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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56화 (57/310)

56화. 마시(魔矢)의 존재 (1)

“아이템이다!”

“와!”

위험 등급 3등급부터 발생하는 아이템 드랍.

낮은 등급에선 거의 쓸모없는 허접 쓰레기고, 6급 정도 되면 겨우 쓸 만한 게 나온다.

물론 6급이라 해도 생성 확률은 낮다. 특히나 이런 특정 던전에서 계속 생성되는 몬스터가 아이템을 떨굴 확률은 극악에 가깝다.

그런데 그 극악을 헤치고 아이템이 나온 것이다.

“뭐야? 뭔데?”

천마는 슬쩍 틈을 벌려 주고, 소진이 확인하도록 놔두었다. 소가백화점의 후계자는, 떨어진 아이템을 확인하고 입을 떡 벌렸다.

“서, 석궁이야.”

“응? 석궁?”

철컥.

소진은 모두 볼 수 있도록, 아이템을 들어 올렸다.

색은 거무스름하고, 정갈한 윤기를 흘리는 석궁. 재질은 금속이었다. 그런데도 가볍고, 움직임도 매끄러웠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이건 마치…….”

찰칵!

소진은 아이템을 조작해 보며, 자신의 석궁과 비교했다.

형태는 거의 동일. 마치 일부러 따라 만들기라도 한 듯, 크기도 모양도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훨씬 가볍고, 힘이 덜 들어간다는 점. 심지어 구조까지 흡사한, 지금 소진이 가진 석궁의 완벽한 상위 호환이었다.

“이건 소진이 써야겠네.”

“…어?”

필리아의 말에 소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마무리한 소진이 갖는 게 맞아.”

뒤이어 운소령까지 끄덕이자 소진은 입까지 쩌억 벌어졌다.

“저. 정말? 얘들아. 이거 나 가져도 돼?”

“석궁 사수가 있는 파티에서 석궁이 나왔잖아? 두말할 여지가 없지.”

반신반의하는 그에게, 필리아가 최종 결론을 내렸다.

물론 천마는 별다른 관심조차 없었다.

“와. 세상에. 얘들아. 고맙다. 아니지. 나중에 분배할게. 돈이 좋아? 아니면 다른 아이템?”

소진의 입이 함지막 만하게 커졌다.

누구나 무기는 좋은 걸로 쓰고 싶은 법이다.

특히 본인 능력보다 무기에 좌우되는 석궁 사수의 경우, 장비가 아이템이냐 아니냐에 따라 역량 차이가 두드러진다.

“세상에. 이거 진짜. 와. 당장 쏴 보고 싶어! 아니지. 아니야. 일단 본가 감정실에 가서 자세하게 알아보고 나서…….”

“이제 나오는군. 준비들 해.”

헤실헤실 웃으며 정신 차리지 못하는 소진. 그의 귀에 무심한 이한의 목소리가 꽂혔다.

“…어? 준비?”

고개를 들어 보니, 이한은 위를 보고 있었다.

운소령 역시 위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천장의 가고일 그림. 그중에서도 하나.

파괴된 가고일의 잔해였다. 검에 맞고, 마법에 맞아 둘로 쪼개어진.

스르르륵.

그런데 그 그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쪼개진 몸통과 머리가 서로 붙고, 마침내 한 덩어리가 되었다.

드드드득.

그리고 점차 덩치를 키워 나갔다. 합쳐진 채로. 그렇게 하여 그림에서 솟아 나오는 것은.

머리 둘에 팔 넷을 한, 어처구니없게 거대하고 기괴한 그림자였다.

“설마…….”

소진은 눈을 비볐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무슨 아수라도 아니고, 머리도 팔도 다리도 날개도 두 배인 괴물이라니. 이런 게 어디서 튀어나온단 말인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하지만 읽은 적은 있었다. 다른 몬스터의 경우지만.

“트. 트윈헤드?”

벼락을 맞거나, 강대한 마력이 뭉쳤을 때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 삼음절맥의 백과사전은, 비명처럼 말을 내뱉었다.

“두 마리가 하나로 뭉쳐지는 거야! 말도 안 돼! 이건 융합인데!”

“필리아!”

“대지의 벽!”

말도 안 되는 사고가 현실로 나타났다.

운소령은 몸을 낮추며 말했고, 필리아는 급히 정령을 불러냈다.

쿠르르릉!

가진 힘을 모두 밀어 넣어 3겹의 방어벽을 쳤다.

그러기가 무섭게, 흉측한 가고일이 날아들었다.

-가아아아아!

콰드드등!

그리고 어마어마한 충격이 터졌다. 트윈헤드 가고일의 단 일격에 필리아의 1차, 2차 방어벽이 모두 날아갔다.

“컥! 커헉!”

필리아가 울컥 선혈을 토해 냈다.

마나 역류. 지난번에 다스렸던 내상이 다시 발현된 것이다.

-그르르르르릇.

그리고 정령사의 약화는 곧 정령술의 약화. 방벽이 흔들리자 가고일은 바로 입에서 불을 뿜어 댔다.

콰아아악!

시퍼런 불꽃은 이제까지 겪은 화염과 화력 자체가 달랐다.

돌을 끌어모아 만들어진 방벽은,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곧 쇳물처럼 뚝뚝 녹아 흐르기 시작했다.

“아…….”

그 모습을 본 운소령에게서 작은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스으으으읍.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녹아 흐르는 장벽을, 가고일의 아가리가 뚫고 들어왔다.

그렇게 쩍 벌어진 아가리에는 새하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빙결 마법… 아…….”

소진은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정반대의 속성을 동시에 지닌 트윈헤드 몬스터.

이런 건 동급 몬스터보다 최소 3등급은 위로 향하니까.

“음.”

그 광경에 천마조차 잠시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이내 당황하는 일행의 앞을 막아서고, 쏟아져 오는 냉기에 맞서 손을 들어 올린 순간.

찌이이잉!

허공이 일렁이고, 가고일과 일행 사이에 흐릿한 반투명의 벽이 생겨났다.

쐐애애애액!

새하얀 냉기가 쏟아져 오다, 벽에 부딪혀 사방으로 퍼졌다. 벽에는 쩍쩍 얼음이 맺히고, 점차 뚜렷하게 형태를 갖췄다.

‘누구?’

운소령의 눈이 커졌다.

월 오브 아이스. 얼음의 벽.

최소 4서클에 올라야 쓸 수 있는, 고위급 마법이었다.

다시 말해, 고위 마법사의 보호였다.

“평가 중지! 중지한다! 모두 후퇴!”

삐이익-! 삑! 삑!

그리고 뜬금없는 호각성.

온몸을 회색 천으로 가린, 이제껏 존재를 숨겨 왔던 천무 학관의 조교가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가! 5단계 광장! 지금 즉시!”

그는 일행들을 향해 수행 평가의 중지를 명했다.

* * *

‘저 아이가 운소령이라.’

카모플라쥬(Camouflage : 위장) 마법으로 은신해 있던, 조교 한운(韓運)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치잉! 칭! 칭!

고작 2학년이 엘리트 가고일을 상대로 전혀 위축됨이 없다. 오히려 천천히 죄어 나가는 모습.

갑작스러운 변수나 어이없는 실수만 없다면, 혼자서 그럭저럭 한 마리는 제압할 수 있어 보였다.

‘그나저나… 정령 마법이라.’

뒤이어 한운의 시선은 다른 아이를 향했다.

같은 2학년의 필리아.

강력한 돌의 방벽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그는 곧 납득했다.

4명으로 어떻게 3단계 광장을 쉽게 제압했는지 궁금했는데, 이제 보니 이해가 갔다.

전방의 보호만 있으면, 공수 양면으로 탁월한 활약을 하는 정령사. 저 아이 하나만으로도 모든 성과가 설명이 된다.

‘이한? 저 녀석이 반장을 이겼다고?’

그리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한으로 이동했다.

기록상으론 기부금 입학생, 능력 없이 돈으로 들어온 놈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엘리트 가고일 두 마리를 상대로 버티고 있었다.

비록 위태위태하고, 아슬아슬해서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지만.

퓻! 퓻! 콰아앙!

‘아하. 이동 아이템. 좋은 걸 꼈군.’

얼마 후 한운은 끄덕였다.

굴렀다가, 뛰었다가 하는 이한의 속도가 빨라졌다가 느려졌다 했다. 몸의 무게가 줄었다가 늘었다가 하는 것이다.

저건 경공술이 좋아서가 아니다. 이한이 보이는 경공술은 그냥… 평범했다.

하지만 시기가 적절하고 방위가 잘 맞았다.

그저 그것뿐이었지만, 날아오는 가고일의 공격을 다른 가고일 뒤에 숨어 피하는 등, 녀석은 밉살맞게도 잘 피하고 있었다.

‘그럭저럭 감각은 있는 편인……. 엇?’

한데 그렇게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운소령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허공에서 완벽하게 무방비 상태가 되었을 때.

쾅! 쾅! 쾅!

아슬아슬하게, 같은 학관생이 폭약을 터뜨려 불꽃의 방사를 막아 냈다.

운소령은 위기 뒤에 기회를 잡았고, 파티원의 협력 덕에 기어코 한 마리를 처치했다.

‘생각 외로 호흡은 좋……. 어… 언제?’

흡족하게 웃으며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당황했다.

이한을 상대하던 엘리트 가고일. 두 마리 중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저놈이 무슨 수를 썼나?’

정말 짧은 순간이었다.

운소령이 위기를 겪고, 벗어나고, 마침내 가고일을 처단한 그 잠깐의 틈에 시선을 뺏겼고, 다시 돌아보니 가고일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한운은 이한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분명히 평범했다.

마치 가고일들과 사전에 합을 맞춰서 대련이라도 펼친 것처럼 매우 자연스러웠다.

그게 바로 문제의 핵심이었다.

‘엘리트 둘을 상대로 자연스럽게 움직인다면… 다 알고 움직인다는 거잖아.’

그는 이한의 보법을 떠올렸다.

분명히 평범하고 자연스럽고, 때론 아슬아슬했지만 그 움직임은 한 가지를 전제한다.

가고일이 다음 순간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있어야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아니지. 고작 2학년이 흐름을 읽는다는 건. 그것도 기부금 입학생이 아닌가.’

이런 경우가 얼마나 있더라? 한운은 골몰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몇 년 동안, 천무학관의 그리고 다른 학관의 졸업생들까지 모두 하나하나 헤집던 중에.

콰콰아앙! 꽈르릉!

“…깜짝이야.”

귀청을 찢는 폭음에 깨어났다.

그리고 다시 탄식했다.

“아이템이다!”

‘아이고…….’

중요한 장면을 놓쳤다. 이건 좀 곤란했다.

나중에 수행평가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결정적인 장면을 두 번이나 보지 못했으니.

‘아니, 아니. 명품 석궁이잖아? 폭발은 봤지. 음. 그렇게 쓰면 되겠는데.’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연쇄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을 느꼈다.

그렇다면 그렇게 쓰면 될 터였다.

한운이 혼자서 고민하고, 다시 대책을 찾아 안심하고 하는 사이.

‘…어?’

스스스슥.

그는 광장의 천장에서 이상을 감지했다. 자꾸만 딴생각에 빠지는 바람에 그는 한 박자 늦게 알아차린 게 문제지만.

‘이… 뭔?’

마지막 남은 엘리트 가고일 2마리가 튀어나오는 것까지는 예상했다.

그가 알기론 광장에 5마리의 엘리트 가고일이 있다고 들었으니까.

그런데 이 둘이 몸을 합치며, 처음 보는 종으로 튀어나온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어? 어?’

황당했다.

한운은 벌써 몇 년째 카르삭 왕릉에서 수행평가 조교를 맡았고, 그랬기에 그에겐 상식이 있었다.

그런데 그 상식이 뒤집힌 것이다.

-크그그그그그.

모습을 드러낸 가고일은 몸의 색깔. 울음소리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미확인 몬스터.

최강의 가고일이라는 에이션트 가고일과도 다른, 뭔가 특별한 종의 느낌이었다.

‘위험하다!’

결국 그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빙계 마법으로, 아이들의 앞을 보호했다.

“월 오브 아이스(Wall of Ice).”

쩌어어엉!

“평가 중지! 중지한다! 모두 후퇴!”

초비상사태. 잠시 늦긴 했지만, 한운은 절차대로 정확하게 행동했다.

삐이익-! 삑! 삑!

호각을 불어 왕릉에 있는 모든 조교들에게 상황을 전파한다.

다음으로 전력을 다해 학관생들을 대피시켰다.

쿠르르릉!

그들이 피한 곳은 가고일이 막고 있는 쪽, 마지막 문.

왕릉의 관이 있는 카르삭의 왕릉 가장 한복판이었다.

* * *

쿠르르르릉!

무거운 돌문이 완전히 닫히자, 운소령 일행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죽을 뻔했다.”

“조교가 있을 줄은. 정말 다행이에요.”

그들이 들어선 곳은 5단계 광장.

이곳에서는 몬스터가 나오는 일이 없다. 폭풍의 눈처럼 한가운데가 가장 안전한 것이다.

“방금 전 그게… 뭐였죠?”

필리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마나가 역류한 탓에 자리에 설 힘도 없어 보였다.

운소령과 천마의 시선이 소진으로 향했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트윈헤드인데……. 나도 모르겠어.”

본 적은 물론이고, 기록에서도 등장하지 않았던 트윈헤드 가고일.

아니, 애초에 그걸 가고일이라 부를 수나 있는지 모를 놈이었다.

아무리 삼음절맥의 우수한 기억을 가졌어도, 애초에 소진은 책을 통한 견문이 다였다. 이번 같은 비상식적인 사태는 설명도, 추측도 힘든 것이다.

“그나저나 우리가 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안심해, 천무학관의 무공학 조교야. 와이번도 잡는 실력자이니…….”

운소령이 단언하듯 말을 받았다.

천무학관 조교는 4학년의 졸업생을 말한다.

기를 다루는 것에 통달하고, 이미 그 위로 올라선 고수들.

대부분이 초절정의 경지로, 가고일보다 위험등급이 높은 와이번도 손쉽게 상대한다.

아까의 그 괴물이 특이 개체라곤 해도, 혼자서 위험에서 몸을 빼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터.

“그런데… 여긴 좀 특이하다.”

벽에 온통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트윈헤드 가고일이 나오던 천장에 나왔던 그림이 온 벽을 휘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석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 이건, 그 녀석의…….’

순간 천마의 눈에 강렬한 환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 백화점에 전시된 화살.

마시(魔矢)에서 보였던 희미한 느낌.

그 느낌의 마지막이 바로 저 석관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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