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0화 : 아비가 간다! (3) (200/210)


200화 : 아비가 간다! (3)
2022.10.10.


슥!

진씨세가의 가주가 의자에 앉아있는 아들 쪽으로 손을 뻗었다.

“…….”

수년 만에 만난 아들은 야속하게도 아비의 손에 담긴 온기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진 가주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했다.

‘차라리 잘됐다.’

이후 펼쳐질 대법을 생각하면, 지금 정신을 잃는 게 나았다.

그만큼 끔찍한 방법.

그걸 제 손으로, 제 아들에게 행하게 될 줄이야!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슥!

진 가주가 손가락을 뻗어 아들의 입을 벌렸다.

“…….”

역시나 아들 녀석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 틈에 단숨에!

꼴꼴꼴!

아비는 혼절한 아들의 입에 맨 처음 꺼낸 사기병의 내용물을 쏟아부었다.

“뭐!?”

“무슨 짓을!!”

이것을 지켜보던 소천마와 현석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소천마가 바로 앞으로 달려가려다…… 또다시 앞을 가로막는 투명한 막에 걸음을 멈췄다.

대신 소리쳤다.

“아들을 죽일 셈이냐!”

이제 말을 높이지 않았다.

그만큼 급박한 상황.

전체적으로 투명한 우윳빛을 띈 공청석유는 한 방울만 마셔도 일 갑자의 내공 증진을 얻는다는 전설의 최상급 영약이다.

물론 그 전설은 거짓으로, 실제로 공청석유 한 방울을 마신다고 바로 일 갑자의 내공을 훌쩍 얻는 건 불가능했다.

허나 그렇다고 전설이 마냥 거짓인 건 아니었다.

그 뛰어난 효능은 전설만큼은 아니어도 분명한 진실.

아마 저 작은 사기병 안의 양이라면 충분히 일 갑자, 아니 그 이상의 내공 증진도 가능했다.

그러나 전설 외에도 분명한 게 또 하나 있다.

그것은 공청석유가 최상급 ‘영약’이란 사실이었다.

“영약은 일반적으로 절대 한곳에 모일 수 없는 강한 기운을 오랜 세월 한곳에 응축한 불가해의 극치! 그런 걸 저리 가볍게 먹이면!”

소천마의 음성이 격렬히 높아졌다.

그녀 말대로 영약은 절대 평범하지 않은 보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보물의 효능을 온전히 보려면, 매우 오랜 준비를 거쳐 완벽한 상태에서 영약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게 그만큼 철저히 준비해 영약을 섭취한 무인 중에서도 상당수가 주화입마에 걸리는 판국에, 저렇게 혼절한 상태로 사기병 하나 분량의 공청석유를 입 안에 털어넣어?

그건 그냥 죽으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허나 진 가주의 기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퍽!

그의 손에 뭔가가 부서졌다.

새하얀 속살을 지닌 뿌리 식물.

무?

아니 그것보다는 가늘고 짧다.

그런데 그 흰 속살 안에 아주 희미한 푸른 기운이 엿보였다.

반짝!

심지어 그 기운은 저 혼자 밝게 빛나며 주위에 뿌연 빛무리까지 풍겼다.

“저건 설마…… 만년설삼?!”

현석이 흰 뿌리의 정체를 알아보고 경악했다.

만년설삼은 극한지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식물로, 이름처럼 무려 만 년이나 그곳에서 극음지기를 응축해야만 생기는 궁극의 영약.

그 효능은 결코 공청석유에 뒤지지 않았다.

그 말을 바꿔 말하면, 만년설삼 역시 공청석유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준비 끝에 섭취해야 한다는 소리.

그런데 그 위험물을 진 가주는.

퍽! 휙휙!

아까 말했듯 무슨 무를 잘게 쪼개듯, 손으로 동강 내더니 엄지손톱 크기가 된 만년설삼 무더기를 바로 진천우의 입에 던져버렸다.

“당신!”

“미쳤나!!”

이번에도 소천마와 현석이 동시에 기겁했다.

그러나 진 가주의 기행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

휙!

그는 품에서 어른 주먹만 한 자개함을 꺼내더니, 거기서 손톱 크기의 보랏빛 환을 꺼냈다.

은은한 자색으로 빛나는 환이라니.

“저건 설마…….”

“자소단은 아니겠지?”

자소단은 화산의 보물.

그 효능은 소림의 대환단에 비견된다.

휙! 퐁당!

한번 모습을 드러내면 무림에 최소 십 년은 마르지 않을 혈사를 일으킬 보물이 또다시 진천우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공청석유에 만년설삼에 자소단…….

안타깝게도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진 가주가 또 품에서 사기병을 꺼냈는데.

그건 공청석유를 담은 사기병의 배 이상의 크기였다.

그는 그 안의 내용물을 다시 아들의 입에 처넣었다.

주륵! 주르륵!

그건 평범한 액체가 아니라 걸쭉한 점성을 지니고 전체적으로 짙은 붉은 빛이 맴돌았다.

결정적으로 사기병을 열자마자 주위에 숨 막힐 정도로 환상적인 단내가 흘러나왔다.

확신할 수 있다.

저 액체가 정확히 뭔지 몰라도, 앞서 사용한 다른 영약 못지않은 효능을 가진 것이라는 걸.

휙!

“멈춰!”

휙휙!

“멈추라고!”

휙휙휙!

“멈……추란 말이야!!”

이후로도 쉬지 않고 아들의 입에 약을 집어넣는 진 가주를 보며 소천마가 크게 악을 질렀다.

그녀가 스스로를 이렇게 무력하다고 느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방법이?

“끝났다.”

“끝?!”

그 말을 듣고, 소천마가 급히 고개를 들었다.

참으로 끔찍한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혼절한 진천우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위로 들고 입이 찢어지도록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온갖 정체 모를 약이 가득했다.

다행히 그는 그것을 삼키지 않고 입에 담고만 있었다.

하긴 어느 누가 혼절한 채로 저 많은 약을 삼킬 수 있을까?

허나 그건 큰 오산이었다.

덥석!

진 가주가 한손은 아들의 뒤통수를, 다른 손은 아들의 턱을 집었다.

“그만!”

그걸 보자마자 소천마가 소리 질렀다.

본능적으로 저자가 무슨 짓을 할지 깨달았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진 가주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양손을 접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주륵!

그 와중에 입에 있던 약이 흘러내렸지만.

슥!

진 가주는 귀한 약이 한 방울이라도 잘못 흘러내리는 걸 용서치 않고 제 손가락으로 약을 훑어 다시 아들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길 얼마가 지났을까?

꿀꺽!

결국, 진천우가 입안에 있는 약을 삼켰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컥!”

난데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때도 진천우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대신.

부르르!

급히 몸을 떨기 시작했다.

부르르르르르르르륵!!

시간이 지날수록 그 떨림이 심해졌다.

그 많은 영약의 약성이 진천우의 몸 안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스으윽!

결국, 그의 몸은 마치 오줌이 가득 차 터지기 직전의 돼지 방광처럼 부풀어올랐다.

“컥!”

진천우가 혼절 중에도 이대로는 안 된다고 느꼈는지, 급히 안에 걸 게워내기 시작했다.

확실히 무식한 방법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를 용납하지 않는 이가 있었으니.

“어딜 아깝게!”

덥석!

진 가주가 그 즉시 손으로 아들의 입을 막았다.

이러면 속엣걸 게워낼 수 없다.

게다가 혼절한 진천우는 힘으로 아비의 손을 치울 수도 없었다.

결국.

꿀꺽!

게워내려 했던 약을 다시 삼키게 되었고.

부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그의 몸은 조금 전과 비교도 할 수 업을 만큼 더욱 심하게 몸부림쳤다.

“좋아, 이제 됐군.”

슥!

아들이 약을 다시 삼킨 걸 확인하자마자, 진 가주는 언제 꺼냈는지도 모를 가늘고 긴 침을 진천우의 몸에 꽂았다.

침은 하나가 아니었다.

슥! 슥슥!

순식간에 네 개.

진 가주가 바로 다섯 번째 침을 놓았다.

그는 여섯 번째 침을 들며 생각했다.

‘설마 내 스스로 아들의 몸에 이 저주받은 대법을 행하게 되다니.’

저주 받은 대법?

그럴 리 없다.

대법의 처음은 기해혈이었다.

그 뒤 거궐, 구미혈, 기문혈…… 순서로 대법이 진행되었다.

이건 틀림없이 의선이 남긴 요상절초 십팔수가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저주받은 대법이라고 하는 거지?

그 순간!

훅!

“큭!”

진천우가 몸을 떨다 말고 갑자기 허리를 들었다.

아마 의자가 양팔, 양다리를 묶고 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의자에서 튕겨나갈 정도로 몸이 활처럼 꺾였다.

뚝! 뚜둑!

그 상태로 그의 몸 여기저기에서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진천우가 그렇게나 듣고 싶어 했던 소리.

바로 그의 몸 속 기맥을 막고 있던 절맥들이 터져나가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 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쨍!

두 부자와 두 남녀를 가로막던 투명한 막이 깨졌다.

“아니! 어떻게 그 막을?!”

놀란 진 가주가 급히 아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진천우는 확실히 괴로워하는 얼굴이었지만, 그건 절맥을 뚫는 과정 중 일어나는 격통일 뿐, 방금 투명한 막이 깨진 것과는 전혀 별개였다.

만약 여기에 그런 고통까지 더해졌다면 아들의 몸이 견뎌낼 리 없었다.

이건 대법을 펼치고 있는 진 가주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어떻게 막을 뚫은 거지?

“우리가…… 그저 손 놓고 지켜만 보고 있을 줄 았았나?”

“아무래도 당신은 내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소천마와 현석이 스산한 목소리를 흘리며 다가왔다.

꿀꺽!

진 가주가 급히 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이 상황을 잘 넘기지 못하면, 기껏 아들이 눈을 떠도 감격스런 부자 상봉은 황천길에서 벌어질지도 몰랐다.

* * *

“큭!”

눈을 뜨자, 낯선 천장, 아니 무너진 천장이 보였다.

여긴 어디지?

난 누구?

‘분명 난…… 경계를 넘어와…… 정체모를 기운을 쫓아 지하로 내려와…….’

사실 혼절은 익숙했다.

그 덕에 진천우는 빠르게 안정을 찾으며, 혼란한 정신을 수습했다.

‘그다음에는 의자에 앉은 뒤…… 의자!?’

철컹!

그는 여전히 의자 위에 묶인 상태였다.

그러나 진천우가 당황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천우야…….

그리운 음성.

분명 자신의 아비의 목소리였다.

수년 만에 들었지만, 기억 속 목소리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비가 왜 이곳에?

‘꿈을 꾼 건가?’

워낙 혼란스러운 상황에 들은 목소리라 그럴지도 몰랐다.

‘일단 정신부터 다 차리자!’

아직 시야가 흐렸다.

귀도 먹먹해서 제대로 뭔가를 들을 수 없었다.

그는 오감을 회복하면 주위 상황을 다 파악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당장 근처에 소천마가 자신을 기다릴 게 분명했다.

쾅!!

허나 정신이 들자마자 가장 먼저 들은 소리는 귀청을 찢는 거대한 굉음!

“무슨?”

굉음에 놀란 진천우가 급히 고개를 틀었다.

철커덩! 철컹!!

뿌연 시야 너머로 무언가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닥이 갈라지고, 벽이 솟구치고, 천장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것들 사이로 그것들보다 더욱 빠르게 움직이는 무언가.

‘사람이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다.

그럼 저 중에 아버지가?

쾅!!

허나 갑자기 솟구친 벽에 의해 시야가 막혔다.

완전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진천우만 홀로 외딴 공간에 갇혀 있었다.

“여긴 어디지?”

곧바로 그의 눈앞에 푸른 현판이 떴다.

[사용자가 자격을 증명했습니다.]

[마지막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이 상황에 난데없이 이벤트?

[천하제일 타이쿤의 하위 타이쿤, ‘초한전’이 개방됩니다.]

“초한전?”

철컹!

그게 뭔지 생각하려던 찰나, 사지를 제압하던 의자의 족쇄가 풀렸다.

“…….”

진천우는 우선 의자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챙챙챙!

사방에서 요란한 징과 북소리가 울리더니.

스르르륵!

“음?”

그가 서 있는 의자 아래로 펼쳐진 커다란 단 위에 여러 석상들이 차례로 도열하기 시작했다.

석상들은 각기 다른 형태에 크기마저 천차만별이었다.

가장 작은 석상이 사람 크기였으며, 가장 큰 건 집채만 했다.

그들은 진천우 쪽으로 한 무리, 그리고 그 반대편에 한 무리씩 모여 도열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제 쪽에 있는 석상은 모두 청아한 청옥을 깎아 만들었고, 반대편은 고혹적인 홍옥을 깎아 만들어져 있었다.

거기다 분명 청옥 석상이나, 홍옥 석상이나 다 처음 보는 걸 텐데도, 그들이 서 있는 도열이 이상하게 낯익었다.

“이건…….”

진천우가 잠시 더 저쪽과 제 쪽 석상을 살피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을 꺼냈다.

“혹시 장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