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마교의 무공 (1)
이한이란 놈이 시비를 걸어 올 때, 처음 조적상의 표정은 확 굳어졌다.
안 그래도 피부빛이 검은 그의 얼굴색은 아예 흑빛으로 변해 있었다.
절식은 이론상 3가지가 맞다.
하지만 넓게 보자면 그 횟수를 구분 지을 필요는 없다.
상대의 흐름을 끊는 절(切)이란 것도. 달리 보면 상대의 흐름을 벤다라고 할 수 있으니까.
분명 그도 알고 있었다. 나중에 학년이 진행되면 다들 배울 일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학관생이 입에 담을 소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학관생 이한, 네가 한 말이 맞다. 하지만 2학년 교과과정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이유는 이론으로 가르치는 검술과, 실전에서 겪어서 적용할 수 있는 검술 간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조적상은 이한이란 아이를 넘어, 교실 전체에 대고 말했다.
천무학관에는 중원 각지의 명문가의 자제들이 입학한다. 그중에서 이한처럼, 교과과정을 한참 지난 후의 무론(武論)을 들고 튀어나오는 놈이 있었다.
선행학습이 너무 공공연해진 폐해다. 그 와중에 학관생 주제에 교관의 권위에 도전하는 놈들도 왕왕 있다.
“발식과 단식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아직 실전을 겪지 못한 이들에게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개념이다. 이를 알게 되는 것은…….”
띠리링 띵띵.
때마침 복도에서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한다.”
그는 이한을 한 번 노려보고 급히 학습 교재를 챙겼다.
이후, 부서진 문으로 걸어가던 그는 다시 한번 이한이라는 아이의 모습을 눈에 담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때 멋있냐?”
천마는 옆자리에 앉은 소진을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
당연하게도 그는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저거 땡중이 아니냐?”
소진이 팍 죽은 얼굴이 되자, 재미없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던 천마. 그는 때마침 앞줄에 앉은 대머리 세 명을 가리키며 물었다.
학의를 입었다곤 하지만 겉옷 안에 슬며시 비치는 장포 자락.
거기다 민머리에, 이마에 새겨진 계인(計印)은 승려가 불도에 귀의할 때 새기는 점이 분명했다.
“너, 진짜 이한 맞아? 어떻게…….”
“쉿! 쉿!”
와락.
천마는 소진의 입을 급히 틀어막았다. 이미 들킨 거, 다른 놈들의 귀에는 흘러가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힘을 준 나머지.
“읍… 읍…….”
입과 코가 틀어막힌 소진의 얼굴이 샛노래지고 있었다.
“어이.”
그때였다.
뒤에서 자연스럽게 다가온 청년 한 명이 천마의 어깨를 짚고는 속삭였다.
“세상 똑똑하신 아우님, 잠시 나와 얘기 좀 할까?”
그는 조금 전, 맨 뒷열에 있던 청년 중 하나였다.
담임이 나가자마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자연스럽게 접근한 것이다.
“푸학!”
그사이, 천마의 손에서 벗어난 소진은 숨을 거칠게 몰아셨다.
그리고 뭐라 하려고 재차 고개를 들던 순간.
“너도 이 아우랑 함께 봐야지. 안 그래?”
소진은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아…….’
날카로운 눈. 오른손에 걸친 매미 날개를 연상케 하는 수투(手鬪).
청년의 이름은 백무룡(白武龍)이다.
1학년 내내 이한과 자신을 괴롭힌 패거리 중 가장 힘이 센 녀석.
운이 없게도 2학년이 되자마자 같은 반에 배정받았고 다시 이렇게 접근한 것이다.
“그쯤 하지.”
투욱.
천마가 의아하게 바라보던 사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청년 하나가 말을 걸어 왔다.
소진의 시선이 빠르게 그쪽으로 이동했다.
그는 멋있다기보다 아름다웠다.
남자인데도 티끌도 허락하지 않는 백옥 같은 피부, 뚜렷한 이목구비. 거기에 훤칠한 키.
옛적에 있었다는 송옥과 반안이 떠오르는, 사기적으로 잘생긴 미남이었다.
“아니, 서문영(西門映). 그게…….”
‘서문영!’
소진은 백무룡의 입에서 언급되는 이름을 듣자 헉 소리를 냈다.
1, 2교시 동안 조용히 숨죽이고 있느라 같은 반인지도 몰랐다.
서문세가의 서문영,
입학시험을 만점에 가까운 실력으로 마친 실력파이며, 재학생 인기투표 1위에 빛나는 인물.
1학년 수업 평가에서 모든 교두가 첫손에 꼽은, 천재라 불리는 오무재(五武材) 중 일인이다.
그런 자가 같은 반에 배정된 것이다.
“백무룡, 2학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왜 가만있는 학관생을 괴롭히지?”
“오해라니까. 나는 그냥 대화를…….”
“그럼 나와 대화해 볼까?”
서문명의 눈빛이 날카로워지자 백무룡은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급히 손을 내저으며 물러섰다.
“미안해. 조심할게.”
백무룡은 뒤로 쭈욱 이동하더니 뒤에 있는 패거리들을 향해 손짓했다.
이후, 험상궂은 청년 두 명과 함께 교실을 쌩하니 나가 버렸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서문영은 다시 천마와 소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한이라지?”
“……?”
천마가 대답 없이 고개를 갸웃하자 서문영이 말을 이었다.
“네 말대로 절식은 다섯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 그건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그렇다.”
달칵.
책상에 비스듬히 걸쳐진 검집을 집어 들며 서문영이 담담하게 말했다.
“발식(拔式)은 바닥을 굴러야 하기에 무림인들이 선호하지 않은 것이고, 단식은 상대의 검을 잘라야 하기에 좋은 병기와 압도적인 내공이 필요하다. 하나, 그 정도로 뛰어난 자라면 굳이 절식을 할 필요는 없지.”
탁. 쓰윽. 철컥.
의자를 자리에 넣고, 옷매무새를 고치고, 검집을 허리에 느슨하게 맞춰 언제든 뽑을 수 있게.
휘익.
그리고 훤칠한 몸을 돌리며 하는 단정한 말.
교실에 있는 모든 학관생들이 집중한 가운데 울려 퍼진 말.
“교관님도 그래서 이론 수업에 넣지 않으신 것이지. 네 말은 틀린 건 아니지만, 이한. 수업하는 교관의 의도와, 수업의 목적을 먼저 파악하길 바란다.”
저벅저벅.
걸어 나가며 서문영이 말을 마무리했다. 티끌 하나 없이 단정한 얼굴이, 때마침 창에서 뻗은 햇빛을 받아 환하게 보인다. 비단옷에 느슨하게 걸린 보검까지 빛살을 받아 고아한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짝짝짝!
“와. 역시 서문영.”
“과연 검가의 수재.”
지켜보던 학관생들이 박수를 쳤다. 특히나 여학관생들의 반응이 대단했다.
“그래도 다행이야. 서문영이 있어서… 이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소진이 고개를 돌리다 멈칫했다.
그의 눈에 비친 천마가 미묘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봤냐?”
“…뭘?”
“아까 나간 놈이 내 어깨를 만진 거 말이다.”
“백무룡? 그런데… 어?”
흠칫.
대답하던 소진이 살짝 놀랐다.
천마의 표정이 너무나… 너무 괴상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마치 엄청 놀란 감정, 호기심이 가득한 감정, 어떤 희열을 느끼는 감정. 그 셋이 한데 엮인 사람처럼.
“신선해.”
“…어?”
“그리고 새로워. 누가 내 어깨에 손을 데다니. 하하. 푸하하하하!”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 대는 천마.
배를 잡고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 뚝.
웃음을 멈춘 천마는.
옆자리 소년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도 한번 해 볼래?”
“뭐?”
“아까 그거.”
소진은 그런 그를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전과 달리 한없이 순수한 표정.
“내 어깨에 손 올려 보라고.”
거짓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이한의 반응이었다.
* * *
퓨우- 스우우우-.
산들바람에 노송들이 가볍게 흔들렸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창가를 통해 내리쬐는 햇살이 교무처장 구용천의 얼굴에 닿고 있었다.
마치 일광욕하는 악어처럼, 그는 책상에 두 다리를 올리고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계십니까?”
문밖의 인기척에 그의 무거운 눈꺼풀을 들었다.
자세를 바로잡은 그는 다시 정갈한 자세로 사람을 맞이했다.
“들어오게.”
투욱.
문이 열고 들어온 것은 주임 교두 이중구였다.
“그래, 어찌 되고 있는가?”
구용천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과연. 마교 출신이라 그런지 비범하더군요.”
“그 정도였나?”
“예. 보시면 아주 흡족하실 겁니다.”
“허허. 허허허…….”
이중구의 대답에 구용천이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흘렸다.
신고식.
1, 2, 3학년과 달리 4학년은 개학 날에 신고식을 치른다.
서로 힘을 겨뤄 반의 서열을 정하는 것이다.
마침 신고식을 정하는 날, 흑객이 4학년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서열 신고식이 이뤄졌고 이중구는 그 싸움 장면을 보고 이렇게 보고 한 것이다.
“4학년 4반에 누가 있지?”
“양대(梁大), 장우(張羽), 남궁호(南宮虎). 셋입니다.”
“남궁호? 4반에 그가 있었던가?”
구용천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남궁세가의 남궁호.
1, 2, 3학년을 모조리 수석으로 졸업한 검의 천재.
어릴 적부터 초등, 중등학관까지 모조리 수석으로 돌파한 그는, 명실공히 천무학관 전 학년을 대표하는 우수생 중 하나였다.
여기서 우수생이란, 그저 수업에 잘 따라왔다는 정도가 아니다.
미공략 던전, 수많은 몬스터 사냥, 희귀종 제거 등. 남궁호가 강호에서 직접 활약한 임무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때문에 각종 연맹이니 연합이니 하는 곳에서 그를 데려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양대와 장우도 강하지만, 남궁호에겐 미치지 못하지요. 아마 흑객과 남궁호. 둘의 대결로 결판이 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겠군.”
이중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는 잠시 떠오르는 생각을 짚으며 물었다.
“만에 하나라도 불상사는 없어야 하네. 무슨 뜻인지 알겠지?”
구용천이 여기서 말하는 ‘불상사’란, 누가 죽거나 불구가 되는 일이었다.
혈기 왕성한 학관생들끼리, 젊은 혈기에 지나치게 열을 띠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
“물론입니다. 안 그래도 체육학과 뇌천벽(雷天霹) 교두가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별일이군. 그 게으른 뇌천벽이?”
“마교라는 출신 때문일 겁니다. 엉덩이가 무거운 뇌천벽 교두지만, 그래도 호기심을 참기란 쉽지 않았을 테지요.”
이중구가 웃으며 말했다.
흑객과 남궁호.
지금은 천무학관뿐이겠지만 머지않아 이 두 사람은 모든 학관의 주요 관심사가 될 것이다.
특히나, 천무학관과 경쟁하고 있는 몇 사파 학관들은, 이 사태를 단순히 관망하고 있지만은 않을 터.
분명 이것저것 작업을 걸어 올 터였다.
물론 구용천 역시 그런 작업에 가만히 당할 인물은 아니지만.
“알겠네. 이제 가 보게. 결과가 나오면 그때 다시 알려 주고.”
“그리하겠습니다.”
투욱.
문이 닫히고 다시금 정적이 찾아들었다.
하루 종일 느긋하게 앉아 있던 구용천은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벌써 시간이 이리 되었나.”
해가 뜬 위치를 확인한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서류 몇 장을 집어 들었다.
그것을 다시 따로 빼 놓은 두꺼운 서류철 안으로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후, 그가 향한 곳은 이중구가 나간 문이 아닌, 벽에 붙은 작은 쪽문이었다.
* * *
“후욱. 후욱.”
연무장 위.
서로 마주 본 두 사내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누구라 할 것 없이 학의는 제멋대로 찢어져 있었고 손과 무릎, 허벅지에는 검에 베인 흔적들이 드러났다.
바닥 곳곳에 부서지고 팬 자국들.
분명 기공(氣功) 충돌로 인한 충격파였는데 놀랍게도 연무장 주위에 벽, 2층에는 부서진 흔적이 없어 보였다.
“오셨습니까?”
치유학과 교두인 적이연(狄怡衍)은 연무장으로 들어오는 주임 교두 이중구를 맞이했다.
“허어. 보기 어렵던 교두들이 제법 모였군요.”
연무장 2층, 옹기종기 모여 앉은 교두들을 올려다보던 이중구가 말했다.
“워낙 관심이 많은 대결이지 않습니까. 수업이 있는 교두들은 해당 교관들에게 맡기고 나온 듯합니다.”
“하기야. 저 엉덩이 무거운 양반도 와 있으니.”
이중구가 턱짓했다.
연무관 2층 가장자리.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고 있는 짧은 머리의 중년인, 뇌천벽 교두였다.
“어찌 돼 가고 있습니까?”
“예상대로 흑객과 남궁호 둘이 남았습니다. 대련한 지 일각이란 시간이 흘렀고요.”
“흠.”
이중구는 연무장 위를 올려다보았다.
양쪽 사내의 검 끝에서 진기가 모여드는 것이, 당장에라도 격돌이 일어날 듯했다.
“저게 말로만 듣던…….”
흑객의 검신을 이중구가 가리키자.
“네. 예상대로 마기(魔氣)를 사용하고 있네요.”
적이연이 대답했다.
흑객의 은빛 검신 끝에서 진녹색 구체.
보고 있기만 해도 숨을 죄어 오는 지독한 기운이었다.
“과연 저 기운에 남궁호가 어떻게 반응할지… 어? 저 불꽃은!”
옆으로 시선을 돌리던 이중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궁호의 검 끝에서 불꽃이 선명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수르트의 검(Sword of Surt)입니다.”
5개월 전, 대규모 던전을 토벌하다 처음 세상에 드러난 검.
불꽃을 머금은, 무엇이든 태워 버리는 극염의 힘이 도사린다고 알려진 신병이기.
강호의 무기 총람에서도 수위를 뒤바꿀 만한, 어마어마하다고 평가받은 그 검이 남궁호의 손에 쥐어져 있었던 것이다.
“받았다고 합니다.”
“누구에게?”
“뻔하지 않습니까.”
여전히 진정이 되지 않은 표정으로 물어보는 이중구를 향해 적이연은 살며시 웃어 보였다.
“그때 대규모 토벌을 지휘했던 자가 남궁세가주, 그의 아버지였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