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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30화 (31/310)

30화. 의문의 존재 (1)

이른 새벽.

천마는 바닥에 앉아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던전에서 나와서부터 몸속 기운을 다스리는 내공심법을 펼치고 있었다.

웬만해선 각 잡고 수련하지 않는 그도, 이번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네크로맨서의 몸에 있던 내공은 무려 7갑자.

과거의 천마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적은 양이지만, 지금은 자신의 전부를 걸어야 할 정도의 내공이었다.

‘제길 허약한 몸뚱아리 때문에…….’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있었다.

네크로맨서로 변신한 청명 진인의 내공.

흑마법으로 인해 더욱 증폭된 기(氣)의 성질 변화는 흡수당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기의 성질을 바꾸는 건 문제가 안 되는데…….’

제아무리 내공의 성질이 변하고 변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본바탕은 자연의 기(氣)다.

한때 거의 신마경의 지척까지 다다랐던 천마는, 내공의 성질을 바꾸는 건 어찌어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고민한 건 바로 이한의 몸.

이 몸뚱아리로는 이 내공의 힘을 전부는커녕, 일부를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상태라는 것이다.

‘결국, 3갑자로 만족해야 하나.’

그래서 나온 해답이 3갑자 정도로 타협하는 것.

내공의 변환과 몸의 한계치로 무려 4갑자가 손실되지만, 이 방법밖에 없었다.

사실, 이것도 단전으로 거의 욱여넣다시피 해야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어제부터 내내 고민했던 천마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현재 자신의 몸속에 있는 1갑자 반.

3갑자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4갑자 반이 되는 건 아닌, 3갑자가 조금 넘는 수준에 그치겠지만 그래도 실망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3갑자만 되어도 이것으로 웬만한 놈들은 밟아 줄 수 있으니까.

드드드득.

3갑자를 몸으로 받아들이자, 천마의 몸에 즉각적인 변화가 있었다.

얼굴의 관절이 요동쳤고. 몸도 갈비뼈나, 척추가 이리저리 이동했다.

환골탈태의 전조였다.

신검합일 수준의 깨달음과 3갑자의 내공.

두 조건을 만족하자 초마를 뛰어넘어, 단번에 극마에 오른 것이다.

“크읍.”

아무리 고통을 즐기는 천마라도 환골탈태로 몸이 변하는 과정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보통 환골탈태를 할 때 정신을 잃을 정도의 충격이 동반된다.

내공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언제든 기공(氣功)을 뿌릴 수 있는 최적의 상태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굉장한 고통을 수반했다.

드드득. 드드득.

그렇게 한 일각이 흘렀을까.

온몸이 땀에 범벅된 천마의 표정은 그제야 밝아졌다.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천마는 상의가 찢어지고 하의만 남은 몸으로 창가로 다가갔다.

확실히 달라진 게 느껴진다.

바람 소리.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처마 밑에 있는 새들의 움직임.

심지어 꽤나 떨어진 곳에 누군가 이동하는 소리까지 들렸다.

“네크로맨서라.”

여유가 생기자 천마는 다시 던전에 있던 그를 떠올렸다.

곤륜파 놈이 어떻게 몬스터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생각 이상의 강자였다.

특히 마지막에 썼던 영육분리는 정말이지 예측할 수 없는 사술이었다.

“운이 정말 좋았다고 할 수밖에…….”

그 사술은 이제껏 이 몸의 주인이던 이한의 남은 영혼의 흔적을 날려 버렸다.

덕분에 비어 버린 몸에 완전히 자신이 깃들게 되었지만, 자칫 그가 몸의 주인이었다면, 죽은 것은 이한이 아닌 자신이었을 터.

“앞으론 좀 신중해져야겠구나.”

네크로맨서와의 싸움은 천마에게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리치왕의 직속 부하도 아닌데도 놀라운 능력을 보여 줬다.

과거, 자신이 생각한 수하들의 힘과 비등할 정도로.

그렇다면 리치왕은 더욱 성장했을 것이다.

더욱이 그가 거느린 수하들 역시 대수롭게 여길 만한 상대들이 아님을.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마법에 대해서도 알아봐야겠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학관의 수업이 떠올랐다.

무공과는 또 다른 새로운 무학.

기묘한 사술과 술법을 너무도 쉽게 펼쳐 내는 그들의 힘이 문득 궁금해진 것이다.

* * *

타타타탁.

흑객은 아침 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그는 눈뜨자마자 장을 보러 나갔고, 각종 채소와 부침거리, 여러 고기를 한가득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음식 만들기에 정신이 없었다.

파라락. 지글지글.

채소를 썰며, 동시에 양념장을 만드는 그의 움직임은 이미 범인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잘 익힌 고기를 중심으로 찐 요리, 볶음 요리, 튀김 요리 등 무려 10가지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 어디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구만.”

방문을 열고 나오던 천마는 코를 벌름벌름하며 느긋하게 탁자 앞으로 걸어갔다.

탁자 위, 놓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가득 찬 접시를 바라보다 흑객을 향해 고개를 쓰윽 올렸다.

“…이걸 다 네가 만들었나.”

“그렇습니다.”

흑객이 한 요리의 결과가 만족스러운 듯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창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먹어도 되나?”

“탕(湯)과 두부 중심의 요리가 각각 남았습니다.”

“수업 시간에 늦을 순 없지 않나.”

“흠.”

흑객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이라면 속으로 욕을 했을 그였지만, 네크로맨서 때 보였던 무위만 생각하면 그저 경외심만 남을 뿐이었다.

“앉으십시오. 때에 맞춰 내놓겠습니다.”

쩝. 쩝 쩌접.

둘은 한동안 대화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천마는 ‘오홍’, ‘오오옷’ 같은 추임새를 넣으며 아주 ‘더럽게’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객은 화가 나지 않았다.

그저 존경심이 가득할 뿐이었다.

“이건?”

천마가 도톰하게 놓여 있는 연잎쌈을 가리켰다. 조금 전, 한 잎 가져간 그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기 때문이다.

“하엽분증육(荷葉粉蒸肉)이란 것이지요. 익힌 삼겹살을 다진 뒤, 좁쌀을 입혀 양념을 한 다음, 구멍이 난 찜통에 넣어 연기만으로 익힙니다. 거기에 연잎을 넣은 겁니다.”

“굉장한 맛인데. 비법은 혹시…….”

흑객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했던, 고대로 내려오던 양념장입니다.”

“…과연!”

천마는 상당히 놀랍다는 듯, 흑객을 바라봤다.

뭔가 독특하면서도 입맛을 자극하는 건 그로서도 처음 느껴 보는 경험이었다.

-돌아가신 부친과 친한 숙수(熟手-요리사) 한 분이 계셨소. 그분이 주로 만드시는 음식이 있는데, 조정에서도 찾는다고 하오. 이름은 주홍무두부(朱洪武豆腐). 사람을 시켜 거기에 쓰이는 양념장을 가르쳐 드리겠소.

‘그 녀석에게 감사해야겠군.’

흑객은 내심 속마음을 숨기며, 젓가락을 움직였다.

사실 어떤 훌륭한 양념장이던 음식에 조화롭게 어울리지 않으면, 오히려 맛을 해치게 된다.

그는 이쪽 방면에선 특출한 재능이 있었고, 비법을 들은 즉시 실전에 쓴 것이다.

“그건 그렇고… 꺼억.”

천마는 배를 채우자 전낭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불평스러운 듯 혀를 찼다.

“아니, 일단은 들고 오긴 했는데… 그냥 쓰레기였어. 싸움 잘하는 몽스터 죽이면 괜찮은 거 나온다더니, 다 허풍이었다고.”

천마는 투덜거리며 혀를 찼다.

무려 네크로맨서를 죽이고 난 뛰, 떨어진 보상.

하지만 그건 그냥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돌멩이였다.

그나마 특이점이라면, 영롱한 흙빛을 머금고 있다는 것뿐.

‘이건 설마, 흑요석(黑曜石)?’

하지만 똑같은 돌멩이를 보던 흑객의 감정은 달랐다.

흑요석.

그것도 심지어 흑마력이 들어간 마력 흑요석이다.

흙빛이 숨 쉬듯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것만 봐도 얼마나 귀중한 건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강호를 둘러봐도 몇 개 나온 적이 없는,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한다는 엄청난 보물이 아닌가.

“너, 가질래?”

“예?”

천마의 물음에 순간 고함을 지를 뻔했다. 지금 이 물건이 어떤 건지 알고 말하는 건가.

“딱 봐도 별 쓸모없는 돌이잖아. 그래도 명색이 네크로맨서를 죽이고 나온 거니, 몇 냥은 받지 않겠냐.”

“하. 하. 뭐 그렇긴 하지요.”

흑객의 머릿속은 빛처럼 빠르게 돌아갔다.

저건 가져야 한다.

무공 때문에 계약 기간이 늘어난 와중에서 저걸 챙기면 확실한 이득이 된다.

그렇기에 흑객은 더욱 전략적으로 접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딱 봐도 단순한 돌멩이지요. 이런 건 줘도 안 갖습니다.”

정말로 ‘별것 없다’는 느낌을 전달한 흑객.

그 모습에 천마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군. 뭐, 그럼 네가 버려라.”

‘넘어왔다!’

흑객은 한 번 더 거부할까 고민했지만, 이내 접었다.

괜히 당신이 버리라고 하다가 정말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 정 그렇다면…….”

흑객은 손을 가져갔다.

여기서 움직임이 중요했다.

느릿하지만 자연스러운, 거기에 귀찮지만 애써 참아 준다는 그런 느낌을 전해 줘야 한다.

그 정도라야 저 녀석을 속일 수 있었다.

그렇게 흑객이 흑요석을 손에 잡아가던 그때.

“잠깐.”

천마가 그의 팔을 잡았다.

‘들킨 건가?’

흑객의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그 순간에도 그는 무표정한 얼굴을 지켜 냈지만, 입에서 나온 대화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 이 돌은…….”

“그 팔.”

흑객의 시선이 자신의 왼팔로 내려갔다.

이어 천마가 말했다.

“이대로 가다간 잡아먹힌다.”

“…….”

“네놈, 그거. 발작이 멈춘게 아냐. 기회를 보고 있는 거지. 네놈이 방심하는 그때에는 더는 막지 못한다.”

꿈틀. 꿈틀.

흑객의 왼팔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약간의 힘을 가했을 뿐인데 살아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하면 어떻게…….”

“수련해야지. 잔혈마공. 저 때 알려 줬잖아?”

흑객은 천마가 던전에서 알려 준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자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피에 대한 갈증과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역혈신공과 명현 증상.

명현 현상은 할 수 있다고 쳐도 피에 대한 갈증, 욕망을 어떻게 수련한단 말인가.

그건 미쳐 버리는 지름길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하나, 그 많은 적을 찾아 싸울 수도 없고. 그런 수련 방식은 효율적이지 못해. 좀 부족하긴 해도 다른 방법을 써야지.”

“하면 그걸 어떻게…….”

“상상.”

“예?”

당황하는 흑객을 향해 천마는 머리를 콕 집었다.

“적을 상정하고 머릿속으로 싸운다. 살점이 튀기고, 피 분수가 피어오르는 광경 속에서. 이렇게 하면 굳이 피를 뒤집어쓰지 않아도 돼. 그렇게 되면.”

천마는 손을 놓았다.

“그놈도 더는 피를 갈구하지 않을 거다. 달리 말해 길들일 수가 있는 게지.”

길들인다.

뱀파이어 이빨을 다스릴 수 있게 될 때까지 무공 성취를 높이라는 태상장로와 완전히 다른 해법이다.

무공도, 수련법도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길.

하지만 무턱대고 거부하기도 어려운 것이, 마교에 실전된 잔혈마공을 가르쳐 준 자가 그였기 때문이다.

“고용주는 아니, 고인은…….”

그래서 궁금했다.

대체 이자는 본교와 얼마나 연관이 되어 있는지.

혹시 자신이 모르는 아주 대단한 인물이 아닐지.

“대체 누구십니까.”

흑객은 진정 어린 마음을 담아 물었다.

“내가 누구냐라.”

천마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냥 말하면 될 터인데, 그에겐 매우 어려운 질문 같아 보였다.

“아, 그래.”

천마는 뭔가 생각이 난 듯 담담히 말했다.

“네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강한 사람 한 명 생각해 봐.”

“그건 왜…….”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그는 한 인물을 생각했다.

현 마교를 지휘하는, 그분을.

“떠올렸습니다.”

“그럼 그놈을 압도적으로 때려잡을, 무형의 인물 하나를 떠올려 봐.”

“…하.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는 즉각 반박했다.

흑혈단주.

무학이 하늘에 닿은, 절대고수다.

최강의 힘이라는 강기를 원하는 대로 쏘아 대며, 심지어 검막까지 형성할 수 있는 천재를 압도적으로 이긴다니.

문득 그 질문의 의도를 생각하던 흑객이 당황하며 물었다.

“혹, 고인께서 그분을 이길 자라고 말하는…….”

“그럴 리가.”

그 말에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흑객 앞으로.

천마가 불쑥 대답했다.

“그놈 위에 있었다.”

“…….”

잠시간 정적이 일었다.

흑객은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아니, 이자가 무엇을 말한 건지 그마저 헷갈렸다.

투욱.

“생각해 보니 아니군. 그 위가 아니지.”

천마는 젓가락을 내렸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 위에 위였다.”

그러고선 천마는 다시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냐. 그 위에, 위에, 위에 있었어!”

‘정말 대단한 사람이지만, 정신에 문제가 있다.’

흑객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아침부터 이자에 대한 존경과 경외가 잠시나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니다. 그 위에, 위에, 위에, 위에…….”

‘근데 이 새끼가 자꾸?’

흑객은 경외심을 지워 버렸다.

이 자리에서 대화했던 모든 것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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