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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화 : 구조 요청 (4) (195/210)


195화 : 구조 요청 (4)
2022.09.28.


쾅!

-쿠락!

거대 괴물이 머리를 한껏 옆으로 꺾으며 뒤로 물러났다.

주륵!

녀석의 뺨에서 진득한 녹색 피가 흘러내렸다.

“오?”

이를 본 사도련주가 신기하단 듯 눈을 치켜떴다.

녹색 피라니?

과연 괴물은 피 색부터 틀린가?

“어디, 다른 색깔의 피는 못 내느냐?”

쾅! 쾅쾅!

그가 다시 거도를 휘둘렀다.

아까는 얼굴이었으니 이번에는 어깨, 그리고 복부, 다리.

-쿠라라!!

거대 괴물이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연거푸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다른 괴물들도 겁에 질려 함께 물러났다.

그 틈을 타 관병과 맹의 무인들이 급히 후방으로 몸을 피했다.

-고맙소!

지휘관이 수하들을 챙기며 사도련주에게 몰래 전음을 보냈다.

앞서 본 바로 그와 거대 괴물의 격차는 상당했다.

그런데도 련주가 바로 괴물을 몰아치지 않은 건, 이렇게 자신들이 달아날 틈을 벌어주기 위함이리라.

그게 아니었으면 바로 난전이 벌어지고, 미처 몸을 빼지 못한 사람은 거기에 휩쓸려 나갔을 것이다.

‘사파인들은 제멋대로라더니.’

그게 아니었다.

아주 큰 착각이었다.

-무슨 말?

-음?

-왜 고마워하지?

-그야, 우리가 몸을 뺄 수 있도록 틈을 벌어준 게…….

-하하하!

휙!

그 직후, 사도련주가 하늘로 몸을 날렸다.

그는 그대로.

쾅!

거도로 거대 괴물의 머리를 찍었다.

-크락락!

그게 어찌나 아픈지, 괴물의 눈에서 녹색 눈물이 찔끔 나왔다.

“이게 다냐?”

-크락?

퍽!

-크라락!

련주의 뜬금없는 물음에 괴물이 반문하다 곧바로 다시 쥐어 터졌다.

“네놈이 지금 해야 할 건 반문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지.”

-크락?

퍽!

-크라락!

녀석이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하다 얻어터졌다.

그러나 거대 괴물도 영 바보는 아니었다.

그때부터 녀석도 사도련주의 뜻을 이해하고, 그 즉시 사방에 울음을 토했다.

-크라라락!!

-크라?

-크라라?

-크라라라?

곧바로 다른 괴물들이 거대 괴물의 울음에 호응했다.

거대 괴물과 가까이 있는 괴물부터 눈빛이 변했다.

“음?”

이를 가장 먼저 발견한 지휘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미처 다 빠져나오지 못한 수하들을 챙기느라 누구보다 주위 상황에 민감했다.

그러나 이 상황은 그게 아니더라도 매우 심각하단 걸 알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왜 잘 싸우다가 도리어 적을 독려한단 말인가?

“그래, 이래야 재밌지.”

재미?

설마 단순히 그 이유 때문에 괴물들을 독려했다고?

저 인간이 미쳤나?

-크라라!

-크라!!

“자, 장군!!”

“물러나라! 후퇴하라!!”

지휘관이 기겁하며 아직 못 챙긴 수하들을 챙겼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다면, 살아남은 수하들을 전부 다 챙길 수 있었는데!

-크라라라!

“으아아!”

-크라!!

“아악!!”

결국, 미처 다 빠져나오지 못한 수하들이 괴물에게 발목이 잡혔다.

원래 개개인으로는 맹의 무인보다 약한 게 관병이다.

그들이 강한 이유는 압도적 다수로 완벽한 전술을 펼치기에 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달아나는 중에 전술을 펼치는 건 무리였다.

“보병은 즉시 산개해서 물러나라. 궁병은 바로 활을 쏴라! 화살 끝에 독을 묻혀 쏴라!! 쉬지 말고 쏴라!!”

그러나 지휘관은 그 상황에도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수하들을 독려했다.

-크라라?

-크라!

“됐다. 독화살이 먹혔다!”

궁병이 지급받은 독은 상당히 지독한 극독이지만, 본래 한 발로는 괴물에게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화살이 십여 발 넘게 박히자, 아무리 괴물이라도 잠시 몸이 마비되었다.

그 틈을 타 보병들이 급히 몸을 피했다.

이 정도면 효과가 있다.

그렇게 안도하려는데.

-크락!

잠시 거대 괴물의 존재를 깜빡했다.

녀석이 긴 팔을 크게 휘둘렀다.

쾅!!

곧바로 땅에서 큰 굉음이 터지고, 한 무더기의 흙과 돌무더기가 관병을 덮쳤다.

거기에는 다른 괴물도 있었다.

하지만 거대 괴물은 하찮은 인간의 공격에 몸이 마비되는 멍청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내게 쥐어 터지는 네놈은 뭐지?”

-크락?!

쾅!!

그 직후, 사도련주가 놈의 면상을 후려쳤다.

불의의 일격에 뒤로 한 발 물러난 괴물이 기겁하며 다른 괴물을 불렀다.

-크라락! 크락!

-크라라?

-크락!!

으직!

괴물 하나가 위를 올려다보며 뭐라 하자, 녀석은 곧바로 놈을 지르밟았다.

곤죽이 된 놈이 뭐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를 본 다른 괴물들이 기겁을 하며 사도련주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방 같았다.

“하!”

쾅! 콰쾅!

련주가 제 몸보다 큰 거도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괴물들을 도륙 냈다.

그 거침없는 공격에 괴물들이 추풍낙엽처럼 썰렸다.

허나 아무리 그 대단한 사도련주라도 혼자 모든 괴물을 상대할 수 없었다.

-크라!!

찌직!

놀랍게도 한 녀석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련주의 등을 찢었다.

딱히 피는 배어나지 않았다.

그저 옷만 찢었다는 소리.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믿을 수 없는 성과였다.

-크락!!

한 번 당한 다음부터 사도련주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던 거대 괴물이 그 모습을 보고 기뻐 비명을 질렀다.

그 기적 같은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찌직! 찌지직!!

소매도 길게 한 번.

그리고 다리도 한 번.

-크락?

이를 본 거대 괴물이 고개를 저었다.

-크락!

허나 바로 믿지 않았다.

저놈이야말로 진짜 괴물이 아닌가!

그럼에도 놈이 벌린 거리가 아까보다 조금 줄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크라라!

-크라!!

시간이 지날수록 괴물 놈들이 더 거세게 사도련주에게 달려들었다.

찌익!

그리고 그때마다 련주의 옷이 조금씩 찢어졌다.

물론 아직 진짜 상처를 낸 놈은 없지만, 그래서 더더욱 믿음이 갔다.

저것이 어쩌면 함정이 아니라 진짜일 수도 있다고.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인간이라 생각한 자가, 알고 보니 괴물들을 갈아넣으면 상처입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찌익! 찌이익!

“흠!”

콰콰쾅!

한편 정말 얕긴 하나 자꾸 옷이 찢어지는 게 멈추지 않자, 결국 사도련주가 참지 못하고 손에 쥔 거도를 크게 휘둘렀다.

그것은 잔잔한 파도처럼 주위에 거친 기파를 퍼트려, 근처의 모든 괴물을 벴다.

-크라락!!

그 순간, 거대 괴물이 갑자기 온몸을 날렸다.

녀석의 눈에 보였다.

괴물 같은 인간이 큰 기술을 사용한 직후 벌어진 틈을.

그 틈은 다른 괴물들은 절대 노릴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틈이지만 자신은 다르다.

오직 자신만이 저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저 괴물 인간에게 크나큰 일격을 먹일 수 있었다.

그건 거의 본능과도 같아, 정신이 들어보니 거대 괴물은 양손을 굳게 움켜쥐고서 사도련주를 내려치고 있었다.

씨익!

헌데 그걸 본 사도련주가 슬며시 입꼬리를 비틀었다.

바로 이걸 노렸다.

일부러 다른 괴물들에게 당한 척한 것도, 마지막에 아주 희미하게나마 틈을 보인 것도 모두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이쯤 되면 다른 녀석들은 모두 피신했겠지.’

과연 지휘관의 말대로 사도련주는 남을 피신시키기 위해 처음에 슬렁슬렁 나선 거였다.

그런데 저 멍청한 지휘관은 자칫 괴물 놈에게 들킬지도 모르는데 무신경하게 전음을 날렸다.

‘설마 제 전음을 저것들이 듣지 못하리라 여긴 건가?’

물론 그럴 수 있다.

허나 어느 정도 경지에 달한 고수는 남의 전음도 엿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수준의 괴물 또한 그게 가능하지 않을까?

뭐든 가능하리라 여기고, 그 모든 것에 대비하는 게 바로 절대 고수의 자세였다.

마지막으로 사도련주가 바로 거대 괴물을 쓸어버리지 않고, 이런 귀찮은 짓을 하는 까닭도 따로 있었다.

‘이런 귀찮은 짓을 한 덕분에 다른 괴물들도 달아나지 않고 한자리에 모을 수 있었으니.’

그랬다.

사도련주는 거대 괴물 외에도 다른 괴물들도 남김없이 쓸어버리려 했다.

저것들은 너무 위험했다.

단 하나라도 놓쳤다간 그 피해가 너무 컸다.

물론 달아난 괴물이 무슨 짓을 하든 사도련주가 딱히 알 바는 아니나,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한 약조였으니.’

약조?

그게 무슨 약조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사도련주가 이 일격에 거대 괴물은 물론이고, 다른 괴물까지 전부 일격에 쓸어버릴 생각이란 것.

우우웅!

그가 손에 쥔 거도에 내공을 집어넣었다.

쉬지 않고.

우우우웅!

끝없이!

우웅!!

-크락?!

뒤늦게 득달같이 달려오던 거대 괴물도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알아채고, 뒤늦게 몸을 비틀었지만 이미 늦었다.

“됐다.”

그게 신호였다.

사도련주의 검은 거도가 모두 붉게 물들었다.

이것은 언젠가 그가 천마와 싸우게 될 순간을 위해 만들어둔 무공의 정화였다.

‘비록 그놈에게 쓰지 못하게 됐지만.’

어쩔 수 없지.

그나마 다행인 건, 눈앞의 괴물 놈이 천마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 상징이나 피해가 녀석 못지않는다는 점이었다.

최소한 저 녀석을 맹과 수만 관병의 눈앞에서 쓰러트리면, 그 두 곳에서 절대 이전처럼 사파를 사파라고 무시할 수 없을 터.

‘쯧, 내가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사도련주는 누구보다 사파다운, 아니, 사파다운 것조차 뛰어넘은 자유로운 영혼이었지만, 역시 마음 한구석에 사파를 염려하는 마음만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두 놈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그 순간, 련주의 머릿속에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 놈은 자신이 처음으로 키운 제자 놈.

자신 이상으로 자유로운 놈이라 그조차 지금 어딨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어디 가서 맞거나 굶을 놈은 아니니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대신 두 번째로 떠오르는 놈이 걱정되었다.

자신이 키운 마지막 제자.

허나 어쩌다 보니 둘째가 된 놈.

아마 자기 다음으로 사파를 이끄는 건 그놈이 될 거다.

‘왜 갑자기 그놈 얼굴이 선명히 떠오르는 거지?’

물론 벌써부터 뒷방 늙은이 신세를 질 생각은 없었다.

그저 현재 사파를 이끄는 수장인 만큼, 후대를 위해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을 뿐.

거대 괴물을 베는 건 틀림없이 이를 위한 훌륭한 초석이 되겠지.

그것을 위해서라면, 천마 놈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비기를 사용하는 것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럼…….”

답지 않은 짧은 상념을 모두 마친 사도련주가 손에 쥔 거도를 높이 들었다.

이제 이걸 내려치면 모든 게 끝난다.

“끝이다.”

그 한마디를 남기고 사도련주가 천천히 거대를 아래로 내렸다.

“홍월(紅月)…….”

“잠깐!!”

그런데 그의 거도가 완전히 내려치기 직전, 누군가 감히 사도련주를 향해 달려왔다.

“뭐냐?”

그러나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비기를 마무리하려는데.

“멈추시오.”

슥!

미친 난입자가 련주와 괴물 사이에 끼어드는 게 아닌가?

이놈이 죽으려고?

“무슨?”

“안녕하십니까. 전 진씨세가의 가주입니다.”

듣도 보도 못한 가문.

“아, 진씨세가는 저 아래 있는 자그마한 가문입니다.”

“그래서?”

“그게…… 련주님이 지금 사용하려는 기술을 쓰시면, 저희 가문에 피해가 미쳐서요. 그만둬 주시면…….”

“미친놈!”

사도련주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미친놈과 괴물을 한꺼번에 베려 했는데.

스르륵!

“뭐, 뭣?!”

그 순간, 있을 수 없는 이변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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