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42화 (43/310)

42화. 카르삭 왕릉 (3)

쿠루루루.

아미산. 옛 아미파의 사찰이 자리한 주변에 학관생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천무학관에서 이곳까진 그리 먼 거리가 아닌지라, 말을 타고 출발한 이들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야. 왕릉으로 들어가는 초입 길.”

선두에 있던 언규가 말에서 내리며 지도를 펼쳤다.

그의 옆으로 슬쩍 다가온 종천도가 지도를 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다 온 것 같다.”

둘의 시선은 뒤따라오던 서문영으로 향했다.

그는 주변을 한 번 훑더니, 뒤를 보며 말했다.

“다들 장비는 챙겨 왔겠지?”

“그럼.”

“당연하지.”

자신을 포함한 모두 10명의 학관생들.

3반의 학관생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자신을 중심으로 모인 것이다.

“미리 착용해. 바로 사냥할 테니까.”

사냥할 몬스터는 가고일.

석상인 척, 돌인 척, 위장하고 있다가 기습하는 놈들이다.

하지만 가고일을 잡으러 온 이들에게는 기습이 의미가 없었다.

습성도, 속성도 이미 알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방심해서도 안된다.

마법 내성과 물리 내성을 지닌 가고일이 한꺼번에 몰려나온다면,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

“준비됐으면 가자.”

잠시 후, 서문영이 앞장서자 학관생들은 대열을 갖추며 뒤따라갔다.

점점 거대한 왕릉 주변에 솟아 있는 기둥 탑들이 눈에 들어온다.

스륵.

그리고 커다란 언덕의 입구로 보이는 곳까지 다가갔을 때, 경장 차림의 한 사내가 나타나 막아섰다.

“정지. 이곳은 천무학관의 통제 아래 있다. 너희들은 누구냐?”

스슥. 스슥.

그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느새 이곳 주변을 완전히 포위하고, 삼엄한 기세를 뿜어내는 자들.

그들 뒤로는 <출입 금지>가 적힌 붉은 띠가, 여기저기 둘러쳐 접근을 금하고 있었다.

서문영은 이들 대표로 예를 표했다.

“천무학관 2학년. 서문영이라고 합니다.”

“…아. 너희들이 이번 기수인가? 기다리고 있었다.”

냉엄했던 경장 차림의 사내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이 왕릉은 천무학관이 관리하는 곳이다.

사천 내 신전이나, 왕릉, 던전의 대부분은 학관이 관리를 맡는데 그 이유는 이러했다.

학관과 무림맹이 세워진 후, 구대문파의 힘은 모두 그곳으로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한때는 아미파의 구역이던 아미산. 금남의 구역을 학관 출신의 실전학 교관들이 지키는 상황이었다.

촤라락.

경장 차림의 사내는 한쪽에 비치해 놓은 탁자로 걸어가더니, 책자를 펼치며 말했다.

“여기다 모두 본인 명의를 기록하거라.”

서문영은 기록하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몬스터 사냥의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사망시 학관은 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슥슥슥.

서문영이 기록하고, 종천도도 기록했다.

이후, 언규를 포함해 남은 학관생들도 차례로 자신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사항을 끝내자, 경장 차림의 무사는 명부를 확인했다.

“총원 10명. 음… 그럼 들어가거라. 참고로 왕릉에 들어가는 데는 이 안은 동서남북, 네 방향의 길이 있다. 알고는 있겠지?”

“옙.”

“어디로 갈 예정이냐?”

“남쪽입니다.”

슥슥.

무사가 인명록 옆의 또 하나의 서류에 <남>이라고 기록했다.

이후, 고개를 들어 학관생들을 바라보더니 재차 말을 이었다.

“혹여나 해서 말해 두는데, 왕릉 중심에는 아무것도 없다. 괜히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지 말도록.”

“알고 있습니다.”

서문영은 담담히 대답했다.

이번 던전, 카르삭 왕릉은 사전에 정보가 이미 제공된 곳이다.

공식적으로 선행자와 탐사대는 이미 이 왕릉의 조사를 ‘부분 종료’시켰다.

입구를 기준으로 동, 서, 남, 북, 네 개의 통로가 있는데, 어느 방향으로 이동해도 4개의 작은 광장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 4개의 광장을 통과하면, 의미 모를 벽화로 가득한 한없이 넓은 광장이 있다.

거기엔 왕릉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텅 빈 관짝 하나만 중앙에 놓여 있을 뿐.

그럼에도 주의를 준 건.

예상치 못한 함정이나, 갑작스러운 몬스터 출현 때문이다

‘어차피 마지막 광장은 들어갈 이유도 없다.’

서문영의 목표는, 던전의 중심이 아니라 중간에 지나치게 될 광장이다.

가고일의 출현 빈도는 그곳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4번째까지 들어가면 무조건 우리 조가 이겨.’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일반 석조 가고일. 세 번째 광장에는 강화 가고일.

네 번째에서는 엘리트 가고일이 나온다.

그놈은 위험 등급 6단계이라 알려진 놈이었다.

“준비됐어.”

착. 착.

언규가 말했고, 종천도도 고개를 끄덕였다.

편한 학의를 입던 수업 시간과 달리, 그들은 장갑과 갈고리, 랜턴 등 각종 탐사 장비로 무장해 있었다.

철컹!

그리고 슬쩍 학의 안으로 은빛 갑옷이 드러난 서문명이 발을 내디뎠다.

“가자.”

* * *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서문영 일행과 달리 천마가 탄 마차는 계속 카르삭의 왕릉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다들 딴짓 없이, 소진이 말하는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필리아가 가고일에 대해 알려 달라고 해 왔기 때문이다.

“가고일은… 그러니까 보통 석상으로 위장하고 있는 마수야.”

팔락팔락.

소진은 종이 여러 장을 펼쳐 들었다.

백화점에서 들고 온 몬스터의 모습을 그린 묘사도였다.

“이렇게 반쯤은 인간 형상, 그리고 나머지 반쯤은 여러 짐승을 조합해서 만든 괴물이야. 등에서 뻗은 거대한 날개는 박쥐의 것을 닮았고, 전신에 요동치는 근육은 사자를 닮았어.”

아가리는 늑대.

손발톱은 표범의 그것 같았다.

“발톱이 주 무기겠네요.”

유독 초롱초롱한 눈빛을 띤 필리아가 말했다.

이한을 위해 열심히 설명 중이던 소진은 괜히 다 아는 얘길 꺼낸 게 아닌가 싶어 겸연쩍어 했다.

“맞습니다. 더욱이 엄청난 무게로 내려찍기도 하죠.”

소진은 존대를 해오는 필리아에게 어색하게 예의를 차리며 대답했다.

피부가 돌처럼 단단해, 엔간한 검으로는 이빨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알려진 몬스터.

그래서 까다로웠다.

도검이나 석상보다 경도(硬度)는 훨씬 강해서, 일검에 바위를 베는 기량이 없으면 상처를 줄 수 없다는 것.

“옛말로 하자면 도검불침. 이런 놈들은 보통 물리 내성 몬스터라고 불러. 참고로 독에 내성인 놈도 있고, 화염 내성, 전격 내성, 이런 것들도 있고.”

몬스터 중에 파이어 자이언트 같은 놈들은, 이름부터가 불이 들어간다.

이런 놈은 당연히 불에 대한 내성이 있다. 내성만 있는 게 아니라 불을 끼얹으면 더 강해지기도 한다.

“가고일이 골치 아픈 몬스터인 건, 물리 내성만이 아니라 마법 내성까지 같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모든 마법은 아니고. 3서클 이하의 마법들.”

“아. 맞아.”

운소령의 첨언에 소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파이어 볼트, 윈드 커터 등.

간단하고 즉각 시동이 가능한 마법. 다소 약하지만 이런 마법이야말로 마법사들의 주 공격 방법이다.

약간의 거리만 있으면, 무장한 병사들 수 명에서 수십 명을 박살 낼 수 있는 강력한 기술.

그런데 가고일은 그런 저서클 마법을 전부 씹어 먹는다.

“4서클 이상만 되면 타격을 줄 수 있는 거야?”

필리아가 살짝 손을 들고 질문했다.

“어, 음. 일단 그렇긴 한데……. 필리아 소저, 그쯤 되면 이미 고위 마법사라 불리는 수준입니다.”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자, 소진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외면했다.

“그럼 우리가 잡을 수 있을까요? 인원도 적은데…….”

“어, 음. 첫 번째에서 두 번째 광장까지 진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체계만 잘 짜서 싸우면. 문제는 3단계부터인데……. 위험하면 빨리 나와야지요.”

“그러면 수행평가 점수를 많이 받지 못할 텐데요”

“아, 그렇겠죠? 그럼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겠지만……. 아. 아하하…….”

찰칵. 찰칵.

소진이 불안한 듯 손목에 맨 소형 석궁을 점검했다.

조금 전, 백화점에서 챙긴 물품 중 하나였다.

‘저게 과연 도움이 되기는 할까?’

그런 소진을 보며 운소령은 짧게 웃었다.

가고일을 상대로, 둔기도 아닌 석궁이라니.

본인이 물리 내성이라고 말했으면서 이미 기억도 못 하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겠지.’

무예에 관한 재능은 없다시피 했지만, 그 대신 소진은 각 몬스터의 특성을 정말로 세세하게 알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부잣집 도련님을 챙긴답시고 이것저것 가져온 물품과 아이템도 제법 도움이 될 터.

특히나 딱 한 번, 물리 공격을 막아 준다는 ‘실드’ 마법이 걸린 아이템은 소진 본인보다 훨씬 쓸모가 있었다.

‘3단계 광장까지 간다면…….’

운소령은 자신이 이루고 있는 파티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가고일을 상대로 도검의 예리함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일단 자신은 평소에 쓰던 청강검 대신, 가문에서 특별히 보관하던 마법 검을 청해 받아 왔다

메이스나 모닝스타 같은, 본격적인 둔기는 아니라도, 무기에 기운을 두르면, 돌을 쪼개는 위력은 보일 것이다.

‘필리아도 있으니까.’

여기에 보험 삼아 손을 잡은 소녀. 평소 수업 시간에 거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필리아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운소령은 수업 시간에 필리아가 보인 재능을 잊지 않고 있었다.

바로 마정석의 반응.

엘리샤 교두의 수업 때,

그녀는 불과 대지, 뇌전의 마정석에 감응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이미 마법을 익히고 있지 않다면, 고작 4명이서 조를 짜고 가는 데도 이 정도로 여유로워하진 않을 테니까.

‘문제는 이한인데…….’

뒤이어 시선이 이한을 향했다.

과연 어느 정도의 실력을 보여 줄 것인가.

지난 체육 시간에, 반장과 부반장을 동시에 쓰러뜨린 위용. 그게 우연이 아니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4단계 광장, 엘리트 가고일은 몰라도, 3단계까지의 강화 가고일과는 부딪혀 볼 만할 터.

‘그런데 아까부터 무슨 생각 하는 거지?’

소진이 말할 때도, 자신이 말을 주고받을 때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얘기를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소진.”

그런데 그런 그가 갑자기 소진을 불렀다.

“응 이한.”

“만약, 가고일에게 명령을 하는 놈이 있다면, 그게 누굴까?”

“어? 명령?”

갑작스러운 질문.

의도를 곧장 알지 못한 소진은 눈을 몇 번 껌뻑거리다 말했다.

“마법사겠지. 가고일은 근접 몬스터고, 근접 몬스터를 가디언으로 두는 건 마법사들이니까.”

대개의 던전 보스들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가디언을 둔다.

예컨대 기사 계열, 전사 계열이라면 마법사를, 반대로 마법사나 소환술사의 경우 전사를 부하로 부려, 부족한 전력을 보충한다.

때문에 가고일, 물리 내성에 마법 내성인 근접 몬스터가 호위하는 대상이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마법사다.

“그럼 마법사가 활도 쏘냐?”

“……?”

소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글쎄? 마법사라면 그냥 마법을 쓰지 활을 쓰진 않지 않을까?”

“그럼 활을 쏘는 놈 중에는 없어?”

“…어.”

계속 이상한 질문의 연속이다.

소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길 때, 운소령이 대답했다.

“저격 계열의 오버로드라면 말이 돼.”

이한의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도 운소령은 친절히 답해 주었다.

오버로드.

한 무리의 부대를 통솔하는 수장.

마법사 외에, 가고일 같은 튼튼한 몬스터의 보호가 필요한 직군이라면 저격수가 있다.

독, 혹은 화염이나 뇌전 등의 속성을 가진, 일격필살의 공격력을 지니지만, 자체 방어력이 약해 호위 몬스터의 보호가 필수적인 존재들.

“일정 이상의 수준에 달한 궁사들은, 무인들의 호신강기도 뚫어 버리는 특이한 화살, 혹은 기술을 쓴다고 들었어.”

“호오. 그렇단 말이지.”

천마는 그제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건 왜?”

운소령이 되물었다.

워낙 특이한 아이라 그런지 질문 의도가 궁금한 것이다.

“너희들은 굳이 알 것 없어. 알아도 관여할 수도 없고.”

하지만 이한, 천마는 엉뚱한 같은 소리만 해 댔다.

마지막에 꺼낸 말도.

끝까지 모를 말이었다.

“그놈은 내가 죽일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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