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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화 : 아비가 간다! (1) (198/210)


198화 : 아비가 간다! (1)
2022.10.05.


‘이 목소리는?’

진씨세가의 가주가 익숙한 목소리에 급히 몸을 돌았다.

저 멀리서 누군가 이쪽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이를 본 진 가주의 동공이 크게 떨렸다.

‘어째서?’

어째서 현석이 저런 무공을 사용하는 거지?

현석은 무공을 전혀 모르는 범인인데?

‘게다가 얼굴에 저건 또 뭐야?’

여전히 먼 거리지만, 얼굴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는 구분할 수 있었다.

괴상하다 못해 기이하기까지 한 나무 가면.

현석에게 저런 가면을 쓰고 다니는 성향이 있었나?

결단코 아니다.

허나 모르는 일.

자신은 벌써 수년째 진씨세가를 떠나있었고,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 그 사이 현석이 따로 무공을 익혔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저 가면도…….’

저건 도저히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진씨세가의 가주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머지 자세한 일은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자네…….”

“제자야, 네가 왜 여기에?”

“뭣?!”

그런데 진 가주가 채 용건을 다 꺼내기도 전에 사도련주가 그를 지나쳐 앞으로 달려갔다.

그것보다 방금 뭐라고?

‘제자?’

련주의 제자?

그 말인즉, 차기 사도련주?

‘아니지. 사도련주에게는 제자가 한둘이 아니라고 했지.’

그렇다 해도 몇 안 되는 제자 중 하나다.

누가?

현석이?

몇 년 못 본 새에 무공을 익혔을 뿐 아니라 사도련주의 제자가 됐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자네!”

하지만 진씨세가의 가주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학자란 모름지기 눈앞에 주어진 의문을 어물쩍 넘기지 않는 법.

“멈추게.”

슥!

그러나 사도련주가 손에 든 거도로 학자의 걸음을 억지로 멈췄다.

“이 이상 다가오면 벤다.”

꿀꺽!

진 가주가 침을 삼켰다.

아무리 변방에 위치한 진씨세가라지만 천하를 삼분하는 맹, 련, 교의 위명까지 모를 수 없었다.

사도련주는 그중 련의 절대자.

결코 허투루 말을 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가 벤다고 하면 반드시 벤다.

“알겠습니다.”

진 가주가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물론 그는 끝까지 의문을 놓치지 않고, 곁눈질로 현석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가면을 가린 탓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허나 저쪽은 이쪽을 알아볼 텐데?

왜 자신을 보고도 아무 말이 없지?

진씨세가가 딱히 현석을 구박하고 핍박한 기억은 없다.

아무리 현석이 갑자기 신분 상승했다고 해도, 여기서 자신을 모른 척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정말 아니란 건가?’

한번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정말 그래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저자는 자신이 기억하는 현석보다 훨씬 체구가 컸다.

사도련주의 무공이 아무리 대단해도 저렇게나 몸을 바꿀 수 있을까?

그리고 온몸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보통이 아니다.

마치 잘 벼려진 거도처럼.

정말 자신이 아는 현석이 저런 기운을, 그것도 자신에게 풍길 수……?

“네놈의 정체가 뭐지?”

슥!

그때, 진 가주의 목에 날이 시퍼런 도가 드리웠다.

사도련주가 제 몸보다 긴 거도를 가벼운 나뭇가지 휘두르듯 한 손으로 들었다.

그가 북풍보다 시린 눈으로 진 가주를 노려보았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잘못 움직이면 그대로 목이 베인다.

아쉽게도 진 가주에게 더는 숨긴 수가 없었다.

적어도 조금 전처럼 사도련주를 감쪽같이 속일 방법은 전무했다.

“선인인가?”

“절대 아닙니다!”

련주의 물음에 진 가주가 자지러지듯 소리를 질렀다.

순간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살짝 올라간 눈썹이 화난 듯도 보였지만, 사도련주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손에 쥔 도를 진 가주의 목에 한결 바짝 겨누며 물었다.

“그럼 뭐지? 선인도 아닌데 보패를 쓰고, 저 거대 괴물의 정체를 안다고? 그리고 정확히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거대 괴물의 자폭을 막은 것도 네놈이겠지? 그런 게 가능한 놈이 이 근처에 있는 이름 모를 가문의 가주라고?”

“진씨세가입니다.”

“그딴 게 중요한가?”

처음 사도련주의 의도는 분명 먹혀들었다.

다짜고짜 도를 목에 겨누고, 거기다 날카로운 기운까지 드러냈다.

상대는 그것에 겁에 질렀고, 결국 무거웠던 입을 뗐다.

“당연히 중요하지요!”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다른 건 몰라도 제 가문을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없습니다!”

“이놈이!”

“사과하십시오!”

“허어!”

기가 찼다.

어디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가문 따위 때문에 자신보고 사과하라 한다고?

아무래도 이게 미쳐 실성한 게 분명했다.

‘놈의 목을 베는 건 간단하다.’

하지만 선인도 아니면서 보패를 사용하고, 경계 너머의 정보를 아는 그를 쉽게 베기는 아까웠다.

아마 녀석도 거기까지 계산하고 배짱을 부리는 게 분명했다.

허나 진 가주의 계산은 틀렸다.

그는 사도련주가 제 생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막 나가는 성격임을 계산하지 못했다.

“흥!”

휙!

‘이 미친!’

사도련주가 미련 없이 자신의 거도를 휘둘렀다.

이건 결코 장난도 경고도 아니었다.

단번에 진 가주의 목을 베려는 의도.

‘확실히 이자가 무슨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꼭 그게 필요한 건 아니다.’

필요한 정보는 언제가 자신이 직접 얻는다.

학자인 그로서는 천생 자유인인 사파인의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나 배신이 일상인 사파인은 눈앞의 고기가 아무리 먹음직스러워도 조금만 위험한 낌새가 보이면 즉시 흙발로 밟아버린다는 걸 그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사도련주의 거도가 진 가주의 목에 종이 한 장 정도의 간격만 남긴 그때.

챙!

놀랍게도 누군가 그의 도를 막았다.

평소의 련주라면 누가 막아서든 콧방귀를 뀌며 막아서는 자와 함께 벴겠지만, 하필 제 도를 막은 이가 그의 몇 안 되는 제자였다.

“무슨 짓이지?”

“아무래도 그는 제 지인 같습니다.”

“지인?”

“뭣?”

사도련주와 진 가주가 동시에 놀랐다.

아니, 나야 그렇다 치고 넌 왜?

“역시…….”

진 가주가 살짝 눈시울을 붉히며 현석 쪽으로 다가갔다.

“역시나 넌…….”

“부담스러우니 이 이상 다가오지 마십시오.”

“응?”

한참 감동에 젖던 진 가주가 상대의 야멸찬 반응에 고개를 저었다.

이게 아닌데?

“조금 전, 진씨세가라 하셨습니까?”

“으응? 그랬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진 가주의 고개가 더욱더 모로 꺾였다.

“분명 진천우, 그자의 가문이 진씨세가였는데?”

“천우?!”

그러나 어떤 이상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아들의 이름이 들리자, 아비는 단숨에 몸을 날렸다.

덥석!

진 가주가 곧바로 현석의 멱살을 잡았다.

순간적으로 너무나 기민한 움직임에 사도련주와 현석이 잠시 몸을 움찔거렸을 정도.

“천우! 내 아들 천우는 지금 어디 있지? 가문에 돌아오자마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는데도 찾을 수 없던 녀석을, 왜 네가!”

“그는 지금 경계 너머에 있습니다.”

“경계! 그렇구나! 그래서 찾을 수 없었구나! 거기에…… 잠깐! 내 아들이 거긴 또 왜 간 거냐!!”

진 가주가 점점 더 강하게 현석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물론 중년의 학사 따위에 불과한 자의 악력에 고통을 느낄 리 없는 현석이지만, 그는 어째서인지 눈앞의 상대가 눈살을 찌푸릴수록 자신 또한 가슴에 정체모를 격통을 느꼈다.

이분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어째서?’

이런 감정은 분명 이전에도.

그래, 진천우 그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보다는 덜했다.

그렇다고 가슴이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어째서!”

“어이, 잠깐!”

진 가주의 고함 소리가 점점 커지자, 보다 못한 사도련주가 손을 뻗었다.

대충 듣기로 아들놈이 경계 너머로 넘어가고 그걸 제 제자가 본 듯했다.

제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이해되지만, 그것과 지금 당면한 이 상황은 어디까지 별개다.

그는 당장 진씨세가의 가주가 알고 있는 바를 모조리 털어야…….

“아니지. 여기서 이러는 것보다, 당장 가서 아들의 무사를 확인해야 겠군.”

“흥, 내가 보내줄 것 같더…….”

“미안하지만 자네도 함께 가지.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게. 그리고 가는 중 엇갈리지 않게, 어떻게 왔는지도 알려주고.”

“네놈!”

련주가 지금껏 맹주에게도 천마에게도 겪어보지 못한 철저한 무시에 분노하며 다시 거도를 휘둘렀다.

대신 이번에는 날 부분이 아니라 뒤쪽.

목숨이 아니라 팔이나 다리 한두 개 부술 요량이었고, 그런 만큼 이번에는 설령 제자가 막아선다 해도 봐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까 틀림없이 진심이었는데도.

휙!

사도련주의 도가 허공을 갈랐다.

“무슨?!”

그가 놀라 두 눈을 치켜떴다.

“이…… 이 무슨…….”

사도련주가 황망한 얼굴로 눈앞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안력을 집중해도 눈앞의 광경은 바뀌지 않았다.

휘이잉!

텅 빈 공간에 시린 바람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 둘이 어느새 사라진 것이다.

무려 절대초인이라 불리는 사도련주의 눈을 피해!!

* * *

“이건?”

“특이한 장치군. 진법 다음에는 기관인가?”

진천우와 소천마가 붉은 진법 아래 숨겨진 무언가를 발견했다.

우우웅! 철컥!

거기서 낮은 기계음과 그것보다 더 낮은 공명음이 울렸다.

진천우는 전에도 이와 비슷한 소리를 들은 적 있었다.

그야말로 대단한 고도의 진법과 놀라운 고도의 기관이 동시에 작동하는 장소에서.

‘그러나 그 장소는 분지 하나를 통째로 뒤엎거나, 산 하나를 통째로 깎는 등 말도 안 되게 넓은 공간을 아우르고 있었다.’

“…….”

진천우가 말없이 시야를 내렸다.

철컥! 우우웅!

그의 시야에는 분지나 산은커녕 아주 좁디좁은 공간.

아니, 그마저도 안 되는 곳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바로 의자.

철커덕! 철컥! 우우웅!

‘한낱 의자 따위에서 이 같은 반응이 올라온다고?’

물론 평범한 의자는 아니었다.

땅과 이어져 있는 그것은 정녕 의자라 해도 좋을지 고민될 정도로, 웬만한 넓은 방 하나를 차지하는 공간에 온갖 잡다한 재료를 쓴 기괴한 의자였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크고 무엇으로 이뤄져 있든, 한가운데 맨 위에 사람 하나가 간신히 앉을 수 있는 좌판에 등받이까지 설치된 그것은 확실히 의자가 맞았다.

“이걸 어쩐다?”

진천우가 의자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의자의 용도가 따로 있을 리 없었다.

“앉아야겠지.”

슥!

그리 말하며 소천마가 성큼 그 앞으로 다가갔다.

“아!”

뒤늦게 진천우가 기겁하며 손을 뻗었지만, 늦었다.

그녀가 한번 마음먹은 이상, 말리는 건 불가능했다.

“…….”

그렇게 소천마가 기이한 의자에 앉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없군.”

그녀는 곧 대수롭지 않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겉보기와 달리 별 대단한 장치는 아닌 모양인데? 그게 아니면 적어도 의자에 앉는 건 이 장치의 발동과는 연관이 없는 모양이야.”

“아니요.”

진천우가 드물게 소천마의 말을 부정했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의자 쪽으로 다가갔다.

‘이건 틀림없이 앉기 위한 용도의 의자다.’

진천우가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슥!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오랜만에 나타난 푸른 현판이 그의 시선을 가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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