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비무 (1)
‘화경의 고수라… 그것도 둘.’
비무대에 올라선 천마의 신경은 온통 2층에 앉은 교두들에게 향해 있었다.
사실, 이곳에 왔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2층에서 지켜보고 있던 늙은 중이 보통 교두들과는 다르다는 것.
그러다 또 한 명이 나타났다.
늙은 땡중만큼이나 강한 녀석이라.
‘천마학관의 교두라… 과연 어느 정도일까?’
천마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제껏 만난 교관들의 실력이야 굳이 말할 가치가 없는 수준이었다.
고작해야 초절정.
심지어 몬스터학 하청청 교두라는 녀석 또한 화경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녀석들은 좀 다르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매우 안정적이라는 것.
그 말은 기(氣)를 갈무리할 수 있는 화경의 고수라는 것을 말한다.
‘땡중보다 옆에 있는 놈이 더 강한 것 같은데?’
그리고 둘 중 평범한 중년인으로 보이는 자가 더 강해 보였다.
아니, 훨씬 더.
단순히 기운뿐만 아니라, 눈에 서린 기광이 뭔가 조금 특별했다.
환골탈태를 거친 놈들이 보이는 기운처럼.
“이봐. 이제 와서 겁을 집어먹은 건 아니겠지?”
천마가 멍하니 서 있는 가운데, 맞은편에 선 방만이 입을 열었다.
자신만만하던 상대가 침묵하자,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무르는 건 안 돼. 모두가 보고 있다.”
방만은 이한이 겁을 집어먹었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 자신을 도발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얼어붙어 있는 모습이 보였으니까.
그래서 더 화가 났다.
그동안 자신들을 도발한 것들도 생각났으니까.
“아 그래.”
“……?”
그런데 갑자기 천마가 그에게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미처 몰랐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우리 비무 중이었지?”
“이익.”
빠득.
반사적으로 방만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적당히 상대하며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던 생각이었는데 이것으로 그는 길을 정했다.
초반에 압도적으로 끝내 버릴 것을.
“너의 어리석음을…….”
하단전에서 끌어올리는 내기를 두 팔 끝에 밀어 올리고.
소림사에서 수련했던 역근경을 기반으로 한, 회전각을 펼질 준비를 끝마쳤다.
“몸소 깨닫게 해 주마!”
외침과 함께 방만은 자리에서 도약했다.
* * *
“이거 참. 아까운 학관생 하나 잃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공대사는 비무의 규칙을 알리는 교관의 목소리를 듣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짐짓 안타까운 목소리였지만 표정 속에는 왠지 모를 미묘한 감정이 들어 있었다.
“잃다니요?”
임유가 운을 떼자, 반사적으로 뇌천벽이 그를 노려봤다.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놈에게 먹이를 준 거에 대한, 분노였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지공대사는 자랑이 가득한 미소로 설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시겠지만, 소림에는 역근경이란 것이 있습니다. 신체를 단련시키는 무공인데 본 파에서는 다섯 살부터 이 수련을 시키지요.”
“…….”
“그러니 성인이 되면 다른 문파들과 달리 정신이 올곧고 매우 단단한 신체를 가지게 되는 겁니다. 이는 보통의 학관생과 다른 소림사 출신들이 가진 특출한 능력입니다.”
뇌천벽이 예상대로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나무망치로 두들기고, 모래주머니로 때리고 등, 굳이 묻지 않아도 될 역근경의 역사부터 읊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시작하는구려.”
다행히 뇌천벽은 화제를 전환할 수 있었다.
교관의 구호와 함께, 두 학관생이 비무가 시작되었다.
“뭐, 굳이 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공대사는 여전히 자신감에 차 있었다.
미처 자랑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해 입가에 미소가 슬며시 번져 있었다.
“3반의 방만, 그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방윤, 방호와 함께 나름 본 파에서도 나름 촉망받는 아이들이었지요. 당연히 1학년 수준도 훌륭했었고요. 결과는 이미 정해져…….”
그때였다.
“아아아아악!”
쿵.
연무장 위에서 터져 나오는 묵직한 소리가 지공대사의 신경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그가 목도한 장면.
방만이라 떠들던 학관생이 자신들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쿵.
의자에 부딪치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확인해 보지 않아도, 정신을 잃었다는 건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
“…….”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둘은 말이 없었다.
어이없는 상황에 둘은 그저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아까…….”
먼저 슬쩍 운을 떼는 뇌천벽.
그는 지공대사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역근… 뭐라 했었소?”
“…….”
지공대사은 대답이 없었다.
“소림사 출신들만이 가진 그 특출한 그 무엇이…….”
“크으으으음.”
그저 강한 신음.
그리고 그는 쓰러진 방만을 데리고 자리를 급히 떴다.
하지만 귀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뒷모습은 숨길 수가 없었다.
* * *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한 방에 나가떨어진 거 아냐?!”
비무대 주위는 혼란, 경악, 충격 같은 감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중 몇몇은 아직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조금 전 상황을 떠올리고 있었다.
“깨닫게 해 주마아---아아악!”
방만은 외침과 함께 자리에서 도약했다.
그리고 이어진 거대한 울림.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는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숨 한 번 몰아쉬기도 전에 싸움이 끝나 버린 것이다.
‘이거 야단났다!’
아이들의 놀람과 달리, 방만을 보던 천마는 다른 의미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볍게 툭 치려던 것이 갑자기 상대가 달려들어 예상보다 힘이 더 실렸기 때문일까.
그래도 그렇지 주먹 한 방에 저렇게 쓰러질 줄은 그로서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죽은 건… 아니겠지?’
혹여나 천무학관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걱정하던 와중에 상대가 움직였다.
덜덜덜.
저만치 날아가 바닥에 처박힌 방만이 발목을 가늘게 흔드는 모습을 본 것이다.
“아, 살아 있네.”
굳었던 표정이 그제야 밝아지던 천마였다.
한편, 주변 분위기는 충격을 넘어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언가 출신인 언규가 느끼는 건 상상 이상이었다.
움직임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이다.
“방금 어떻게 된 건지 본 사람 있어?”
그는 자신이 본 것을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보며 물었다.
학관생들 모두가 대답이 없었다.
그럴 법했다.
지금 이한이 보인 움직임은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빨랐으니까.
“서문영, 넌 봤어?”
언규가 그를 지목해 묻자, 주변 아이들의 시선도 그에게 쏠렸다.
하지만 서문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부릅뜬 눈으로 천마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
‘너무나 빨랐다.’
서문영은 눈앞의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방만이 뭐라고 내뱉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
그냥 한 발짝 크게 뛰어나가며 주먹을 날렸을 뿐인데, 5장(15m)의 거리가 한순간에 좁혀졌다.
‘아이템인가?’
그렇다면 정상적인 방법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어떠한 신법을 쓴다고 해도, 저런 식으로 빠르게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
“뭔지 몰라도. 이겼네?”
옆에 있던 종천도는 피식 웃었다.
서문영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낯빛이 어두워진 것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어떻게 한 거지?”
다른 쪽에 떨어져 있던 무리, 당무련이 물었다.
딱히 누굴 지칭하고 물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으레 당연한 듯 한 학관생을 바라보았다.
학관생들의 시선을 받은 운소령은,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공간을 밀어서.”
“뭐라고?”
“공간을… 공간을 밀어서 날려 버렸다고?”
“……?!”
학관생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공간을 밀어서 날린다는 말이 잠시 이해가 안 된 것이다.
“권풍을 썼다는 말이구나.”
양씨세가인 양미가 간단히 정의를 내렸다.
권풍이라면 사실 그다지 놀라운 건 아니다.
상위권 학관생들은 곧장 주먹이나 검 끝에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별로 관심도 못 받던 이한이란 아이가 그걸 사용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거리를 그러면 어떻게 좁힌 거야? 신법을 쓴 거야?”
“거기까진 몰라.”
운소령 역시 당황스러웠다.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방만의 지척까지 다가갔고. 그리고 쓰러뜨렸다.
아니, 사실 그가 쓴 것은 권풍이라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공간을 밀었다.
그것이 그녀가 본 전부였다.
“아이템을 쓴 거겠지.”
당무련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연한 거 아냐? 저 이한이란 아이가 저리 빨리 움직일 수 있겠어?”
“하긴.”
“맞아. 그건 그래.”
그 말에 학관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에게는 그편이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 편했다.
그건 유일하게 이한의 동작을 본 운소령조차도 그랬다.
* * *
“인정 못 한다!”
부반장이 쓰러진 뒤, 버럭 소리를 지르며 연무장으로 올라온 학관생.
결국 반장 방윤이 나선 것이다.
“비겁한 녀석! 아이템을 쓰고 이기다니!”
그 역시도 사제인 방윤이 쓰러진 걸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랬기에 더 확신했다.
이건 자신의 능력이 아닌, 어떤 특정한 물건에 힘을 받은 것이라고.
“아이템?”
천마가 되묻자 방윤이 노성을 토해 냈다.
“숨기려 하지 마라! 여기 있는 학관생들이 다 보았다. 네놈의 능력으로 어찌 방만을 이길 수 있단 말이냐.”
“허… 참.”
천마는 머리를 긁적였다.
적당히 힘을 쓴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들에겐 힘의 차이가 커 보이는 듯했다.
“쓰지 않았다.”
그때였다.
난처해진 천마 앞에 교관이 나타나며 중재했다.
“예? 그게 무슨…….”
“아이템이 아니다. 그저 실력이지.”
“…교관님.”
“더는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어떻게, 넌 비무 하겠느냐?”
“…….”
교관의 말에 방윤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이템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어떻게 저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확인해 주마!’
그는 고심하는 듯 서 있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좋다. 바로 시작하라.”
그의 외침에 천마의 두 번째 비무가 시작되었다.
* * *
“…이한이라고 했지?”
2층에 앉아 있던 뇌천벽의 표정이 굳어졌다. 임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 아이에 대해 한번 알아보게.”
“…예? 왜 그러시는지.”
“…….”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보자 임유가 고개를 숙였다. 봐도 모르겠냐란 표정이었다.
“조금 전, 저 아이의 움직임. 그건 2학년 학관생을 뛰어넘었다. 지공대사가 창피를 당한 게 우연은 아니란 말일세.”
“…설마. 너무 지나친 추측 아닙니까?”
“못 믿겠으면 한 번 더 보게.”
“…….”
“이번엔 확실히 알게 되겠지.”
비무가 시작되었지만, 방윤은 천마를 노려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선 그는 노림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적당히 할 필요는 있겠어.’
천마 역시 고심 중이었다.
나름 힘을 뺀 공격이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게 만들어 버렸다.
뒤쪽에서 입을 쩌억 벌리는 소진의 표정을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단순한 도약이라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 안에는 천마군림보의 묘리가 숨겨져 있었다.
발바닥에 내공을 발산하는 수법이, 중원의 신법과는 전혀 운용법이 다를 터.
자신의 움직임에 당연히 의아할 수 있었다.
‘그래, 그게 좋겠군.’
천마는 작전을 바꿨다.
자신의 움직임이 아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면, 그걸 쓰지 않으면 되지 않은가.
여기 딱 서서 쓰러뜨리면 해결될 일.
“뭐 하는가?”
방윤이 물었다.
갑자기 이한이 오른손을 내밀더니 자신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무슨 행동을 하는지 의아한 것이다.
“이번엔 좀 더 확실하게 하려고.”
“…무슨 말인가?”
천마의 괴이한 행동은 방윤뿐만 학관생들, 심지어 뇌천벽의 시선도 잡아끌었다.
천마는 그런 시선을 받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가 학관에서 배운 무공이니, 너도 알 수 있을 거다.”
“……?”
“아니, 너는 모를 리가 없지. 소림의 무공이었으니.”
“…무슨?”
천마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미동도 않은 상태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맞아 보면 알아.”
“…뭐?!”
그리고 그게 방윤이 내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뻑!
눈앞에 뭔가 번쩍이나 싶더니.
“컥!”
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너무도 쉽게 저만치 튕겨 나간 것이다.
쿠쿠쿵!
심지어. 그건 벽까지 부서뜨려 버렸다.
“……?”
“……!”
“헉!”
학관생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건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격산타우(隔山打牛)……?”
임유가 놀란 얼굴로 읊조렸다. 그러자 뇌천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저 허공을 때려 십 장 넘게 떨어진 상대를 밀어냈다.”
격산타우.
소림의 발경법 중 하나로, 산을 통해서 소를 친다는 이름이 붙은 이것은 어떤 대상에 힘을 가해 그 뒤에 대상에게 타격을 하는 수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허공을 때려 쓰러뜨리는 것은 이미 2학년 학관생들의 상식을 벗어나는 방식이 아닌가.
“보고도 모르겠는가. 빨리 움직이게. 그리고…….”
뇌천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리를 뜨면서 이전의 말을 언급하는 것뿐이었다.
“우리 체육학과로 데려와야 한다는 걸 잊지 말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