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슬기로운 학관 생활 (3)
마정석(魔精石).
중원에 몬스터들이 출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발견된 보석 중 하나.
천마가 죽인 블랙 와이번에서 얻은 것이 바로 이 마정석이었다.
최초에는 불특정 몬스터의 몸속에서 발견되었지만, 백여 년에 걸친 가열찬 투쟁의 결과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어떤 몬스터나 어떤 던전에서 마정석이 나오는지도 간간히 알려지고 있었다.
처음에 이것을 발견한 무림인들은 단순히 빛을 내는 야광주나 장신구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마법. 혹은 공학자들의 연구 끝에, 특정 아이템에 가공하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거나, 아예 마법을 쓰는 보조도구로 쓸 수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마정석을 활용하게 된다.
당연히 근자에 마정석에 대한 수요는 그야말로 폭증.
“앞서 말했듯, 마정석은 기본적으로 고유의 능력이 있지요. 하지만 일정 등급 이상의 마정석은 그 자체로 강대한 마나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여러분의 마법적 재능을 알아볼 수 있죠.”
엘리샤는 차분하게 강론을 이었다.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음양오행과 근골, 가진 재질이 다르다.
어떤 이는 내공에, 어떤 이는 외공에 장기를 발휘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갈래가 생겼으니 바로 마법이다.
마정석은 누가 어떤 마법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별해 준다.
“우선 앞줄부터 한 명씩 나와 보세요. 고위 마정석에 숨겨진 또 다른 능력을 보여 드릴게요.”
* * *
교관 엘리샤가 오늘 수업에 마정석을 들고 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학관생들이 타고난 마법적 재능, 그리고 어떤 마법 성질에 반응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가장 먼저 나온 소림사 3명을 향해 말했다.
“본인의 내공을 마정석에 불어넣어 보세요. 먼저 해 볼 사람?”
“제가 해 보겠습니다.”
4반 반장 방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먼저 나섰다.
“흐으음!”
웅후한 소림사의 내공을 마정석에 밀어 넣는 방윤.
툭. 툭.
전력을 다하는지, 파르라한 머리에서 구슬땀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그러기를 한참, 딱히 특별한 증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화속성은 아니군요. 그럼 다음 것.”
“…예.”
엘리샤의 말에 방윤은 차례차례 다른 교보재 마정석을 들고 내공을 불어 넣었다.
하나 여전히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저… 교관님?”
방윤이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엘리샤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음 학관생.”
“아…….”
방윤은 뭔가 할 말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이내 옆으로 비켜섰다.
두 번째로 나선 자는 부반장 방만이었다.
“흐읍!”
그 역시 방윤이 한 것처럼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토파즈를 차례대로 짚었다.
그리고.
“교관님…….”
“다음 학관생.”
그 역시 뭔지 모를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고, 엘리샤가 다른 사람을 보며 손짓했다.
방만도 비켜서자, 마지막 세명 중 가장 막내인 방호가 손을 뻗었다.
그는 방윤과 방만처럼 마정석 루비에 손을 가져갔다.
“흐음!”
역시 앞서 소림들처럼 반응이 없었고. 그렇게 하나하나 집던 중에.
“어……?”
그의 눈이 급작스럽게 커지기 시작했다.
우우웅!
방호의 손에 잡힌 토파즈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게 뭐지?”
“반응하는 거야?”
학관생들이 수군거렸다. 밝기는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분명한 변화였다.
“토파즈가 반응을 하는 걸 보니, 번개 마법에 친숙함을 느끼는가 보네요.”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엘리샤가 말했다.
“번개 마법요? 제가 말입니까?”
“네, 마법적 재능이 있다는 거죠.”
“아!”
방호가 뭔가 모를 감회에 젖었고. 학관생들은 자연히 귀를 쫑긋 세웠다.
마법적 재능.
무인이라면 누구나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말에 기꺼워한다. 그리고 마법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반면, 누구나 관심 있어 하는 분야다.
노력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또 다른 재능.
그걸 판별하는 수업이니, 다들 나는 어떨까 하는 기대 속에서 눈빛이 강렬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앞서 말했듯 마정석은 강력한 마나를 품은 보석입니다. 그렇기에 반응을 통해 본인이 마법적 재능이 어느 쪽인지, 어떤 마법을 익혀야 하는지 알 수 있지요.”
그녀는 학관생들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물론 마정석이 반응을 하지 않아도 마법을 익힐 수 있지만… 이렇게 마법에 친숙함이 있다면 익히는 속도는 훨씬 더 빠를 수밖에 없죠.”
“저, 저는 그럼 재능이 없는 겁니까?”
2학년 3반 반장 방윤이 약간 얼굴이 붉어진 표정으로 물었다.
나름 이 반의 반장으로서, 당신은 재능이 없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거였다.
“네, 재능이 없는 거예요.”
“……!”
하지만 엘리샤는 단호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마법 속성에 반응하는 사람들은 열 명 중 하나 정도니까.”
“…….”
방윤은 표정 관리가 안 되고 있었다.
엘리샤의 말이 지나치게 단호해서, 위로해 주는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을 만큼.
“그리고, 반응한다고 해서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건 아니에요. 속성 마나에 대한 친숙도와, 마법을 실제로 운용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니까. 그럼 다음. 자기 적성을 시험해 보고 싶은 사람?”
그녀는 앞에 나온 소림사 학생들을 물리고, 다음 사람을 불렀다.
처처척!
당연히 학관생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다음.”
“다음.”
한 명씩. 한 명씩.
2학년 학관생들은 마정석을 짚으며, 마법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고 있었다.
십여 명의 학관생들이 한 번씩 마정석을 짚어 봤음에도 별다른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엘리샤의 말대로 열 명 중 한 명꼴로 반응한다는 게 사실인 듯했다.
“오오오!”
“이럴 수가!”
그러던 그때.
학관생들의 눈길을 끄는 자가 있었다.
그것도 한 번의 반응이 아닌, 무려 3개의 마정석에서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와, 정말 대단한데요. 필리아?”
엘리샤는 손뼉을 치며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학관생을 다시 살폈다.
필리아. 학급일지에 적힌 바로는 올해 열여섯.
학관생 중 가장 나이가 적어 보이는 그녀가, 하나도 아닌, 무려 3가지 속성에서 마법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루비, 에메랄드, 토파즈의 세 가지 속성이라니. 이런 친화도는 우리 학관 전체를 통틀어도 단 세 명밖에 없어요.”
실로 그러했다.
불과 땅, 그리고 뇌전 마법에 반응한다는 건 소위 말해 타고났다고 봐야 했다.
이 정도 반응이라면, 익히는 것도 남들보다 월등히 앞설 것이다.
“감사합니다.”
소매로 입을 가리며 대답하는 필리아.
부끄러운 듯 배시시 웃는 그녀가 곧 자리로 돌아가고 엘리샤는 다음 학관생을 가리켰다.
“그럼 다음 나오세요.”
그 뒤로는 모두들 예상대로였다.
대여섯이 지나갔지만,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는 학관생들은 없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이야. 루비에 반응이 있네요. 불 속성이에요.”
엘리샤가 감탄하며 축하해 줬다.
“운이 좋았습니다.”
학관생은 다름 아닌 서문영이었다.
평소라면 한 가지의 반응에도 대단히 관심을 가졌겠지만, 필리아 때문인지 그다지 환호는 크지 않았다.
그걸 아는지 서문영의 표정도 밝지는 않았다.
다시 한 명씩, 또 한 명씩.
교탁 앞으로 나오던 중 아이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고정되었다.
다름 아닌 이번에 나오는 아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미모의 소녀였다.
“운소령이다.”
“오.”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명실공히 2학년을 대표하는 학관생.
그녀가 나서는 모습에 서문영을 포함한, 천마의 시선도 거기로 쏠렸다.
과연 그녀에겐 변화가 있을 것인가?
엘리샤도 그걸 아는지 슬쩍 운을 띄웠다.
“과연 운소령의 반응은 어떨까요?”
좌중이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운소령은 마정석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녀도 긴장되었는지 약간 상기된 얼굴이었다.
“…….”
첫 번째로 루비.
반응은 없었다.
여느 학관생들처럼 빛이 나오거나 하지 않은 것이다.
“다음으로 사파이어…….”
그런데 엘리샤가 말하던 중 갑자기 입을 닫았다.
학관생들과 달리, 교실에서 일어나는 강력한 파장을 감지한 것이다.
“교. 교관님……?”
운소령은 엘리샤를 부르며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정확히는 손에 쥐여 있던 사파이어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드드륵.
놀란 운소령이 급히 교탁에 내려놓았음에도 사파이어의 반응은 그대로였다.
드드드득. 드드드득. 드드드득.
마정석이 혼자서 움직이며 가늘게 진동하고 있었다.
“와. 감응(感應)이라니…….”
엘리샤가 짝짝, 감탄한 얼굴로 손뼉을 쳤다.
“감응……? 그게 뭔가요?”
운소령의 하얀 얼굴에 살짝 상기된 빛이 어렸다. 엘리샤는 한껏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고개를 갸웃했다.
“축하해요. 최소 매직 유저의 자질이네요. 운소령 학생은 듀얼 클래스로 갈 수도 있겠어요.”
“듀얼… 클래스?”
“마법과 무예. 양쪽 모두에 길이 열려 있다는 거죠.”
엘리샤의 말에 확 하고 교실의 시선이 운소령에게 몰려 들었다.
시기와 흥분, 열기가 가득한 가운데 엘리샤는 까닥까닥 손짓했다.
“운소령 학관생은 나중에 나랑 따로 이야기 좀 하고. 그럼 다음 학관생?”
‘하여간에 어린것들의 몸부림이란…….’
마지막 차례가 된 천마가 득의양양하게 일어섰다.
그에 눈엔 그저 귀여워 보였다.
천마는 앞서 마정석을 손에 쥔 모든 학관생들의 기(氣)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
다들, 내공을 불어넣기만 할 뿐, 그 기류를 움직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일단 남자는 불이지.”
터억.
제일 먼저 그가 잡은 것은 불 속성을 감지하는 루비.
천마는 그걸 잡자마자 손끝으로 내공을 밀어 넣으며 마정석에다 진기를 움직였다.
소주천을 하듯, 마정석의 중앙에서 시작하여 바깥의 고리를 건드는 것이다.
스으으윽.
방식만 다를 뿐, 원리로 치면 검기 발출과 흡사하다.
검에 검기를 씌워서 쏘아 낼 때는 손바닥의 노궁혈에서 기를 발출한다.
기를 스스로 통하는 인체처럼, 여기엔 물체를 지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어?”
그런데.
호언장담하던 천마의 손끝에선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앞서 학관생들처럼 천마의 손에 쥐어진 루비 역시 움직이거나 빛을 발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거… 뭔?”
“다음요.”
당황하는 천마에게 엘리샤의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살짝 얼굴이 굳은 천마가 루비에서 손을 떼자 교실 안에서 킥킥킥!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가 너무 쉽게 봤군.”
슬쩍 천마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아무래도 혹여 부서질까 싶어서 미약하게 기운을 흘린 게 문제지 싶었다.
사파이어 마정석으로 손을 옮긴 천마는 이번엔 가진 내공의 1할가량을 단번에 쏟아부었다.
그랬더니.
드드드득!
“역시 되는군.”
과연. 생각했던 대로 마정석이 격렬하게 반응을 보였다. 천마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엘리샤를 바라보고 마정석을 내려놓았다.
“애송이들, 재능이란 건 말이다. 이렇게 타고난…….”
그때였다.
퍼억!
“헉?”
“악!”
교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막 천마가 내려놓은 사파이어 마정석이 산산조각으로 깨진 것이다.
“이거, 너무 약하잖아?”
턱.
천마는 다음으로 에메랄드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내공을 불어넣었다.
조금 전보다는 약간 약하게. 오 푼 정도의 미약한 내공을.
앞서 했던 방식으로 소주천 하듯, 진기를 마정석 중심에 놓고 퍼뜨릴 생각이었다.
스스스슥!
그러자 이번에는 확실히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선명한 녹색의 광휘로 물드는 마정석.
마치 조금 전의 운소령에 못지않은 모습이었다.
“이. 이건……!”
엘리샤가 그 모습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엘 교관, 어떻소. 이만하면……?!”
콰작!
말하다 말고 천마의 손에서 에메랄드가 산산히 깨어졌다.
그것도 앞서와는 달리 작은 폭발이라도 난 듯, 결정의 가루들이 학관생들에게로 날아들었다.
“뭐야!”
“으앗!”
당황하고 황당한 표정으로 있는 학관생들.
천마는 고개를 갸웃하고 머리를 긁어 보였다.
“음. 이것도 너무 강했나? 그럼…….”
터억.
그렇게 다시 손을 옮겨 토파즈를 잡은 순간.
“손 떼!”
지켜보던 엘리샤가 입을 뗐다.
그럼에도 천마가 무시하고 마정석으로 손을 가져가자, 고고하고 청순한 얼굴의 그녀의 입에선.
“손 떼라고, 이 씨발 새끼야아아아아!”
쌍욕이 다발로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