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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화 : 천마전 (4) (207/210)


207화 : 천마전 (4)
2022.10.26.


“천우!!”

소천마가 진천우의 이름을 소리쳐 부른 건 아마 이번이 처음.

그만큼 놀랐다는 소리다.

허나 그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이미 몸을 내던진 뒤였다.

“어딜!”

그러나 천마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가벼운 손짓 한 번.

그 손짓조차 뚫지 못했다.

안 돼!

또 이렇게 눈앞에서 저 녀석을 놓칠 수 없다.

절대! 절대!!

절대!!!!

화륵!

그 순간, 소천마의 몸이 불길로 휩싸였다.

평범한 불꽃이 아니었다.

검은 불꽃, 성화.

소천마의 온몸에 성화가 피어올랐다.

이만한 불꽃을 피운 건 그녀도 처음.

애초에 성화는 경계로 넘어온 뒤에 발현한 능력으로, 아직 완전히 체화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성화의 능력은 너무 뛰어났다.

한 줌의 불꽃으로도 천하에 손에 꼽을 파괴력을 지닌 천마신공의 위력을 배로 늘렸다.

그러니 그 사용에 유의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소천마는 이제 더 이상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전에도 그녀는 자신이 성화 사용에 약간의 주저함이 있단 걸 알지 못했다.

그건 너무 뛰어난 재능을 지닌 그녀가 저도 모른 채, 너무나 자연스럽게 성화 사용을 가볍게 억누르고 있던 거였으니까.

그런 만큼, 느닷없이 온몸에 성화를 피워 올린 것은 소천마에게도 처음인 동시에 깜짝 놀랄 결과였다.

화르륵!

뿌득!

물론 그녀는 그 사실을 깨달을 겨를조차 없었다.

‘좀 더…… 더…… 더 많은 힘이 필요해!!’

눈앞에 선 저 괴물 같은 천마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이걸로도 부족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부딪쳐 산산이 깨져도 좋다.

아니, 그것도 부족하다.

말 그대로 온몸이 산화해 사라질 각오로 성화를 피워야 한다.

화르륵! 화륵!!

성화는 소천마의 굳은 각오에 호응하듯, 더욱 거센 불길을 피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지독한 갈증을 느꼈다.

‘더! 더!! 더!!!’

화르르륵!!

그럴수록 성화의 불꽃이 더욱 짙어졌다.

이제는 단순히 검은 빛을 띤 불꽃이 아닌, 지독히도 진득한 기운을 피우는 인세에 존재하지 않는 불꽃이 될 정도였다.

그야말로 불꽃이 아니라, 불꽃의 형태를 띤 단단한 무언가로 보일 정도로.

화르륵! 화르르륵!!

그대로 성화는 정말 어떠한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바로 소천마의 온몸을 휘감았다.

“호?”

이를 본 천마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 셋과 재회한 뒤 그저 실망만 했던 그가, 처음으로 두 눈을 치켜뜨며 흥미를 보인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재밌고 흥미롭다면 그게 무엇이든 끝까지 지켜보는 나쁜 버릇이 있다.

이번에도 그 버릇이 나왔다.

천마는 계속 소천마가 하는 짓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자 그것은 놀랍게도 한 마리의 용으로 현현했다.

화르르륵!

화룡(火龍).

소천마는 자신의 신체를 태워, 성화로 이뤄진 화룡을 키워냈다.

“재밌군.”

저건 천마 자신조차 만들어내지 못한 성화의 새로운 형태였다.

역시 그때 저년을 죽이지 않고 제 성화의 일부를 넘겨주길 잘했다.

그랬으니, 저런 신기한 걸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천마는 이 재밌는 상황을 더욱 재밌게 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런 바로 자신이 직접, 저 처음 보는 화룡을 때려부수는 일이었다.

우우웅!

천마가 한손에 가볍게 천마신공을 둘렀다.

남은 한 손은 여전히 진천우의 몸을 꿰뚫고 있으니, 한손만으로 그녀를 상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음?”

천마의 눈길이 소천마를 떠나 그 옆을 향했다.

“아하?”

그가 다시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 순간, 하나도 아니고 둘이 동시에 천마의 흥미를 끌었다.

* * *

‘소가주!!’

현석이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기억이 돌아왔다.

천마의 손이 진천우의 몸을 꿰뚫는 그 순간, 드디어 머릿속에 막혔던 무언가가 뚫리며, 잊어버린 기억이 모두 돌아왔다.

자신의 이름은 현석.

자신은 진씨세가의 충성스러운 하인.

그리고 자신은 진씨세가의 소가주인 진천우의 직속…….

“소……!!”

현석이 곧바로 가슴 속 가장 깊이 침전돼 있던 단어를 소리쳐 말하려다 멈췄다.

지금 그 존재는 천마의 손에 붙잡혀 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를 부르는 것 따위가 아닌, 그를 구하는 일.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침 소천마 역시 진천우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함께 달려들어 천마를 쓰러트려야 하나?

과연 자신이 쓰러트릴 수 있을까?

그게 아니면, 그녀가 천마에게 달려든 틈을 노려 진천우만 따로 빼내야 하나?

하지만 자신이 천마 몰래 진천우를 빼낼 수 있을까?

둘 다 불가능!

현석은 기억을 잃은 동안, 사도련주의 밑에서 언제 어느 때라도 냉정하게 상황을 살피는 능력을 얻었다.

지금의 자신은 앞의 둘을 모두 할 수 없다.

소천마와 함께 달려들어도 천마를 쓰러트릴 수 없고, 몰래 틈을 노려도 천마의 손에서 진천우를 구할 수 없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떻게 진천우를 내버려 두겠는가!

구해야 한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쓰든!

그러나 어떻게!!

달칵!

“?!”

그 순간, 그의 품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검은 목각인형.

달칵달칵?

녀석은 잠시 제 주인을 바라보다, 다시 품속으로 몸을 숨겼다.

방금 어째서인지 제 주인이 제 주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마주하니, 눈빛이 약간 바뀌었다.

전보다 좀 더 커지고 동글해지고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딱히 어떤 존재에게 정신을 빼앗기거나 오염된 건 아닌 듯.

목각인형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 무엇보다 크게 안도했다.

‘그래, 네가 있었지!’

나와라!

달칵?

게다가 자신의 주인은 잠깐 사이, 자신을 다루는 능력이 아주 크게 올랐다.

[‘조련사’가 기억을 되찾았습니다.]

[잠시 보류해두던 ‘조련사’의 능력이 다시 활성화됩니다.]

이때, 누군가의 눈에만 보이는 무언가에 이런 글귀가 새겨졌지만, 현석은 이를 보지 못했다.

그에게는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었다.

“날 강화해라. 그리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해 날 강하게 만들어!”

달칵!

목각인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화 자체는 어렵지 않다.

마침 주인의 품속에 있는 동안 상당한 기운을 회복해 두었다.

그렇게 모은 기운이면, 인형화로 강화는 물론이고 전에 했던 거대화도 어느 정도 가능했다.

스륵!

그 즉시 목각인형이 제 힘을 현석에게 불어넣었다.

스르륵! 스륵!

계속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현석의 몸이 빠르게 인형처럼 바뀌었다.

그런데.

스르륵! 스륵! 스르르륵! 스르르르르르륵!!

달칵?!

자신의 힘이 계속 주인에게 빨려 들어갔다.

이쯤하면 된다.

‘아니, 부족해!’

스르르륵!!

현석은 목각인형을 무시하고 계속 그 힘을 빨아들였다.

원래부터 의지가 강한 그의 주인은 이전에 없던 조련사 능력까지 발휘해 쉬지 않고 목각인형의 힘을 흡수했다.

달칵달칵달칵달칵!!

인형은 어떻게든 이를 거부하려고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제 힘이 빼앗기는 건 문제되지 않는다.

어차피 주인에게 주려고 모은 힘이다.

그러나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힘을 내주게 되면…….

투툭!

그 순간, 현석의 얼굴에 낯선 소음이 울렸다.

얼굴에 쓴 가면이 더욱 두꺼워졌다.

아니, 어느새 얼굴 피부에 딱 붙어버렸다.

인형화의 부작용.

이 이상 자신의 힘을 받아들이면, 현석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다.

‘상관없다.’

아니, 그럴 수 없어!

‘상관없으니까 계속!’

안 된다고!!

‘상관없다고!!’

스르르르륵!!

달칵!!

결국, 목각인형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현석은 계속 그 힘을 빨아들였다.

그럴수록 그의 몸은 점점 더 검게, 점점 더 단단하게, 그리고 점점 더 이형의 무언가로 바뀌었다.

* * *

“호?”

천마가 흥겨운 듯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쪽도 저쪽도 흥미롭다.

둘 중 무엇을 먼저 박살 낼지 고민될 정도로.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 중 유독 크게 성장한 것이 따로 있었으니까.

파스스!

“어딜!”

천마가 급히 한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끝에 검은 나비가 잡혔다.

독접.

진천우의 품에서 몰래 튀어나온 그것은, 천마가 잠시 한눈 판 사이를 노려 독을 뿌렸다.

허나 이 정도 독으로 자신을 어찌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파스스스!

독접이 붙잡힌 채로 계속 독을 뿌렸다.

쓸데없는 발악!

으직!

천마는 그대로 주먹을 움켜쥐며 녀석의 허무한 날갯짓을 짓뭉갰다.

이제 남은 건 둘.

“??”

그런데 이상하게 손이 허하다.

왜?

슥!

천마가 천천히 손을 펼쳤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이 손으로 검은 나비를 붙잡았는데?

“환혹되신 겁니다.”

“너!”

천마가 두 눈을 치켜뜨며, 진천우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제 손을 벗어났지?

이것도 환혹?

“원래 이곳 경계를 지배하는 자는 따로 있었는데, 마침 당신이 그자의 몸을 차지했더군요.”

그 탓에 경계의 주인이 사라졌다.

헌데 한 사람,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을 가진 이가 있었다.

바로 진천우.

“덕분에 이곳의 모든 진법과 기관, 그 외 모든 것을 제 뜻대로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팟!

그 순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수십 개의 칼날이 천마를 향해 날아왔다.

“흥!”

이까짓 칼날이 어쨌다고.

쾅!

천마가 곧바로 손을 흔들어 칼날을 모두 가루로 만들었다.

그런데 칼날들이 사라진 바로 그 자리에서 난데없이 소천마가 튀어나왔다.

“죽엇!!”

“네가 어떻게!?”

분명 그녀는 땅에 있었다.

만약 신법으로 몸을 날렸다면, 자신이 몰랐을 리 없다.

소천마는 정말 아무 전조 없이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마치 조금 전, 그 칼날처럼!

“!?”

쾅!

“핫!”

천마가 웃음을 터트렸다.

놀랍게도 자신이 조금 전 일격에 뒤로 한 발이나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녀의 공격을 막기 위해 억지로 자세를 튼 탓에 제대로 된 방어를 할 수 없었다고 해도, 그 이상으로 소천마의 천마신공이 배로 향상되었다.

“그게 네년의 새로운 성화인가?”

화르르륵!

소천마의 오른팔을 감싼 선명한 검은 불꽃의 용.

“알 필요 없잖아!”

그녀는 질문에 굳이 답하지 않고, 다시 몸을 날렸다.

천마가 그것을 막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휙!

그런데 정면에서 날아오던 검은 용이 엉뚱하게 왼쪽에서 튀어나왔다.

이번에도 진천우가 수작을 부린 것이다.

하지만 천마는 이미 한 번 그것을 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아까와 달리 조금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몸을 비틀었다.

헌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도 있다!”

휙!

몸을 비튼 직후, 그 반대편에서 현석이 튀어나왔다.

인형화된 몸으로 거대한 마도를 휘두르는 묵직한 일격.

콰쾅!!

“하하핫!”

연이은 예상 밖의 사태에 천마가 또 뒤로 물러났다.

양손이 얼얼하다.

심지어 그 손에 피가 배어있다.

비록 이 몸은 제 것이 아니지만, 자신이 피를 흘린 게 얼마 만일까?

좋다.

아주 좋다!

기다린 보람이 있다.

암, 이래야지!

자신이 무엇 때문에 등선조차 미뤘는데!!

“어디 해보자꾸나!”

우우웅!

그대로 천마가 양손을 모아 천마신공을 일으켰다.

‘확실히 경계의 지배권을 얻은 네놈의 순간 전이는 성가시다.’

자신의 감각마저 속여 상하좌우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를 공격.

심지어 그 공격은 자신마저 쉽게 경시할 수 없는 소천마와 현석의 것이다.

‘그렇다면!’

콰르르!

천마가 천마신공을 사방에 퍼트렸다.

그것은 그대로 주위를 휩쓸었다.

“아예 이곳 전체를 깡그리 지워버리면 그뿐!”

“예상대로로군요.”

“음?”

꽈악!

그때, 갑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이 천마를 압박했다.

진천우가 경계의 모든 힘을 사용해 천마를 감쌌다.

“이까짓!”

허나 그것으로는 천마를 완전히 잡을 수 없었다.

아마 경계의 모든 힘을 모아도 간신히 일각, 아니 반 각 정도?

그 반 각이 지나면, 오히려 저 안에서 팽창된 천마신공이 단숨에 이곳을 쓸어버릴 게 분명했다.

‘반 각이면 충분하다.’

충분하다고?

진천우가 알 수 없는 읊조림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의 시야를 가득 매운 푸른 현판에 새로운 글귀가 새겨졌다.

[독접, 목각인형, 성화룡, 삼대 신수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셋의 힘을 하나로 합치겠습니까? (예 / 아니오)]

슥!

진천우가 망설임 없이 현판에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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