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네크로맨서 수업 (1)
4교시 수업.
2학년 3반에 들어온 교두는 학관생들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하청청(何靑靑)이라고 한다. 몬스터학을 담당하는 교두로 앞으로 너희들에게 현존하는 마물에 대해 가르칠 것이다.”
자신을 소개한 그의 모습은 무림의 고수와는 달랐다.
하얀 백발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고, 허리는 굽은 자세였다.
여기에 외알 안경을 끼고 오사모(烏紗帽-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를 쓴 모습은, 마치 학사 같은 느낌을 더 풍기고 있었다.
“어디 보자…….”
스윽.
교탁 위 출석부를 펼치던 하청청은 익숙한 이름에 먼저 눈이 갔다.
‘오. 여기가 운소령이 있는 반이로군.’
최근 천무학관 내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아이.
2학년 전체 수석, 학관생 중에서도 성적이 가장 우수한 아이로 모든 교두가 기대하고 있는 학관생이었다.
슬쩍 눈을 들어 자리를 보니, 이제 갓 피어나는 어린 소저가 눈에 들어왔다.
표정은 단아하고 고요하며, 무엇이든 빨아들일 것 같은 현기(賢氣) 어린 눈빛이 느껴졌다.
과연 어린 나이에 우수한 성적을 보일 만했다.
‘…서문영도 있구만. 재밌겠어.’
3열 중간에 앉은 청년.
전체 과목에서는 살짝 뒤지지만, 무과 시험에 한해서는 오히려 운소령과 동일 점수의, 무과의 수석이다.
입관할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어, 2학년에 이른 지금은 군계일학. 명실 공히, 서문세가의 미래라고 불리는 청년이다.
재밌게도 장기는 검술보다 지형 파악과 길 찾기.
던전 탐사 및 토벌에 아주 유용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앞줄에 앉은 셋은 소림 제자들인 것 같고…….’
소림 출신 무승들은 정파 어느 학관이나 환영한다.
인성이 바른 건 당연하고 규율을 잘 지키는 건 물론, 성실하기까지 하니 다른 학부생의 모범이 된다.
‘필리아(philia)? 이 아이가 3반이었던가.’
다른 이름과 달리 외래어로 적힌 이름을 본 하청청은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자리를 살폈다.
‘저 아이로군.’
세외에서 온 색목인이라 스스로 밝힌 아이다.
파란 눈에 감정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
겉보기엔 그저 도도한 서역의 규수였지만, 무려 학과장이 직접 언급하며 신경 써 달라고 했던 아이다.
주변의 학관생들은 필리아에게 흘깃 흘깃 엿보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금발에 벽안, 그리고 색목인 특유의 피부가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지시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지. 이한이라고 했던가… 저깄군.’
이번엔 굳이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저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에서도, 등을 떠억 뒤로 기대고 턱을 들어 마치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 건방진 태도.
2교시 교관이 말한 대로 ‘내가 내다’ 하는 듯 태도가 방약무인했다.
대충 상단의 자식이라 들었는데, 하는 짓은 거만한 무림 세가의 외동아들 같았다.
“어? 세 명은 결석인가?”
때마침 이한의 뒷자리기 빈 것을 확인한 하청청이 입을 열었다.
“다들 양호실에 갔다고 합니다.”
소림사의 한 청년이 일어나 답했다. 아마도 반장인 모양이었다.
“거긴 왜?”
“듣기로는 백무룡이 옥상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려졌다고…….”
“허 참. 재밌는 녀석들이군.”
하청청은 피식 웃으며 교재를 펼쳤다.
“오늘 배울 내용은 사령술사에 관한 것이다. 교재 3쪽을 펴라.”
사박사박.
교재를 펼치는 소리.
학관생들이 그가 말한 곳을 찾는 동안 하청청은 허리 굽은 몸으로 칠판에 쓰기 시작했다.
死靈術士, Necromancer.
“수업에 앞서 질문 하나 하겠다. 사령술사. 네크로맨서의 존재가 언제 발견되었는지 아는 학관생 있는가?”
그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학관생이 손을 들었다.
“…음. 서문영?”
조금 전, 그의 이름을 확인했던 하청청이 물었다.
“예. 맞습니다.”
“말해 보라.”
교두가 지목하자 서문영은 일어났다. 그는 학급의 학관생들을 한 번 돌아본 뒤 입을 열었다.
“140년 전, 곤륜산에 차원의 문이 열리고 기이한 힘을 가진 몬스터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로부터 67년 후, 밴시 던전(Banshee Dungeon)이라는 곳에서 처음으로 네크로맨서라는 존재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던전에 왜 밴시란 말이 붙었는지도 알고 있나?”
“흐느껴 우는 악령, 밴시가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잘 알고 있구나.”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는 다시 칠판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Banshee Dungeon.
“서역어는 다들 숙지하고 있겠지?”
그는 한어가 아닌 서역어로 칠판에 쓰고는 아래에 내용을 추가했다.
-Banshee.
“당시 던전에서 나왔던 놈들은 이와 같다. 물론.”
-Skeleton.
-Goul.
쓰윽쓰윽.
“스켈레톤, 구울. 이런 것들도 나왔지. 허나 그중 가장 위협적인 건 바로 이놈이었다.”
하청청은 ‘Banshee’를 가리키며 밑줄을 좌악 그었다.
-Banshee.
“원래는 정령이나 요정의 일종이었으되, 던전의 마기에 침식당한 밴시는 악령으로 변해 버렸지. 그들의 울음소리에는 지독한 저주가 서려 있다. 일반인이 들으면 즉사, 혹은 강렬한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
하청청은 교탁을 한 손으로 짚으며 말을 이었다.
“무림인의 경우에는 조금 나은 것이, 정종무공을 익혀 마음의 수양이 깊은 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사파 무림인들과는 상성이 안 좋지. 아무래도 사도 계열은 실전의 위력, 무공의 파괴력 등을 우선시했으니까. 항마의 힘을 가지지 못한 사파 무림인들은 이 던전의 공략에서 심대한 피해를 입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마. 우선 밴시의 모습은…….”
그는 다시 뒤돌아 칠판에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Banshee, 반투명한 영체, 산발을 한 여인, 소녀, 노파.
“밴시의 모습은 여러 가지이나 여성체라는 점이 공통이다. 남성체는 현재까지 발견된 적 없고. 소리는 잔잔하게 흐느끼는가 하면 어떨 때는 비명처럼 소리 지르기도 한다. 그 소리는 마치 음공과 같아, 내공이 약한 자는 무력감, 우울증이 동반된다. 혹은 착란에 빠지기도 한다.”
하청청은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네크로맨서가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위험한 밴시는 기본이고 더러는 데스나이트나 듀라한, 플래시 골렘 등 위험 등급 4급을 넘는 몬스터들을 부린다.”
데스나이트를 언급하자 학관생들의 표정에 약간의 긴장이 감돌았다.
위험 등급 6급인 와이번을 능가하는 놈으로 2학년 학관생이 잡을 수 없다고 알려진 몬스터다.
이 학급에서 그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무과 수석인 서문영과 전체 수석 운소령 정도일 뿐.
그것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도이지 감히 이길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할 몬스터였다.
“더욱이 네크로맨서의 본연의 능력은 더욱 강하다. 알려지기로 위험 등급 최소 9에서 12급까지 언급되는 그야말로 최악의 마물.”
척. 쓰으으윽.
그는 이번엔 ‘네크로맨서’라고 적힌 항목에 둥글게 원을 그렸다.
“2학년 수업 시간에 상대하기도 힘든 네크로맨서를 언급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몬스터는 현재까지 가장 많은 무인을 죽였고 지금도 현 강호에서 가장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조용히 침묵하는 학관생들.
다들 알음알음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천무학관 졸업자 중에서도 다수가 저 네크로맨서를 토벌하려다 사망했음을.
‘올해만 여섯이었지.’
하청청은 감정이 격해졌는지 잠시 안경을 벗어 천으로 문질렀다.
저주받은 마물, 이들은 무림의 영재들을 하나하나 삼켜 왔다. 그중에서는 하청청이 직접 사사한 제자들도 있었다.
나이 든 교두가 이렇게 당부를 계속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네크로맨서를 상대로는 무공의 우위만으로는 제압할 수 없다.
무림인들이 더 많은 대비, 더 많은 준비를 하게 해야 했다. 그리고 그건 자신과 같은 교두들의 일이었다.
“저기, 질문 있소이다.”
때마침 손을 들고 나선 학관생에 하청청은 안경을 다시 썼다.
그리고 이한이라는 학관생임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보거라.”
“그놈 잡으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놈?”
하청청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럴수록 이한은 질문은 더욱 또렷하게 들려 왔다.
“그 사령술사는 놈 말이외다.”
* * *
똑똑똑.
“계십니까?”
문 앞에 선 구용천이 말했다.
자신의 키보다 조금 작은 쪽문. 그 앞에 그는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후, 문 앞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들어오세요.”
끼이이익.
구용천은 조심히 문을 열었다.
폭이 넓은 창 선반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 창틀 위, 수납장 곳곳에 놓인 아기자기한 화분.
조그마한 서탁과 수납장이 조화로운, 세심한 여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방이었다.
그리고 한가운데서 웃으며 맞이하는 여인이 있었다.
“결재 시간인가요?”
“그렇습니다.”
구용천은 조심히 서류를 내밀었다.
사박.
한 장. 또 한 장.
여인은 빠르게 서류를 넘기다 잠시 고개를 들었다.
“사천 땅에 던전이 이렇게 많이 생겼나요?”
“그렇습니다.”
구용천은 그녀가 펼친 서류를 부분을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올해 들어서 20곳이 넘었습니다. 이는 사천으로 한정했을 경우이며 중원으로 넓힌다면 그 수를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 벌어질 일입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폐쇄하는 던전보다 생겨나는 던전의 숫자가 더 많아지리란 게 무림맹의 예상입니다.”
굴혈, 지금은 던전이라고 총칭하여 부르는 곳.
기이한 괴수와 마물들이 출현한 이후, 발견된 던전은 아직까지 계속 그 수가 증가하고 있었다.
중원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나서서 던전을 폐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전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핵심적인 던전만 제거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던전의 숫자는 그리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어차피 구울들이나 하급 몬스터들이 대부분이니까요.”
“…….”
“그리고 이런 던전은 학관의 학관생들의 좋은 수련이 되죠. 많이 생겨날수록 경험을 쌓을 수 있잖아요.”
“그건 또 그렇습니다만.”
구용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급 던전은 천무학관의 수업 교재로 유용하게 쓰인다.
특히 2학년과 3학년 수행평가와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활용하기에 유용하지 않은가.
때문에 하급 던전은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제거할 수 있음에도, 통제만 하고 남겨 두는 식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터억.
그녀는 보고서를 덮으며 말했다.
“근래에 생겨난 데몬즈 루인(Demon’s Ruin) 던전 레이드는 어찌 되어 가고 있나요?”
“아. 그 토벌 계획 말씀이십니까?”
다만, 던전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욱 강력한 몬스터가 자리 잡는다.
데몬즈 루인이라 불리는 던전은 사천 땅에 자리 잡은 그런 대규모 던전 중 하나였다.
앞서 말한 하급 던전과 달리, 이 던전은 정말로 위험한 던전이었다.
때문에 그곳을 폐쇄하기 위해 여러 학관, 용병 클랜, 무림맹 등이 반년에 걸쳐 정보를 주고받고 있었다.
“조금 잡음이 있었습니다만 엊그제쯤 결정이 났습니다. 아시다시피 던전 내 들리는 호곡(號哭) 소리가 매우 강해서 말입니다.”
“정말 던전 내 들리는 곡소리 때문인 거죠?”
“아, 뭐 그렇죠…….”
구용천의 어색한 대답에 그녀는 피식 웃었다.
데몬즈 루인 던전이 대단히 위험한 곳이긴 하다.
하지만 그 많은 인원들이 접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서로 가려고 해서 문제가 됐을 것이다.
던전의 보상이라는 ‘아이템’ 때문에.
“어디로 정해졌나요?”
“본 천무학관 교두들이 맡기로 했습니다.”
“다른 학관들의 반발이 심했을 텐데요.”
“상대가 네크로맨서이지 않습니까? 몬스터 특성상 사파 학관들은 그다지 반발이 없었습니다. 다만 무림맹이 딴지를 걸긴 했는데…….”
구용천은 잠시 뜸을 들이며 말을 이었다.
“제운비 교두가 직접 나서겠다고 하니 그다지 반발이 없었습니다.”
“실전학(實戰學) 교두께서? 하긴, 소드 마스터가 직접 참관하겠다고 말했다면 이견이 없겠네요.”
여인은 4학년만 가르치는 천무학관 중년인 한 명을 떠올렸다.
검왕(劍王) 제운비.
거만하기 짝이 없는 별호를 얻을 정도로 검술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다.
천무학관을 졸업하자마자 교관을 건너뛰고 교두가 된, 본과 내에선 입지전적인 인물.
무림맹이 보증하는 공식 십대 고수 중 일인이기도 했다.
무공의 경지는 무려 화경.
다른 말로는 소드 마스터 중에서도 ‘상위급’이라 불리는 자.
그가 참여해서 토벌해 버린 던전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아무리 제운비 단주라 할지라도 이번만은 주의를 하셔야 할 거예요. 데몬즈 루인 던전 내에 있는 네크로맨서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기운이 느껴지거든요.”
“이전과는 다른 기운이라면……?”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다만 좀… 신경 쓰이네요.”
학과장의 말에 구용천의 표정이 굳었다.
앉아서 세상 만물을 본다는 그녀가 좀 신경 쓰인다고 말할 정도라면 이건 위험한 신호였다.
제운비 단주 역시 보통의 인물이 아니었기에 크게 염려되진 않았지만.
‘후발대와 보조 인원들을 잘 보호하라고 일러 둬야겠군.’
던전 토벌의 선봉은 무인들이 선다.
하지만 기관 해체, 먹을 물과 음식. 횃불 등의 자잘한 짐은 보조 요원들이 맡는 것이다.
전력감이 아니라고 다소 경시하는 시선도 있지만, 정작 보조 요원들이 전멸하면, 주 전력인 무림인들까지 같이 몰살당하는 수가 부지기수였다.
“아, 그리고.”
투욱.
그녀가 구용천에게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이번에 들어온 학관생은 잘 적응하고 있나요?”
“흑객 말입니까?”
“네. 마교 출신 사내요.”
구용천은 그녀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그동안 학과 내부 일은 웬만하면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유달리 관심을 보인다는 그 자체가 흥미로웠다.
“잘 적응하는 것 같습니다.”
“직전제자일까요?”
“그것까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끼익.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정돈된 서탁 옆으로 걸어가는 그녀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교두들께 혹 조금 모자란 부분이나 결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냥 지나가 달라고 하세요. 마교 출신은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돌아서려던 구용천을 향해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저와 자리도 한번 마련해 주시고요.”
“…직접 보실 생각입니까?”
구용천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해서 물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누구와도 마주치는 걸 싫어하는 그녀다. 아니, 몇몇 사람을 빼면 누구도 만나기가 어려운 자다.
강호에 모든 문파가 만나고 싶어 하지만 모두 거절하는 그녀가 아닌가.
그런 그녀가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해 온 것이다.
“네.”
여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구용천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리그웨더, 아니…….”
순간, 스스로 흠칫 놀란 구용천.
괜찮다며 밝게 입을 가리며 웃는 리그웨더를 향해 말을 이었다.
“학과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