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15화 (16/310)

15화. 네크로맨서 수업 (3)

4학년 4반.

1, 2, 3학년과는 달리 4학년의 교실은 상당히 넓었다.

학관생들이 앉는 자리도 달랐다.

계단식으로, 밑을 내려다볼 수 있게 경사가 있었고 가장 아래에 교탁이 있었다.

학관생들에게 배정된 자리는 인원수보다 많아 서로 부딪칠 일도 없었다.

‘정말로 혈수마공인가…….’

맨 앞자리.

흑객은 자리에 앉자마자 볼품없는 천쪼가리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설마 했다.

이한이라는 그의 고용주. 그가 대충 적어 놓은 글자 속에는 손바닥 혈자리 몇 개가 언급되어 있었으니까.

노궁, 합곡, 등의 누구나 아는 평범한 혈자리.

하지만 본교 고유의 호흡법이 더해지면 이 혈자리가 자극을 받아 화(火)의 속성을 끌어낸다.

호흡은 그 자체가 양화(陽火).

빛과 같은 능동적인 기운을 붙잡고 그곳으로 마기(魔氣)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구결을 연성한다면 혈수마공까지는 단언하긴 어려우나 최소 불의 속성을 가진 마기의 기운을 대성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데 왜 쓰다 만 것인가…….’

정작 흑객이 당황한 것은 그 뒤의 내용이었다.

불의 속성을 끌어내는 것까진 나와 있다. 그러나 어떻게 기운을 머금고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았다.

‘왜 이런 핵심적인 부분에서 끊은 것인가!’

절단마공.

차라리 몰랐으면 모르되,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그 뒤는 기술해 놓지 않았다.

그냥 별 볼 일 없는 무공이라면 잊어버렸을 것을.

이한, 그의 고용주는 교묘하게 간질간질한 부분에서 끊어 버렸다.

‘뒷내용이 몹시 궁금하다.’

흑객은 억누르기 힘든 궁금증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본교의 소실된 혈수마공.

그걸 고용주가 어떤 경로로 알고 있단 말인가.

정황상 본교 출신인 것 같으나, 확언하지 않으니 알 방도도 없었다.

‘아니, 방법은 있어.’

순간 흑객의 머릿속에 기발한 생각이 스쳤다.

고용주에게 제안한 본교 대대로 내려오는 양념장은 하나가 아니다.

독특한 맛.

중원 대부분의 양념장은 식재료에 따라 정해진 조합이 있는 반면, 월족(베트남)의 과일을 이용한 식감을 살리는 양념장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조금 어처구니없긴 하지만 충분히 먹힐 만한 발상이다.

고용주는 밥에 미친놈.

탐욕에 가까운 밥버러지인 그는 결코 이것을 거부할 수 없을 테니까.

‘멍청한 고용주, 본교의 혈수마공을 양념장이란 바꾸는 실책을 깨닫게 해 주마. 아니,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탈탈 털어… 어?’

본능적으로 안쪽 주머니에 손을 넣던 흑객의 낯빛이 변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큰일 났다!’

그는 그때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본인의 웃옷이 모두 타 버렸다는 것을.

더욱이 자신이 늘 간직하던, 세세하게 기록해 놓은 양념장 조리법도 함께 불타 버렸단 사실도 함께.

한편, 4학년 4반 강당으로 들어오던 남궁호는 학우들의 환대를 받고 있었다.

“네가 될 줄 알았다.”

“역시 남궁호군. 천무학관의 미래다워.”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 그의 무위를 칭찬해 주었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그의 어깨를 툭 치는 자들도 있었다.

“고맙다.”

여러 환대에 답을 하는 와중에도 남궁호의 신경은 온통 한 사내에게 향해 있었다.

강당의 맨 앞줄.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는 ‘그’를 찾아냈다.

‘과연!’

흑객을 본 그는 내심 감탄했다.

신고식이 끝나면 대개의 학우들은 출신을 알리고, 서로 서로 사담을 나누며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과연 마교 출신은 달랐다.

자신과 싸운 뒤, 곧장 교실로 들어와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얼마나 서둘렀는지 타 버린 상의를 갈아입지도 않았다.

‘패배를 기억해 두려고 하는 건가.’

남궁호는 잠시 주시했다.

흑객은 가만히 허공을 응시한 채, 조용히 읊조리거나, 무언가를 써 나가는 듯도 했다.

그건 예전의 자신처럼, 패배한 기억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더 발전하려는 치열한 의지로 보였다.

‘심득을 정리하는 것일 테지. 확실히 배울 점이 많은 자다.’

촌각의 시간까지 아끼는 태도. 무(武)에 임하는 자세가 다른 학우들과 달랐다.

문득, 남궁호는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호적수가 저리 열심히 도약하는데 자신은 가만히 놀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다들 내게 말을 걸지 마. 할 게 있으니까.”

남궁호는 곧장 주변을 향해 손짓했다.

“…이봐?”

“뭐? 뭐 하려고?”

그는 대답하지 않고 곧장 자리에 앉았다.

자칫하다가는 따라잡힐 수 있다는 위기감.

운이 좋아 흑객에게 이겼다지만 그건 정확히 승부가 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아이템의 도움을 받았고, 또한 상대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교 출신이라.’

남궁호는 흑객과 겨루었던 아까의 비무를 복기하기 시작했다.

* * *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수업을 끝마치는 소리가 들리자 하청청은 교재를 챙기며 밖을 나갔다.

이한이란 아이의 마공이란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고, 조금 뒤 학종이 울린 것이다.

“야, 이한. 너, 너, 정말…….”

“왜?”

“아니,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는 거야? 너 따로 과외라도 받는 거냐?”

“아, 그거?”

천마는 멍하니 바라보는 소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그리고 대답 없는 소진에게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익히고 있으니 잘 알지.”

“…….”

잠시 말이 없던 소진.

너무나 당당한 태도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한. 저 녀석은 대체 뭐지?’

몇 걸음 정도 떨어진 곳.

운소령이 약간 불편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본인이 어떤 짓을 한 건지 모르는 듯한 이한. 천연덕스러운 행동이 오히려 그녀의 신경을 더욱 빼앗고 있었다.

‘1학년 때에 전혀 듣지 못했던 이름이었어.’

원래 학습에 두각을 나타냈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얘기가 들려왔을 것이다.

이한이 저 정도의 재지를 가지고 있다면 운소령이 모를 리가 없다.

이제껏 자신보다 뛰어난 성적이 없었기에 다른 이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이한의 말은 놀라움이었다.

‘어둠을 잡아먹는다는 게 정말 가능한 걸까?’

그녀는 조금 전 이한의 말을 떠올렸다.

어둠을 빨아들이는 어둠.

흑마법의 근원은 어둠이며 죽음이다.

그러니 그로 인해 파생되는 힘은 절대적이며 당연히 초월적인 힘을 발휘한다.

신성력 역시 그렇다.

그것은 하나의 생명. 그러니 어둠과 같이 초월적인 권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하 교두님이 놀라는 눈치였어.’

던전 관련 이론에서 학관 최고라고 불리는 하청청 교두.

그런 그에게 이한은 터무니없이 당돌한 말을 했다. 운소령도 저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순간.

하청청 교두가 지은 표정.

그건 전혀 예상치 못한 단서에, 학자들이 골몰하는 순간 드러내는 그런 반응이었다.

‘증조 외할머니께 여쭤 봐야겠어.’

그녀는 수업이 끝나고 곧장 가문에 연락을 넣을 생각을 했다.

마침 자신의 답변을 해 줄 사람이 있었다.

가문의 자랑이자 무림사의 모든 일을 알고 계신다는 분이 사천에 와 계시니까.

140년 전, 무림맹 총군사였던 제갈유진이.

“이게 그냥 넘어갈 일처럼 보입니까.”

한편, 그녀와 달리 교탁 주변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한 이가 있었다.

소림의 방윤. 이제껏 조근조근한 모범생이던 그의 주변에는, 학우들이 몰려와 격한 반응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강호의 도의가 땅에 떨어졌다고 하나, 감히 교두님께 하대를 하다니!”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아니, 미친 건가!”

“…….”

방윤의 얼굴이 조금 난처해졌다.

본래 소림 출신인 그는, 유서가 깊은 문파의 제자들이 그렇듯 예의나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들과 많이 엮이는 편이었다.

그래서 평소라면 조용하게, 교양 있게 담소나 의견을 교환하던 얌전한 친구들이, 그야말로 폭발 직전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일단. 하 교두님은 별다른 말씀을 하시지 않았는데.”

“너무 기가 막혀서 그러신 겁니다! 제가 봤습니다. 출석부에다 유급이라고 쓰시려는 걸!”

“사형, 저런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시주에게는 훈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거기에 같은 소림사 출신의 사제들.

그들 둘이 달려들어 방윤을 부채질해 댔다.

“후우…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내일 체육학 시간에 가르침을 좀 주겠습니다.”

방윤의 사제 방만이 우드득, 주먹을 꺾으며 말했다.

체육학.

연무장에서 이루어지는 실전 수업으로 육체적인 능력과 무공을 연마하는 곳.

하지만 가끔 합법적인 ‘참교육’이 가능한 시간이기도 했다. 방만은 아무래도 이한이라는 학우에게 격한 분노를 느낀 모양이었다.

“내일 4교시인가. 너무 거칠지 않게 하도록 하게.”

“하핫. 제가 이제껏 거칠게 한 적이 있었습니까.”

방윤의 말에 방만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노한 눈으로, 옆자리의 소진과 시시덕대는 천마를 보며 다시 뿌드득, 손목을 꺾어 보였다.

“내 예의라는 것을 다시 배우게 해 줄 것이야. 다시는, 망발을 지껄이지 못하게.”

“으음…….”

그렇게 열을 내는 방만을, 방윤은 걱정스레 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일이 복잡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확실해?”

또 다른 쪽.

복도 창가에서 유심히 이한을 보는 청년이 있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물어보는 그는 서문영. 그리고 그의 옆에서 보고하는 자는 고실(高實)이란 자였다.

“그렇다니까. 우리 가문 선배가 확인해 주셨는데 정말 같이 들어왔대.”

“그랬군. 그래서 그런 얘길 했던 거군.”

서문영은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수업 시간의 건방진 태도.

묵인하는 교두들.

저 이한의 건방진 태도는 4학년생 마교 출신의 사내와 모든 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백무룡이 옥상에서 떨어진 것도…….”

“그랬겠지.”

듣고 보니 저 자신감의 근원을 조금 알 것 같았다.

하청청 교두의 수업 중에, 누구도 생각 못한 마공이라는 발상.

아마도, 4학년에 초청된 흑객. 그의 가르침이 있어서 그런 조리 있는 주장이 가능했으리라.

“근데 건방질이 너무 심한데?”

“우리가 알아서 주의를 시킬까?”

“관둬라. 같은 학우끼리 그럴 필요는 없다.”

서문영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보름 전, 일가족이 죽었다는 얘길 전해 들은 그였다.

그 충격으로 성격의 변화가 일어날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건방져도 부모가 상을 당한 상황에서 비열한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눈빛은 살짝 불쾌감을 담고 있었다.

운소령.

자신이 점찍어 둔 여인이 천마를 흘깃 쳐다보는 것이 묘하게 거슬린 것이다.

“재주 있는 놈인지 아닌지는, 어차피 드러나게 되어 있다. 2학년 무공학 첫 수행평가가 뭔지 알지?”

“아. 파티 사냥. 조를 이뤄 몬스터 잡는 거.”

“그래.”

그는 피식 웃었다.

“능력 있는 놈이면 몬스터 사냥 때 두각을 보일 거다. 뭐. 이제껏 있었던 기록상으론,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갈 공산이 크지만.”

차라락.

서문영은 그새 올라온 서문세가의 보고서를 보고 그대로 덮어 버렸다.

-특징 없음. 재능 없음. 1학년 성적 240등.

-보름 전, 몬스터에게 일가족이 죽음.

-기부금 입학.

마지막 줄이 혹여나 하던 모든 판단을 우선했다.

돈으로 입학한 쓰레기.

“망신 한번 당하고 나면 알아서 주제 파악 하겠지.”

투욱.

그러고는 보고서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저따위 쓸모없는 녀석에게, 굳이 관심을 주는 것 자체가 치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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