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9화 (30/310)

29화. 혈교의 수법 (3)

천마군림보.

천마의 최고의 절학 중 하나로 사방에 12개의 환영이 나타나는 필살의 신법.

놀랍게도 이는 그저 환영이 아닌 모두가 실체다.

또한, 실체이면서 움직임은 모두 제각기 다르게 이동하는 경공술의 극치.

다만 이것을 사용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 번째로 극마의 경지.

두 번째로 육 갑자 이상의 내공이다.

한데, 천마는 고작해야 초마에도 근접하지 못했다. 남아 있는 내공 역시도 반 갑자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천마는 천마군림보를 사용한 것이다.

스스슥.

청명의 주위에 실체인 환영이 불어났다.

이것이 바로 여섯 개의 진기혈(眞元穴)을 자극해 천마가 인위적으로 경지를 격상시킨 결과물이다.

다만 내공이 턱없이 부족하여 고작 만들어 낸 환영은 3개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청명을 당황하게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이익! 본 월(Bone Wall)! 본 익스플로전(Bone Explosion)!”

콰카캉! 쾅! 콰아앙!

그는 사방에 뼈를 급하게 생성해 내 곧바로 터뜨렸다.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 폭열(爆裂).

하지만 천마는 피해 냈다.

환영을 실체의 수준까지 만들어 낸다는 것은, 이미 육안으로 좇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으으으. 데스 핸즈(Death Hands)!”

청명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어둠의 손을 소환해 적을 공격하는 3서클의 흑마법. 그는 이것을 천마의 움직임을 막는 데 사용했다.

5갑자 이상의 가공할 내공으로 자신 주변의 동선에 수백 개의 손을 뒤덮은 것이다.

사사사삭.

하지만 그것으로도 천마의 움직임을 잡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잡는 순간 빠져나간 것일 수도 있었다.

“믿기지 않는가?”

“……!”

청명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말을 건 쪽에는 중원인은 없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여전히 주변을 맴돌고 있었지만.

“따라잡지 못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운가?”

“이--노오옴!”

청명이 노호를 터뜨리며 지팡이를 땅에 박았다. 그리고 곧장 자리에서 도약하며 두 손을 뻗었다.

용미초풍(龍尾招風)이다.

이번엔 흑마법이 아닌, 곤륜의 비전절기.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의 초식을 사용한 것이다.

휘이이이익.

그의 두 손을 타고 강력한 회선풍이 두 손에서 뻗어 나갔다.

“흥!”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지만, 상대는 여전히 존재했다.

각기 세 방향을 점하며 자신을 지그시 노려보고 있었다.

“서서히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분노는 무기력으로. 무기력은 공포로 이어질 테니까.”

“으아아악!”

청명은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도저히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하는,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났다.

“본 바인딩(Bone Binding)!”

뼈를 소환하여 대상을 가두는 3서클의 흑마법.

하지만 단계가 낮다 하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예 14층 전역을,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뼈의 감옥을 소환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통했다.

“잡았다!”

붙잡힌 영체 하나가 사라졌고. 또 다른 하나는 뼈에 갇혀 버렸다.

그는 천마 앞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필멸자! 너는 끝났다.”

“……?”

“영육분리(靈肉分利)!”

“이런!”

일순간, 청명의 몸에서 피어오른 그림자가 천마의 몸을 강타했다.

영육분리.

이건 단순한 저주 따위가 아니다. 육신에 머문 영혼을 무조건 이탈시켜 버리는 메피스토의 권능.

적중당하면 누구도 살아날 수가 없는, 파워 워드 킬(Power Word Kill)에 상응하는 수법. 네크로맨서 청명의 마지막 한 수였다.

퍼억!

저주에 당하자마자 천마의 눈알이 뒤집혔다.

육신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전형적인 현상.

청명 진인의 표정이 다시금 밝아졌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가 이제야 찾아든 것이다.

“그래, 생각났다. 이제보니 마교 놈이었군. 어쩐지 저주에 걸리지 않는다 했더니…….”

여유가 생기자 불현듯 상대가 저주에 걸리지 않는 이유 역시 떠올랐다.

사실, 140년이나 지난 기억이니 단번에 안 떠오르는 것이 당연했다. 곤륜파는 마교와 지리적으로 멀어, 자주 다툴 일도 없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뭐, 상관없나. 어쨌든.”

청명은 손을 저었다.

후욱!

뼈 감옥들이 사라지고 축 늘어진 천마의 육신이 바닥을 굴렀다.

“이 몸을 해체하여 새로운 데스나이트를 만들어야겠군. 이제껏 본적이 없는 소재이니 최고의 물건이 나올 수 있을 것이야. 그럼…….”

-천운이군.

“…뭐냐!”

청명은 급히 놀라 뒤로 물러섰다.

분명 죽었을 놈이 말을 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언령처럼 정신으로 속삭이고 있었다.

“원래는 죽었어야 했겠지만 운 좋게도 내 몸에 두 가지 영혼이 존재했었거든. 그걸 해결해 주었어. 또한.”

“너, 너…….”

“네놈의 방심까지…….”

슥.

천마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청명의 등 뒤로 뭔가 덜컥 걸렸다.

“이… 이…….”

청명의 얼굴이 천천히 돌아가자.

쓰러진 놈과 똑같은 자가 자신의 등에 손을 대고 있었다.

사실, 몰랐던 건 아니다.

그저 상대의 세 개의 환영은 모두 실체. 영육분리를 사용하면 당연히 끝나리라 생각했던 생각이 오판이었을 뿐.

“가져가겠다. 너의 모든 힘을.”

“아. 안 돼…….”

청명이 피하려고 몸을 비트는 순간. 엄청난 뇌전이 그의 몸을 강타했다.

“흡성대법!”

내공을 흡수하는 천마의 흡기공이 시작된 것이다.

* * *

“괜찮으냐?”

남궁호의 시야가 천천히 밝아졌다.

습기가 걷어지고 그 앞에 나타난 자는 제운비였다.

“아, 제가 언제 쓰러진… 큭.”

반사적으로 일어나려던 남궁호의 어깨를 누군가 제지했다.

남소천군이었다.

“누워 있어라. 조금은 쉬어도 된다.”

“…아, 예.”

남궁호는 침상에 누워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 기억을 떠올렸다.

동굴이 거의 무너질 듯 흔들렸다.

그리고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머릿속을 뒤흔드는 생각들.

“그래도 훌륭했다. 4학년 학관생이 이 정도로 버틸 줄은 몰랐으니까.”

제운비가 한마디 거들자 남궁호는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쓰러졌다고 해서 수치스러워할 것 없다. 그렇게 다른 사람도 아닌, 천무학관을 대표하는 고수가 인정해 준 것이니까.

“흐음.”

제운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자신 휘하의 교관 대부분은 목숨을 건졌다.

개개인이 엄청난 심력을 소모했지만, 저주를 극복해 냈다.

다만 곧바로 움직일 수 있을 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보였다.

“좀 어떻습니까?”

제운비는 식은땀을 흘리며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몬스터학과 교두, 하청청에게 물었다.

“오십 평생에 처음으로 맛보는, 하나하나가 악독하기 짝이 없는 저주였습니다. 마법구로 신성 결계를 치지 않았다면…….”

제운비는 조금 전 상황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주가 중첩되자 그가 급히 생성한 신성 결계.

무려 6서클의 고위 마법구를 소모하여 저주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이다.

팔락. 팔락.

제운비가 다음으로 본 것은 뭔가를 분주하게 넘기고 있는 월산 교두였다. 그는 잔뜩 굳은 얼굴로 이리저리 뭔가를 들여다보고, 확인하고 있었다.

“후우…….”

그러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뭔가 발견하신 게 있으십니까?

“아무래도 이 안은 던전 전체가 기관을 발동시키는 것 같습니다.”

펄럭펄럭.

월산 교두는 여러 장의 지도를 들어 제운비에게 내밀었다.

이미 통과해 온 위층의 지도들. 거기에는 그가 따로 덧쓴, 여러 가지 서역의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음? 이건…….”

제운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는 지도를 보고, 천정을 올려다보고, 다시 지도를 보고 바닥을 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전체를 써서 발동하는 기관이라?”

“그렇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월산 교두는 잠시 눈을 감고 침묵했다.

제운비는 잠시 기다렸다. 생각에 몰두한 월산 교두가 정리해서 말을 꺼내 놓기까지.

다행히도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제 교두, 이건 입체 마법진입니다.”

“…입체?”

제운비가 고개를 갸웃했다.

문득 학관에서 바닥에 무언가 그려 놓고 마법입네 뭐네 하고 기동시키던 기관진식이 떠올랐다.

“예. 1층, 2층… 여기 10층까지. 그렇지 않아도 바닥 돌이 다듬어진 모양이 특정 형상이라 경계하던 참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던전에 가득한 사기(死氣)를 이용해서… 7겹의 저주를 발동하는 모양이군요.”

“허어. 7겹이라.”

바닥 돌. 토벌대가 몬스터를 처리하고 기관을 해체해 온 동안, 유독 매끈하게 다듬어진 바닥 돌이 있었다.

그건 분명히 인위적인 손길이 닿은 모습. 누가 이런 공사를, 왜 했을까, 하고 내려오는 동안 이상하게 꺼림칙했던 의문 하나가 해소되었다.

입체 마법진.

1층에서 14층에 달하는 장대한 공간을 사용하여, 던전 전체의 뼈 무더기를 촉매로 발동하는 대단위 저주.

“다만, 그게 갑자기 왜 발동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보통 이런 광역 저주는, 지능이 뛰어난 보스 몬스터가 발동시키는 법입니다. 아직 네크로맨서는 조우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하청청 교두의 말에 제운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20m 공간으로 구처럼 펼쳐진 희미한 막.

하청청 교두가 발동시킨 신성 결계를 지그시 보던 그는 덜컥, 리그웨더에게 받은 퀴네에를 벗어 냈다.

“대, 대주!”

“제운비 교두.”

“이보시게.”

실전학 교관들과 하청청. 월산 교두가 놀라 바라 봤지만 그는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교관 한 명에게 퀴네에를 건넸다.

“잠시 들고 있게.”

턱. 쫘아악!

그리고 하청청 교두가 생성한 결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희뿌연 막은 물결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제운비는 천천히 결계 밖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을 빠져나가던 순간, 제운비는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음.”

갑자기 심장 어림이 쿡쿡 찔리고, 온몸의 신경이란 신경은 전부 미쳐 날뛰는 듯했다.

죽을 것 같은 느낌.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필사(必死)의 직감.

반드시 죽고 만다는 근거 없는 느낌이 전신을 엄습해 왔다. 미리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조차 낭패한 모습을 보였으리라.

“크으읍… 흡!”

하지만 곧 제운비의 눈빛에 기광이 새어 나왔다.

곧 내공을 백회혈 쪽으로 보내 버리자 사념이 단번에 사라진 것이다.

제운비, 그는 화경에 오른 자다.

그 정도 되는 고수는, 의지력과 상상력만으로도 자신의 신체 활동을 조절할 수 있다. 애초에 내기의 운용에는 심상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그렇게 저주를 밀어내자, 더는 사기가 그의 몸을 침범하지 못했다.

“괜찮으십니까?!”

월산 교두가 물어 오자 제운비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사방에서 스물스물 나쁜 기운을 퍼뜨리는 인골들이, 끔찍한 비명의 메아리처럼 감각을 찔러 왔다.

“아래층에서 지독한 사기(邪氣)가 느껴지는구려.”

손을 휘휘 저으며 제운비가 천정과 바닥을 가리켰다. 명백히 무언가를 보고 있는 사람의 태도였다.

“예. 대규모의 적들이 도사리고 있을 겁니다.”

이 저주를 발동시킨 네크로맨서 역시 단단히 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

그러던 중 제운비의 눈에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약간은 당황한 듯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하청청 교두, 결계를 해제해 보십시오.”

“왜 그러시는?”

“설명하기 어렵소. 일단 날 믿고 해 보시오.”

그의 반응에 하청청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제운비란 자를 모를 리 없는 그는.

“성역 해제.”

마법을 없애 버렸다.

휘이잇.

“어허.”

“어?”

사라지자 도처에서 수군거림이 일었다.

“어찌 된 겁니까?”

지켜보던 남소천군이 물었다.

느껴지지 않는다.

이전과 변화된 던전의 배경. 저주가 완전히 걷히고, 음울하고 끔찍한 느낌을 뿜어내던 사기마저 사라져있었다.

완벽하게.

“…이럴 수가.”

월산 교두는 당황하고 있었다. 하청청 교두도 굳은 얼굴로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론을 내렸다.

“네크로맨서가 마법진의 발동을 멈췄습니다.”

“설명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건.”

월산 교두가 반사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이건 지역 전체를 뒤집는 저주입니다. 그리고 언데드 몬스터는 생명 있는 모든 존재를 무한히 증오합니다. 놈들이 우리에 대한 적대를 풀 이유가 없어요.”

“설명 못 할 건 없지.”

이번엔 제운비가 말을 받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모두 파악을 위해 애를 쓸 때, 그는 간단하고도 확실한 것을 감지했다.

“계속되어야 할 저주가 사라졌다면, 그건 술자가 소멸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네?”

“……!”

제운비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아직 닿지조차 못한 저 지하를.

다들 입을 열지 못했다.

던전의 토벌을 눈앞에 두고 공로를 누군가가 가져가 버렸다.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말일세.”

그게 바로 제운비가 치미는 화를 억누르는 이유였다.

* * *

흑객이 눈을 떴을 때 느낀 감정은 따스함이었다.

마당에 누워 있는 포근한 빛이 자신을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단번에 불쾌감이 피어올랐다.

“어이, 일어나.”

툭툭.

흑객은 그 기분 나쁜 실체를 곧장 깨달았다.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발로 툭툭 치고 있었다.

“엄살 피우지 말고 빨리 일어나!”

퍼억!

발길질에 흑객은 바짝 일어났다.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난 그는 눈앞의 청년을 보고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이곳은 자신의 거처였다. 정확히 말하면 고용주의 밥을 해 주는 임시 숙소였다.

“어떻게 되긴. 끝났지.”

“아니, 뭘 어떻게…….”

흑객은 어이가 없었다.

분명 네크로맨서와 치열하게 격전을 치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거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거짓말인 듯, 여기 와 있다니.

“그건 나중에 차차 말하기로 하고.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멍하니 바라보는 흑객.

뭔가 비범한 얘기가 나올 것 같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집중했다.

네크로맨서와의 결투.

이번엔 또 뭐란 말인가.

하지만 그의 두려움이 곧장 짜증으로 변하는 데는 정말 찰나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밥 줘.”

“…….”

“배고프다고.”

“…….”

흑객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정말이지, 좋아할 수 없는 고용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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