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카르삭 왕릉 (1)
“가고일?”
“설마, 저것들을 잡으라고?”
웅성웅성.
칠판의 글을 본 학관생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가고일.
형상은 제각각이나, 대부분 박쥐처럼 날개가 달렸고, 인육을 씹어 먹을 수 있는 강한 턱과 마법을 겸비한 몬스터다.
물리 내성과 마법 내성을 둘 다 갖춘 괴물.
보통 위험 등급 5등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였다.
딱. 따악. 딱.
무공학 교두는 수군거림이 끝나기 전에 그 밑에 하나를 더 적어 냈다.
-아미산(峨嵋山) 카르삭 왕릉(King Karsack's Tomb).
“일 년 전. 이 주변을 조사하던 우리 교관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의 죽음도 여럿 발견되었고.”
최일은 학관생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토벌 지역으로 분류되긴 하나, 위험 등급 4급 이상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왕릉의 중심부, 무덤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도록. 즉, 적당히 적을 선별하여 죽이고 빠져나와야 한다. 생존과 판단 역시 중요 시험 덕목.”
처억.
그는 다시 칠판에 ‘7일’라는 글자를 적었다.
“남은 기한이다. 그때까지 기타 다른 수업은 없을 것이다. 내가 다른 교두들에게 다 말해 둔 사항이니.”
또한 그는 뒷말을 덧붙였다.
“조를 짜고 움직여라. 너희들로서는 혼자서 상대하긴 무리일 테니. 다만 잡은 몬스터의 등급에 인원수를 고려할 것이다. 그래야 공정한 싸움이 될 테니. 여기까지.”
툭.
그것이 끝이었다.
황당하게도 최일은 철필을 내려놓고 그길로 문을 나가 버린 것이다.
“대체 누굴 잡으라는 거야?”
“조를 마음대로 짜라는 건가?”
학관생들의 혼란스러운 잡음이 이어졌다.
가디언의 종류는 다양하다.
카르삭 왕릉이라는 그곳에 대체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마당에, 어떤 식으로 그들의 제압한단 말인가.
“이것부터가 시험이군.”
하지만 혼란은 잠시였다.
학관생들 중 눈치 빠른 이는 조를 짜기 위해, 혹은 미리 움직이기 위해 저마다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너, 나랑하자.”
“우리 같이 할래?”
그렇게 바쁘게 손을 잡는 혼란 속에서도 서문영은 슬며시 웃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이군.’
몬스터 퇴치는 단순히 무력만 있어야 되는 게 아니다.
전투적인 센스, 상황 판단, 적의 분석이 있어야 비로소 적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가고일.
몸속에 지닌 핵을 깨뜨리지 않으면, 파괴 불가능한 것들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서문영은 자신이 있었다.
비전으로 내려온 침투경이면, 단단한 가고일의 외부를 뚫고 단번에 핵을 부술 수 있다.
또한 이제껏 서문세가의 날개 아래 모여든 무인들, 탐색자들이 있다. 이제껏 식객으로 머물던 그들은 모처럼 밥값을 할 것이다.
아마도 다른 학관생들도 그걸 알고 있을 터였다.
자신과 조를 짜자고 몰려드는 이유는 그 때문.
‘이제야 반응이 오는군.’
은연중 자신에게 몰려든 시선을 만끽하던 서문영의 표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요 며칠 그의 신경을 건드리는 학관생 때문이었다.
“그냥 흔하게 널린 몬스터 잡으러 가는 거 아냐?”
“……!”
돌아본 그곳엔 이미 여럿에게 둘러싸인 한 학관생이 있었다.
이한이었다.
“조까지 짤 필요가 없다니까 그러네.”
한둘이 아니었다. 무려 대여섯 명이 그 녀석 주위로 몰려든 것이다.
“이한…….”
소진은 어두운 표정으로 천마를 바라보았다.
너무도 확신에 찬 목소리가 오히려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미친놈…….’
서문영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소림 출신 놈들 몇 놈을 손봐 줬다고 우쭐대는 녀석이 얼마나 가겠는가.
그러던 순간 그가 흠칫했다.
뒤이어진 대화가 무시하려고 해도 그의 신경을 자극한 것이다.
“소진, 가고일 중에 젤 센 놈이 누구야?”
단순한 발언이었지만, 학관 학생들의 시선이 전부 모여들었다.
이건 일종의 도발이었다.
수행평가를 하는 학관생들을 향한.
“어. 어…….”
소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질문의 답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걸 말하면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에이션트 가고일.”
“……?”
“……!”
그런데 대답이 있었다.
창가 쪽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운소령이었다.
“가고일의 왕이라 불려. 실제로 5년 전에, 그 몬스터를 봤다는 사람도 있고.”
에이션트 가고일.
가고일 앞에 고대(古代)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이 녀석은 가디언 중에서도 최상급 계열의 몬스터다.
다만 그 녀석에 대해서는 말이 나뉜다.
기존 가고일보다 몇 배나 크다는 설도 있었고, 원래 몸은 작은데 전투 시에 원하는 대로 몸 크기를 늘릴 수 있다고도 했다.
아마도 대부분 전부 기밀 정보로 취급되기 때문이리라.
“좋아. 이번엔 그놈으로 정했다.”
하지만 천마는 너무도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리고 너무 빤히 자신을 쳐다보는 반 아이들의 시선을 느끼자.
“알았어. 알았어.”
그것이 황당해하는 시선인지도 모른 채, 못 이기는 척 소진을 가리켰다.
“야, 굳이 나랑 조를 하고 싶으면 이놈에게 이름 달아 놔.”
“…….”
“자, 됐지 그럼?”
당연하다는 천마의 자신감이.
오히려 거만한 반감과 위화감을 없애 버리고 있었다.
* * *
타타타탁.
한 사내의 손놀림에 각종 야채들이 삽시간에 썰려 나갔다.
볶음 요리를 위해 그가 직접 사 온 싱싱한 재료들이었다.
“…그래서 카르삭의 왕릉에 가야 한단 말입니까?”
흑객은 천마의 얘기를 주의깊게 들은 후, 다시금 되물었다.
어느새 그에겐 음식을 요리하면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활 중 하나였다.
“그렇다니까. 무공학인가? 그게 1학기 모든 점수에 반영된다고… 하더라고.”
“뭐, 어떻습니까. 따분한 학관에만 있지 말고, 이참에 주변도 돌아보고 하면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애송이들 주렁주렁 달고 가기 귀찮아서 그러지.”
“아, 혼자 가는 게 아니었습니까?”
투욱.
흑객은 볶음 요리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러자 화려한 십육 첩 밥상이 완성되었다.
“그렇다니까. 학기 점수인가 뭔가가 중요한가 보더라고. 어떻게든 이 몸과 같이 가고 싶어 하는……. 흠, 언제 봐도 음식 솜씨는 훌륭하군.”
잘 구워진 고기를 먹은 천마가 흡족한 얼굴을 했다.
흑객은 이제 새삼스러울 것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놓은 음식들이 거의 다 줄어들 때쯤.
“한데, 언제 가시는 겁니까?”
“계십니까?”
흑객의 대답은 문 앞의 가냘픈 목소리가 대신 답해 주었다.
“에잉. 막상 가려니 귀찮군.”
천마는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쪽에 내걸린 학의를 주섬주섬 챙겨 입던 그가 말했다.
“내 다녀올 테니. 수련 게을리 하지 말거라. 잔혈마공은 그리 간단히 익혀지는 게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흑객은 깍듯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천마는 그런 그를 잠시 눈여겨 보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아무리 길들지 않는 요괴라 할지라도, 강대한 힘 앞에 순응하는 법. 결국 네가 강해지는 길이 그를 굴복시키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길로 천마는 나갔다.
흑객은 잠시 뒷모습을 바라본 뒤, 다시금 왼팔을 바라보았다.
천마가 말한 뱀파이어 이빨은 그의 피부 안에서 흐물흐물 움직였다 잠잠해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듯이.
* * *
“뭐야? 이 녀석들이 여기 왜 있어?”
방문을 열고 나온 천마는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생각지도 못한 여인 둘이 나란히 서 있었던 것이다.
“그게… 저 둘이 너와 같은 조로 움직이고 싶대.”
소진도 난감했던지 머리를 긁적였다.
두 여인은 운소령과 필리아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녀들이 천마와 같은 조로 들어온 것이다.
본시 2학년 3반은 세 명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반장인 방윤과 1학년 무과 수석이었던 서문영.
그리고 1학년 전체 수석을 했던 재녀 운소령.
앞의 두 남자가 세력을 모으는 동안, 운소령은 갑자기 누구도 예상 못 한 말을 했다.
-난 이한하고 할 생각이야. 필리아, 너도 같이 갈래?
-어?
안 그래도 최근 이한의 돌출 행동 때문에 학급의 시선이 몰려 있었던 터다.
그렇다곤 해도, 학년 수석에 가까운 운소령이 이한처럼 한미한 녀석을 고를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자. 잠깐만! 우리하고 안 가고?
-사정이 있어서. 미안해.
덕분에 당황한 것은 당무련이었다.
평소 운소령 옆에서 호가호위하며 사람들을 움직이던 그녀는, 갑자기 끈 떨어진 신세가 되어 이를 박박 갈았다.
어쨌든 그리하여 3반은 네 개의 조로 편성이 되었다.
우선 반장 방윤을 중심으로 한, 다섯.
서문영 중심으로는 열 명의 인원.
그리고 당무련을 중심으로 다섯 명.
천마를 중심으로 한 넷이 모인 것이다.
“…이렇게 된 거야.”
소진은 설명하면서 운소령의 눈치를 보았다.
서문영과 학년 수석을 다투는 데다, 명가의 후예인 운소령. 예쁘고 총명하긴 하지만 감히 엄두도 나지 않아 소진으로서는 쳐다보지도 못한 소녀.
그녀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한과 움직이려 하는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물어봐도 대답해 주지도 않았고.
“어… 그러니까 너희들 이름이…….”
“제갈세가의 운소령이야. 여기는 필리아. 같은 반이니까 이름 정도는 기억해 두지?”
한 가지 더 의아한 것은 그녀 옆의 필리아였다.
항상 수업 시간에 조용한, 요족 출신인 걸 빼면 학급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소녀.
운소령이 이끌어서 끌려온 게 분명한 새하얀 피부의 학관생이 약간 고개를 숙였다.
“이, 이한, 난 필리아라고 해. 자, 잘 부탁해요.”
소극적인 성격답게 반존대에 대답도 작은 목소리였다.
부끄럼을 타서인지 말하면서도 눈을 이리저리 돌렸다.
“고작 3명이라니. 복을 아주 완벽히 걷어차는군.”
대부분 반 아이들이 자신을 선택하리라 여겼던 천마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많이 달고 가면 귀찮아지기만 할 테니. 이게 더 낫겠군.”
그리고 다시 소진을 바라봤다.
“위치가 어디냐?”
“잠깐만.”
소진은 반색하며 길 반대 방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멀리서 다닥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사두마차가 등장했다.
어이없다는 천마의 표정이 드러났고.
“자, 모두 탑시다!”
소진은 그런 천마의 등을 밀며, 마차 위에 올랐다.
* * *
“크킁. 크크킁.”
마차에 들어오자마자, 천마는 곯아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소진은 필기한 뭔가를 열심히 읽고 있었고, 필리아는 두 손을 모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운소령은 천마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어젯밤 증조할머니와 나눴던 대화가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그 아이를 지켜보라고 하신 거죠?”
전체 수석으로 학관에 들어갈 때에도 ‘수고했다’는 말이 다였던 제갈유진.
1학년 수석을 했을 때에도 ‘고생했구나’라는 말이 다였다.
그런 제갈유진의 반응이 섭섭하기도 했으나, 원래 그녀의 성격이 그러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방년의 나이가 되기도 전에 초절정에 올랐던, 가문이 나은 수재.
역사상 맹의 최고의 군사라 일컬으며, 리그웨더에게 조언할 정도의 여인.
그런 제갈유진이 이 정도로 관심을 표할 줄은 그녀도 몰랐다.
“소령아, 너는 리치왕이 왜 깊은 잠에 들었는 줄 아느냐?”
그런 자신의 섭섭한 마음을 아는지, 그녀는 뭔가를 알려 주려 했다.
“맹에선 곤륜파가 그들의 일격을 막고, 남은 잔존 세력을 마교가 막았다고 천명했다. 하나, 그건 잘못된 정보다. 실상은 곤륜파 무인들은 그의 4대 수호장 중 한 명도 죽이지 못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아니, 들은 적이 있었지만, 완전히 다르게 이해했던 얘기다.
곤륜파에게 피해를 입고, 마교와 공멸했다고 배웠으니까.
“마교가 막은 건 확실하나, 절대적인 존재가 수만의 몬스터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그 위대한 진격을 막았다는 건 나 역시 의문이다. 그래서 생각해 봤지. 낭설로만 치부되던 마교의 절대자, 혹은 그의 후예가 최후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고…….”
절대자.
혹은 소수의 강력한 집단.
그녀는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을 말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40년이 흘렀다. 그리고 완전 수 12의 제곱인 144년까지 겨우 4년이 남았지. 그들은 분명 깨어날 거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끔찍한 참상이 펼쳐질 거야.”
그 말에 운소령은 말했다.
우리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과거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현경의 고수가 셋이나 있다고.
“맹에서 그리 얘기하더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만, 나는 알 수 있단다. 그들만으로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란 것을.”
운소령은 알았다.
제갈유진은 맹과 학관이 아닌.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다시 물을게요. 왜 이한이죠?”
운소령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갈유진이 그 마교의 절대자와 이어진 끈을 찾는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왜 이한인가.
그 아이가 마교의 후예인지 어떤지도 모르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왜 하고많은 마교의 잔당 중에서 유독 이한을 콕 집어 신경 쓰고 있는 것인가.
제갈유진, 살아 있는 역사.
140년 전의 기적적인 생존자이자, 중원을 내려다보는 수많은 첩보 단체의 수장.
그녀가 신경 쓰기엔, 천무학관 2학년 이한, 기부금 입학생 따윈 너무 하찮고 작은 존재이지 않은가.
“그들의 힘의 근원은 혼돈. 흑마법이 어둠이라면 마교는 어둠을 빨아들이는 자들이다. 돌아가신 맹주께서 임종 직전에 했던 말이야.”
“커커컹. 커어어엉.”
운소령은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한을 눈에 담고는 고개를 저었다.
‘잘못 생각하신 거야.’
마교는 멸문했다.
또한, 근근이 살아 있는 마인들 역시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맹과 학관에 존재하는 수많은 무인들.
과거와는 압도적으로 다른 고수들이 존재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아이의 발언이, 전전대 맹주께서 하신 말과 일치했는지 모르겠으나, 그저 우연일 것이라 여겼다.
적어도 운소령은 태평하게 코골며 자는, 이 아이는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몇 번이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