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37화 (38/310)

37화. 소림의 3형제 (3)

뇌천벽은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가 자리한 곳은 교직원 건물 3층 학무부(學務部).

뇌천벽은 늘 자정이 될 때쯤에 출근하여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교두님!”

때마침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을 활짝 여는 이가 있었다.

체육학 교관 중 하나인 임유(林流).

그는 수업을 따로 하지 않고 뇌천벽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뇌 교두님, 소문 들으셨습니까?”

뇌천벽이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그리고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표정으로 모른다고 반문하는 듯했다.

“아, 그것이…….”

임유는 조심스럽게 뇌천벽에게 다가갔다. 아마도 누가 엿들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으로 보였다.

“정말인가?”

얘기를 전해 들은 뇌천벽의 눈이 커졌다.

전부 다 듣고서도 믿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확실합니다. 새벽부터 실전학과 교관들이 용의자를 찾기 위해 데몬즈 루인 던전 주변을 샅샅이 조사했답니다.”

“허어.”

뇌천벽의 얼굴이 굳었다.

천무학관의 최고 교두 제운비가 이런 실수를 할 줄은 상상도 못 한 것이다.

“그런데도 발견을 못했다?”

“예. 아직 얼굴을 본 자가 없답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하하, 하하하하!”

임유는 방 안이 떠나갈 듯 웃어 댔다.

문밖을 지나는 사람이 들을 정도로 쩌렁쩌렁 울렸다.

제운비와 뇌천벽.

천무학관을 대표하는 자타 공인의 실력자들로, 둘을 따르는 교관 수만 해도 백여 명에 이른다.

학관 내 정식 교관 수는 300여 명이니 실질적으로 천무학관을 대표하는 자들은 제운비와 뇌천벽이었다.

하여 수석 교관이라는 임유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소리가 너무 크네.”

웃음소리가 계속 이어지자, 뇌천벽이 가볍게 입을 열었다.

임유는 흠칫 놀라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예? 아, 예. 죄송합니다.”

딸각.

그는 슬며시 찻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한 모금 쭉, 마신 뒤 말을 이었다.

“내 자네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어찌 되었든 천무학관이 망신을 당한 일이야. 괜히 그릇 작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단 말일세.”

“아, 생각이 짧았습니다.”

“생각은 깊었네. 행동이 아쉬운 게지.”

“아… 옙.”

뇌천벽은 임유에게 주의를 준 후, 잠시 상념에 잠겼다.

그라고 어찌 임유의 맘을 모를까.

최근 들어 학관의 우수한 교관들이 너무 한쪽으로, 정확히는 제운비 교두에게 쏠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전국에 세워진 수십 개의 학관.

그곳의 교육 과정을 모두 이수한 4학년 학관생들은 졸업 후, 성적순으로 원하는 학관을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먼저 조교로서 2년간의 수행을 거친 다음 ‘교관’에 도전할 자격이 주어진다.

물론 성적만 된다고 해서 임용이 되는 건 아니다.

좋은 선생 아래서 좋은 제자가 나오는 법.

학관에서 가장 엄격하고 난이도 높은 시험을 거쳐야 한다.

천무학관은 중원 전체의 학관 중에서 한 손에 꼽히는 곳.

정파 중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이라, 당연히 전국의 우수한 타 학관생들이 지원을 하곤 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엄격한 조교 선발 시험을 통과한 그들의 선택이 죄다 제운비 쪽이라니.

물론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천무학관 내 최강의 교두가 제운비였으니까.

“뭐. 어쨌든 일은 벌어졌으니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제운비 교두의 실패는 실패. 이제껏 방향을 잡고 있다가 흔들리는 아이들이 있을 걸세.”

“예. 이제껏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4학년들을 선별하겠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임유가 즉각 말을 받았다.

아무리 전국의 타 학관생 중 뛰어난 자들이 지원한다고 하나, 천무학관의 학관생에 비할 순 없다.

천무학관은 말 그대로 전국을 대표하는 학관이다.

수업 내용, 실전, 시험, 교두 등 모든 면에서 일류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학관생의 수준도 타 학관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자들이었다.

“다만 아쉬운 건 4학년 수석인 남궁호는 포섭이 힘들 듯합니다.”

임유의 말에 뇌천벽은 짐작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소천군이 제운비 밑에 있었지.”

방계 쪽 인물이긴 하나, 남소천군은 남궁세가의 사람이다.

혈연이라는 강한 끈이 있는 이상, 제운비 교두를 두고 자신들 쪽으로 지원하기 어려울 터.

거기서 뇌천벽에게 마침 또 하나의 인물이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 들어온 흑객이란 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 그게… 아무래도…….”

임유는 대답을 주저했다.

그러자 뇌천벽은 눈살을 찌푸렸다.

“뭘 거리끼는 게냐? 마교라고 해도 이미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 뭣하면 일단 포섭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상황을 봐서 나중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

“알겠습니다.”

“가만 보자. 이럴 게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 책장에 꽂혀 있는 수업 일지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임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4학년이 아닌 2학년 수업 일지를 펼친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왜 2학년 수업 일지를…….”

“4학년 학관생들은 이미 자기가 갈 길을 정해 두지. 재목을 키워 본 과로 오게 하려면 2학년부터 키우는 게 맞다.”

“아, 생각해 보니 그게 더 옳겠군요.”

“3반이로군. 지금 2학년 체육학 수업은 어느 교관이 하고 있지?”

“심상천 교관입니다.”

“괜찮은 인물들은 있나?”

“운소령과 서문영이 있습니다.”

“오. 수석들이로군.”

뇌천벽의 표정이 흥미롭게 변했다.

모를 리가 없었다.

한 명은 전체 수석, 또 하나는 무과 수석이 아닌가.

그 정도의 인재라면 직접 자신이 나서서 키워 볼 만했다.

“같이 가지.”

뇌천벽이 수업 일지를 책장에 넣고선 몸을 돌렸다.

임유는 정말 오랜만에 수업을 직접 참관하는 그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 * *

방만의 얼굴에 가득한 것은 혐오감이었다.

몸 약한 소진은 그렇다 쳐도, 멀쩡한 이한까지 교실에 있는 것을 본 순간, 그는 까닭 모를 분노가 확 치밀어 올랐다.

천무학관이 어떤 곳인가.

매년 수천 명의 지원자가 몰리고, 그중에서 엄선된 소수의 인원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탁월한 재능이 없는 이상,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는 무인들이 부지기수다.

-사형, 저 대신 소림의 이름을 빛내 주십시오.

그중에는 소림도, 그 속가제자들도 있었다.

오고 싶어도 자격이 되지 않아 마음을 접어야 했던 동기들. 그들의 안타까워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정갈하게 몸을 단련하는 수업을 멋대로 빼고,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 거지? 다른 학관생 소지품이라도 뒤지고 있었나?”

“바, 방만… 왜 그래?”

그 노기등등한 모습에 소진은 파랗게 질렸다.

가끔 꼬장꼬장한 모습을 보이긴 해도, 그래도 방만은 어디까지나 소림의 제자다. 선후배를 엄격히 따지고, 성실과 단련을 목표로 하는 체육인.

그가 이토록 노골적인 분노를 표하는 것은 드물었다.

“아아, 저놈이 부반장이란 거였지.”

“저놈이 부반장?”

히죽거리며 말하는 이한을 보며 방만은 더욱 분노가 치솟았다.

“네 말대로 수업 들어가 주지. 자, 됐냐?”

“멈춰.”

드르륵. 턱.

자리를 일어나 나가려던 이한을, 방만이 막아섰다.

“뭐야?”

“물었을 터다. 다른 학관생의 소지품. 뒤졌나, 안 뒤졌나.”

“…….”

“아니, 말할 필요 없다.”

울끈불끈.

이마에 핏발까지 세우며 따져 묻는 방만.

그는 이미 심사를 굳힌 듯했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불쾌감에 가득 차 귀가 꽉 막힌 상태였다.

“이 시간부로 너희 둘, 기부금 입학생들의 퇴학을 요청하겠다.”

“바, 방만! 아니야. 우린…….”

“마침 잘됐군.”

소진이 당황했지만, 이한은 오히려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이번 시간이 체육 시간이지?”

“…무슨 소리야?”

“어이 땡중, 따라와라. 너는 좀 맞아야겠다.”

* * *

“뇌천벽 교두께서 직접 행차하시고. 무슨 이유가 있으십니까?”

체관실 2층으로 걸어오는 뇌천벽을 향해 민머리 중년인이 예를 표했다.

그를 본 뇌천벽은 대놓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놈은 왜 여기 있는 게야?’

말 많은 중늙은이.

천무학관 무협학 교두인 지공대사(智空師太)에 대한 그의 솔직한 평가였다.

그런 그가 자신이 관리하는 체단실에 왜 나와 있는 것인가.

아니, 그전에 여기에 왜 왔는지는 자신이 물어야 할 게 아닌가?

“반갑습니다. 지공대사님.”

“오. 임유구만. 잘 지냈는가?”

때마침 임유가 불쑥 끼어들자, 지공은 반갑게 그를 맞았다.

하지만 반가운 임유와 달리 뇌천벽의 무미건조한 질문이 이어졌다.

“지공 교두께서 무슨 일로 여기 오신 겁니까?”

“아, 글쎄 좋은 날씨에 한적히 길을 걷다 보니 이곳에 도착했지 뭡니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눈앞의 인재들도 볼 겸 해서 잠시 앉아 있었습니다.”

‘소림 아이들을 보러 온 것이겠지.’

뇌천벽은 상황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지공은 소림 출신답게, 소림사 학관생들을 유독 챙겼다.

같은 불도 출신인 것도 있지만, 실상은 다른 학문에 비해 무협학 교관들의 수가 부족한 이유 때문이리라.

하니, 소림 출신 제자들이라도 인정에 호소해 미리 확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터.

“그런데 마침 재미난 일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재미난 일이라니요?”

뇌천벽 교두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였다.

“학관생 사이에서 비무가 열린 것 같습니다.”

“…비무라니요?”

뇌천벽은 그제야 체단실 1층 중앙으로 고개를 돌렸다.

임시 비무대가 설치된 곳엔 두 명의 학관생들이 양쪽에 한 발짝씩 올라와 있었고, 주변엔 관생들이 원을 그리며 빙 둘러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호오, 한 명은 소림 출신인가요?”

흘깃 쳐다보던 임유가 입을 열었다.

사실, 굳이 예리한 눈썰미가 필요하진 않았다.

민머리에 학의 복장, 그 위에 또다시 장포를 입은 학관생은 소림 출신밖에 없지 않은가.

“예. 누군지 몰라도 아주 불쌍하게 되었지요. 비무 상대가 하필 천하의 소림이라니… 흠. 크흠.”

‘천하는 얼어 죽을.’

뇌천벽은 그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임유를 돌아보며 물었다.

“두 관생들의 이름은 뭐지?”

사실 그는 2학년 학관생들의 비무 따윈에는 관심이 없었다.

혹여 그들 중에 서문영이 있지 않을까 물어본 것이다.

운소령은 여인이니 이미 아닌 것을 알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임유는 겨드랑이에 끼워 뒀던 두루마기를 슥 펼쳤다. 그리고 용모파기와 이름을 확인하더니 곧장 대답했다.

“한 명은 방만, 또 다른 아이는…….”

그는 약간 의아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말을 이었다.

“…이한이라고 합니다.”

* * *

“올라와라.”

개인 집무실에서 쉬고 있던 심상천은 비무를 하겠다고 찾아온 학관생들을 보며 급히 몸을 일으켰다.

2학년 학관생 중에 처음으로 시작하는 비무.

그는 따분하던 일상에 그제야 활기를 되찾은 듯 밝아져 있었다.

투욱. 툭.

그의 지시에, 학관생 두 명이 올라왔다.

동시에 비무대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관생들의 수군거림은 더욱 커졌다.

“과연, 몇 수나 버틸까?”

특히 흥미롭게 바라보던 양미가 입을 열었다.

“3초. 그것도 많이 쳐 준 거야. 저런 형편 없는 녀석이 뭘 하겠어.”

말을 받은 당무련은 확신했다.

그녀가 생각하기로 이한이란 아이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 그래서 수준이 떨어지는 아이였다.

특히 1학년 때는 주목은커녕, 학관 자리를 채우는 정도의 별 볼 일 없는 아이였다.

오히려 2학년에 올라오자마자 저리 행동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될 정도였으니.

“…섣부른 판단은 좋지 않아.”

“뭐?”

그런데 그녀의 신경을 자극하는 여인이 있었다.

다름 아닌, 운소령이었다.

“뭐든지 선입견은 자신에게 도움되지 않아.”

“그럼 너는 이한이 방윤을 이기기라도 한다는 거야?”

“이기겠다고 말하는 게 아냐. 선입견은 좋지 않다라는 거야.”

“하…….”

당무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속에서 뭔가 올라왔지만 그녀는 급히 눌러 담았다.

‘정말 관심 있는 거 아냐?’

여인의 직감으로 그리 말하고 있었다.

웬만한 일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는 그녀가, 무슨 일인지 이번에는 비무대를 보고 있었으니까.

‘하긴. 내가 화낼 일은 아니지.’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굳이 운소령과 싸울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이한이 설치면 설칠수록 더 흥분할 녀석이 저기 옆에 있지 않은가.

“이한은 될 것 같아?”

언규(彦規)는 옆에 서 있는 서문영을 향해 물었다.

평소 반 학관생에게 관심이 많은 그는, 이번 비무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보나 마나 밑천이 드러나겠지.”

서문영은 볼 것 없다는 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주변에 그를 따르던 아이들이 배시시 웃어 댔다.

“그래도 백무룡을 한 방에 보냈다고 소문이 있잖아? 그놈이 아직도 학관에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사실인 것 같은데…….”

때마침 학관생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종천도(宗天都)였다.

종남파 출신의 사내로 운소령이나 서문영만큼은 아니지만 1학년 때 꽤 우수한 성적을 거둔 자였다.

이들 무리 중 서문영 다음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청년이었다.

“별 볼 일 없는 놈 쓰러뜨린 게, 뭐 대단하다고.”

“하긴. 너라면 그리 말할 수 있지.”

그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난 이한에게 한 표 건다.”

“…뭐?”

“봐. 저리 자신감이 있어 보이잖아. 그게 왠지 끌리는군.”

그의 말대로였다.

비무대에 선 이한은 너무도 여유로워 보였다.

결코 긴장 따윈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중에 부끄러워할 짓은 하지 마라.”

“그건 그때고.”

별거 아닌 듯 가뿐히 말을 넘겨 버리자, 서문영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종천도는 그런 그의 시선을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넘겼다.

‘어떡하지.’

한편, 주변 학관생들과 조금 떨어져 있던 소진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사실, 요 주변의 소문을 듣기는 했다.

이한이 직접 백무룡을 쓰러뜨렸다고.

-내가 다 때려눕혀 줄 테니까. 너는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어라.

‘저 아이들은 네가 맘에 안 드는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염주 굴리는 땡중이, 나와라. 한판 붙자.”

이 한마디로 곧장 비무가 성사되어 버렸으니까.

* * *

“비무의 규칙은 간단하다. 상대가 항복을 외치거나 정신을 잃는 것.”

그는 두 명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살수는 최대한 거두어라. 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해도 내가 막을 테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겠지. 자, 그럼. 시작해라!”

그의 외침에 방만은 내공을 끌어올렸다.

천무학관 내 천마의 공식 첫 비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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