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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62화 (63/310)

62화. 마탄의 사수 (1)

슈우욱! 휙! 슈우욱! 휙!

카르삭의 활은 이전처럼 천장으로 쏘아졌다. 그리고 또다시 몇 번을 점멸하며 공간을 뛰어넘었다.

‘마탄, 마의 탄환이라 했겠다.’

회피 불능. 쏘았다 하면 무조건 맞는 이 공격은, 아무리 빨라도 피할 수 없는 저주의 화살.

인과(因果)의 역전.

쏜 뒤에 맞는 것이 아닌, 맞는 게 정해져 있기에 쏘는 일이 일어나는 괴이한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건 천마도 이미 알고 있었다.

‘공간을 부숴야 한다.’

철컥.

천마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한 마공을 떠올렸다.

수라멸공(修羅滅功).

이제 겨우 극마인 천마에게 꽤나 부담되는 마공이지만, 지금만큼은 이것만큼 적절한 무공도 없었다.

팔대지옥(八大地獄)의 수라(修羅)라는 이름처럼, 이 마공은 주변의 모든 것을 멸한다.

전신에서 뿜어낸 마공으로 불지옥을 일으켜, 삼 장 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날려 버린다.

다만, 멸화공처럼 범위가 넓지 않아 그 시점을 잡는 게 까다롭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슈우욱! 휙! 슈우욱! 휙!

천마는 그 단점을 상쇄하기 위해 대기에 흐르는 기운을 관찰했다.

대기를 관찰한다는 건, 오감을 넘어 초상 감각을 집중시키는 것.

이 역시 극마의 끝에 다다랐을 때에 비로소 깨닫는 것이지만 그는 이미 탈마, 그 이상을 넘봤던 자였다.

모자란 부분은 예전 경험의 기억만으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솨아아아악-!

그리고 바짝 달아오른 긴장에, 일순 대기의 변화가 느껴지자 곧장 수라멸공을 펼쳤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화륵!

막 이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화살을 완전히 태워 버렸다.

[어떻게 나의 활을……!]

카르삭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마탄의 사수. 이는 마법도 무엇도 아닌, 그의 권능이었다.

쏘면 무조건 꿰뚫은 후에야 정지하는 마의 화살.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극에 달한 방어 마법이나, 혹은 용언처럼 권능에 이른 이능뿐이다.

즉, 마탄의 사수는 말 그대로의 필살.

그런데 그 필살을, 상대는 딱히 이능도 무엇도 아닌, 고온의 불길로 소멸시켜 버렸다.

“이젠 내 차롄가?”

천마는 씨익 웃었다.

공력을 꽤 많이 소모했으니, 이제는 돌려줄 차례였다.

타타탁.

카르삭이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겨누어진 활시위에는, 이번엔 또 다른 형태의 화살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때쯤.

-크아아아아앙!

쾅! 쾅!

울음소리와 함께 양쪽 벽에서 가고일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진초록빛 비늘을 한 에이션트 가고일.

그런데 아까까지와는 모습이 달랐다.

최강의 가고일이라는 에이션트인 데다가 머리가 둘이 달렸다.

140년 전, 종말 때 딱 한 번 드러낸 적 있는 트윈헤드 에이션트 가고일이었다.

“뭐 이런 괴이한.”

푸드덕. 푸드덕.

놈들은 네 장의 날개를 퍼덕여, 곧장 주인의 앞에 내려섰다. 호위를 서듯이.

“그래… 대충 알겠군. 우리 애들이 말한 대로야.”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운소령, 그리고 소진의 말을 떠올리며.

“대장이 튼튼하면 부하가 마법사, 약한 놈이지. 한데 거꾸로 부하가 튼튼하다면…….”

쏴아아악!

말과 함께 천마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었다. 그는 검을 휘두르며 동시에 마공을 출수했다.

“대장인 네 몸이 약하다는 뜻일 테지?!”

쐐애애액!

검을 따라 생성된 강기가 카르삭을 향해 날았다.

카르삭 또한 화살을 놓았다.

콰아아아앙!

천마의 앞에서 엄청난 폭발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수많은 돌덩이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흙먼지가 잔뜩 입안에 들어가 천마는 퉤, 하고 침을 내뱉었다.

“제길. 이건 또 뭐냐.”

천마는 조금 전 상황을 되새기고 있었다.

분명 화살과 강기가 맞부딪혔고, 곧장 폭발했다.

그 여파로 가고일 놈들이 쓸려 나갔다.

애초에 작정하고 몸으로 막을 기세였는지 놈들은 산산조각이 났다.

철컹. 철컹. 철컹.

그런데 그 모든 게 다 지금을 위한 것인 듯 보였다.

시간을 벌었던 카르삭의 활이 한층 거대해졌다.

원래도 1장도 채 안 되던 장궁이었는데, 이제는 2장(6미터)에 가깝게 커졌다.

찰칵. 탁. 찰칵. 탁.

그게 다가 아니었다. 놈의 활에서는 허연 뼈 같은 가지가 뻗어 나와 단단히 땅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쯤 되면 활이 아니라.

“제갈노인가?”

중원인들이 연노라 부르는 기계 활. 대형 쇠뇌에 가까웠다.

[과연, 인간. 청명 진인을 죽였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구나.]

꽈… 아아악.

카르삭은 온 힘을 다해 거대한 활을 당기고 있었다.

그저 그것뿐인데, 온 얼굴에 핏줄기가 서 있었다.

달리 말해 이 일격에 얼마나 많은 힘이 실려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 네 실력에 걸맞게 대우해 주지.]

그르륵. 그르르륵.

다시금 벽화에서 세 마리, 네 마리의 에이션트 가고일이 솟아나 카르삭을 호위하고.

[과연 네가 얼마나 버틸지. 얼마나 피할 수 있을지.]

그리고 당겨질 대로 당겨진 활시위가 놓였다.

드드드드드득!

그렇게 쏘아진 화살은, 천마를 노리고 허공으로 날아왔고.

어느 시점에서 하나의 화살이 쪼개지며.

무려 수십, 수백 개로 변했다.

* * *

피슈슈슈슉!

장마철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수백의 화살.

다행히 이전처럼 갑자기 공간을 도약해서 바로 목표점으로 이동하는 화살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공격도 아니었다.

애초에 수백 발이라는 물량은, 천마가 이동할 수 있는 모든 범위를 다 막아 버리는 것이다.

“핫!”

피리리리릭.

때문에 천마는 경공술로 피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이용했다.

천마인(天魔引).

끌어들인다(引)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허공섭물(虛空攝物)에 기반한 무공이다.

주변의 기를 제어하여 검이나 화살 등을 멋대로 휘두르는, 극에 달하면 어검술로 향하는 단초가 되는 무공.

위이이이익!

만물에 깃든 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어하지 못하면 어검술이라는 지고의 경지에 닿을 수 없다.

천마의 지금 경지는 극마.

그래도 한때는 탈마조차 넘어선 가락이 있었기에 어찌어찌 천마인의 7성 정도는 사용할 수 있었다.

콰콰콰콱! 다다다닥!

수십 발의 화살이 궤도를 틀어 서로 맞부딪혔다.

천마가 손을 내 뻗은 일 장 앞에서.

드드드득. 파바바박.

자석에 이끌리는 쇳가루들처럼 서로서로 들러붙고, 그 크기를 더해 간다. 덕분에 천마의 앞에는 거대한 방패가 생겨났다.

“큭큭. 이 정도로……. 엇?”

막 천마가 웃으려고 하던 차에 뜻밖의 방해가 끼어들었다.

- 카아아앙!

저놈의 특이종들.

에이션트 두 마리가 하나로 합쳐진 트윈헤드 가고일이, 천마인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칫……!”

쾅! 쾅!

설명 강력한 주둥이가 바닥 돌을 부수며 내리꽂혔다.

물론 천마는 그곳에 없었다. 이미 자리에서 도약한 뒤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놈들이……!”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들.

계속 걸리적거리자, 화가 난 천마가 막 검에 기를 불어넣고 휘두르려던 순간.

[Der Freischütz!]

피이이익!

카르삭이 또 인과를 뒤집는 마탄을 쏘아 날렸다.

퓻! 퓻! 퓻!

“젠장!”

아무리 천마라도 이 공격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기를 불어 넣었던 검을 단단히 잡고, 공간을 넘나드는 검은 화살에 집중했다.

-쿠아아아아아!

때문에 등 뒤가 비었다.

그러자 바닥에 있던 트윈헤드 에이션트 가고일.

그놈의 머리 중 하나에서 거대한 화염이 피어올랐다.

인페르노(Inferno).

파이어 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력이었다.

마법 공격으로 치면 6서클. 지옥 불이라 불리는 격렬한 화염의 파도가 천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콰아아아앙!

폭발이 일어나고 주변이 화염으로 불타올랐지만, 몬스터들은 멈추지 않았다.

쉬이이이익!

불을 쏘아 낸 머리 다음으로, 이번엔 다른 머리가 입가에 새하얀 냉기를 머금었다.

프로즌 오브(Frozen Orb)

화염 마법의 인페르노처럼, 이번에는 6서클급 빙계 마법이었다.

허공에 쏘아진 불길이 꺼지기 무섭게, 이번에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는 냉기 덩어리가 날아들었다.

콰-르르르륵!

불길이 얼어붙었다.

사방에 허연 서리가 맺히고, 때 아닌 눈송이들이 휘날렸다.

급변하는 온도 차 공격.

이제껏 학관생들이 엘리트 가고일을 상대하며 써 온, 그 전술을 천마는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투욱. 빠드득. 빠직.

천마의 가죽신이 산산이 깨져 부서졌다.

반면 소매와 웃옷 언저리는 시커멓게 타올라 연기를 피워 올렸다.

“그게 다냐?”

한데, 어찌 된 것인지.

그 강력한 공격을 맞았음에도 천마의 얼굴엔 담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다구나. 애송이들.”

약간의 정적.

지이익. 지이이익. 빠각!

돌바닥 여기저기는 달아오른 바닥 돌이, 얼어붙은 바닥 돌과 닿으며 깨져 나갔다.

열기와 냉기가 공존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천마는 담담히 서 있었다.

“덕분에 좋은 경험 했다. 고맙다는 인사는.”

쭈우우욱-!

그 말과 함께 천마의 몸이 길게 늘어졌다.

극쾌의 경공술이 펼쳐지며, 바닥의 아지랑이가 괴이한 허상을 만들어 냈다.

“이걸로 대신하마!”

싯.

소리도 없이, 아니 소리조차 잡아먹은 극도의 쾌검이었다.

검기도 둘러지지 않은 일검이, 트윈헤드 가고일의 머리 두 개를 동시에 가로질렀다.

슛!

동시에 시퍼런 뇌전(雷電)을 담은 화살이 날아왔지만 이미 상대의 공격 따위는 꿰고 있었다.

천마는 코웃음 치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했고, 가고일을 향한 공격을 마무리 지었다.

파직! 빠각!

돌보다 더 단단한 트윈헤드 가고일의 머리 두 개가 두둥실 날아올랐다.

거기다 또 다른 한 마리의 트윈헤드 가고일의 몸통도 반으로 갈라졌다.

검기도 검강도 아닌, 그저 극한의 속도만 담은 기예로, 물리 내성이라는 가고일을 처치한 것이다.

파---치치치칙!

“……?!”

그 순간, 천마는 벼락 치는 듯한 충격을 맛보았다.

“으… 드드드드드!”

턱관절이 미친 듯이 경련했고, 온몸이 뒤틀리고 꼬였다.

그리고 한 줄기 당황한 그의 표정이 생겨났다.

‘피, 피했는데…….’

조금 전의 화살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했다.

그러나 그 최소한의 움직임이 패착이었다.

뇌전은 주변에 금속이 있으면 그곳으로 딸려 간다.

차라리 멀리 피했다면 모르되, 아슬아슬한 차로 피해 낸 바람에 벼락 화살이 그대로 천마의 검을 타격한 것이다.

찌릿찌릿! 찌릿찌릿!

“윽! 악! 윽!”

눈앞에 불똥이 튀고, 온몸이 간헐적으로 경련한다.

말 그대로 마비 상태. 움직일 수가 없다.

얼굴의 눈 코 입은 죄다 기능을 멈췄고, 그나마 작동하는 건 청각뿐.

[감히 인간 따위가 나의 호위 가고일을 죽일 수 있다니…… 훌륭했지만, 이젠 죽어라.]

지이이익.

멀리서 카르삭이 감탄과 함께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천마는 이제 전격이 아니어도 소름이 돋았다.

‘큰일이다.’

벼락을 한번 맞아 본 몸이기에 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앞으로 최소 다섯 번의 긴 호흡 동안은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촤아아악. 찰칵찰칵.

그사이 그나마 마비되지 않은 청각이 전해 주고 있었다.

지금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카르삭이란 녀석이 거대한 쇠뇌를 잡아당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위력은 이전보다 강하면 강했지, 결코 덜해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맞는다.’

천마는 다급해졌다.

급히 정신을 다잡고 내력을 끌어올렸지만, 진기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리 기(氣)가 무형의 것이라도, 파들파들 경련하는 근육과 꽉꽉 조여지는 혈관의 방해를 뚫고 유형화되기란 무리였다.

이대로라면 그냥 산 채로 화살 꽂이가 될 판. 고작 뇌전 한 발에 이 모양이 되는 것이다.

‘방법을…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은, 천마 정도 되니까 이런 발악도 가능한 것이다.

원래 뇌전 공격은, 맞는 순간 바로 정신이 날아간다.

특히 정수리 부근의 백회혈(百會穴)은 두뇌와 바로 연결되어 있고, 두뇌에 전격 계열 공격이 파고들면 최소가 기절, 운 나쁘면 광인이 되거나 즉사하기도 한다.

[서먼 드래곤 투스(Summon Dragon Tooth: 용아(龍牙) 소환)]

“……!”

소리가 들렸다. 카르삭이 뭔가를 영창하는 소리가.

위기의 순간, 천마의 머릿속에 평생을 익히거나 연구한 수백 수천 가지의 무공이 떠올랐다.

그 수천은 삽시간에 백 개로, 열 개로 추려졌고, 마지막으로 하나가 되었다.

생각과 동시에 그의 미간, 상단전에 빙정(氷晶)의 기운이 담기기 시작했다.

쩌어어어엉!

그리고 공간을 넘어, 단 하나의 거대한 화살.

아니, 창이라 불러도 될 투사체가 모습을 드러냈고, 천마의 복부에 쑤셔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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