휘관이 잠시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야 끝에 백발이 장성한 노인이 보였다.
맹주.
그가 무림을 삼분하는 거대 세력의 수장임을 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황실의 세 세력을 모두 설득할 줄이야.’
맹, 교, 련.
이렇게 무림이 삼분할돼 있듯, 황실 또한 셋으로 세력 구도가 나뉘어 있었다.
황족과 동창 그리고 대장군부.
어디 국경이나 분쟁 지역도 아닌 이곳에 무려 삼만의 관군과 무제한의 화포를 허락하려면, 세 곳 모두의 허가가 필요하다.
무장이 알기로 이들 셋이 동시에 손을 잡은 일은 지난 십 년간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일을 저 노인이 해냈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장군!”
그때, 수하가 급히 소리 질렀다.
-크라!
잠시 한눈판 사이, 괴물 하나가 그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흥!”
팟!
허나 무장은 이미 백전을 헤쳐가며 벽마저 넘은 절정고수.
그가 허리춤에서 거도를 뽑자, 달려들던 괴물의 몸이 단숨에 양분되었다.
무장은 내친김에 괴물의 피가 묻은 거도를 앞으로 뻗으며 명령했다.
“두 번째 화포를 퍼부어라!”
“존명!”
두 번째 화포?
쾅쾅쾅!!
하지만 그 직후, 쏜 화포는 앞에서 쏜 화포와 다르지 않았다.
검은 연기가 요란하게 풍기고, 그대로 큰 폭음이 사방에…….
퍽! 퍽퍽퍽!
소리가 달랐다.
단단한 포탄이 괴물과 땅을 부수는 커다란 굉음 대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곧바로.
스스스!
사방에 녹색 연기가 퍼졌다.
“모두 사전에 나눠준 천으로 코와 입을 막아라!”
무장이 즉시 수하에게 명하자, 그들은 지체 없이 누런 천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크라라!
-크락!
그 직후, 녹색 연기 한가운데 있던 괴물들이 갑자기 기침을 해대더니, 아예 바닥에 쓰러지며 온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녹색 연기는 바로 독이었다.
화포에 이어 독까지 살포했다.
누런 천은 관군뿐 아니라 맹의 무인들도 둘렀고, 그들은 곧바로 쓰러진 괴물을 쉬지 않고 쑤셔댔다.
-크라라라!!
괴물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다 곧 그 비명마저 사그라들었다.
개중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는 녀석들은 달아나기 바빴다.
와아아아!!
이를 본 관군과 무인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지휘관은 이 기세를 몰아 단번에 괴물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려 했는데.
-쿠락!
쾅!
막 상황을 정리하려던 찰나,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괴물이 등장했다.
“뭐, 뭣?!”
절로 지휘관의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위로, 위로, 위로…….
하늘 끝까지.
쾅!!
보통 괴물의 열 배가 넘는 덩치의 괴물이 발을 한 번 구르자, 땅이 흔들렸다.
-쿠라락!
콰쾅!
녀석이 팔을 한 번 휘두르자, 수십 명의 병사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저, 저건 도대체 뭐야?”
“아무리 괴물이래도 정도가 있지.”
겁에 질린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허나 지휘관은 그때도 침착함을 잊지 않았다.
“몸집이 커졌다는 건, 그만큼 표적이 커졌다는 뜻이다. 쏴라! 화포를 쉬지 않고 쏴라!!”
“존명!”
수하들이 우렁찬 대답과 함께 화포 끝에 불을 붙였다.
쾅! 콰쾅!!
지휘관의 말대로 수십 대 화포가 단 한 발의 오발 없이 모두 거대 괴물에게 명중했다.
-쿠락?!
그 직후, 들려오는 괴물의 고함 소리.
당연히 화포에 상처입고 괴로워하는 소리라 생각했지만.
-쿠쿠쿠!
‘웃음?’
그 순간, 지휘관은 뭔가 잘못됐다고 여겼다.
허나 늦었다.
부웅!
괴물이 다시 한번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또 수십의 병사가 쓸려나갔다.
그중 상당수가 화포를 쏘던 바로 병사였다.
“망할! 저 괴물이 화포만 노려 공격하다니!”
괴물에게 그 정도 지능이 있었나?
물론 그럴 경우도 충분히 있다고 여겨 화포 주위에 정예 무장들을 배치했지만, 그들로는 저 거대 괴물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독이다! 화포가 안 통한다면 독을 쏴라!”
“존명!”
즉시 지휘관이 명령을 바꾸자, 수하들이 화포에 붉은 포탄을 넣고 쏘았다.
스스스!!
곧바로 녹색 독 연무가 사방에 퍼졌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이런! 독 연기가 괴물의 머리까지 닿지 않다니!”
괴물이 그대로 몸을 일으키자, 연기는 기껏해야 허리까지만 닿았다.
-쿠쿠쿠!
녀석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후부터는 팔을 휘두르는 대신 아예 발을 걷어차며 병사들과 화포를 박살 냈다.
지휘관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후퇴! 후퇴한다!!”
그 판단은 정확했다.
당장 거대 괴물을 쓰러트릴 방도가 없으니, 후퇴만이 정답이었다.
문제는 녀석이 이대로 순순히 인간들을 돌려보낼 생각이 없다는 것.
-쿠쿠쿠쿠쿠!!
콰쾅!!
“제길!”
지휘관은 괴물의 발길질에 수십씩 하늘로 비산하는 수하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설마 저런 괴물이 등장할 줄이야.
자신이 이리도 한심하게 패퇴할 줄이야.
이대로라면 후퇴도 쉽지 않다.
전멸할지도 몰랐다.
‘어떻게 방법을…… 방법을 떠올려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그때.
“곤란한 모양이군.”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냐?”
“저리 치워라. 다친다.”
감히 자신의 상사에게 하대하는 상대를 보고 화가 난 수하가 검을 겨누자, 그자는 코웃음치며 손끝으로 검을 밀었다.
당연히 수하는 검을 비켜줄 생각이 없었지만, 믿기지 않게도 손끝으로 가볍게 미는 것만으로 자신의 검이 힘없이 옆으로 날아갔다.
“지원군에게 검을 겨누면 쓰나.”
“지원군이라고? 어디서? 얼마나 왔지?”
지휘관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했지만, 지원군이란 말에 급히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어쩌면 그들이 이 상황을 뒤집어 줄지도 모르니까.
“련에서 왔다. 그리고 수는…… 나 혼자?”
“뭐?”
허나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련에서 왔다는 사내가 성큼, 거대 괴물을 향해 걸어갔다.
모두가 달아나는 와중에 그 혼자 앞으로 걸어갔다.
“무슨 짓이냐?!”
“가만히 보고 있어. 모두 내가 해결해줄 테니까.”
그 한마디를 남기고 사도련주가 거대 괴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그곳에는 련주께서 가셨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현석이 답했다.
사도련주는 그가 아는 최강의 괴물이었다.
경계 너머의 괴물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그에게는 소용없었다.
이는 아무리 맹의 사람들이라고 해도 모를 리 없다고 여겼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이것들이?’
미친 건가?
감히 사도련주를 무시해?
-어찌 우리가 감히 사도련주를 무시하겠는가. 하지만 그 괴물의 위험은 따로 있단 말일세!!
“무슨?!”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진천우가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