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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43화 (44/310)

43화. 정령술사 (1)

서문영이 들어간 후, 다음에 도착한 자들은 10명의 학관생들이었다.

출발 전, 장비 착용과 함께 자료 조사를 하던 이들은, 이 수행평가가 소수의 인원으로는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봤다.

높은 점수를 위해서는 강력한 가고일을 잡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여 이해관계에 따른 협력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본래 5명이서 움직이려 했던 당무련 일행은 소림승 반장의 무리와 합류하며 10명이 된 상황이었다.

“와, 정말 넓다.”

명의를 접수하고, 광장으로 들어온 양미가 거대한 너비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선행자들이 그린 지도에는, 중심부만 넓은 광장이지 나머지 작은 광장은 스쳐 지나가는 단계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보니 상상외로 넓었다.

공간도 공간이지만, 천고가 하늘만큼 우뚝 솟아 있었다.

카르삭의 왕릉.

그저 가고일들이 나오는 던전이 왜 왕릉이라 불리는지 납득이 가는 크기였다.

“몬스터의 등급은 낮아도, 천무학관이 관리하는 곳이잖아.”

당무련은 약간은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곧 들이닥칠 가고일을 생각하니, 긴장하려 하지 않아도 흥분하는 감정은 숨길 수 없었다.

“저들… 믿어도 될까?”

옆으로 다가온 학관생 옥애(玉愛)가 말했다.

본래 운소령을 조용히 따르는 학우였지만, 운소령이 이한을 선택하자 그녀는 이쪽을 택했다.

“지난번 비무 때문이지?”

당무련은 옥애의 우려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운소령을 따라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었으니까.

“이한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몰라도, 무예란 하루 이틀만에 쌓을 수 있는 게 아니야.”

“…….”

“그리고 설령 이한의 실력이 진짜라 해도, 그 파티는 운소령과 이한, 이렇게 둘이야. 필리아? 그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애를 넣어도 셋. 반면 우리는 열 명.”

잠시 생각하던 옥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무련의 말은 이치에 맞았다. 소진을 아예 전력에 넣지도 않은 것도 동감이었다.

“그 비무 때 무슨 실수를 했는지는 몰라도, 소림은 반장과 부반장. 한 학기 내내 검증된 이들이지. 여기에 나머지 소림승들까지. 전위가 자그마치 다섯이야. 어느 쪽이 유리하겠어?”

전위(前位). 또는 탱커(Tanker).

싸움의 최전선에서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 주는 자들.

이 용어가 알려지게 된 것은 학관이 세워지기 이전부터였다.

대격변 이래로 던전의 몬스터들과 싸우며, 무림인들은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에 체계적으로 파티를 짜는 움직임이 생겼고, 이는 곧 전문적인 분업이 되었다.

던전의 길을 찾아주는 패스파인더.

적의 공격을 최전선에 막는 전위.

집중적으로 적의 목숨을 끊는 딜러.

파티원을 도와주는 힐러 등등.

원래 강호에 없던 신조어가 생겨나고 학관이 세워지자 실전 기술이나 전술 운용은 더욱 체계적으로 변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지금.

학관을 마친 졸업생들의 활약으로, 던전 토벌의 성공률은 대폭 상승했다.

그렇게 옥애가 물러날 때쯤. 앞서 있던 소림승 하나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저기 보이지?”

반장 방윤이었다.

같은 조로 합류했을 때 그는 주도적인 역할을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전방에서 근접전을 벌이는 이상, 시야는 후방에서 제공하는 것이 나았으니까.

자연스레 당무련이 전체를 보고 지시하고, 방윤 및 소림승들은 전위를 맡아 방어를 하는 역할이었다.

“저놈들이구나.”

“네 마리야.”

자신들 위, 천장을 받치고 있던 석재기둥. 그런데 딱 봐도 가고일 현상을 띠고 있었다.

“언제 튀어나올 줄 모르니 대열을 미리 짜 놓는 게 낫겠어.”

“그래. 내가 말할게. 모두 잘 들어! 다들 진형을…….”

“……?”

드득 드득.

왕릉 안에 진동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떨어지는 석조 알갱이를 본 당무련이 미간을 찌푸렸다.

“놈들이 움직인다. 전위들은 전방을 맡아서 막아! 후위는 뒤에서 공격한다!”

촤르르륵!

소림승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메이스라 불리는 서역의 망치, 혹은 모닝스타라 불리는 쇠사슬로 이어진 거대한 철구.

가고일은 기본적으로 날붙이로 상대하기 힘든 놈들이다.

때문에 예리함보다 무겁고 둔한, 대신 상대의 내부까지 충격이 침투할 수 있는 둔기를 들었다.

-끼아아아아!

네 개의 석조 기둥이 움직이자, 학관생들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가고일. 고작 4마리일 뿐이지만, 이들이 날갯짓과 함께 뿜어내는 기세는 매우 흉험했다.

“모두 긴장해.”

당무련 역시 품속에서 한 쌍의 철구를 꺼내 들었다. 그 철구는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다.

촤르륵!

유성추라 부르는, 상대의 움직임을 묶는 기병이다. 평소 쓰던 것보다 무겁고 둔해진 느낌은 있지만, 그녀는 당문의 후예.

암기는 무겁든 가볍든 뭐든 쓸 수 있는 기량이 있었다.

-크르르르.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온몸에서 돌 부스러기를 흘리며 가고일 하나의 눈이 아래로 향했고.

크르르르. 크르르르. 크르르르.

남은 가고일의 고개도 똑같이 움직이자,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학관생들의 눈빛은 더없이 예리해졌다.

“온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쾅! 쾅! 파캉!

한편, 당무련이 막 전투를 시작하고 있다면, 서문영 쪽은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횡으로. 대열을 보고 이동해!”

“발톱에만 눈을 빼앗기지 마! 날개의 움직임을 봐라!”

이들은 1차 광장에 나타난 4마리 가고일을 모두 쓰러뜨리고 통과했다.

하나, 2차 광장은 차원이 달랐다.

공격해 오는 가고일이 무려 14마리나 되었다. 여기에 움직이지 않는 석상은 자그마치 50개.

사방이 험악한 괴물들 천지다. 가고일의 공격을 피하다가, 가만히 서 있는 석상 때문에 지레 놀라기를 여러 번.

“젠장! 아악!”

콰드득!

기어코 한 학관생이 가고일의 앞발에 채여 날아갔다.

방패로 공격을 흘려 낼 생각이었지만, 몇 차례 방어로 인해 균열이 갔고, 주변 석상에 신경이 쏠린 나머지 집중을 잃은 것이다.

“포션을! 포션을 줘!”

“간격을 너무 벌리지 마!”

서문영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비록 숫자가 많다고 하나 고작 석조, 화강암이라 불리는 가고일.

1, 2단계에서 나오는 상대다.

움직이지 않는 가짜 가고일을 신경 쓰지 않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인데, 너무나 쉽게 당하고 있었다.

‘이런 교활한 놈들…….’

자신들은 2학년생.

이론상으로는 이미 극한 상황에서도 이겨 낼 수 있는 훈련을 받는 자들이다.

6마리의 가고일은 원을 그리며 정신없이 공격하고, 8마리의 가고일은 석상들 사이로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전법을 쓰고 있었다.

“종천도, 언규.”

“그래.”

“말해.”

쾅! 쾅! 콰드득!

서문영의 외침에 전면에서 가고일의 공격을 막아 내던 이들이 대답했다.

“뒤를 막아 줘. 내가 돌입한다!”

“뭐라고……?”

종천도와 언규의 표정이 굳어졌다.

차악.

서문영의 시선이 향한 곳은 6마리가 날뛰는 한복판.

일격 일격이 수백 근의 무게를 지닌 강격이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건, 극히 위험해 보였다.

“타아!”

하지만 말릴 새도 없이 서문영은 몸을 날리며 파고들었다.

-가아아아아아!

이들 6마리는 서문영이 다가오자 일제히 흉험한 이빨을 드러냈다. 또한, 그중 한 마리가 그를 향해 달려들기까지 했다.

“크아아---!”

서문영은 멈추지 않았다.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도약하며 그놈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꽈르르릉!

일순, 굉음이 메아리치자, 몬스터고 학관생이고 할 것 없이 모두의 동작이 멈췄다.

뇌전출수(雷電出手)다.

서문세가의 벽력장 중 가장 패도적인 초식이라 불리는 공격이 일으키는 소리.

-가아아아.

가고일이 비명과 함께 축 하고 쓰러졌다.

쿠드득. 쿠드득.

분명 물리 공격 면역이라는 놈이, 육장으로 가한 공격에 더 움직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뇌전출수는 벽력장 중에서도 내가중수법. 가고일의 외피를 넘어 몸속에 있는 핵을 부순 것이다.

-크아아아!

잠시 주춤하던 다섯의 가고일이 일제히 서문영을 향했다.

하지만, 서문영은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원하고 있었다.

“울어라! 뇌전승천도(雷電承天刀)!”

쩌어어어엉!

그의 횡으로 휘두르는 칼날 위에서 뇌전이 몰아쳤다.

천장의 일부 유리가 부서져 나갔고, 그 아래에 번개가 검을 따라 원으로 이동했다.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공격과 함께, 일대에 뇌전의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까아아아악!

번개의 일격을 정통으로 맞은 2마리 가고일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하지만, 서문영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런!’

크그그!

남은 셋은 물러서지 않았다.

분명 충격을 받고 휘청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집요하게 자신에게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서문영이 이를 악물며 재차 내공을 끌어올릴 때였다.

“하앗!”

“찻!”

-까아아악!

때마침 날아온 강맹한 검기(劍氣)가 있었다.

그것은 남은 두 가고일의 몸통, 핵에 정확히 적중했고, 두 마리는 그대로 쓰러졌다.

종천도와 언규가 그를 도운 것이다.

‘쓸모는 있는 놈들이야.’

서문영은 두 청년을 보며 안도의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여전히 가고일과 대치 상황에 있던 학우들을 향해 소리쳤다.

“2학년 3반! 너희들 정신 차려!”

“…….”

“대체 뭐 때문에 겁먹는 거야? 너희들이 기부금 입학생이냐? 제정신만 차리면 충분히 잡을 수 있잖아!!”

“……!”

서문영의 엄한 도발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학관생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처음에는 수치로. 그러나 곧 맹렬한 분노로.

“빌어먹을! 겁을 먹긴 누가!”

“좋-아! 몸 풀렸어. 먹어 봐랏!”

수세에 몰렸던 학우들은. 더는 뒷걸음치지 않았다.

사방에서 기공이 쏟아지고.

-까아아악!

공격을 맞받아치며, 일부는 물러서는 가고일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 * *

다들 몬스터 사냥 와중에 천마의 일행이 도착했다.

다들 바쁘게 가고일 사냥에 바쁜 중에 천마 일행이 도착했다.

입구에서 간단한 명부를 작성한 후, 북쪽의 관문을 택하고 곧장 이리로 온 것이다.

“어, 음. 이게… 이 정도 비율이면…….”

소진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주변을 살펴보기에 바빴다.

지도에 그려진 것보다 더 거대한 광장의 크기.

널찍한 공간에 누군가에 의해 세공된 듯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고, 엄청난 높이의 천고에는 유리로 된 지붕이 자리했다.

특히 좌우에 탑 형상을 한 기둥들은 시선을 뺏을 만큼 웅장해 보였다.

“저놈들이겠네.”

멀찍이 떨어진 천장을 주시하던 천마가 입을 열었다.

다들 대답이 없자 그는 재차 말했다.

“저거 안 보여?”

천마가 손으로 가리켰지만, 당연히 소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운소령도 안력을 돋우어 바라봤을 때쯤, 무엇을 말하는지 깨달았다.

그런데.

“네 마리야. 봤지?”

“네.”

조용히 끄덕이는 필리아.

이한이 알아본 것도 놀라운데, 필리아가 답을 하는 상황.

덕분에 운소령은 약간 혼란스러워졌다.

‘설마 아이템?’

아이템 중에는 시야를 넓히는 것들이 있다. 시야 확장 포션이라든가, 원근의 투구 같은 것들이.

하지만 이한은 물론, 필리아가 오면서 그런 걸 사용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요족 출신은 저런 것도 가능한 건가.’

대격변 이후 어느 날부턴가 중원에 한둘씩 태어나기 시작한 요족.

워낙 신비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니, 몽고의 전사들처럼 매의 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저벅. 저벅.

일각 정도 걸어가자, 시야가 좁은 소진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기둥을 동서남북으로 둘러싼 흉악한 가고일을.

“이, 이거네? 우선 전략을 짜야 하지 않을까? 하, 하하하.”

보자마자 잔뜩 겁에 질린 소진이 말했다.

척 보기에도 흉악한 석상이 넷.

이들이 진짜 가고일이고, 갑자가 덮쳐 온다면 그 위용은 어마어마할 터였다.

“전략은 무슨. 이런 것들 가지고.”

물론 이한은 코웃음만 쳤다.

그리고 필리아를 보며 말했다.

“네가 처리해.”

“어?”

“…네?”

소진을 놀라게 했다.

심지어 필리아 본인도 놀랐다.

운소령만 의미 모를 표정을 짓다가 이내 납득한 얼굴로 끄덕였다.

‘역시 마법사였던가…….’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지금은 그쪽이 제일 가까웠다.

이한이 정말 증조할머니의 말처럼 무언가 있는 자라면, 먼저 알아차렸겠지.

다만, 혼자서 상대하라는 건 좀 의외였다.

물론 본인은 4마리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지만 그건 자신에 한해서다.

“어, 아니, 제가 상대하라고요? 저 네 마리를?”

“언제까지 숨길 거냐?”

“…예?”

진지하게 바라보는 천마.

그 모습에 필리아는 왠지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잠시 멀뚱히 서 있던 그녀가, 조심히 말을 내뱉었다.

“…언제부터 알았어요?”

그때였다.

필리아의 눈빛이 마치 고양이의 눈처럼 번뜩이는 황금빛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요족? 아니, 그와도 달라…….’

놀란 건, 운소령과 소진.

하지만 천마는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얘. 얘들아… 우, 움직인다!”

대화가 이어지던 도중이었다.

소진이 하늘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드드드득. 드드드득.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기둥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듯 가고일이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 대열을 어떻게…….”

소진이 다급하게 말했다. 막상 가고일과 조우한다 생각하니 어떻게 싸울지 감을 잡지 못한 것이다.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에 너무 평온한 자가 있었다.

“그럼 난 저쪽에서 좀 쉬고 있을게.”

“이한!”

소진이 그를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옆에 있던 기둥으로 다가간 천마는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이제 곧 덮쳐 올 가고일을 앞에 두고.

-끼아아아아악!

“대체 너 무슨 생각… 어?”

운소령이 뭐라 말하려다 고개가 홱 돌아갔다.

어디서 들었던, 그 주문이 여기서 나오리라 생각지 못한 광경을 목도한 것이다.

“땅의 기운 노움(Gnoum)은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적은 곧 너희의 적. 다가오는 발걸음을 수렁에 빠뜨려…….”

이건 마법이 아니었다.

마법의 주문은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목소리로 무언가를 부르는 의식은 단 하나.

-끼아아아악!

괴성과 함께 빠른 속도로 수직 낙하하는 가고일. 그들이 덮쳐 오려는 순간 운소령은 보았다.

“심판하라!”

필리아가 손을 높이 들고 가고일들을 향해 외치자.

-구우우우우웅.

갑자기 땅에서 치솟아 오른 진흙 더미가, 가고일들을 삼켜 버리는 모습을.

동시에 운소령의 외침이 광장 안을 흔들었다.

“정령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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