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7화 (8/310)

7화. 용병점 (1)

사령술사.

이들은 천마가 아는 옛 중원의 술법가와 유사한 점이 있었다.

망자를 부활시키는 능력도 그랬고, 미래를 예지하는 신통력(神通力)도 그랬다.

특히 천마신교는,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사파들 중에 이런 쪽에 조예가 깊은 녀석이 꼭꼭 있어 왔다.

다만 이한의 기억이 절반가량 소실된 것 때문에 그 힘을 사용하는 방식은 알 수 없었다.

중원의 술법가는 타고난 이능과 신들린 공능을 주로 몸과 정신력에서 뽑아낸다.

그리하여 심력이 우수하거나, 집념이 대단하여 보통 사람보다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무림, 이한의 기억 속의 사령술사란 놈은, 그런 것과 좀 다른 것 같았다.

그들은 술법과 비교도 안 될 위력을 발휘하고, 아예 차원이 다른 능력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체 그들의 힘의 근원은 무엇인가?

대체 어떤 방식을 통하면 중원의 술법사들보다 더한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인가.

‘그때 이런 놈들이 있었던가?’

천마는 오래전. 리버스와 싸울 때를 떠올렸다.

“…….”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것이 더 의아했다.

이 정도로 수준이 있는 몬스터가, 왜 자신의 기억에 없는지.

“뭐. 어차피 곧 볼 놈이니.”

미묘한 구석은 있었지만, 천마는 이내 사령술사의 기억을 덮어 버렸다.

지금 몸의 주인, 이한의 기억은 군데군데가 비어 있었다.

자기 기억도 아닌 남의 기억을, 억지로 억지로 들춰 보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는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한의 생애가, 천마가 보기엔 심히 한심해 보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럼 오늘은 계속 수련을 해야겠군.”

천마는 눈을 감으며 다시 명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우선 사령술사를 찾기 전까지.

만약을 위해 이한의 몸으로 적을 압도할 수 있는 수준까지 만들어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 * *

아침이 밝아 오는 시각.

흑객은 빠르게 천마의 거처를 찾았다.

“허…….”

방에 들어온 흑객은 눈을 의심했다.

기껏 비싼 돈을 주고 자신을 고용한 자가, 몬스터 사냥 준비는 고사하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대자로 뻗어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음냐. 쿨… 쿨…….”

그의 표정은 너무나 밝았다.

마치 걱정이란 게 없는, 땅값 올라 배부른 졸부의 그것처럼.

“이런 바보 같은…….”

흑객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하고 자신의 예상 범주를 빗나가지 않는 얼빠진 놈.

금 450냥, 아니, 500냥이란 거금을 쓴 것도 잊어 먹은 것인지 세상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

활용하기에 따라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는, 흑객 자신을 앞에 두고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뭐, 그게 네놈의 안목이지.”

흑객은 몸을 돌렸다.

이런 놈과 한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한심스러워졌다.

그렇게 그가 문으로 나가려는 그때.

“밥.”

바닥에 드러누운 놈이 말을 했다.

우뚝.

흑객이 바닥을 내려보자 어느새 눈을 뜬 천마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밥 달라고.”

“…….”

우지직.

흑객이 문을 나섰다.

좀 전에 난 소리가,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인지, 아니면 자신의 입안에서 뭐 부러질 듯 갈린 소린지 모를 지경이다.

“…훗.”

허나, 그는 곧 자신을 추슬렀다. 그리고 집 뒤쪽. 화톳불 위 냄비 앞에서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너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치이이익.

강렬한 불꽃이 흑객의 시선 아래에서 피어올랐다.

동시에 김처럼 허연 연기가 그의 얼굴에 맞닿고 있었다.

무럭무럭.

얼굴을 뜨겁게 달아 오르게 하는 증기, 흑객은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이 순간에도 시간이 가고 있음을. 그리고 흘러간 시간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 것임을…….”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화가 나든, 보람이 없든 말든, 시간은 흘러간다.

자신이라는 적토마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고용주 본인의 안목 부족이다.

용병 중에서도 최고의 용병인 흑객이 아쉬워할 일이 아닌 것이다.

훗. 뿌드득.

다만, 기분 탓인지, 오만한 웃음소리와 이 가는 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듯했다.

* * *

하루, 그리고 또 하루가 흘렀다.

닷새란 시간이 흐른 그날 아침.

“다 됐냐?”

등 뒤의 부름에 흑객은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감정을 모아 코웃음으로 보답해 줬다.

“흥.”

툭. 툭. 툭.

나무탁자 위는 곧 사기그릇으로 가득해졌다.

흑객은 오늘 장을 봐 온 음식들을 그릇에 담고는 하나둘씩 눈앞에 선보인 것이다.

“흐음…….”

맞은편. 열다섯 가지 반찬과 음식을 본 천마는 쉽게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그 모습에 흑객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고기가 없군.”

“그건 오늘 마음에 드는 재료가 없었을 뿐.”

“그게 오리탕이 빠져야 할 이유로는 보이진 않는데?”

“이번엔 당신이 잘못 짚었군.”

흑객은 손가락을 자신의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밖, 화톳불 위에 냄비를 끓이는 중이오. 살이 야들야들하기 위해선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한 법이지.”

순간, 천마의 동공이 흔들렸다.

“…제법 늘었는데?”

“난 한 번도 의뢰인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으니까.”

흑객은 턱을 치켜세우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가 원하는 것 따위쯤은 이미 다 파악하고 있다는 태도로.

“먹지.”

“그러겠소.”

천마의 말에 흑객은 피식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렇게 슬슬 자신 앞에 놓인 젓가락을 들던 그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께름칙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가만. 뭔가 잘못됐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그렇게 점점 굳어지는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천마를 바라보았다.

‘날 변화시켰다. 이자가 날 말려들게 하여 정신까지 침범한 것이다.’

대천마신교의 후예.

앞으로 마교의 미래를 이끌어 갈 자.

나아가 앞으로 도래할 마교를 쓰러뜨린 적과 싸워야 하는 사명감을 지닌 인물.

그가 바로 흑객이었다.

그런데 이 나태한 고용주와 지내다 보니, 자신마저 나태해져, 자연스럽게 그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건 대체?’

쩝. 쩝. 쩝.

천마는 그릇에 코를 박고 젓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흑객은 그런 고용주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허허실실. 보통 놈이 아니었구나…….’

그랬다.

이놈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백 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몰락한 마교.

그 후인 중 가장 우수한 자신을 지목해, 서서히 정신을 무너뜨린 후 죽이는, 적들의 첩자였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진다.’

주르륵.

흑객은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난 5일. 그 모든 행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금 450냥을 받고 고용된 자신. 거친 용병 중에서도 오래도록 검증을 받은 자신이 이 보름간 무엇을 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했다.

의미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금 5백 냥을 쓴 자가 아무런 일도 시키지 않았다. 이게 정상인가?’

허드렛일만 했다.

밥을 짓고, 맛집을 찾고, 또 밥을 지었다.

그렇게 지나 온 오늘.

가랑비에 옷이 젖듯 나태함이 깃들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줄어드는 계약 끝에는.

기습을 통해 자신의 목을 취하려고 할 터!

스윽.

그 생각이 미치자, 흑객의 손이 허리춤에 있는 검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리고.

“…냐?”

“아?”

흠칫.

순간적으로 고용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흑객이 조심스레 물었다.

“뭐라 하셨소?”

“우으음. 우걱우걱.”

입안에 들어찬 음식을 한참 씹은 후, 고용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령술사란 놈 아냐고.”

“…사령술사.”

흑객은 경계의 빛을 띠고 고용주를 노려보았다.

바닥에 아무렇게 내팽개쳐진 상대의 검.

지금 젓가락을 든 상대의 손.

저 손이 어떤 동작을 취했을 시 궤적, 그리고 자신이 그에 반응할 시간.

그 외의 변수까지 모두 계산한 후.

“좀비와 스켈레톤들을 소환해 내는 놈을 말하는 것이오?”

그는 여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아는군? 그럼.”

탁.

고용주가 들고 있던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놈 강해?”

“음…….”

흑객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린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자신은 상대의 수를 알아차렸고 상대는 아직 그것을 모르고 있다.

그렇다면 우선은 속내를 숨긴 채 따라 움직이는 것도 한 방법일 터.

“갑자기 왜 그놈을 물어보는지 모르겠지만.”

흑객은 자연스럽게, 또한 적절한 대화를 유도하면서 그의 빈틈을 살폈다.

“괜히 허튼 생각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위험 등급 최소 9등급 추정 몬스터는 일반인이 덤빌 놈이 아니거든.”

장안에 알려진 몬스터는 최하 등급을 1로 지칭했다.

그리고 강해질수록 2등급, 3등급 하는 식이었다.

숫자가 올라갈수록 그 힘은 무지막지하게 강해졌다.

“또한, 내가 그놈을 잡기 위해선 매우 긴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오. 하지만 이를 어쩌나. 그리 되면 이미 우리 계약 기간 안에 그 몬스터를…….”

“어? 네가 그놈을 왜 잡아?”

“…뭐요?”

흑객의 동공이 흔들렸다.

예상외의 질문이다. 혹시 함정인가?

“네가 왜 그놈을 잡냐고?”

하지만 고용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흑객은 조심스레 되물었다.

“당연히 당신이 나를 고용했으니…….”

“그럼 밥은 누가 하고?”

“……? ……? ……?”

잠시 멍하니 서 있던 흑객.

그리고 또다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밥…….”

점점.

점점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그놈의 밥, 밥, 바압! 바아아아아아압!”

쾅!

내력을 실은 흑객의 주먹질에, 자단목 탁자가 단번에 부서졌다.

당연히 놓여 있던 음식들도 모조리 쏟아져 버렸고.

댕댕댕 댕그르르르릉.

그릇들이 저마다 튕기거나 깨지며 아주 박살이 나 버렸다.

“…….”

“…….”

정적.

“…….”

“…….”

그리고 미묘한 감정.

“…….”

“…….”

바닥을 힐끔 내려보는 천마.

흑객의 시선과 마주치기를 반복하던 그가 결국 뭐라고 입을 열려 했지만.

“오래 기다리셨소.”

흑객이 더 빨랐다.

침묵을 깬 그는 한쪽 벽 너머에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야들야들하게 푹 고아 익힌 오리탕. 드셔 보겠소?”

“…….”

하나, 천마의 표정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그 반응 역시 예상한 흑객.

“3인분 밥. 그리고 16첩 밥상도 함께란 말을 빼먹었군.”

이번엔 반응이 있었다.

불쾌했던 얼굴은 사라지고 약간의 흥미가 동했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호의에 감사하오.”

흑객은 짧게 포권한 후 밖으로 도약했다.

그의 움직임은, 이제껏 보인 어떤 동작보다 날쌘 움직임이었다.

* * *

하루가 지난 이름 아침.

흑객은 포목점에 들러 엊그제 주문했던 청색의 외의(外衣) 두 벌을 샀다.

그 길로 천마의 거처에 들러 옷을 건넸다.

“생각보다 더 촌스럽군.”

면경 앞에 서서. 청색 겉옷을 걸친 천마가 옷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허리까지 오는 상의.

저잣거리에서 주로 보이는 거죽 겉옷과는 조금 다른, 고운 양모(羊毛)로 된 옷이었다.

“그런데 그건 왜 입는 거요?”

흑객은 뜬금없이 옷을 걸치곤 이리저리 자신을 살펴보는 천마를 향해 물었다.

대체 또 이자가 무슨 꿍꿍이인지 내심 궁금한 것이다.

역시나 그는 예상외의 답변을 해 왔다.

“학관 가려면 이걸 입어야 한다더라.”

“학관?”

“그래.”

“…….”

그렇게 잠시 침묵하던 흑객.

내심 무심한 척하려던 그는 또다시 궁금증을 참아 내지 못하고 질문을 해 버렸다.

“학관엔 왜 가는 거요?”

“왜 가긴. 놀러 가지.”

“…그러니까 왜 거기에 놀러 간다는 거요?”

학관은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니었나, 하는 말을 간신히 삼켰다.

“재미있는 일이 거기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왜…….”

질문하던 흑객이 고개가 갸웃거렸다.

천마가 건넨 청색 외의, 조금 전에 사 온 옷을 그에게 건넨 것이다.

“무슨 의미요?”

“네 거.”

“아니, 그러니까 그게 왜 내 것이라는… 서, 설마!”

흑객의 눈이 부릅떴다.

불안한 느낌을 감지한 그때.

“맞아. 너도 가야 해.”

천마가 피식 웃었다.

“내가 거길 왜 가!”

터억.

흑객은 옷을 받자마자 바닥에 집어 던졌다. 화가 머리까지 치솟았는지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뭐,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대신.”

어깨를 툭툭 털며 고개를 돌린 천마.

흑객과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앞으로 용병점에서 자네 이름은 걸리기 힘들어지겠군.”

“……!”

흑객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더럽고 거친 일을 통해 세운 업적.

단기간 엄청난 수입을 벌 수 있는 자금줄.

그뿐만 아니라 그 돈을 통해 대천마신교를 건국해야 하는 사명감.

모든 것이 위험해지는 순간이었다.

“여차하면 내 금 450냥도 도로 받을 수도 있겠고.”

천마는 방문을 열었다. 유독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 간다.”

그렇게 천마가 문을 열고 나섰다.

그 뒷모습을 흑객의 분노에 찬 시선이 좇고 있었다.

“학관…….”

흑객은 바닥에 떨어진 옷을 슬쩍 집어 들었다.

평생 한 번도 입어 보지 않은 옷.

그리고 앞으로도 입어 볼 일 없었을 옷.

“넌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는 집어 든 그것을 입었다.

청색 무늬가 고스란히 드러난 옷.

그리고 쇄골 쪽에 두 가닥 비취색의 줄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기억. 또 기억해야 할 것이야!”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대며 옷을 걸쳤다. 면경은 차마 쳐다보지 못한 채.

“이 순간에도 시간은 가고 이쓰므으을!”

쾅!

그는 천무학관 학의를 입고선 벽에 주먹을 내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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