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마교의 무공 (2)
아이템(Item).
던전이 생겨나면서 나타난 또 한 가지의 현상.
바로 몬스터들을 제거하고 나서 얻는 기물(奇物), 신병이기의 발견이었다.
불꽃이 솟는 검과, 신기만 해도 빨라지는 신발 등. 리그웨더가 몇 번 언급하고 나서는, 학관에서 이런 기물을 ‘아이템’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이템은 대개, 토벌한 던전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신비한 능력 또한 강해진다.
거기에 혹하여 던전만 전문 토벌하는 무림인들이 생겨날 정도였다.
물론 던전을 사냥한다고 해서 무조건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능력치, 그리고 확률이 있다.
위험 등급 1~2급 사이에서도 아이템이 나오긴 하나 정말 드문 경우.
신병이기라 하기에는 가진 공능이 턱없이 모자라고, 확률도 극악할 정도로 낮다.
최소 위험 등급 5급 이상의, 가고일 정도 되는 몬스터라야 괜찮은 아이템을 받을 수 있다. 그나마 거기서 나오는 확률은 1할 정도로 추정하고 있었다.
남궁호가 쥐고 있는 검은 무려 위험 등급 12급의 몬스터. 마왕 수르트라는 놈을 사냥하며 나온 아이템이었다.
안휘성(安徽省) 부근에서 발견된 불타는 던전.
이곳을 폐쇄하기 위해 남궁세가 식솔 전원이 달려들었다.
그 과정에서 불의 거인, 수르트에게 대부분 사망했고 가주 남궁주(南宮主)도 기어이 놈을 제압했지만 그 와중에 사망하게 되었다.
그렇게 가주의 목숨을 대가로 얻게 된 수르트의 검이 당시 남궁세가 소가주였던 남궁호의 손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신병이기였군.”
화르르르.
불꽃을 머금은 대검을 보고, 흑객이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의 마공과는 조금 다른, 검은색과 붉은색이 혼합된 불꽃이 남궁호의 검신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더욱이 검 끝에서 붉은 용암이 촛농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너라면 이 정도는 써야 될 것 같아서.”
“그거, 영광이군.”
흑객은 짤막하게 답했다.
가슴이 뛰었다. 따분했던 일상과 반복되었던 몬스터 사냥. 그 속에서 그는 어느샌가 지쳐 가고 있었다.
돈을 벌어 교단에 보내는 것도, 옛 천마신교의 재건에 평생을 바치는 것도 나름 의미는 있었다.
하지만 기껏 얻은 힘을, 매일매일 어린것들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그는 뼛속까지 무인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강한 적과 있는 힘을 다해 싸우고 싶은 욕망이 항상 있었다.
그동안은 눌러 왔던 순수한 감정이, 천무학관에 온 뒤로 떠올랐다.
강한 적이 있었고, 가슴을 끓어오르게 하는 자가 있었다.
바로 자신의 눈앞.
남궁호라고 밝힌 사내였다.
“뭐. 인정해 주는 건 좋긴 한데…….”
흑객은 검신을 꾸욱 쥐며 내공을 더욱 불어넣었다.
구우우우우-.
그의 검은 불꽃이 타듯 이글거리던 마기가 더욱 거메졌다.
무려 4할에 달하는 내력을 모두 집어넣은 것이다.
“그 검으로 날 눕힐 수 있을지는 봐야 알겠지?”
파팟.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두 사내가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잠시 숨을 고른 두 사내의 세 번째 격돌이 시작된 것이다.
* * *
“모두 앉아라.”
수업 종이 올리고 3교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2학년 3반에 들어온 체구가 장대한 중년의 여인. 수향(秀香)이라는 교관으로 무협학 내 도덕 담당이었다.
“오늘 수업은 이것이다.”
슥슥슥.
여인은 칠판에 날카로운 철필을 들어 쓰기 시작했다.
『협(協)이란?』
툭.
칠판을 보고 있던 소진의 머리 위로 뭉쳐진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흘낏 뒤를 쳐다본 소진은 구겨진 종이를 펼쳐 들었다.
-너희 둘, 3교시 끝나고 옥상으로 따라와라.
‘이놈들…….’
소진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나 뒷열에 앉은 놈들이 쉽게 넘어갈 것 같지가 않다.
1학년 때도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일삼아 하던 무리들 아닌가.
게다가 뒷배도 좋아 학관의 교두들도 저들의 행동을 묵인하기도 했었다.
‘그나저나 이한은 어디 간 거지?’
3교시 수업 시간 종소리가 들릴 무렵. 이한은 놀러 간다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개학 날 1교시도 건너 뛴 녀석이 3교시 수업도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하아.”
소진은 한숨을 쉬고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당장 자기 코가 석자인데 누굴 걱정할까.
* * *
“날씨 참 좋구만.”
한편, 3교시를 알리는 수업이 한참 지난 시점에 천마는 건물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소진에게 3교시 수업 내용을 듣자마자 혀를 내두르고 도망쳐 나온 것이다.
“유치하게 협이라니. 아이고…….”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떻게 된 것이 시대가 변했는데 아직도 알량한 협의지심을 꺼내는지.
그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나저나…….”
천마는 한 손을 펼치며 중얼거렸다.
“이제 더는 내공이 모이질 않는군.”
1갑자 반.
역혈신공을 이용한 초단기간의 증진. 여기에 꾸준한 노력 덕에 예상보다 반 갑자의 내공을 더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괜히 처음부터 역혈신공을 써 버려가지고. 이럴 줄 알았다면 다른 걸 써볼 걸 그랬어…….”
천마는 자책하듯 투덜댔지만 사실 마교인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역혈신공은 한때 천마 자신의 유산이라고 알려진 비급이다.
소실된 비급 몇 장만으로 마교 내부를 뒤흔들었던 그야말로 자타공인 최고의 내공심법.
그러나 본인은 그것을 사용하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충 몇 년이나 걸릴까?”
천마는 고민해 보았다.
생전의 그가 신마경까지 노린 전대미문의 고수라 한들,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선결되어야만 하는 조건들이 있다.
깨달음, 인내력, 강한 신체, 내공 등등.
그래도 다른 것들은 어찌 인위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지만, 짧은 시간 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바로 깨달음과 신체의 내공이다.
천마는 예전의 몸에선 거의 신마경까지 다다랐으니 깨달음은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내공.
이것은 인고의 노력과, 시간. 그리고 반복적인 수련을 통하지 않고선 강제적으로 끌어올릴 수 없다.
“이 따위 몸으로는… 1년 정도겠지?”
그럼 평범한 인간이 내공을 쌓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
지금 천마가 판단하기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내공을 쌓으면 3갑자 기준으로 1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도 최소치.
1년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천마금령(天魔禁靈)이라는 또 하나의 신공을 쓴다는 가정하에서다.
그리한다면 자연스럽게 초마의 경지에 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거기에 선심을 더 써서 3년을 더한다면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도 가능하다.
역혈신공으로 기준을 잡고 천마금령으로 몸에 잡기를 태워 낸 뒤.
생사환위요상술(生死換位療傷術) 같은 대법을 같이 시행할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모든 마교인의 꿈이라는 극마의 경지까지 넘보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딱 거기까지다.”
천마는 냉정하게 앞으로의 일을 짚었다.
그가 보고 있는 건 극마의 경지 따위가 아니었다.
상대의 인기척, 몸의 반사신경, 모든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경지.
정파 놈들로 치면 현경(玄境)이라 불리는, 탈마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목표였던 것이다.
하지만 신마경까지 노렸던 천마에게도 탈마는 절대 만만치 않은 경지다.
어쩌면, 극마에 오르기 위해 걸리는 시간보다 훨씬 더 걸릴지도 모른다.
왜냐고?
탈마의 심득은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몸 상태, 주변 환경, 익힌 무공 등 수행자의 상태에 영향을 받기에 그에 맞는 깨달음을 얻어 내야 했다.
즉, 과거에 올랐던 깨달음의 방식으로는 오를 수 없다는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내공과 외공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능력, 정신, 불순한 잡기운까지 온전히 모두 태운 후, 무려 세 번에 걸쳐 밀도 높은 마기를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령술사가 한가락 하는 놈이길 바라야 하는데…….”
물론 천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탈마보다 높은 신마경까지 넘보던 그에게 그 아래 단계가 되는 일이 그리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다만 단기간, 반년 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
즉, 7갑자 이상의 내공은 필수였다.
“그 사령술사란 놈의 내단만 흡수하면 어떻게 좀… 응?”
천마는 발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발아래, 두 개의 강한 공력이 격돌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천마는 들어온 옥상 입구로 슬쩍 몸을 돌리며 씨익 웃었다.
바로 아래층에서 친숙한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 * *
콰아아아아앙-!
귀청이 떨어질 굉음.
하나, 그보다 앞서 진동, 충격파가 전 방위로 뻗어 나갔다.
그와 함께 기이한 광경도 펼쳐졌다.
스르륵.
부서진 바닥의 파편들이, 충격으로 사방으로 터져 나가다 잠잠하게 사그라들었다.
결계 마법.
이 연무관 안에는 마법진이 충격을 흡수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건 신법이 아니다.’
흑객은 남궁호의 움직임을 좇으며 생각했다.
순간순간 번쩍이는 남궁호의 움직임은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헤이스트(Haste)를 쓴 건가?’
이제껏 던전을 토벌할 때 함께했던 의뢰자들이 간간이 착용하던 물건.
신속의 마법이 걸린 아이템이다.
슷! 슷! 슷!
그런 생각을 들게 한 것은 남궁호의 괴이한 움직임 때문이었다.
신법을 쓴다면 지면을 밟는 순간에 움직임이 변하는 법인데 남궁호는 달랐다.
땅을 밟기 전에도 이해할 수 없는 방향과 속도를 보인 것이다.
호흡과 기(氣)를 운용하는 것이 움직임과 연관성이 전혀 없다는 것.
이런 건 마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카아앙!
“읍!”
흑객은 급히 상대의 대검을 받아 내며 신음을 흘렸다. 공격할 순간을 포착하지 못한 탓이다.
캉!
“큭!”
또 한 번의 공격.
이번엔 좀 더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흑객이 뒤로 물러났다.
“물러서기만 하면 이길 수 없소이다!”
남궁호는 신이 난 듯 보였다.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그가 휘두르는 대검에서 촛농 같은 불똥이 튀었다.
지글지글.
‘이대론 안 돼…….’
적의 공세를 막아 낼 때마다 충격은 온몸으로 전해졌다.
특히 반격하면 소멸되는 붉은 불꽃과 달리, 팔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검은 불꽃은 극심한 고통을 주었다.
내기로 억누르려 했지만, 어찌 된 것이 이 용암의 불꽃은 다스려지지 않았다.
단순히 기를 태워 내는 삼매진화와는 달랐다.
아마 신병이기의 공능 때문일 터.
‘할 수 없군.’
쩌적쩌적.
물러서고 반복하던 어느 시점 흑객의 검에서 변화가 일었다.
푸르스름한 광채가 그의 손목을 타고 검신까지 퍼져 나갔다.
한랭(寒冷)의 기운을 불러들인다는 소수마공.
흑객은 상대의 공능에 대항하기 위해 불과 상극인 냉기를 끌어들인 것이다.
“허, 뭔가 방법을 찾은 모양이구려.”
남궁호는 흑객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하지만 그뿐.
다시금 상대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캉! 캉! 캉!
연무장 중심에서의 세 번의 부딪침.
“핫!”
“하앗!”
그리고 서로를 지나친 뒤 다시 도약하며 두 번의 격돌.
“큭!”
“어딜!”
힘을 이기지 못한 흑객이 먼저 물러서자 남궁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질주하며 또 한 번.
캉!
흑객의 자세가 무너짐을 보았고, 남궁호는 대검에 모은 힘을 검에 실었다.
흑객 역시 그대로 당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며 내력을 검에 집중시켰다.
“하앗!”
“합!”
쩌어어어엉!
맹렬한 기의 소용돌이가 치솟았다.
동시에 터져 나가는 기의 풍압.
“큭!”
폭풍이 몰아치는 연무장 중심에서 먼저 튕겨 나간 것은 흑객이었다.
쿵! 쿵! 쿵!
그는 3장이나 바닥을 뒹굴다 겨우 멈췄다.
온몸에 번진 불길 때문인지, 학의는 모두 불타 있었고 상의도 반은 불에 타 있었다.
여전히 눈빛은 살아 있었지만.
승패는 결정이 났다.
“후우우…….”
흑객은 물러선 대신, 남궁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땀이 흥건하고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확실히 싸움에 우위를 점한 모습이었다.
“졌소.”
흑객이 담담히 인정했다.
남궁호는 가벼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비겼소. 내 실력보다 신병이기의 도움으로 우위를 점한 것뿐이오.”
“그게 변명은 될 수 없지. 좋은 병기도 실력의 일부니까.”
흑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 상황이 불편한 듯 자신을 바라보던 교두들을 둘러보고는.
남궁호를 향해 물었다.
“그 검은 무엇이오?”
“수르트의 검이오.”
“수르트라. 좋은 경험을 했군.”
그는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불쾌한 것인지 모를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 * *
끼이익.
문을 열고 연무장을 나선 흑객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
“……?”
벽에 등을 대고 팔짱을 끼고 있던 이한. 여기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고용주 때문이었다.
“여긴 웬일이오?”
“그냥. 주변을 돌다 보니.”
천마는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요오. 싸움 좀 하던데?”
말없이 보고 있던 흑객.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연스럽게 천마를 지나쳤다.
“근데 아까 그거 말이야.”
흑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지금은 말할 기분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어진 천마의 말에 그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소수마공이지?”
햇병아리라 여겼던 고용주인 그가 알리가 없는.
아니, 보통의 강호인이라면 결코 알기 힘든, 본 교의 마공이 흘러나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