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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41화 (42/310)

41화. 카르삭 왕릉 (2)

마차는 반나절을 달린 뒤, 이름 모를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오던 내내 졸던 천마가 잠에서 깼고.

한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던 소진은 그제야 한쪽 짐칸에 책을 올려놓았다.

필리아도 더는 중얼거리지 않았다.

운소령은 원래부터 깨어 있었고.

“아함. 잘 잤다.”

마차 밖으로 나온 천마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러다 눈앞에 있던 커다란 건물이 눈에 들어오자 소진을 보며 물었다.

“다 온 거 아니었어?”

“카르삭의 왕릉은 반나절 더 가야 해. 그 전에 만반의 준비부터 하려고.”

소진의 말에 운소령이 건물을 보며 말했다.

“여긴 백화점인데…….”

그들 앞에는 서역식으로 지붕이 뾰족한 7층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뭘로 만들었는지 벽돌은 하얀색이었고, 소가백화점이라는 금빛 찬란한 간판을 달고 있었다.

“맞아. 농기구부터 아이템까지. 모든 물건이 진열된 곳. 그래서 백화점(百貨店)이야.”

소진이 건물을 보면서 웃었다. 그 웃음에는 어딘가 모를 으쓱함,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설마. 소 소진, 소가백화점이……?”

뭔가 눈치챈 듯 필리아의 얼굴에는 놀람이 가득했다.

소진은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 음. 뭐, 그래.”

“와…….”

“너, 정말 부자구나.”

이번엔 운소령도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백화점은 이 넓은 사천에도 딱 3곳만 있었기 때문이다.

‘학급에서는 너무 소심해 보여서 생각도 못 했는데… 하긴 기부금 입학이었지.’

천무학관.

중원의 유수히 많은 학관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

그 학관에 재능 대신 기부금으로 들어올 정도면, 어지간히 부유한 걸로는 안 된다.

일견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물론.

“상당히 요사스럽네.”

또 다른 기부 입학 녀석의 반응은 시원찮았지만.

* * *

“들어와. 들어와. 이쪽으로.”

일행들이 바닥에 쫘악 깔린 붉은 포석을 밟으며 백화점에 들어서자, 엇 하고 점원 하나가 달려와 고개를 조아린다.

“소 공자님 아니십니까!”

“아, 오랜만이야.”

응대는 자연스러웠다.

그러자, 점원들은 화다닥 달려 나와 고개를 숙인다. 인사 한마디 안 듣고도 굉장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빳빳하게 깃을 세운 한 노인이 일행을 승강기로 안내했다.

“와아아…….”

사람을 위로 올리는 승강기를 처음 타 보는 필리아는 그저 감탄을 연발했다.

운소령 역시 꽤나 놀란 표정이었다.

편하게 층을 올라가는 이런 승강기는 웬만한 백화점에서도 보기 힘들었으니까.

일행이 3층으로 도착하자, 직원이 나와 고개를 숙였다.

“던전 물품관에 오신 것을 확연합니다. 어? 소 공자님.”

“탐색자의 배낭 1형, 2형 좀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우선 둘러볼게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직원이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가고, 필리아와 운소령은 주변을 돌아보며 또다시 감탄을 터뜨렸다.

거대한 공간 속, 어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화려한 물품들.

벽에 진열된 곳곳에는 아이템 쓰임을 적은 팻말이 박혀 있었고,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에는 용이 아로새겨져 있었고.

촛불을 얼마나 쓴 건지, 건물 안인데도 대낮처럼 밝았다.

‘정말 다양하게 많구나.’

우측부터 찬찬히 둘러보던 운소령은 내심 놀랐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은 ‘패스파인더’라 적힌 곳.

길잡이란 직업에 맞게 랜턴, 로프, 갈고리, 나침판, 가늠자 등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건 패스파인더 쪽에 왜 있는 거야?”

소진이 다가오자, 운소령이 물었다.

백묵(白墨). 수업 시간에 쓰이는 철필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표식용이야. 자칫 조난당할 경우 후속 구출대에게 방향을 알리는 역할도 할 거야.”

“그럼 이건 뭐야? 지도가 있어?”

펄럭.

“선행자들의 견문을 조합한 거야…….”

“그럼 이번 수행평가에 도움은 되겠네?”

“응.”

선행자란 먼저 굴혈을 탐사하러 들어갔다가 살아 나온 이들이다. 누군가는 아이템을 위해, 누군가는 경험을 위해, 자진해서 죽음을 탐사하는 이들.

“이건 신기하게 생겼어요.”

필리아가 누런 덩어리를 가리켰다.

굵기는 손가락 두 개쯤 되고 길이는 한 뼘 정도.

“그건 페미컨(Pemmican)이야. 서역의 건량이지.”

이번엔 소진이 아니라 운소령이 답했다.

소진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페미컨. 보기엔 작아도 그거 하나가 하루 치 식량이야.”

잘게 빻은 마른 육포에, 곡식의 가루나 말린 과일 등을 넣어 섞은 후, 이를 지방으로 반죽하고 굳힌 것이다.

“장시간 이동하는 데 편하겠어요.”

확실히 그랬다.

페미컨은 던전 탐사의 필수품으로, 볼품없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고단백, 고지방의 열량이 높은 음식이다.

예전에 장거리 여행이라면 육포나 건량 정도 들고 다니던 무림인에게, 세상이 바뀌면서 더할 나위 없는 대체품이 생긴 것이다.

“이건 화섭자 같은데…….”

운소령이 쇳덩이를 가리키자 소진은 곧장 답했다.

“이건 라이터. 화섭자를 대체할 발화장치지.”

쇳덩이를 들어 윗부분을 잡아당기자, 달칵 하고 반으로 갈라지며 요철이 드러났다.

파르륵.

“오.”

“우와.”

그리고 몇 번 누르더니 바로 자그마한 불이 피어올랐다.

화섭자가 일으키는 불꽃 정도가 아니라 바로 불이 켜진 거다.

“아이템이야?”

운소령도 내심 놀라 물었다.

“아냐, 굴혈에서 출토한 기물을 우리 가문의 장인이 손을 본 거야. 크기도 작고, 언제든 불이 필요할 때 쓸 수 있고. 평소에는 닫아 둬서 안전해.”

운소령은 열심히 설명을 해 대던 소진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기부금 입학이라 했지만, 그 역시 흔한 학관생은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이런 방면에서는 자신보다 월등히 지식이 높음을 인정해야 했다.

“가친께서는, 굴혈에서 얻는 마법 아이템보다, 이런 일상에 쓸 수 있는 기술 제품이 훨씬 가치 있다고 말하셨거든.”

소진의 눈은 무림인, 강호인만이 아닌 평범한 민초들에게 향해 있었다.

쓰임새가 있는 물건들. 중원의 누구든 다 살 수 있는 것들.

무인만이 아닌 일반인도 고객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긴… 궁수들 코너인가요?”

필리아가 옆으로 이동하자, 이번엔 다른 물품들이 나왔다.

석궁, 장궁, 복합궁 등 다양한 활의 몸체와, 활시위, 화살 등의 소모품이 쫙 깔려 있었다.

“넌 마음에 드는 거 있어?”

“으음…….”

필리아는 귀를 쫑긋거리며 한참을 둘러보더니,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가죽 장갑. 그런데 오직 식지와 중지만 보호하는, 반장갑이라 해야 할 장갑이었다.

“이거요. 요즘 손가락을 많이 다쳐서…….”

“아. 활 골무?”

활이 얼마나 강하냐는 활 몸체의 탄성, 장력이 기준이 된다.

하지만 지나치게 강한 장력은, 자칫 궁수의 손가락을 베어 버리기까지 한다.

활 골무는 그런 궁수의 손가락을 보호하는 장비다. 달리 말해, 이걸 쓸 정도면 굉장히 강한 활을 쓴다는 것.

“필리아, 보기보다 힘이 세구나… 장력이 얼마야?”

“벼. 별로 안 돼요. 사십 근 정도…….”

“우와. 들었어? 이한……?”

소진은 여리여리한 소녀가 어마어마한 활을 쓴다는 것에 감탄하다가, 뒤늦게 알아차렸다.

“이한……?”

좀 전까지 옆에 있던 이한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 * *

“음.”

한편 천마는 백화점의 지하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소가백화점에 들어서면서부터 요사스러운 기운을 느꼈다. 바로 몬스터의 기운.

사실, 백화점의 아이템 코너에는 몬스터를 소재로 한 것들이 많았다.

그러니 요사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찜찜하니 확인해 봐야겠다.”

문제는, 이게 단순히 마물 느낌이 아닌, 뭔가 익숙한 개체의 느낌이라는 것.

타박. 타박.

지하 2층

소가백화점은 값비싼 물건을 상층에 두지 않았다.

자칫 도적이 침입해서 창밖으로 달아나면 골치 아프니까.

그래서 값비싼 것일수록, 지하에 두었다.

일단 도적이 침입하면, 백화점의 모든 경비를 물리치기 전에는 나갈 수 없도록.

“이거…….”

스르륵.

천마의 표정이 달라졌다.

익숙하고 불길한 느낌. 그게 갑자기 확! 와닿았다.

“……? 손님? 여긴 외부인을 들이지 않습니다. 돌아가십시오.”

지하 3층의 계단 앞에서, 서역식 복장을 건장한 남성이 손을 내저었다.

체구가 건장하고, 무장을 갖춘 눈에서는 신광이 이글거리는 것이, 천무학관의 4학년쯤 되는 실력이었다.

“어. 일단 안에 좀 보고.”

물론 천마에겐 일초지적도 되지 않는 놈이었지만.

“무슨……!”

파파팟.

한달음에 거리를 좁힌 뒤, 뒷목을 후려친 이한.

아이템의 경비를 서고 있던 남자는, 한 박자 늦게 자리에 쓰러졌다.

-출입 금지. 방문자는 반드시 패찰을 착용할 것.

끼이이익.

팻말을 본체만체 문을 열고 들어온 천마의 시선은 곧장 정면으로 향했다.

검, 창, 도, 온갖 강렬해 보이는 무구들 사이에 그것이 있었다.

허옇고, 불길한 느낌의, 마치 상아(象牙) 같은.

무언가의 뼛조각이.

“저거군.”

익숙하고, 불길한, 계속 자신의 신경을 건드리는 비상한 기운.

살아 있는 생물체도 아닐진대, 이런 기운을 뿜어낸다.

이건 과거, 와이번을 죽였을 때 얻었던 마정석보다 한참이나 높은 성질의 영(靈)이다.

“어디 어디… 저쪽인가?”

눈으로는 보이지 않음에도, 천마의 시선은 한쪽 벽을 향해 있었다.

한때 신마경에 들려 했던 자의 영안(靈眼)은, 이 거대한 상아가 필시 어떤 기운과 교류를 하고 있거나, 했었다는 것을 감지했다.

때르르릉!

‘음?’

전시품에 다가가려 하던 천마의 걸음이 멈췄다.

무언가 경보가 울렸는지, 좌우 네 면의 대각 사이로 문이 열리며, 호위 무사로 보이는 놈들이 나타났다.

“누구냐!”

“감히, 도적질을 하는 놈이 있다니!”

“…잠깐. 소공자님의 일행?”

“일단 절차대로! 잡아서 꿇려!”

덩치 큰 사내 둘.

적당한 체격의 사내 하나와 삐쩍 마른 사내 하나.

총 4명이 위협적인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천마가 대충 훑어보니 앞서, 문앞에 서 있던 놈보다는 좀 더 실력이 있어 보였다.

“있어 봤자 뭐.”

천마는 피식 웃으며 양손을 들었다.

“달라지는 게 있겠나.”

말이 끝나자마자, 손가락을 튕겨 냈다.

탄지신공이다.

검지와 중지를 튕겨, 일격을 날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퍼퍼퍼퍽!

눈 깜짝할 사이 복부에 탄지신공을 맞은 네 사내는 그대로 몸이 굳었고.

어떠한 반항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저벅저벅.

이후, 천마는 전시해 놓은 하얀 화살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앞의 팻말을 유심히 보았다.

-마시(魔矢). 속성 암(暗).

* 촉부터 대까지 전부 뼈로 이루어진 화살. 이치상으로 불가해(不可解).

* 활에, 혹은 쏘아질 당시에 독이나 저주를 담아서 쏘았던 것으로 추정.

“흐음.”

마의 화살. 속성은 암흑.

한데 촉부터 대까지 죄다 뼈로 된 것이란 게 희한했다. 뼈 촉을 쓰는 화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경우 화살대만큼은 나무로 만드니까.

누가 감정했는지 몰라도, 천마와 같은 불길한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다.

“고작 화살 한 대에 익숙한 이 느낌은 대체…….”

채채챙.

천마는 유리로 된 진열장을 부서뜨리며, 하얀 화살에 손을 뻗었다.

“뭐 하는 놈인 건지, 직접 확인해 보지.”

-역상재혼수대법(易常在魂手大法).

혈교의 최상승 술법 중 하나로, 본디 죽은 시체의 혼을 꺼내어, 살아생전의 기억을 불러오는 술법.

보통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수법이라, 이 뭔지 모를 화살에게 통할지 어떨지는 그 역시 알 수 없었다.

‘…….’

처음에는 반응이 없었다.

사이한 기운을 불러와야 하는데, 잘 붙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내공을 높이며 씨름하던 천마의 눈가에.

-크와아아아

뭔가 흐릿하게 잡히기 시작했다.

‘집단이다.’

하지만 술법가의 심력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시야는 여전히 어두웠다.

그럼에도 한 가지, 소리는 또렷이 들렸다.

괴성을 지르는 암흑.

이동하는 것 같았고, 또 어느 순간 다른 무리로, 거기다 소리는 하나로 변했다.

즉, 무리에서 나왔다는 것.

-크와아아아

이번의 비명 소리는 더욱 또렷했다.

다만 이전과는 달리 딱 하나의 소리였다. 아마도 전투 중이거나, 적과의 조우했겠지.

그렇게 점점 소리가 작아지다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해졌다.

그리고 그때였다.

-크오오오오오

한순간 시야가 밝아지며, 수많은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리를 토해 내는 그 무엇과 마주쳤다.

온몸이 시허연 뼈로 된 용을.

“이놈은!”

천마의 눈이 커졌다.

왜 익숙한 기운이었던 건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이놈은 리치왕이 나타나며 타고 온, 뼈로 된 용.

그 기운을 받아 만들어진 화살인 것이다.

-스스스스.

대법은 거기까지였다.

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고, 시야도 사라져 있었다.

더욱이 요사스러운 기운 또한, 완벽하게 지워져 있었다.

“뼛조각끼리 소통하는 건가.”

고작 화살 한 대에 이런 이능이 있다는 게 조금 놀라웠다.

하나,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와이번의 마정석에는 이 정도의 기능은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이거 야단났군. 하필이면…….”

생각지도 못한 걸 본 탓일까.

화살의 기억을 들여다본 천마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더욱이 지금 상황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가는 왕릉에 이런 녀석이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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