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기억과 다른 세상 (3)
천무학관.
이한의 기억을 들여다본 바에 의하면 이곳은 정신과 배움, 경험을 쌓는 교육소 같은 곳이었다.
반 시진마다 배정된 과목이 있고, 교두와 교관들이 다수의 학관생을 가르치는, 이른바 강론에 가까웠다.
학년은 총 4년, 각 학년마다 배우는 수업이 정해져 있었다.
확실히 천마가 기억하는 옛 강호와는 달랐다.
한 명의 스승이 전담해서 몇 명의 제자를 두는 방식이 아니었다.
스승이 여럿 있고, 수많은 제자가 스승을 골라서 배우는 것이다.
“제자가 스승을 가려 뽑다니. 말세로군.”
‘교두’와 ‘교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부들은, 제자를 책임지지 않았다.
우둔한 돌머리를 어떻게든 깨우치려던 옛 사부들과 달랐다.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학생은 교관을, 교관은 학생을 서로서로 꺼리게 된다.
역으로 그러다 보니 도태되지 않으려고, 암암리에 경쟁하는 것이 좀 재미있기도 했다.
또한, 전 과목을 듣는다고 해서 다음 학년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학관에는 유급이란 게 있었다.
평가 점수가 기준치를 통과하지 못하면, 계속 그 학년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높은 수준의 학관일수록 입학생은 많아도 졸업생은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천무학관은 그런 경향이 특히 심했다.
“엿새라…….”
이한의 기억을 통해 대충 셈을 해본 천마가 말했다.
엿새 뒤에 학년의 본 수업이 시작된다.
학년마다 필수 강론이 있으며, 특정 수업은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
자칫하면 유급이라는, 최악의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반드시 졸업까지 마칠 거야…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해. 나는. 반드시 수업을 끝까지 받아야 해…….」
“쯧. 계속 거슬리네.”
천마는 이따금씩 귀에 들리는 환청에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얼마나 간절했는지, 과거를 돌아볼 때마다 이한이 다짐하던 장면이 꼭꼭 나오곤 했다.
아마도 원념.
천마와 계약할 당시에는, 죽은 부모의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강박적으로, 겨우 들어간 천무학관을 졸업까지 마치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저 낙제하지 않고 졸업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그런 소박한 바람.
「반드시 졸업까지 마칠 거야…….」
하지만 소박하기에, 더욱 집요한 그 원념은 천마가 몸을 넘겨받은 후에까지 간간이 떠오르곤 했다.
“…알았다. 그게 네 소원인 거지?”
귀를 파던 천마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니다.
어차피 세상 돌아가는 걸 알려면, 그놈의 학관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적당히 비위를 맞춰 주는 게 어렵긴 하겠지만,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과거의 삶 마지막은 오로지 수련, 수련, 수련이었으니.
“그건 그렇고… 수하 한 명은 필요할 듯한데.”
학관 입학을 앞두고, 저잣거리를 걷던 천마는 영 불편함을 느꼈다.
이한. 이 몸의 원주인은 전형적인 책상물림이었다.
천무학관 인근에서 기숙을 하고, 수업 외에는 주변을 돌아다니지 않고 공부, 공부, 공부만 계속한 놈이었다.
그러다 보니 밥 먹는 곳. 옷 입는 곳. 편히 쉴 곳 등등. 세상 사는 것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이 몸에 더부살이하게 된 천마도 불편했다.
“그래. 이게 좋겠군.”
길을 이리저리 배회하던 천마가 걸음을 멈췄다.
그의 앞에 놓인 제법 큰 건물.
어느새 대문짝만 한 현판이 내걸려 있는 가게에 도착해 있었다.
사천용병점(四川傭兵店).
마물과 괴수들이 튀어나온 이후, 자연스레 생겨난 가게다.
돈이 많은 고용주가 무력이 뛰어난 용병을 고용하여 힘을 쓸 수 있게 소개해 주는 곳.
가게는 일정 수수료를 챙겨서 좋고, 용병들과 고용주는 서로 쉽게 접촉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았다.
처음 용도는, 몬스터 사냥을 하려는 무림인들이 자신들을 도울 조력자를 구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시일이 지난 후 개념이 좀 바뀌었다.
마물 사냥으로 돈방석에 앉은 신흥 부자들이, 늘어난 돈과 자신 및 가족의 안전까지 챙겨 줄, 호위도 원했던 것이다.
때문에 ‘용병’들에게 무예는 기본이고, 계약 동안의 신뢰, 그리고 여차하면 굴혈(던전)에 투입되어도 괜찮을 지식이 요구되었다.
검증은 까다롭지만, 이 절차를 통과한 실력자들은 고용주들에게 엄청난 금액을 불렀다.
덕분에 용병 소개소들 역시 번창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실력 검증은 모두 마쳤습니다. 저희 가게의 이름을 걸고 확실히 보장합니다!>
벽보에 붙어 있는 종이를 보던 천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아는 무림에서는 실력의 3할은 숨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가진 내력을 다 드러내고, 그걸로 돈을 벌고 위세를 떨고 있었다. 여러모로 생경한 광경이었다.
대충 20여 명의 용모파기와 신상 내력이 적혀 있었는데 이름뿐만 아니라 생경한 서역의 글자도 적혀 있었다.
“일단 들어가 볼까.”
드르륵. 턱.
천마가 활짝 문을 열었다.
그의 한 손에는 전당포에서 받은 돈꾸러미가 쥐어져 있었다.
* * *
“칠독아, 손님 받아라.”
“예, 지금 갑니다!”
천마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사내 한 명이 쪼르르 다가왔다.
두건을 쓰고 호리호리한 체격이었는데 그는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노인 쪽으로 천마를 안내했다.
“처음이시군요? 이리로 오시지요.”
“…….”
천마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밖에서 보기보다는 안이 넓었다.
좌우측에는 객잔처럼 원탁을 마련해 둔 공간이 보였는데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담소를 나누는 자. 낄낄 떠드는 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자들 등 다양했다.
“여깁니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걸어간 곳에는 매부리코 노인 하나가 앉아 지그시 웃고 있었다.
그는 물푸레나무로 된 중역 책상에 앉아, 천마를 보고 과장된 몸짓을 보였다.
“오. 손님이시군요. 용병 소개소는 처음이신지?”
“음.”
뭔지 모르는 천마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매부리코는 잠시 눈에 이채를 띠었으나, 곧 턱을 괴며 목소리를 깔았다.
“좋습니다. 그럼 어떤 수준을 원하십니까? 참고로 저희 용병점은 의뢰인이 원하는 그 무엇도 맞춰 줄 수…….”
쩔--그렁!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책상 위에 돈 자루가 놓였다.
살짝 눈을 반개한 노인, 구염(九染)은 천마를 힐끗 보아 양해를 구하고, 자루 입구를 들춰 보았다.
번뜩.
금화 특유의 광채가 일었다. 대략 오백 냥. 자루의 부피로 총금액을 어림하고, 구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젊으신데 화통한 손님이시군.”
짝짝.
그는 손뼉을 쳤다.
시동 아이 하나가 도르르 달려와 서류 다발을 올리고, 구염은 그중 세 장을 뽑아 천마 앞으로 내밀었다.
“보시지요. 만족하실 겁니다.”
천마는 그가 내민 목록을 훑어보았다.
<바람의 영혼>
◇ 학력: 천운 고등학관 우수 졸업.
◇ 별호: 풍혼(風魂)
◇ 장기: 권법.
◇ 주요 경력:
→ 다크오크 8마리
→ 가고일 2마리
→ 키메라 1마리
◇ 고용주에게 하고 싶은 말: 모자란 그대에게 힘이 되어 주지.
◆ 계약 금액: 금 300냥
◆ 계약 기간: 6개월
<뛰어난 다스림>
◇ 학력: 비룡 고등학관 수석 졸업
◇ 별호: 성군(聖君)
◇ 장기: 비수
◇ 주요 경력:
→ 트롤 4마리
→ 강철골렘 4마리
→ 와이번 2마리
◇ 고용주에게 하고 싶은 말: 인생은 실전이다.
◆ 계약 금액: 금 320냥
◆ 계약 기간: 6개월
<어둠의 손님>
◇ 학력: 마교 출신
◇ 별호: 흑객(黑客)
◇ 장기: 검
◇ 주요 경력:
→ 가고일: 셀 수 없음
→ 와이번: 8마리
→ 데스나이트 1마리
◇ 고용주에게 하고 싶은 말: 던전에는 한 번만 들어간다.
◆ 계약 금액: 금 450냥
◆ 계약 기간: 보름
“마교?”
세 번째 장을 보던 천마가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구염은 오, 하며 알겠다는 듯 손가락을 비벼 보였다.
“예. 마교랍니다. 한 백여 년 전에는 무시무시한 단체였다지요? 하지만 그것도 옛날 말이고 요즘에는 좀 성깔 있는 무력 집단 정도로 보면 됩니다.”
“…….”
“어허. 정말입니다. 마교에 대해서 괴상한 소문이 많은데, 그거 전부 낭설이라니까요. 오히려 실력이 아주 그냥! 허허. 여튼 사건 사고 치는 것 없어 깨끗한 이들이라, 오히려 그들만 찾는 고객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천마의 침묵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구염은 연방 호들갑을 떨어 댔다.
리버스의 출몰 이후 140년.
한때 마교라면 공포에 떨었던 무림인이, 좀 성깔 있는 무력 집단이라 이야기하다니.
아무래도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는 듯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한의 기억에도 마교에 대한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교 출신은, 조건과 계약 기간에 비해 가격이 매우 센 편입니다. 대신 실력은 확실히 보증합니다. 듣기로는 산해경(山海經)에 등록되지도 않은 상급 마물을 잡은 경력도 있다 하니, 기왕 쓰시는 김에 크게 쓰시고 크게 뽑아내시지요.”
산해경(山海經).
중원의 옛고서 중 하나로 여러 신비한 영물이 기록된 책이다.
최근에는 중원 괴수와 마물들이 정보들이 총망라한 책으로 저잣거리에 유통되고 있었다.
“흐음…….”
천마는 턱을 쓸어내렸다.
척.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세 번째 장을 집어 들었다.
구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바로 준비시키지요.”
일각이나 흘렀을까.
가게 안에서 다리를 꼬고 차를 들이켜던 천마에게, 문을 열고 한 사내가 다가왔다.
“크흠!”
흑객, 머리를 검은 수건으로 동여맨 사내는 천마를 보고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흘깃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고 난 후, 그가 척, 포권을 취해 왔다.
“통성명을 하기 전에 먼저 서로에게 지켜야 할 점 몇 가지 알려 주겠소.”
검은색 피풍의, 검은 가죽신을 신고 눈 밑까지 검게 가라앉은 것이 꽤 피로한 안색이었다.
“의뢰서에서도 적은 내용이지만 던전에는 딱 한 번 들어가오. 노동을 낭비할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말을 이었다.
“보름이 지나면 계약은 끝나는 거요. 의뢰자가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 내 상관할 바가 아니란 말이지. 대신.”
스윽.
흑객은 거기서 고개를 돌려 천마를 응시했다.
“보름 내에서는 어떤, 임무든, 다 들어 줄 것이오. 원한 관계의 사람, 원하는 물건 등. 다 가능하오.”
“…….”
‘어떤 임무’라는 부분을 묘하게 강조하는 말투였다. 오만하다고 말해도 될 만큼 자신감이 넘친다.
“불만 있으면 지금 바로 계약을 철회하시오. 물론 위약금은 없소. 주의 사항을 읽지 않은 당신의 잘못…….”
“워. 계약 철회라니. 그럴 리가.”
천마는 흑객의 말을 가로채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품속에 돈뭉치를 그에게로 던졌다.
쩔렁!
소개소에 50냥을 던져 계약하고, 그러고 남은 금 450냥이었다.
“보름 안에는 뭐든 들어준다고 했지?”
“…….”
흑객은 뭔가 찝찝한 기분을 느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15일.
나중에는 얼굴도 마주칠 일도 없다. 대체 얼마나 험악한 임무를 내릴까,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맛집 좀 알아 와.”
“…뭐?”
영문을 모를 말에 흑객이 눈을 껌뻑거렸다.
천마는 자신의 배를 툭툭 쳤다.
툭, 툭.
“배고프다고.”
* * *
“꺼--- 억.”
동파육으로 배를 터지게 채운 천마가 트림을 했다.
맞은편.
어딘가 안색이 불편한 흑객이 물었다.
“이제 만족 하셨…….”
“꺼---억.”
“…….”
천마가 재차 트림을 하자 역겨운 냄새가 흑객의 코로 말려 들어갔다.
뭐 씹은 얼굴로 변한 흑객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천마신교의 맥을 이은 내가 이따위…….’
속으로 불평하던 흑객은 멈칫했다. 고용주가 말하는 것을 놓친 것이다.
“뭐라고 하셨소?”
“너 꽤 쓸 만하다고.”
“…….”
흑객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고용주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나저나 괜찮은 찻집. 알고 있는 데 있어?”
* * *
“옷 잘하는 집이 필요한데.”
“…….”
“집은 어떡해야 구할 수 있는 거냐?”
“…….”
“너, 밥 좀 지을 줄 알아?”
“…….”
“합격이다. 앞으로 밥은 네가 차려라.”
“…….”
“대체!”
쾅!
참다 참다 못해 흑객이 폭발했다.
물론, 내공으로 소리를 한껏 누른 다음에 터뜨린 포효였다. 그는 전문가. 고용주의 집 밖에서 외친 소리가 문 안으로 들어가게 둘 리 만무했다.
“좋다. 하라면 하지. 하나, 너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툿.
그는 빗자루를 내팽개치며 고개를 들었다.
깊은 밤. 달 하나가 두둥실 떠 있었다.
“지금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음을.”
* * *
리그웨더가 무림에 온 이후 중원인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의식주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괴수의 가죽이나 껍질을 이용한 재질이 발견돼 옷감으로 쓰이는가 하면, 전례 없던 음식들이 개발되어 손님들께 보급되었다.
특히나 유랑객들이 모여 사는 집. 거주하는 곳의 변화도 엿보였다.
복층이던 집의 구조가 단층으로 바뀌기도 했고, 지붕이 겹겹이 겹쳐져 있던 중원 저택들은, 마치 서역의 성채 모양의 지붕으로 바뀌기도 했다.
물론 이는 새롭게 일어나는 유행이었고, 어지간한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가옥인 사합원에 기거했다.
“후웁!”
천마는 방 안에서 운기조식 중이었다.
흑객을 문밖으로 쫓아 보낸 후, 방 안에 들어와 반 시진 이런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흠.”
신음과 함께 감았던 눈을 뜬 천마.
뭔가 답답한지 미간을 찡그렸다.
“일 갑자를 겨우 채웠군.”
그의 반응과 달리 실로 놀라운 성과였다.
며칠 전에 반 갑자라고 투덜거린 내공이, 갑자기 1갑자를 채우다니.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마교의 전통적인 심법, 역혈신공을 하루에 겨우 일각(15분)만 운기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멈춰야 하나…….”
작은 노력으로 큰 결과를 탐하는 적반하장.
하지만 천마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내공을 단번에 끌어올릴 최적의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내력의 그릇 자체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을.
“마천보운신공? 아님 뇌전마공을 써 볼까?”
천마는 자신이 말해 놓고 곧바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들겼다.
마천보운신공.
잠력을 일시적으로 증폭시켜 기의 변화를 가져오는 내공심법이다. 허나, 일시적인 기의 흐름을 다잡지 못하면 정신을 잃고 만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사이에 기가 폭주하면 그대로 저승길.
뇌전마공 역시 그렇다.
마기 속에 녹아 있는 뇌전의 기운이 정신을 또렷하게 잡아 주지만, 문제는 그 충격을 흡수해 줄 몸이다.
이건 정신 줄은 놓지 않겠지만, 생으로 온갖 경혈이 뚫리는 통증에, 기절 없이 그대로 꼴깍해 버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결국, 영약밖에 방법이 없다는 건데…….”
공청석유, 혹은 인형설삼.
부작용 없이 내공을 증진시키는 방법은 자연 영약이 유일했다.
문제는 그것들이 한 성을 지을 만큼 비싸고, 설령 돈으로 쌓은 성을 가지고 와도 구할 수 없다는 것.
“이한 이놈이 아는 거 뭐 없나.”
천마는 기억을 더듬었다.
즈륵. 즈륵.
뇌호혈을 자극하여 이한의 일생을 다시 돌아본다.
쓸데없는 기억들을 덜어내고 몬스터 위주로 살펴보던 그때.
“오호. 이놈은 뭐야?”
천마의 눈에 이체가 서렸다.
그렇게 수많은 몬스터 그림을 뒤지던 중에.
용모파기가 그려진 한 장면에서 멈춘 것이다.
“사령술사(Necromancer)?”
천마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제대로 배우지 않았는지 정보가 군데군데 비어 있었긴 했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이 찾고 있는 조건에 부합하는 점이 하나 있었다.
암흑의 마력.
자료에는 몸속에 핵을 지니고 있다고 간단히 서술되어 있었다.
“살아 있는 인간이 마력을 가진다면… 영단 같은 것도 있겠지?”
천마는 그 말에 바로 단정 지었다.
뭐, 미물이든 영물이든 몸에 뭘 담았으면, 그거 분명히 내단이지 않겠는가.
천마는 이한의 기억을 사령술사 위주로 천천히 훑어봤다.
그러던 중 또 하나 흥미로운 정보를 떠올렸다.
「4교시 과목: 몬스터학
-수업 내용: 네크로맨서란 무엇인가?」
“학관에 갈 이유가 또 생겼군.”
천마는 피식 웃었다.
공교롭게도 2학년 첫 수업 중 하나가 바로 그놈에 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