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36화 (37/310)

36화. 소림의 3형제 (2)

“후읍.”

모두가 나간 교실에 천마가 홀로 앉아 있었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소주천을 끝내고 몸 내부를 관조하기를 몇 번.

그는 긴 한숨을 토해 냈다.

“자력으로는 탈마에 오르긴 쉽지 않겠구나.”

네크로맨서의 내공을 흡수하여 극마에 오르는 기연을 얻는 것까지는 좋았다.

예상보다 빠르게 경지 상승이 일어났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극마에 오른 후 역혈신공을 운공하자, 내공 불어나는 양이 병아리 눈물처럼 적게 느껴졌다.

이러다간 다음 도약까지 못해도 10년은 넘게 걸릴 것 같았다.

“내 몸이 아니라는 게 이리 큰가.”

아마도 영혼의 이동에 따른, 부작용인 듯했다.

어색하게 한 몸에 두 영혼이 있던 상태가, 지난번 이한의 혼백이 날아간 후로 정신적인 합일 상태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이토록 진전이 느리다는 건 아마도 몸의 단전,

타고난 무골의 그릇이 너무 작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내단을 더 먹을 수밖에 없나.’

자력으로 채우는 데 시간이 걸린다면, 강제로 주입하면 된다.

전투를 통해 몸의 감각을 지속적으로 일깨우고, 내단을 계속 채워 넣으면 내공이 늘어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강한 영물의 내단. 이를테면 과거 천마가 활동하던 시절에 회자되던 전설적인 영물의 내단이라면 충분히 채워 넣을 만할 것이다.

‘지금 몸으로 싸우기엔 꽤 난처한 놈들이 있단 말이지.’

다만 그렇게 한다고 치면, 또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몬스터라고 알려진 적들의 무력 수준이다.

지난번 격돌했을 때 경험상, 대부분은 별것 아닌 놈들이되, 그중에 드문드문 신중을 요하는 놈들도 끼어 있었다.

지난번에 싸웠던 네크로맨서라는 놈도 자신의 판단을 훨씬 벗어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강함의 고저에 상관없이 무조건 영혼을 날려 버리는 위험한 힘.

천마처럼 한 몸에 두 영혼이 깃든 특이한 경우가 아니었다면, 어이없게 비명횡사하고 말았을 것이다.

“리치왕이란 놈은 아직 활개를 치지 않은 것 같은데…….”

140년 전, 단 한 번 부딪혀 보았을 뿐이지만, 천마는 그 놈이 나타나지 않았을 거라 나름 확신했다.

그 정도의 절대강자가 움직인다면, 분명 불안한 소문이라도 들려왔을 테니까.

그러니 지금, 리치왕이 나타나기 전에 가능한한 빨리 탈마로 올라가야 했다.

일단 탈마가 되고 난 다음에는, 과거처럼 당하지 않고 제대로 싸워 볼 만할 터.

“결국 던전을 좀 더 돌아야 한다는 이야기구먼… 어?”

고민하던 천마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 이한, 여기 있었어?”

덩달아 놀라는 소진이었다.

“그래. 그런데…….”

천마는 주위를 불러보며 말했다.

“애들 다 어디 갔나?”

“너, 몰랐어? 4교시는 이동수업이잖아.”

소진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4교시 수업은 체육학.

몸을 단련하고, 실전 수업을 배우는 체육학은 다른 수업과 달리, 체단실에서 모인다.

수업 중에 전달한 내용인데, 천마가 자는 바람에, 전해 듣지 못한 것이다.

“아, 그런 건가.”

천마는 끄덕이고 몸을 일으키다가 소진을 보며 갸웃했다.

“그러는 넌 왜 수업 안가냐?”

“아, 난 원래 체육학은 열외야. 몸이 좀 안 좋거든.”

소진은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왠지 모르게 기운 없는 표정. 백무룡의 자리에 앉아 있던 천마는 스윽,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삼음절맥(三陰絶脈)이구나.”

“…어?!”

교재를 챙기던 소진이 기겁했다.

자신이 몸이 안 좋은 것은 일단 학관의 교두들도 알고 있지만, 정확히 증세가 어떤 것인지는 거의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네. 네가 어떻게?”

하물며 1학년 때 데면데면한 사이였던 이한에게 그런 것을 밝힌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런데 그는 ‘척하면 척이지’라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되묻기만 했다.

“너도 참 희한한 녀석이다. 무에 재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녀석이 무관은 왜 다녀?”

“…….”

소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삼음절맥은 쉽게 지치고, 자주 다치며, 무리할 경우 심한 발작에 사로잡힌다.

천마의 말처럼 무에 관한 재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체질인 것이 사실이다.

“네. 네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잖아! 너도 나처럼 기부금 입학이면서!”

약점을 찔린 소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가 아차, 하며 곧 얼굴을 돌렸다.

“그, 그리고 어떻게든 배우면 도움이 되거든. 내가 이래 봬도 필기시험만큼은 자신 있다고.”

“뭐, 그 체질이 머리 하나는 쓸 만하지.”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인으로서는 가망이 없다고 볼 수 있는 삼음절맥.

대신, 하늘이 공평하다고나 할까.

이 체질의 소유자는 비상할 정도로 기민한 두뇌를 가지고, 높은 암기력, 빠른 이해력을 가진다.

당장에 머리 쓰는걸로 유명한 제갈세가의 인물 중에 저 삼음절맥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들이 많았다.

오래전, 우여곡절 끝에 천마신교에 들어온 부군사 흑제갈 또한 삼음절맥이었고.

‘삼음절맥이… 한 번 보고 들은 건 잊어버리는 게 거의 없다고 했지?’

천마는 기억을 되짚었다. 아마도 몸이 허약한 소진이 천무학관에 입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체가 아닌 머리에 있었을 터.

“너 이치왕에 대해서 좀 아냐?”

“…뭐?”

리치왕, 그 이름을 어색하게 발음한 것인데, 소진은 곧잘 알아들었다.

“리치왕? 대격변의 악귀 말이지? 그자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래? 그럼 얘기 좀 해 봐.”

처억.

천마는 나가려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앉히고 들을 자세를 취했다.

* * *

리치왕.

140년 전, 곤륜산을 통해 중원에 나타난 자들.

무수한 던전을 만들고, 언데드를 등장시켜 전 무림을 격변시킨 자라고 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리치왕은 무림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어 여전한 의문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7대 현인들의 말씀에 따르면, 리치왕은 세계에 대격변을 일으켰고, 그때 큰 힘을 썼다고 했어.”

소진은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지식을 남에게 설명하기를 좋아했다. 몸이 약해서 머리를 쓰는 것만이 강점인 그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 강대한 힘을 쓴 나머지 회복하느라 스스로를 봉인. 그렇게 144년. 완성 수의 제곱이 되는 날에 괴물들이 몰려온다고 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괴물은 지금도 넘쳐나는 거 같은데.”

“그게, 리치왕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들을 따르는 4대 수호장은 여전히 존재하거든.”

“4대 수호장?”

듣고 있던 천마가 되물었다. 소진이 끄덕였다.

“그래, 모두 4명. 새외에 있다고 알려져있지.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마주치면 죽으니까.”

천마의 눈이 흥미롭게 변했다.

“새외라.”

그럴 법했다. 마교의 총단을 침범해 온 그놈들이 새외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

아마 중원에 계속 있었다면 인간이 멸망하든, 괴물들이 멸종하든 결단이 났을 터였다. 지금 같은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 까닭은 놈들이 중원이 아닌 변방 새외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

스윽. 스윽.

천마가 관심을 보이자 소진은 더욱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교수라도 된 양, 칠판에 글까지 써 댔다.

「 칼베스 폰 운터마임. 」

“데스나이트들의 우두머리. 총사령관이라고도 불려.”

외래어가 나오자 눈을 찌푸린 천마가 물었다.

“이름 참 특이하네?”

“수호장들의 대부분 이름이 그래. 역사책에 나와 있기로 이 데스나이트는 가면을 쓰고 흑마를 타고 다닌다고 했어.”

‘그때 그놈이구나.’

천마의 얼굴이 굳어졌다.

리치왕을 수호했던 자들.

당시에 가면을 쓰고 검은 뼈 말을 타고 다니는 놈이 분명히 있었다. 이제 와 새로 얻은 지식으로 따져 보면 그놈이 데스나이트들의 수장인 듯했다.

“실력은 어느 정도지?”

당시엔 조금 귀찮게 하는 놈 정도.

하지만 자신이 잠든 지 자그마치 140년이 지났다. 죽지도 않는 괴물이니 더 강해져 있을 수도 있을 터.

“기록된 바로는 50년 전에, 화경의 고수였던 유현(柳玄) 공자와 조옥린(趙玉麟) 문주가 제대로 싸워 보지 못하고 당했다는 소문이 있어.”

“두 명의 화경 고수를 이겼다고?”

천마가 약간 놀란 듯 물었다.

화경이라면 일수일체. 병기가 손과 하나가 될 만큼 성취가 높은 자들이다.

지금 시절의 기준은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그깟 마물들에 죽는다는 건 믿기 힘들었다.

“응. 목격자도 있었다고 하고, 단순히 풍문은 아닌 거 같아. 현경의 고수라는 불리는 검황께서도 칼베스를 만나면 쉽게 승부를 내지 못할 것 같다고 하셨으니까”

“중원에 현경의 고수가 있나?”

“세 명이나 있어.”

“호오.”

천마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건 상당히 흥미로운 얘기다.

과거에 자신이 강호를 활보했을 때에, 현경은 딱 한 명이 있었다. 그것도 겨우 초입에 발을 내민 인물.

그런데 현 강호에 무려 세 명이라니.

천마는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말이 새로 실감이 되었다. 아무래도 모든 무림 세력이 서로의 절기를 공유하면서 과거보다 무력 수준이 상당히 올라왔기 때문인 것 같았다.

“두 번째로는…….”

사각사각.

소진은 철필로 칠판에 글을 썼다.

「 링가드 」

“가디언의 총사령관이야. 여기서 가디언이란 수호자란 뜻이야.”

소진은 잠시 천마의 반응을 살핀 뒤, 말을 이었다.

“스톤 골렘, 가고일, 영원히 죽지 않는 자들. 리치왕의 봉인을 지키는 자들이지.”

“죽지 않는 자면 언데드 아니야?”

“죽었다가 되살아난 언데드와는 달라. 이것들은 무기물, 가만두면 수천 년을 존재하는 바위 같은 것들이야.”

“아. 그런 차이인가.”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들에 대해선 정확히 모르지만 소진의 분류는 알기 쉬웠다.

기억해 보면 당시 천마신교를 침입했던 놈들 중에 날아다니는 거체 또한 있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거대 박쥐 인간 같은 놈.

“세 번째는 이놈이야.”

「 메피스토 」

“어? 그놈은…….”

천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난번에 죽인 네크로맨서가 떠들던 이름.

놀란 얼굴을 보고 소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네크로맨서들의 수장. 어둠의 군주라고도 해. 키는 무려 1장에 달하고 온몸에 근육이 가득한, 시뻘건 육괴.”

‘그놈이다!’

천마는 그제야 메피스토가 누군지 기억을 해 냈다.

리치왕과 싸울 당시 계속 마법으로 자신의 발을 묶어 대던 자.

그놈이 이제 보니, 세상 모든 네크로맨서들을 통솔하는 놈이라니.

“마지막으로…….”

소진이 철필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 아락취 」

그리고 돌아서는 순간 이번엔 천마가 대답했다.

“고리눈에 녹색 피부를 가진 놈. 도끼를 들고 있는 그놈의 얼굴엔 길게 뻗은 송곳니가 있었지.”

“이건 아네?”

소진이 갸웃했다. 그래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리치왕과 4대 수호장에 대해서는 대격변의 날과 던전 탐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바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것을 모르는 이한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인 것이다.

“그놈이 4대 수호장의 마지막이야?”

“맞아. 그가 그린스킨(Green Skin)들의 수장이야.”

“그린스킨이 뭐야?”

천마가 갸웃하자 소진이 한숨을 쉬었다. 대체 1학년 수업 중에 기억하는 게 뭐 있냐는 투로.

“피부가 초록색인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불러. 대개 전쟁에 대한 욕구를 가진 난폭한 피조물, 오크와 고블린, 트롤 등을 총칭하는 단어지. 개중에는 인간에 가까운 지능을 가진 자들이 있어.”

소진은 돼지 머리의 오크와 추악한 몰골의 고블린, 그리고 죽여도 되살아나는 트롤에 대해 설명을 추가적으로 했다.

한참을 설명하자 천마는 간단히 정의했다.

“지능을 가진 몬스터란 말이군?”

“그렇게 생각하면 편할 거야. 하나의 개체수로는 위협적이지 않지만 만만히 보면 안 돼. 그들이 모이면 웬만한 데스나이트 못지않은 힘을 가져. 더욱이 샤먼 같은 주술사나, 오거 같은 엄청난 놈들도 있거든.”

무림 고수가 아닌 이상, 오크란 종족은 만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군집 생활을 하며, 전쟁에 대한 욕구가 가득 찬 놈들이다.

강호인이라면 몰라도 민간인들 수준에서는 재앙이 따로 없었다.

그린스킨 중의 최약체라 불리는 고블린조차, 크기나 힘이 작아도 교활한 녀석들로 알려져 있다.

하물며 그중에는 비상한 지능을 가진 수장, 로드가 있고, 또 샤먼이 있었다. 이런 놈들은 무림 고수라 해도 상대하기 버겁다고 했다.

“가만. 그런 놈들 중에서 내단이 있는 놈이 있어?”

“뭐?”

소진이 갸웃했지만 천마는 막힌 길의 돌파구를 찾은 듯 벌떡 일어났다.

“우두머리. 똑똑한 놈들. 영물. 그런 놈들은 보통 내단이 있잖아. 보통 허접한 놈들과 다른, 싱싱한 내단이.”

“드, 드물지만 나온다고는 해. 그게 왜…….”

“역시! 그럼 그 무리 중에 덩치가 크고 민첩하며 힘이 센 놈이 누구지?”

천마의 물음에 이한의 눈을 껌벅였다.

“오거(Ogre)야. 오거가 제일 강해. 육상 몬스터의 제왕이라고 하니까.”

스윽스윽.

소진이 간단하게 칠판에 그림을 그려 보였다.

체구는 1장에서 2장, 팔뚝 두께만 두 척에 달하는 근육덩어리.

피부는 두꺼워 창검이 뚫지 못하고, 미약하지만 화염에 대한 내성까지 가진 괴물이다.

“오거, 좋아. 그 오거에 내단이 있다. 이 말이지.”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영문 모를 눈빛을 보이는 소진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그놈 잡으려면 어디로 가면 돼?”

소진은 이젠 기가 막힌 얼굴이 되었다.

오거, 최소 위험등급 10급에서 11급 사이의 몬스터. 그놈을 잡겠다고 혼자 들뜬 것도 어이없지만, 그걸 자신에게 묻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몰라? 뭐, 그럼 우선 잡아 보면 알게 되겠지.”

“너희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때, 또 하나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

돌아보니 육중한 체구,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승려가 눈에 들어왔다.

“신성한 수업 시간을 빼먹고 말이야.”

부반장 방만.

반 안에 들어온 그는 소진과 이한을 향해 씩씩대며 말했다.

“너희 둘, 퇴학당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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