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용병점 (2)
“이게 정말 사실인가?”
천무학관의 교무처장 구용천(具龍天)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의 손에는 입학원서라 쓰여 있는 서류가 들려 있었다.
“몇 번을 확인한 내용입니다.”
맞은편, 꼿꼿한 자세로 서 있던 중년인이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교무부장 이중구(李重究).
화산파 출신으로 교무 행사를 담당하고 학관 규정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고 있는 자였다.
“허어. 마교 출신이라니…….”
구용천은 다시 입학원서를 펼쳐 들었다.
다섯 장으로 되어 있는 서류에는 사내의 신상 내력뿐만 아니라 그의 출신과 이력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런 실력자가 왜 우리 학관에…….”
“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별다른 말은 없었나? 예를 들어 요구 조건이 있다든지…….”
“예. 그저 입학원서만 내밀고 상담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래? 흐음.”
살랑.
구용천은 입학원서 맨 뒷장을 펼쳤다.
원서에 첨부된, 학관 자체에서 심사한 평가 목록을 보기 위함이었다.
“데스나이트를 죽였다라…….”
그는 평가 목록에 적힌 몬스터 이름에서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위험 등급으론 평균이 11급.
데스나이트는 와이번보다 훨씬 위험한, 상급이라 평가받는 마물이다.
이것도 최소치로 잡은 등급일 뿐, 실제론 그 위라는 평이 자자했다.
사령 기사라고도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가 뼈만 남은 죽은 시체가 되살아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데스나이트는 엄청난 속도와 힘, 그리고 어둠의 마법을 사용한다.
지능이 인간 수준이어서 함정에 잘 걸리지 않고 예리한 판단까지 하는 놈이라 모두가 기피하는 몬스터였다.
“알아 보니 흑객이 잡은 데스나이트는 뼈 말을 타지 않은 불안정한 사령 기사였다고 합니다. 더구나 당시 같이 파티를 구성했던 이들도 전부 실력자들로서…….”
“그래도 데스나이트는 데스나이트다. 적어도 우리 학관 4학년생 대부분은 제압하지도 못하는 몬스터이지 않나.”
“…뭐 그렇긴 하지요.”
이중구는 그 말에 납득했다.
뼈 말을 타고 다니는 데스나이트는 위험 등급 최소 8이상이다.
출중한 실력의 가진 교관뿐만 아니라 교두들도 혼자서는 상대하기 꺼리는 마물.
설령 여럿이 도왔다 하더라도 절대 실력을 과소평가할 수 없었다.
“이 원서를 본 담당 교두들은 뭐라 하던가?”
입학원서를 내려놓던 구용천이 물었다.
“찬성이 한 표 더 많았습니다.”
“그래? 이유는?”
구용천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자 이중구가 천천히 답했다.
“머지않아 혈겁이 들이닥칠 터. 실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반대 의견 쪽은 어떤가?”
“아무래도 마교라는 단체가 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관에 들어오는 건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고…….”
“이미 사파하고도 손을 잡은 형국인데도 말이지?”
“예. 아무래도…….”
“알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구용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중원을 위협하던 마교는 이계의 괴수와 마물들에 의해 몰락했다.
그리고 마교를 무너뜨린 마물들은 중원까지 진출해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나섰음에도 역부족이었다.
결국 정사지간 협약, 오랜 숙적이던 사파와 손을 잡았고, 서로서로 힘을 합친 후에야 겨우 쏟아지는 마물들을 막아 냈다.
이에는 이계에서 온 리그웨더란 자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그녀는 마법이라는, 기이한 능력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조건은 하나. 같은 인간끼리, 마물에 대한 공동전선을 펴라는 것.
그렇게 강제로 손을 잡고 마물과 엎치락뒤치락 싸우기를 수십 년.
학관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중원의 모든 문파와 세가는 가문, 가전의 무공을 교류하게 되었고 지식과 경험을 쌓아 적들에 대적했다.
그 결과 중원은 몬스터들에게 더 피해를 입지 않아도 되었다.
옛 마교의 총단이 있는 신강 외에는.
“자네 생각은?”
“받았으면 합니다.”
“이유가?”
“다른 학관에 가면 안 되니까요.”
“훌륭하군.”
구용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140년 전부터 전국에 하나둘 씩 세워진 학관들.
그중 정파 쪽에서는 최고라 불리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천무학관이었다.
혹여나 심기가 틀어져 사파 측 학관으로 간다면 그건 결코 안 될 일.
“오늘부로 흑객을 우리 학관으로 입학시키게.”
“몇 학년으로 했으면 좋겠습니까?”
“4학년이 좋을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저도 그렇습니다. 3학년과는 실력 차이가 많기도 하고… 현역에 있다가 천무학관에 입학한 4학년 생도도 많이 있으니 적응을 잘하지 않겠습니까.”
“좋아.”
천무학관 4학년.
실질적으로 무학관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최전선에 있다가 다시 수업을 듣기 위해 자진해 출석하는 자도 있으니 서로 경쟁심리도 부추길 수도 있을 터.
“그럼 직접 그자를 보러 가지. 어디에 있던가?”
“그게… 아직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습니다.”
마무리하려는 구용천에게 이중구가 조심히 대답했다.
“또 무슨 일이 있는가?”
“상담실에 흑객이란 자뿐만 아니라 그의 보호자라고 하는 사람도 함께 와 있습니다.”
“보호자?”
구용천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다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눈을 크게 띠며 물었다.
“혹, 그자도 마교 출신인가?”
“아닙니다.”
“하면 어느 쪽인가? 혹시 그자는 우리 학관에 올 의향이 있다 하던가?”
“그게…….”
이중구는 슬쩍 눈치를 보았다.
구용천의 기대 어린 시선을 확인한 그는 할 수 없다는 듯 조심히 말을 꺼냈다.
“2학년생입니다.”
“…뭐?”
“보호자가 본과 2학년생이라고요.”
“…….”
* * *
‘이십만칠천삽백오십구, 이십만칠천삽백오십팔, 이십만칠천삽백오십칠…….’
상담실 중앙.
흑객은 여섯 개의 의자 중 하나에 앉아 숨을 크게 내쉴 때마다 수를 세고 있었다.
모두 9일 치다.
자신이 숨을 들이마신 횟수.
보통 사람은 일각(15분)에 대략 240번 숨을 내쉬니 한 시진이면 1,920번 정도의 횟수가 필요했다.
이걸 9일 치를 계산해 봤을 때 207,360번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이십만칠천삼백오십번. 딱 그것만 세면 된다.’
흑객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고용주와 헤어질 시간을 계산하자 이상하게 잡생각은 사라지고 냉정함만이 머릿속에 아로새겨졌다.
자신이 이런 쓸데없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
‘이 흑객, 무슨 일이 있어도 네놈의 돈만은 받아낸다. 어떠한 상황이 도사린다고 해도… 응?’
난데없이 들리는 괴상한 신음 소리.
흑객의 고개가 그 소리의 진원을 파악하기 위해 자연스레 옆으로 움직였다.
“다섯. 여섯! 후우. 한숨 쉬고. 일고오오옵, 여덟! 한숨 쉬고.”
거기엔 예의 고용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를 정신 나간 놈이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
“열, 열하아아아아나! 후우. 한숨 쉬는 척하면서 열두우우우… 울!”
빠득.
일순, 그토록 제련하고 담금질하던 흑객의 냉정함이 다시금 산산이 부서졌다.
참으로 경박한 소리.
저 목소리가 자신의 신경을 박박 긁고 있었다.
그리고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자신의 숨소리와 저놈이 하는 팔굽혀펴기의 횟수가 일정한 간격으로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것에 더 화가 났다.
“열다섯! 여기까지 해야겠군. 오늘 수련 끝!”
탁탁탁.
천마는 손을 털고 일어선 쭉 기지개를 폈다.
기분 좋게 몸을 돌리던 그는 흑객과 눈이 마주치던 그때.
“어때? 멋있냐?”
한쪽 눈을 깜빡이며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우드득.
이번에 흑객의 입안에서 이가 갈리는, 아니, 이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결심했다.
이 고용주를 없애기로.
용병소에서 퇴출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저놈만은 제거하거라.
‘깊은 산속, 모두가 보지 못하는 야밤에 뒷산으로 유인하여 저놈의 목을…….’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돌로 성을 쌓듯, 하나하나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던 흑객.
문 앞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겨우 본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음.”
문을 열고 들어온 주임 교두 이중구는 잠시 고민에 휩싸였다.
둘 다 천무학관 2학년 학의를 입고 있어 흑객이란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이쪽인가?’
안색이 어둡고 눈 밑이 거먼 사내.
나이도 제법 있어 보이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던 흑객에 가까웠다.
아니, 그래야 했다.
구석진 곳에서 자신을 향해 엄지를 치켜드는 저 정신 나간 놈이 마교 출신은 아닐 터.
“무슨 일이오?”
때마침 의자에 앉아 있던 사내가 자신을 올려다보며 말을 걸어 왔다.
“흑객인가?”
“그렇다면?”
“…4학년 4반.”
“……?”
“4학년 4반이라고. 천무학관에 입학신청서를 내지 않았는가.”
흑객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중구를 올려다봤다. 그러던 그의 귓가에 천마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이요오… 4학년. 나보다 2학년이 높네?”
꽈득.
흑객의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꾸꾹 말아 두었던 인내가 드디어 폭발하기 직전인 것이다.
‘침착하자. 저놈은 전 재산을 걸었어.’
다급히 검 자루에 손을 올리던 흑객의 손동작이 천천히 느려졌다.
생각해 보니 지금 행동, 아니, 여기까지 온 것 모두가 저놈의 술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군. 저놈은 초조한 거다. 나를 고용한 금 수백 냥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난 거야!’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보자 흑객은 이 상황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저놈에게 치명상을 안겨 주는 방법.
그건 오로지 돈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이렇게까지 도발할 이유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흑객은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이상한 놈이네. 인상 쓰다가 갑자기 왜 웃냐?”
천마가 갸웃거리며 물었지만, 흑객은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이제는 어떤 도발이든 상관없었다.
드디어 자신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중심을 잡은 것이다.
“4학년 4반이 어딘지 안내해 주겠소?”
그 말에 주임 교두 이중구는 천마와 흑객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둘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지금은 그를 안내하는 것이 급했다.
“따라오지.”
그는 문을 열고 나섰다.
2학년인 천마를 슬쩍 눈에 담으면서.
* * *
일반적으로 학관 내 최고 학년인 4학년이 하는 일은 오로지 실전 수업이었다.
사실 수업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임무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4학년이 되면 민생 치안이나 대갓집 호위 무사는 기본으로 맡게 된다.
거기서 나아가 위험 지역 순찰이나, 미확인 던전 등 죽음과 직결되는 일도 맡게 된다.
그러니 일반적인 수업과는 어느 정도 괴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새롭군, 새로워.”
한편, 흑객과 헤어진 천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가 배정받은 반은 2학년 3반.
방문을 나가는 중년인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어 얻어 낸 답변이었다.
물론 이한의 기억 속에도 있었지만, 거듭 확인하는 작업이 나쁠 리는 없을 터.
-4교시 끝나고 교문 앞에서 보지.
천마는 흑객에게 미리 일러 둔 내용을 상기시키며 건물 주변을 살폈다.
“참으로 흥미롭구만.”
총 7층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전각.
구조물도 그렇고 공간도 그렇고 그가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었다.
어색함과 거북함보다는 즐거움과 재미가 느껴지는 환경이었다.
거기다 첫 학기, 첫 수업이 아닌가.
“여긴가?”
-2학년 3반
2와 3이라는 처음 보는 문양이 보였지만 천마는 무슨 뜻인지 곧바로 이해했다.
이한의 기억 속에 저것은 외래어로 이(二)와 삼(三)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나와 있었으니까.
“이건 시험 문제에 나올 수도 있으니 반드시 표기해 놓거라. 8쪽 아래에…….”
천마는 창문 사이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 확인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교실 문 앞에 선 그는.
“어디 한번 그럼 들어가 볼까!”
쾅!
기분 좋게 문짝을 발로 박살 내 버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
“…….”
‘뭐지?’
교실 안으로 들어온 천마.
방 안에는 대략 스물여 명이 자리에 착석해 있었는데 다들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더욱이 바로 앞, 턱수염을 늘어뜨린, 40줄에 들어선, 학관생들을 가리키던 중년인이 쌍심지를 켜고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너, 누구야!”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가 갑자기 뻑! 하고 소리 질렀다.
“나?”
천마는 오히려 그를 보며 물었다. 아니, 묻고 다시 대답했다.
“내가 내다.”
“…….”
“…….”
고요한 분위기.
그리고 이어지는 미묘한 눈빛들.
분명 당혹, 황당, 경악, 충격이 뒤섞인 감정들이 자연스레 표출되고 있었다.
그중에서 눈앞에 있던 인상 더러운 놈은 안광을 번뜩이며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때마침 떠오르는 며칠 전 기억.
-여기 사천 땅에는 사람 말투 가지고 시비 거는 자들도 많아. 하오체라도 쓰지 않으면 신상에 좋지 않을 거다.
“아. 실수했군.”
순간 천마는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전당포 주인이 하오체라도 써야 한다는 얘길 떠올린 것이다.
“큼큼. 다시 하겠다.”
천마는 무안한 듯 헛기침을 냈다.
앞으로 천무학관에서 잘 지내려면 아무래도 잘 적응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야 이한의 원념처럼 천무학관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지 않겠는가.
“흠.”
목소리를 가다듬은 천마,
그는 뒷짐을 지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오체보다, 더 경건한 존대의 의미를 담은 말투로.
“내가 냅니다.”
그것이 그가 생각해 낸 최고의 답변이었다.
“…….”
교실 안에는 아까보다 더한 고요함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