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용병점 (3)
천무학관은 강호를 대표하는 학관으로 수업을 받는 과목 수만 해도 30개가 넘었다.
교두의 숫자도 50여 명.
그들 아래서 가르침을 받으며 학관생들을 관리하는 교관들도 200명을 넘을 만큼 뛰어난 인재를 보유하고 있었다.
2학년이 배워야 하는 필수 과목은 모두 6개다.
무협학(武俠學), 무공학(武功學), 병기술(兵器術), 치유학(治癒學), 체육학(體育學), 몬스터학(logic monster)이 기본 전공과목이며.
선택과목은 6개.
약재학(藥材學), 신체학(身體學), 이론마법학(logic magie), 마법내성학, 던전개요학, 고대서역어가 그것이다.
여기에 교양도 있다.
도적학, 몬스터 탐지, 생활 외국어.
기술잡학, 중원에서 아직 모르는 새외의 문물, 풍습, 예법 등.
세려고 하면 셀 수도 없이 많은 과목이 생겨났다.
이중 최소 2과목을 선택해 이수하여야 학년을 넘어갈 수 있다.
수석 교관 조적상(曺積狀)은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천무학관 교관으로 지낸 지 6년 차.
처음으로 2학년에게 병기술을 가르치는 자격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병기술은 2학년 전공 중에서도 무협학, 무공학과 함께 핵심 과목으로 분류되는 과목이다.
특히 2학년부터는 예전보다 역량이 오른 생도들을 가르쳐야 하니, 교관의 실력 또한 매우 뛰어나야 했다.
때문에 천무학관이 누군가를 병기술 전문 교관으로 배정했다는 말은, 그의 일신의 무예가 우수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좋았던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교시 수업 시간.
교재를 참조하며 장병, 단병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던 중, 난데없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던 놈 하나 때문에 모든 기분을 잡쳐 버렸다.
그리고 그가 새파란 생도라는 사실에 더욱 분개했다.
“주임 교두님?”
하나, 그는 화를 낼 순간을 놓쳐 버렸다.
부서진 문밖에서, 주임 교두 이중구가 언제 왔는지 자신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적상, 잠시만 이리 와 보게.”
청년을 노려보던 조적상은 애써 화를 누르고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잘 듣게. 저 아이가 그 마교 놈을 데리고 온 녀석이야.”
이중구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저놈이 그놈이었습니까?”
조적상도 1교시 쉬는 시간, 교두들 사이 짜하게 퍼진 소문을 들어 둔 터였다.
마교 출신의 사내가 천무학관에 입학신청서를 냈고, 그것이 받아들여졌다는 걸.
그리고 어이없게도 그 보호자라는 녀석이 2학년에 들어온다는 걸.
“그래. 저놈이 그놈이네. 교무처장님의 특별 지시가 내려왔어. 저놈을 감시하라고. 아무래도 마교와 손이 닿은 듯해.”
“마교라… 간단한 문제는 아니군요.”
조적상은 납득했다.
과거 천마신교가 멸문한 이후.
옛 마교에 적을 둔 놈들이 양지로 나오고, 용병으로도 고용되고 있는 실정은 알고 있지만 딱 그 정도였다.
실력이 높든 낮든 마교가 학관에 들어온 적은 없었다.
하물며 사파 학관도 아닌 정파 학관에 자진해서 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잘 관리하게. 지금 천무학관 모든 이목이 저 아이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알겠습니다.”
조적상은 대답했지만, 불쾌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감히 학관생이 교실의 문을 부수고 들어온 게 아닌가.
하나, 조적상도 과거 혈기 방장한 청년이 아니었던가.
감정을 잠시 접어 둔 그는 큰 한숨과 함께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 * *
“특이한 의자군.”
교실 안으로 들어온 천마는 비어 있는 탁자와 의자 앞에 서 있었다.
학관생들의 시선이 주욱 몰리는 가운데서도 그는 너무도 태연하게 행동했다.
“냐하하……. 이렇게 조그만 게 책상이라니.”
전생의 삶과는 전혀 물품들을 보았기 때문일까.
혼자서 술을 마시는 주탁(酒卓) 비슷하게 생긴 책상이 그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너, 이한 맞아?”
드르륵.
의자에 앉던 천마에게로 한 아이가 말을 걸어 왔다.
바로 옆자리.
18살쯤 되었을 법한, 청년보다는 소년에 가까운 아이였는데 무슨 일인지 목소리가 매우 작았다.
그와 함께 문득 떠오른 한 줄기 기억.
「안녕. 난 소진(小進)라고 해.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네놈이 소진이냐?”
이한의 기억을 더듬던 천마는 소년의 이름을 기억해 내고 되물었다.
“그래… 너 진짜 이한 맞지?”
“왜? 내가 이한 같지 않아 보이는가?”
“응. 조금.”
“이런. 이거 큰일인데.”
천마는 미간을 찌푸렸다.
천무학관에 들어와서 2학년 3반으로 오기까지.
나름 이한의 연기가 통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소년의 눈에 띄고 만 것이다.
‘당연히 나에겐 문제가 없을 테고.’
천마는 자신을 제쳐 놓고 왜 발각되었는지 이유를 고민했다.
등장 시기, 새로운 교관, 흑객 등등.
몇 가지 의심되는 정황이 떠올랐지만 이내 기억에서 지워 버렸다.
‘학관 생활을 하려면 최대한 내 존재를 드러내선 안될텐데…….’
괜히 걱정 아닌 걱정이 앞선다.
어차피 이따위 학관이야, 안 나오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이 몸의 주인, 이한이었다.
그가 간절히 원하던 ‘천무학관 졸업’을 해 보겠다고 스스로 다짐하지 않았는가.
‘괜히 그런 다짐을 해 가지고는… 끄응.’
천마는 고개를 저으며 머리를 부여잡다가 급히 소진을 보며 물었다.
“어느 부분이냐? 왜 내가 이한 같지 않다고 생각한 거지?”
“일단 그 말투부터…….”
대답하던 소진이 반사적으로 뒤를 힐끗 보더니 말을 얼버무렸다.
그리고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치, 겁을 먹은 아이처럼.
“뭐야?”
천마의 시선이 소진이 돌아봤던 곳으로 움직였다.
맨 뒷자리.
정확히는 맨 뒷열에서 덩치 큰 청년 셋이 자신들을 보고 히히덕 웃고 있었다.
그들을 보자 굳이 떠올리지 않은 이한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공교롭게도 같은 반이구만? 학기가 시작되면 각오하라고. 반쯤 죽여 줄 테니.」
「패는 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재수없게 생겼으니 맞는 거야.」
「너 같은 놈은 이 학관을 나가야 해.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수치거든.」
“저놈들 때문이냐?”
천마는 뒤쪽에 앉은 놈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난 또 뭐라고.”
천마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혈기 왕성한 아이들을 한데 모아 두면 힘겨루기가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 중 하나가 아닌가.
천마의 눈에는 그저 한없이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자. 자. 모두 주목.”
몇 마디 주의를 듣고 들어온 조적상이 교탁 앞에 섰다. 그는 이전과 다른 온건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뭐, 별일 아니다. 부서진 문은 수리하면 되니까. 그 ‘내가 냅니다’ 하던 학관생…….”
그는 학급일지를 빠르게 펼쳤다. 천마의 얼굴과 용모파기 그림을 번갈아 보던 그는 입을 열었다.
“이한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문은 열고 들어오도록. 매번 문을 고칠 수는 없으니. 알겠나?”
“알겠습니다.”
“…흠.”
조적상의 표정엔 조금 불편한 느낌이 묻어 났지만, 입가는 여전히 미소의 형태를 유지했다.
“좋아. 그런데 이한, 너 교재는 안 들고 왔나?”
표정이 조금 좋아진 조적상이, 이한이 무엇도 소지하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교재? 그게 뭔?”
“…….”
빠뜩.
얼굴이 벌게진 조적상은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하하하. 다음번엔 꼭… 들고 오거라.”
조적상은 칠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라도 집중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 저놈의 목을 쳐 버리고 싶을 테니까.
“다들, 9쪽을 펴라.”
병기술 제 일장.
<검법의 이해>.
그렇게 천마의 첫 수업의 시작되었다.
* * *
2학년이 하루에 배워야 할 필수 과목은 총 5개.
이를 총 5교시라 구분하여 학관생들을 가르친다.
과목당 수업 시간은 반 시진씩(1시간).
과목 사이 쉬는 시간은 일각(15분)이며 3교시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한다.
조적상의 병기술 수업은 2교시로, 이를 이십사시로 분류하면 열한 번째.
사시(巳時-오전 9시부터 9시 50분) 사이에 수업을 배정받았다.
그리고 지금.
수업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검법의 응용은 무궁무진하다.”
조적상은 칠판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切式.
“절식(切式)이라는 글자다. 말 그대로 끊을 절(切)에 의식 식(式)자를 써서 상대의 공격을 원천적으로 끊어 봉쇄하는 것을 말한다. 절식에는 모두 3가지가 있다.”
“우아아암.”
천마는 절로 하품이 났다.
열변을 토하는 시꺼먼 교관 놈은 그렇다 하더라도 옆에서 계속 말을 걸어 오는 소진이라는 아이 때문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몸가짐을 조심히 해야 한다고. 그러다 정말 큰일 난다니까.”
“…….”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교관분들께 습니까란 존칭을 사용해야 해. 예의 없이 굴면 수업 태도에서 감점이야. 점수를 제대로 받을 수 없어.”
“아, 그래. 알았다고.”
천마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런 가운데 조적상은 열렬히 칠판에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하나는 착식(着式)이다. 나의 검으로 상대의 검을 빼앗아 제압하는 기술이다. 둘째는 자식(刺式). 이건 제압용 찌르기가 아닌 적의 공세를 차단하는 찌르기다. 마지막으로 수검식(手劍式)이 있는데…….”
“그게 아닌데.”
“……!”
“……!”
“……!”
한순간 교실에 흐르는 정적.
다들 눈을 부릅뜨고, 어떤 자는 모골이 송연한 얼굴로 변해 있었다.
대놓고 교관의 설명을 반박하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누구냐!”
버럭 소리는 지르는 조적상.
그리고 학관생들의 시선에 따라 자연스레 천마에게로 향했다.
‘또 너냐…….’
질끈.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교무처장이 특별 관리를 지시한 놈이지만 이제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건 징계를 하지 않고선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조적상이 두 손을 불끈 쥐고 있던 그때.
“절식은 3가지가 아니라 총 5가지요.”
천마가 반응을 해 왔다.
물론 그는 ‘습니다 하라니까!’라는 소진의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왜냐하면 절이란 뜻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 끊는다는 뜻과 함께 칼로 벤다라는 뜻을 함께 가지니까.”
천마는 팔짱을 끼며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거기에 미루어 본다면 착식과 자식, 수검식에다가 2가지가 추가되고. 바닥을 구르면서 상대의 호흡을 빼앗는 발식(拔式)과 상대의 검을 잘라 버리는 단식(斷式).”
“…….”
천마는 턱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멍한 표정을 짓던 조적상을 향해 애석하게 읊조렸다.
“아닙니까?”
그리고 낯빛이 잔뜩 굳어진 조적상이 신음했다.
“…너, 어찌 그걸 알고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