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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64화 (65/310)

64화. 뱀파이어 공작 블라드 (1)

보아하니 카르삭은 자신보다 상처가 덜해 보였다.

한쪽 귀와 날개 일부분이 잘려 나갔지만, 녀석은 별 어려움 없이 바닥을 딛고 있는 것을 보면.

‘조금 엇나갔군.’

천마는 분석하고 있었다.

상대가 생성한 이공간 틈을 보고 쏘아 낸 자신의 강기가, 경계를 통과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급하게 지르느라 방향이 조금 틀어졌다는 것을.

하여 상대의 화살은 피하지 못했고, 자신의 쏘아 낸 검강은 카르삭의 얼굴과 날개 일부분을 잘라 버리는 데 그친 것이다.

[…….]

두두두둑.

돌먼지를 피워 올리며, 가파르게 깎인 지면으로 걸어 나온 카르삭은 침묵했다.

뭘 하고 있는지, 자신의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인지하는 데만 시간이 제법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어떻게… 어찌 이런…….]

카르삭 스스로 확인하면서 믿기지 않는 것일까. 시커먼 검은자 일색인 눈이 시시각각 색이 변해 갔다.

그의 신체는 가고일이 아룡으로서 물려받은 용의 피, 그 정수가 담겨 있었다.

온몸의 비늘 자체가 고위급 마법을 버티며, 소드 마스터급의 오러(강기)가 아닌 이상 물리 공격에 면역이다.

까르륵. 까르륵.

특히나 뼈만 남은 박쥐의 날개 같은 것은 리치킹 휘하의 4대 수호장, 링가드의 가호가 직접 서린 것.

어떤 공격에도 무적이며, 피해 받는다 해도 즉시 수복되는 권능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생성한 이공간으로, 비집고 들어온 필멸자의 기운이 이 모든 것을 꺾어 버렸다.

만에 하나… 조금 전 공격이 빗나가지 않고 정타로 들어왔다면, 가고일의 왕인 자신은 죽었을 것이다.

[감히… 감히 하등한 종자 따위가아아아!!!]

경악을 넘어 공포를 느낀 카르삭. 그는 자신의 공포를 부정하고 분노를 일으켰다.

크르르륵.

비늘 덮인 긴 왼팔에 오싹오싹한 기운이 잔뜩 모였다.

가고일이라고 하나, 카르삭은 궁수였다.

본디 숙련된 궁수는 다소 체형이 변하게 마련.

왼팔이 오른팔보다 반 뼘 정도 길어지며 활쏘기에 아주 좋은 체형을 갖추게 된다.

상고시대의 해를 쏘아 떨어뜨렸다는 예(羿)처럼.

꽈드득. 꽈드드득.

그리고 카르삭은 그 예와는 비교도 안 되는 체질을 가졌다.

강철 같은 비늘 아래로 숨겨진 근섬유는, 한낱 인간과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질기고 단단하다.

온몸이 신축성 강한 철사 다발(스프링)과 같기에, 일개 개인으로서 공성 병기를 쏘아 낼 수 있을 정도다.

철컥. 철컥.

계속해서 성장을 거듭해, 이젠 더 이상 활이라고 부를 수도 없어진 발리스타(Ballista)를 잡아당기며, 카르삭은 주문을 영창했다.

[서먼 본 애로우]

좌르르륵.

거대한 기계 활 위에 수백 발의 뼈 화살이 장전되었다. 눈앞의 천마가 ‘또 그거?’라는 얼굴로 인상을 썼지만, 카르삭 역시 불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원래라면 마탄의 사수, 공간을 도약하여 목표를 바로 꿰뚫는 화살을 쓸 예정이었다.

카르삭의 권능이자 이제까지의 필승 패턴이었으니까.

하지만 상대는 그게 통하지 않는 위험한 놈이었다.

[‘차라리 처음에 저놈을 바로 노렸어야 했다.’]

인간 주제에 대체 공간 도약을 어떻게 감지하는 건지 첫 발로 수하를 잃은 후, 놈은 매번 자신의 마탄을 막아 내거나 소멸시켰다.

그리고 조금 전, 위력을 최대화시킨 드래곤 본 사격 때는 어땠던가?

놈은 마탄의 투사 경로를 그대로 뚫고 들어와, 자신에게 역으로 공격해 왔다.

‘더 보여 줄 수는 없다.’

물론, 드래곤 본으로 만든 화살이 워낙 거대해서 공간 문이 열렸다 닫히는 시간이 좀 길기는 했다.

길이가 짧은 일반 화살이었다면, 놈이 수를 쓰기도 전에 공간 문이 닫히리라.

하나 낙관만 할 수는 없었다.

이거면 끝이다, 라고 생각한 게 대체 몇 번째인가?

“야, 야. 뭐 하자는 거야? 치사하게 양으로 때려 박겠다는 건가?”

[…시끄럽다!]

모욕감을 견디며, 카르삭은 눈앞의 천마에 집중했다.

[타겟 락(Target Lock: 목표 고정)]

사실 치사하다는 생각은 그도 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하게 승산을 낼 수 있는 방법을 피할 생각도 없었다.

계속해서 마탄-공간 도약 화살을 쏘아 댈 경우, 자칫 놈이 완전히 자신의 권능을 파악하고, 저 위협적인 소드 오러로 카운터를 날린다면 어쩔 것인가.

확실히 저 필멸자는 이상하다.

지금 입은 상처는, 분명 당장에라도 내장을 쏟고 쓰러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심지어 한 발 한 발, 자신의 화살에 당할 때마다 숨만 겨우겨우 붙어서 버티는 존재다.

한데, 기세가 여전히 등등하다.

탕탕. 차악.

죽을 듯 말 듯 한 상황을 몇 번이고 지나면서도, 죽지 않고 버티고 있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위협을 가해 오고 있다.

마치. 자신을 상대로 몸을 풀고 있다는 느낌.

으득!

그것이 카르삭이 분노하며 경계하는 요인 중 하나다.

놈은 자신의 공격을 받아 가며, 점점 자신의 기예를 묻어 뒀던 힘을 끌어내는 ‘연습’이라도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치욕이라니.

그는 이제 체면이고 뭐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사아아악. 차르르륵.

소환한 뼈 화살들이 카르삭의 발리스타에 장전되었다. 수십 수백 발의 투사체가 발사만을 기다리는 순간.

“크크크크…….”

[엇……?!]

언제 접근했는지 검은 무복 차림의 인간, 아까 자신이 진즉에 심장을 뚫어 버린 필멸자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눈앞의 필멸자, 천마라는 놈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곤 하나 이리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

그리고 다시 살펴보자 많은 것이 아까와 달라 보였다.

심장을 정통으로 뚫은 상처는 완벽히 회복되어 있었고, 옷 절반을 적셨던 핏자국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눈은 동자가 보이지 않고, 시선을 끄는 건 놈의 왼팔.

마치 거대한 낫처럼 기분 나쁘게 굽어 있는 이물이 팔 대신 달려 있었다.

한데 기묘하게도, 저 팔에서 친밀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크크크크큭!”

성대를 긁으며 내는 가성.

웃음소리도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뭐… 상관없었다. 이제 와서 저놈이 뭐에 감염되어 변하건 말건.

[처리해라.]

-카아아아아!

카르삭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소환된 엘리트 가고일 하나가 날아들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녀석을 상대로 하기엔 충분했다.

체구와 무게로 상대가 인간이든 뭐든 당장에 짓이겨 버리는 공격이니까.

한데.

콰그그그그극.

[…뭣?]

또다시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흑객의 낫질 한 번에 엘리트 하나가 완벽하게 이등분된 것이다.

심지어 그 단면이 거울처럼 매끄럽다.

[뭐 하느냐! 잡아라!]

타악!

명령과 동시에 공중을 도약하는 카르삭.

-카르르르르!

-카아아아아!

흑객이 짐승처럼 따라붙자, 물러서 있던 수십의 엘리트 가고일이 모두 몰려들며 그를 에워쌌다.

그런데 그 행위가 자신들에게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불러왔다.

콰콱! 콱! 쇄쇄색! 패애애액!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낫의 움직임에,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수십의 엘리트 가고일들이 무 썰리듯 잘려 나갔다.

-카아아아아아아!

급히 카르삭이 소환한 트윈헤드 에이션트 가고일.

하지만 카르삭에게 남아 있는 마나가 부족한 나머지 고작 한 마리밖에 생성해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충분했다.

눈앞의 이 녀석에겐 트윈헤드 한 마리도 버거우니.

화르르르륵! 캬아아악!

트윈헤드 에이션트 가고일은 나타나자마자 아가리를 벌리고 지옥 불로 흑객을 그대로 지지려 들었다.

덕분에 흑객 주위에 있던 엘리트 가고일까지 학살당했다.

그런데.

저벅저벅.

그 불길 속에서도 흑객은 피해가 없었다.

오히려 불타는 에이션트 가고일을 유유히 지나치며 화마 속을 여유롭게 걸어 나왔다.

어딘가 불길해 보이는 검은 오러에 휩싸인 채로.

[이 녀석, 서, 설마…….]

이제껏 고요했던 카르삭의 눈이 크게 요동쳤다.

귀기(鬼氣) 가득한 붉은 눈.

파랗게 보일 정도로 창백한 안색. 나른하면서 어딘가 기품 있는 귀족적인 발걸음.

그리고 그 무엇보다……. 확연하게 느껴지는 친밀감.

[마족… 뱀파이어 공작 블라드?]

그렇다면 설명된다.

마계의 귀족이며, 무한한 재생력을 가진 불사자.

사람을 꼬챙이로 꿰뚫어 전시하던 악당 체페슈.

인간이었을 때는 작은 나라를 거대 제국에서 지켜낸 위대한 기사. 그러나 말년에 수많은 망자들의 증오를 받아 마족이 된 자.

그의 흔적이, 기척이, 어떻게 된 건지 한낱 필멸자의 몸에 드러나 있었다.

“크으… 큭큭큭.”

턱. 턱. 펄럭.

느긋하게 웃으며 옷에 달라붙은 불길을 털어내는 존재.

그는 저 불길 속에서 화상을 입지 않았다.

호흡곤란의 기미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숨을 쉬지 않으니까.

용공 블라드 드라쿨레아(Vlad Drăculea).

불사자이며, 살육자. 무엇보다 ‘피’의 가호를 받는 자로, 그 의미는 용(Drakull)의 아들이다.

같은 용의 피를 잇고 있어도, 고작해야 아종(亞種) 취급을 받는 가고일과 달리, 진짜 용의 피가 흐르는 타락한 귀족.

수많은 권능을 지닌 창백한 밤의 지배자.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네놈 따위가 감히 용공(龍公)을 흉내 내다니!]

-카아아아아.

카르삭의 부정과 함께, 그의 호위이던 트윈헤드 에이션트 가고일이 덤벼들었다.

슈와아악!

먼저 한 머리가 아이스 스피어를 날렸다.

흑객, 아니 흑객이던 것은 그걸 간단히 피해 냈고, 다른 머리가 아이스 볼트를 쏘아 냈다.

솨솨솨솨솩!

-카아아악!

뒤이어 쏟아진, 두 갈래의 지옥 불(Inferno).

“크크크크…….”

하나, 그는 연기처럼 흐릿해지며 그대로 돌진했고,

패애애애액!

한 놈의 목, 다른 한 놈의 목을 연속으로 베어 버렸다. 왼손에 달린 거대한 낫으로.

-크아아아!

각각 얼음과 불꽃을 쏘아 내던 트윈헤드 에이션트 가고일이 고통을 지르며 밀려났고.

그중 한 녀석을 고른 흑객이 마무리를 위해 낫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그의 발목을 카르삭이 잡았다.

[네 이놈! 비루한 찌꺼기가 무슨 수로 용공을 참칭했는지는 모르나! 그 죄, 백만 번 죽어 마땅하다!]

-피이이이이익! 푹!

등을 보자마자 사정없이 화살을 날린 카르삭.

그는 뼈 화살이 흑객의 등에 박히자 즉각 영창했다.

[타겟 락- 트레이스(Trace)!]

-파파파팟!

뒤이어 쏟아지는 화살은 예의 마탄.

원래라면 천마에게 쓰려고 했던 수였다.

목표(Target)를 고정(Lock)하고, 단 한발만 적중시키면 무조건 4발의 마탄이 그 자리로 날아드는 카르삭의 비기.

콰콰콰쾅!

거기에 이번에는 폭발의 힘까지 실었다.

강력한 진력에 휘말려 흑객의 몸은 십 장이나 튕겨 날아갔다.

츄으으윽…….

화염이 주변의 바닥에 그을음을 만들면서 점점 걷히자, 쓰러져 있는 그가 보였다.

[해치웠나…….]

바닥에 엎어진 채로 쓰러져 있는 흑객.

등에는 불탄 자욱이, 주변에는 피가 흥건하다.

어찌 보아도 미동도 못 할 시체이건만, 카르삭의 신경은 여전히 곤두서 있었다.

쉬이이익…….

[…역시 가짜로군. 하긴. 그 블라드가 이런 걸로 당할 리가 없지.]

한참이나 경계하고 있던 카르삭은, 얼마 후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도, 아마 뱀파이어 일족의 찌꺼기가 인간의 몸에 들러붙어 폭주한 모양이었다.

가고일이 그렇듯, 용의 피는 신성하며 위협적이다.

하나 리치왕이 축복을 내린 이후, 신성함은 불경함으로 바뀌었다.

그로써 흡혈 일족은 특히나 강해졌지만, 가끔 적아를 구분 못 하고, 생명 있는 모든 존재를 파멸로만 이끌려고 들었다.

특히 블라드 드라쿨레아, 용공의 경우는 강해진 대신 이따금씩 착란을 일으켰다.

그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존재.

한때는 인간의 대영웅이던 자였다. 거대한 제국을 상대로 작은 모국을 지켜 낸 잔혹한 흑기사.

비록 망자들의 저주로 타락했음에도 가끔 빛의 심성이 되살아났다.

그런데 그게 하필 용의 피와 결부되면?

감당 안 되는 사고가 터지는 것이다.

뱀파이어는 언데드다.

흡혈로 생을 유지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죽은 자. 부정한 자다.

그런데 그 부정한 자가, 옛 기사도의 계율을 떠올려 신성력으로 자폭해 버리질 않나, 애초에 생명력이 남아 있지 않은 좀비나 스켈레톤의 피를 빨려 들지 않나.

심지어 생물도 아닌, 카르삭의 가디언 일족을 괴물로 보고 미친 듯이 돌격해 온 일이 여러 번이다.

옛 기억이 떠오르는 바람에 카르삭은 곧장 진저리를 쳤다.

스르륵.

[이건…….]

그러느라 늦게 깨달았다.

분명 필멸자의 사체에서 왼팔을 잠식하고 변형을 일으켰던 흉악한 대 낫이.

자신의 발치에 놓여 있었던 것을.

스스스슥. 퍽!

곰팡이가 포자 터뜨리듯, 가벼운 연막이 일어났다. 그 연막이 걷히고 카르삭의 눈에 들어 온 건.

“잘 있었나. 꼬마 박쥐 샤크. 정말 오랜만이군. 그래.”

[……!]

쓰러져 있던 흑객이, 시뻘건 동공을 하고서 그의 장궁을 낚아채는 장면이었다.

패애애액!

그 순간 폭풍이 일었다.

카르삭이 발출한 힘에 의해 엄청난 빛이 터져 나왔다.

* * *

“쿨럭쿨럭.”

카르삭의 일격을 맞은 흑객이 쓰러져 있었다. 그의 몸엔 어느새 십여 개의 화살이 박혀 있었다.

방어 마법의 자동 발동으로 위기를 넘긴 카르삭.

그는 ‘식은땀이 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주변엔 피도 없는데… 그저 숙주의 몸에서 기생하면서 이 정도로 성장했다는 건가.’]

뱀파이어는 피의 양에 따라 급이 달라진다.

많이 마시면, 강해지고 위험해진다.

예컨대 인간들끼리 싸우다 죽은, 피바다에서 탄생하기라도 하면 뱀파이어는 데스나이트도 넘어서는 재앙급 몬스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곳, 카르삭의 왕릉에서는 피는 고사하고 생명이 있는 몬스터도 없다.

덕분에 이 새 흡혈귀는, 사람 한 명분의 피밖에 얻지 못했다.

그러고도.

[‘…진정, 용공인가.’]

순식간에 활을 빼앗기고 목을 베일 뻔했다.

위기의 순간, 카르삭의 날개에 숨겨져 있던 방어가 발동했다.

수십 개의 화살이 그의 몸통을 직격했고, 그는 그대로 관통당했다.

하지만 고작 인간 한 명분의 피로.

가고일의 어린 왕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이다니.

틀림없이 블라드 드라쿨레아다.

[‘링가드 님의 축복이 없었다면.’]

카르삭의 날개에 걸린 건 링가드, 4대 수호장 중 하나의 축복이다.

그게 없었다면, 지금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은 필멸자의 몸을 한 용공이 아니라 자신이었을 터.

온몸의 비늘을 떨고 있던 카르삭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

“내 거야. 내 거라고.”

“크큭. 키킥!”

“넌 이기지도 못하잖아아아아!”

“피가 필요해. 강력한 종족의 피가.”

미친놈처럼 흑객은 소리 지르고 있었다.

한 목에서 남자의, 여자의, 노인이나 아이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카르삭은 이 상태를 알고 있었다.

흡혈귀가 한 번에 인간의 몸을 완벽하게 차지하지 못한 상태.

오래 묵은 흡혈귀는 수십 개의 인격을 가진다.

육신을 취했을 때는 가장 강한 정신이 모든 걸 통제하지만, 그 통제에 실패할 때는…….

수십 개의 인격이 일제히 자아분열을 일으키며 폭주 끝에 소멸해 간다.

“그래. 그렇게 얌전히 있으라고.”

그런데 이내 자리에서 일어서는 흑객.

그는 시뻘건 동공으로 변하며, 카르삭을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꼬마 박쥐, 다시 한번 싸워 보자.”

두두두둑.

바닥에 떨어지는 화살. 그리고 점점 뚫렸던 몸이 피로 물들며 차츰 메워졌다.

동시에 그의 오른손에서 또다시 생성된 낫.

이전과 달랐다.

전에는 검 정도의 크기였다면, 이번엔 몸을 덮을 만큼 길었다.

“내 아주 갈기갈기 찢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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