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비무 (2)
2학년 3반은 난리가 났다.
1학년 때만 해도 비리비리하던 이한.
숨죽이고 눈치만 보던 기부금 입학생. 상단 출신이라 셈이 좀 능하고, 강자 앞에서 알아서 기는 녀석이 엄청난 무위를 선보인 것이다.
“봤어? 그거?”
“봤다. 대포알처럼 튕겨 나갔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그간 천성이 무인인 학관생들은 은근히 그를 멸시했다.
한데, 봄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이놈이 미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수업을 수시로 빼먹고, 태도가 불량해지고, 서슴없이 나대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학관생들은 그러려니 했었다.
-부모가 몬스터에게 죽고, 집안은 궤멸당했다.
큰 충격은 사람을 눈 뒤집히게도 하니까.
하지만.
-어이. 백무룡이 이한한테 당했다는데?
-풋.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사람이 눈 뒤집힌다고, 없던 무예가 생기는 건 아니다.
학급에서 일진 놀이를 하던 백무룡이 이한에게 털렸다는 말이 돌 때, 학관생들은 웃었다.
백무룡과 그 똘마니 둘이 휴학계를 낼 때, 고개를 갸웃하며 주화입마라도 결렸겠거니, 하고 여겼다.
하지만 오늘 체육 수업에서, 이한은 소림 무승을 쓰러뜨렸다.
그것도 단 한 수에.
“급성장한 건가? 벽이라도 넘은 거야?”
“말도 안 돼. 그게 그렇게 쉬울 리가.”
“집안이 망했다잖아. 어쩌면 그 때문인 거 아냐?”
5교시를 앞두고 대부분 비무에 대한 얘기뿐이었다.
이들 중 누군가는 이한의 가문의 모든 재산을 털어서 자식에게 대법을 썼다는 그럴싸한 얘기도 꺼냈다.
이한이었기에.
이한이었기 때문에 직접 비무를 보고도 믿지 않는 것이다.
“척 봐도 사술을 쓴 거야.”
언규가 말했다.
“글쎄. 사술이든 아이템이든 이긴 건 확실하지. 체육 교관이 보고 있었고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종천도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이었다.
사술이든 임기응변이든, 소림 무승을 일격에 튕겨내는 일격이라면, 그것도 실력이다.
가문이 정사지간에 속했기에, 그는 다른 이들보다 태세 전환이 빨랐다.
거기다 한 가지 더.
싸움 붙이는 것을 좋아했다.
“어때? 천하의 서문영은 이길 수 있겠어?”
쫘아악.
주변의 아이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아졌다.
같이 어울려 다니는 이의 도발. 서문영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너, 시비 거는 거냐.”
“워, 워, 설마. 난 그저 학관생들 대부분이 이한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말이야.”
서문영이 적의를 드러내자, 종천도는 느긋이 받아 냈다.
“솔직히 나도 못 봤거든. 방만이 어떻게 당했는지. 그래서 묻는 거야. 서문세가 소가주는 이한이 어떻게 하는지 봤는가 해서.”
“…….”
서문영은 침묵했다.
무슨 생각인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내 종천도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곧 5교시에 무공학 수행평가가 있을 거다.”
“……?”
“거기서 그놈과의 실력 차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 주지.”
“오.”
“역시 서문영.”
그의 무리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환호했다.
드르륵. 탁.
하지만 정작 서문영은 기분이 나빠졌는지 자리를 거세게 박차고 나가 버렸다.
1학년 내내 무과 수석의 자리를 다투던 그에게, 이한은 비교 대상이 되는 것조차 기분 나쁜 상대였으니까.
‘크크. 자존심은 상했나 보군.’
종천도는 그런 반응이 오히려 재밌는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람을 움직이기 가장 쉬운 방법은 분노다.
정사지간에서 노련하게 줄 타는 가문의 입지는, 그 후계자에게도 이어져 있었다.
박쥐 짓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눈치로 봐서는 서문영도 못 본 것 같은데… 이제껏 떨거지였던 이한을 상대로 뭘 얼마나 보여 줄까?’
서문영의 그릇이 얼마나 될지.
혹은 이한의 실력이 급상승한 이유가 무엇일지.
어느 쪽이든 재미있고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그는 모처럼 반에 불어닥친 바람을, 어떻게 탈지 흥미롭게 기다렸다.
“그런데, 이한은 어디에 있어? 같이 붙어 다니는 놈도 안 보이고.”
옆에 학관생 하나의 질문에 그는 시선을 돌렸다.
그의 말대로 자리에는 이한과 소진이 없었다.
“뭐, 매점 갔나 보지.”
5교시. 무공학 수업이 곧이다. 종천도는 수업 준비를 하며 간단히 말했다.
* * *
천무학관 별관.
천무학관 본관 옆, 건물에 위치하는 이곳은 학관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공간 중 하나다.
단순히 음식만 파는 곳이 아닌, 교재부터 시작해 무기, 잡화점, 아이템도 구입이 가능하다.
물론 시중에서 파는 상등급품은 없고, 고만고만한 물건들이 대다수다.
이곳은 언제나 이용할 수 있지만, 혹시 모를 분란을 막기 위해, 학년을 층마다 배분했다.
1학년은 1층, 2학년은 2층, 이런 식이다.
“이한, 왜 여기 이러고 있어?”
“…….”
“이한?”
구석진 곳에 앉은 이한은 주문했던 음식을 먹고 있었다.
소진이 몇 번을 부르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뭐가?”
“곧 수업 시간이라고. 이러다가 늦는데…….”
“좀 늦으면 어떠냐? 그보다 이거 참 맛있는데? 쩝쩝.”
소진이 보기엔 이상했지만, 천마 딴에는 최대한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세상 많이 변했구나.’
예전의 그의 삶은, 그저 싸우고, 쟁취하고, 수련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자신의 벽을 넘어 성장하고, 더 강해진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독적인 즐거움을 주었다. 그런데.
‘무슨 음식들이 하나같이 살살 녹냐?’
어느새부턴가, 생의 다른 즐거움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특히 먹을 것에서 그랬다. 고기의 기름진 맛. 과자의 달콤한 맛. 짭조름하고 매콤한 양념의 맛.
‘이거, 몸이 바뀌어서 회춘해서 그런가?’
자신의 지난 인생이 너무 무미건조하지 않았던가.
“이한, 무공학 시험은 특히 늦으면 안 돼. 거기다 첫 수업에는 수행평가를 내준단 말이야.”
“수행평가? 그건 뭔데?”
천마는 머리를 음식에 처박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한 조를 이뤄서 몬스터를 잡는 거. 그걸로 반 학기 점수가 결정되는 거야.”
“그깟 놈들 잡는 데 우르르 몰려다니면서까지 해야 하나.”
“당연하지! 보통 몬스터들이 아니라니까. 수행평가 하다가 죽은 학관생들도 있다고.”
“그거야 덜떨어진 애들이라 그런 거고.”
쩝쩝.
천마는 손에서 음식을 놓지를 않았다.
이렇게 보니 대식가도 이런 대식가가 없다.
거의 10인분을 혼자 다 먹어 치우는 게 아닌가?
“그보다 넌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오리 다리를 집어 든 천마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물었다.
“뭘?”
“지금 그 실력 갖추고 어떻게 살 거냐고.”
“…….”
소진은 턱 하고 말문이 막혔다.
그 실력이라니. 같이 반에서 나란히 바닥을 치던 이한에게 들을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바닥을 치던 이한은 오늘 실력을 보였다. 소림승을 한 수에 패퇴시킴으로써.
그 일격을 소진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노력해야지. 뭐.”
“노력으로 안 되면? 간혹 시험 같은 거 치르다가 죽는 애들 있다며?”
“…….”
소진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이한이 죽는다는 말을 하는 너무나 태연스럽게 해서가 아니었다.
그 말에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소진은 정말 운이 좋았다.
천무학관에 들어온 것도. 그리고 유급 없이 2학년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정말 일대의 행운이 아니었던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 반해 천무학관을 다니던 이한은 몰라보게 강해져 있었다.
그래서 묻고 싶었다.
어떻게 강해졌는지. 아니, 어떻게 하면 그처럼 강해질지.
“어차피 넌 무공 재질도 없고, 근골도 약해. 거기다 삼음절맥… 그냥 포기하는 게 좋다.”
“…….”
물론 천마인 이한은 거리낌 없이 상처를 냈다.
‘나쁜 자식!’ 하는 말이 목까지 치밀어 오를 때 이한의 뒷말이 이어졌다.
“죽어라고 노력하고, 벌모세수 하는 기연을 만나 봐야 화경쯤 될 테니까. 그러면 포기하는 게 좋지.”
“너… 뭐? 화경?”
“그래. 고작해야 제 몸 하나 간수하는 별것 없는 경지. 딱, 그 수준이다.”
“제 몸 하나…….”
소진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화경이라면 손발이 일수일체처럼 움직인다는 경지다.
모래알처럼 많은 현 무림인 중에 도달한 이들은 고작 서른여 명.
물론 비공식으로는 훨씬 더 많다고 하지만 그래 봤자 백여 명 수준이다.
모든 학관생이 선망하는 꿈의 경지가 바로 그것이 아닌가.
“거기다 마법이란 것도 할 줄 모르는 것 같고… 너, 잘하는 게 뭐 있냐?”
“나? 글쎄…….”
소진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들보다 책을 좀 더 많이 봤달까…….”
“얼마나 봤는데?”
“모르겠어. 그냥 이것저것…….”
“잡다한 건 좀 외워 놨겠군.”
“뭐, 그런 거지…….”
툭.
천마는 들고 있던 오리 다리를 내려놓고 물었다.
“그럼, 아이템에 대해서는 좀 알겠네?”
“…어느 정도는.”
“그래. 그거라도 열심히 외우고 다녀라. 그럼 내가 상황 봐서 데리고 다녀 줄게.”
“……?”
“보니까 말이야. 이 세상에 신병이기란 게 워낙 많이 있는 것 같더군. 사전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 어떻게 쓰는지, 그런 걸 알면 유용하겠단 말이지. 물론, 네 녀석이 쓸모가 있을경우에 한해서겠지만.”
“…열심히 해 볼게.”
소진은 사실 외우는 것, 분석하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2학년으로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그쪽에서만은 최고 성적을 거두지 않았는가.
“다 먹었다. 가자, 수업 들으러.”
“어, 어!”
천마가 일어나자, 소진도 같이 움직였다.
대화 중 이해되지 않는 얘길 들어도 그는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혹시 그와 있다 보면 자신도 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 * *
“저 녀석인가?”
천무학관 어느 3층.
학의를 입은 짧은 머리의 사내가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3학년 2반 문평(雯平).
교내 활동하는 3학년 중 꽤 유명한 인물로 학년 내 비검대(秘劍隊)라는 서클(circle)의 장을 맡은 장본인이기도 했다.
“예, 형님. 맞습니다. 저 녀석이 저희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백무룡이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뒤에는 학우 두 명이 서 있었다.
“명색이 비검대 소속이라는 놈들이… 쯧쯧쯧.”
벽에 기댄 20대 후반의 청년이 백무룡과 아이들에게 혀를 차며 바라봤다.
비검대 2인자. 하운(下雲)이란 자였다.
2반 안은 교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2학년과 달리 3학년 수업은 4교시뿐이며, 그 이후 수업은 자율에 맡겨진다.
“그나저나, 문평. 어떻게 할 거야?”
하운의 물음에 문평은 피식 웃었다.
“어떡하긴. 요즘 할 것도 없는데… 한번 어울려 줘야지.”
“실력이 괜찮으면 우리 비검대에 넣으려고?”
하운이 피식 웃자 문평은 말없이 웃었다.
그러고는 잠시 침묵하고 있는 백무룡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는 재밌는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 * *
2학년 3반의 5교시 수업은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시작했다.
뒤늦게 들어온 무공학 교두 최일(崔一)은 15분째 수업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학관생들은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이론보다는 오로지 실전 위주라 알려진 수업.
오로지 수행평가로 시험을 보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다지 너희들에게 관심이 없다.”
한참을 가만히 보고 있던 그는, 수업 뒷줄에서 딴청을 피우던 학관생들을 보고서 말했다.
드르륵.
뒤늦게 들어오는 천마와 소진을 보고서도 그는 별달리 언급이 없었다.
“수업의 태도. 그런 건 이 수업에 아무런 상관 없다.”
극도의 무관심. 깡마른 얼굴에 길게 흐른 염소수염은, 더욱 그의 얼굴을 냉막하게 보이게 했다.
“그리고 너희들의 성적 또한 관심이 없다.”
술렁술렁.
학관생들 사이에 소리 죽인 술렁임이 퍼져 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여전히 무심했다.
“강한 놈은 살아남을 테고, 약한 놈은 죽을 테니까. 목표한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 이것으로 1학기 모든 수업을 대체할 생각이다.”
수행평가,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이것만으로 대처하겠다는 선언.
그는 칠판에 무언가 쓰기 시작했다.
-가고일 사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