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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65화 (66/310)

65화. 뱀파이어 공작 블라드 (2)

‘결국… 먹힌 건가?’

한편, 시간을 벌자마자 천마는 곧장 역혈신공으로 상처 회복에 들어갔다.

그러다 돌변해 버린 흑객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크크크크…….”

갑자기 기세가 변한 흑객이 카르삭에게 달려들며 엄청난 무위를 선보였다.

콰드득! 콰득!

특히 검을 들었던 오른손 대신, 거대한 낫으로 변한 왼손의 움직임이 기괴했다.

그저 한 번씩 휘둘러지는 공간 사이에, 수십 마리의 엘리트 가고일이 추수 당하듯 쓸려 나간 것이다.

‘이 뭔……?’

카르삭은 눈을 의심했다.

후르르륵.

저 강함은 명백히 이질적이었다.

온몸에 두른 검은 영기(靈氣).

그건 마공 같기도 했고 흑마법이라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그걸 두른 흑객은 적들의 모든 공격을 우습게 받아넘겼다.

저벅저벅.

왠지 모르게 거만한 걸음걸이. 창백해진 얼굴.

그 모습으로 가고일이 퍼부어 대는 불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다. 대체 무슨 귀신이 씐 건가 하고 황당해할 때.

[마족… 뱀파이어 공작 블라드?]

카르삭이란 놈이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마족이니 공작이니 뭔지는 모르겠지만, 흑객에 덧씌워진 놈이 제법 대단한 존재였던 모양이었다.

쉬이익. 후르르륵

“……!”

그리고 그 짐작은 곧 확인되었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얼음 화살과 시뻘건 불길을, 흑객은 거침없이 뚫고 나갔다.

스스스슥.

“……?!”

아니, 정확히는 통과해 버렸다.

연기처럼 흐릿해지나 싶더니, 사정없이 낫을 휘둘러 에이션트 가고일을 완전히 난자해 버렸다.

카르삭은 호위가 공격당하는 틈을 노려, 활을 쏘았다.

[타겟 락 - 트레이스(Trace)!]

파파파팟!

“또 저건가.”

상대의 수법을 읽은 천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 마탄의 사수인지 사탄의 마수인지 하는 공격.

그게 네 발이나 날아들었다.

거기다 닿자마자 일어난 폭발까지.

완벽히 일대를 초토화시켜 버리는 저것이 카르삭의 비장의 일격이었던 모양이었다.

[…역시 가짜로군. 하긴, 그 블라드가 이런 걸로 당할 리가 없지.]

슈우우욱.

연기와 증기가 뿜어지는 가운데, 카르삭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천마는 생각이 달랐다.

‘당한 게 아니다.’

분명 흑객은 쓰러졌지만, 그에게서 뿜어지는 불길한 투기는 여전했다.

무엇보다 낫으로 변한 그의 왼팔.

어떻게 된 건지 카르삭의 발치에 떨어져 슬금슬금 다가가는 것이 보였고.

천마는 직감적으로 그게 ‘본체’라고 여겼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카르삭 주위에서 격돌과 함께 큰 폭발이 일었다.

퍽. 패애액! 콰콰콰쾅!

낫에서 흑객이 튀어나오고, 카르삭이 활을 붙잡히고, 뒤이어 날개가 화살을 쏘아 낸 뒤 폭발했다.

그 광경을 보던 천마 역시 상당히 놀랐다.

‘저 날개… 파괴 용도로 쓰인 건가?’

카르삭이라는 놈, 약은 녀석답게 나름 숨겨 둔 패가 있었다.

그리고 그 패는 흑객의 몸을 차지한 놈도 모르고 맞았으면 꽤 심각했을 만한 회심의 수였다.

어찌 낫에서 쓰러져 있던 흑객의 몸이 소환된 것인지도 불명확했지만, 카르삭의 대응 역시 예상을 벗어났다.

날개가 적을 정확히 겨냥한 상태로 폭발했고, 이를 흑객이 대신 후드려 맞았다.

“내 거야. 내 거라고.”

“크큭. 키킥!”

“넌 이기지도 못 하잖아아아아!”

“피가 필요해. 강력한 종족의 피가.”

“어라?”

이변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초죽음이 되어 널브러진 흑객이 괴상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혼자서 남자의, 여자의, 노인의, 아이의 소리를 동시에 내는 미친 꼬락서니.

‘빙의가 풀리려나……?’

천마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강림(降臨), 혹은 빙의(憑依).

산 자의 몸에 귀신을 씌워 요력을 발휘하는 강신술(降神術).

이건 그것과 비슷했다.

혈교는 한때 천마도 상대하느라 골치가 아팠던 극성스러운 단체였다.

하지만 분명 위력적인 술수임에도 그 파훼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패고 패고 또 패서, 육신이 저승 문에 반쯤 발을 들여놓으면, 귀신과의 연결이 끊기고 마는 것이다.

지금 흑객의 저 정신 나간 짓거리는, 혈교와 싸우면서 천마가 수도 없이 봤던 증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꼬마 박쥐, 다시 한번 싸워 보자.”

휘익!

공작인지 뭔지 저거도 상식 범위를 벗어났다.

수십 번에 화살에 박히고 화마에 휩쓸리고, 쓰러지고를 반복했음에도.

다시금 일어나 카르삭에게 덤벼들려고 하고 있었다.

“이젠 나서야겠군.”

천마는 둘의 드잡이를 보며 기를 갈무리했다.

역혈신공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내공을 다시 복원할 수 있었다.

뚜둑. 뚜둑. 뚜드득.

그리고 역혈신공을 반혼어심공으로 바꿔, 잠시 의식을 분리했다.

시체나 다름없어진 몸. 생기란 생기는 모조리 치료에만 돌려졌다.

원래라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지만, 흑객에 씌인 귀신 놈이 발악하는 지금이 아니면 기회도 잡기 어려웠다.

두두둑.

드디어 온몸에 기가 충만해지고 내외상이 회복되자마자 천마는 움직였다.

흑객을 구하기 위해서건, 카르삭이란 놈을 처치하기 위해서건, 무리를 하더라도 여기서 끊어야 했다.

* * *

피이이이이익-.

시퍼런 뇌전이 담긴 화살이 날아들었다.

흑객은 이를 피하지도 않고 달려들었고, 화살은 그의 어깨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파지지직! 우득! 우득!

뒤이은 경직. 천마도 일시적으로 마비시켰던 뇌전이다.

흑객의 몸 역시 당연히 발작적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대장 노릇 오래 하다 보니, 잊었나 꼬마 샤크.>

하지만 그 고통을 당하는 표정 속에서도 흑객의 목소리는 여유로웠다.

분명 몸은 전기 충격에 툭툭 튀고 있었지만, 그는 의념으로 말하며 카르삭을 조롱했다.

<내 종들이 너 같은 박쥐라는 걸.>

[거들먹거리지 마라!]

카르삭은 노호하며 활시위를 놓았다.

파아아아앗-!

또다시 이공간을 통해 날아간 화살.

흑객은 탁, 탁, 튀는 창백한 얼굴로 그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고.

팟.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뇌전에 마비되어 있었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

놀란 카르삭의 눈이 사방을 훑었다. 그리고 상대의 위치가 그의 눈에 잡혔을 때는 이미 늦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몸을 웅크린 채로.

흑객의 몸에 깃든, 용공 블라드 드라쿨레아가 웃었다.

<넌 날 못 이겨.>

촤아아아악!

기다란 사슬낫이, 아래에서 위로 치솟아 올랐다.

방어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기도 전에 달려든 검은 섬광.

콰드드득!

그 일격은 카르삭의 최종 방어를 뚫었다.

전신을 가르는 압도적인 힘에 가고일의 왕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

쩌어억.

얼굴은 균열이 간 듯 금이 가 있었고, 반의반쯤 남아 있던 날개는 완전히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갑옷 대신 몸을 덮은 피부는, 수십 개의 금이 가서 쩍쩍 벌어지며 깨져 나갔다.

카르삭이 흘리는 건, 숨이 다해 가는 자의 신음.

[…용 …공.]

“아, 힘이…….”

하지만 흑객의 몸을 차지한 마족 역시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가 더는 접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멈춰 선 것이다.

독이 빠진 듯 힘이 더 증폭되지 않는다.

원주인의 몸은 상성도 좋고, 어느 정도 적응도 했다.

하나, 아무리 질이 좋아져도 그는 결국 흡혈귀.

고작 한 사람의 몸에 담긴 피로는, 낼 수 있는 힘에 한계가 있었다.

[어떻게든--- 네놈을 죽여 버리겠다--! 마탄의 사수! 타겟 락! 트레이스!]

상대가 허점을 보이자, 이번엔 카르삭이 다시 힘을 냈다.

다 죽어 가지만, 자신은 힘이 남았고, 흡혈귀는 피를 한계까지 썼다.

이제 더는 한 방울만 더 흘려도 한 줌 재로 변해 버릴 터.

이처럼 피의 권능은 양날의 칼이다.

흡혈귀는 피만 있다면 무한하게 강해질 수 있지만, 피가 부족하면 권능을 제한당하고, 힘없이 불타 버리고 마는 존재였다.

[서먼 드래곤 투스! 서먼 드래곤 본! 트레이스! 트레이스! 아아아악!]

때문에 발악적으로 권능을 쏘아 대는, 카르삭의 공격에 마족은 속절없이 밀렸다.

결국 마족은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배트 폼(Bat Form: 박쥐화).”

파드득!

흑객의 몸이 서너 마리의 박쥐로 화했다.

원래라면 그림자가 되거나 핏빛 안개로 변해 화살 공격을 원천적으로 무효화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단 한 방울의 피도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하핫! 그 꼴을 봐라! 네놈이야말로 박쥐가 아니냐!]

<이 가고일 따위…….>

마계의 귀족에게, 이는 뼛속까지 수치스러운 발악이었다.

원래라면 흡혈귀는 가고일의 상극이다.

가고일은 마법 면역, 물리 타격 면역. 여기에 압도적인 무게와 힘을 가진다.

이는 다른 종족들에 비해 지나치게 좋은 조건이다.

하지만 그랬기에 그들은 지능을 잃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이 당연한 이치. 이는 용의 피를 이은 존재라도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마계의 귀족인 흡혈귀에게도 피는 권능이면서 동시에 제한인 것처럼.

퓨욱! 퓨욱! 쾅! 쾅! 쾅쾅쾅쾅쾅!

핏빛 박쥐는 유려하게 날아다녔다.

카르삭의 화살이 날아드는 것을 몇 번이고 피해 벽에 충돌시켰다.

공간을 넘나드는 화살도 박쥐를 맞히지는 못했다.

흡혈귀 또한 공간의 권능을 갖고 있었기에.

스으윽! 스으윽!

도저히 피하지 못하고 맞는 순간, 흡혈 박쥐는 흐릿해지며 다른 박쥐에게 덧씌워졌다.

추적의 권능이 뒤따라 박쥐를 노리면, 덧씌워진 박쥐는 파다닥! 다시 서너 마리의 박쥐로 늘어나며 피해 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결국엔 한계가 왔다.

날아드는 화살을 전부 벽에 충돌시켰지만.

퍽!

“크억! 컥!”

갑자기 변신이 풀리며, 박쥐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흑객은 안색이 하얗다 못해 푸르게 변해 있었고, 온몸을 떨며 숨도 겨우겨우 쉬고 있었다.

“끅. 끅. 끅.”

“아르륵. 그윽. 아갈갈갈. 캬아악!”

“비켜. 쓸모없는 자식. 순서가 틀렸지 않아?”

그리고 다시금 터져 나오는, 한 목에서 나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들.

영락없이 귀신 들린 꼬락서니였다.

그에 카르삭은 냉소 지으며 활을 겨눴다.

[과연 용공이군. 이제 막 깃든 몸으로, 여기까지 나를 거슬리게 하다니.]

비웃음이었다.

승자가 누릴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자신보다 우월했던 자를 짓밟게 된 자의 특권.

까드득.

카르삭은 그 권리를 유감없이 만끽했다. 느릿하게 활을 겨누고, 시위를 당기며 한마디를 더 하려 했고.

[태어날 곳을 잘못 정했다. 한낮 필멸자의 몸에 기생하는 녀석에게 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제아무리 한때 그대가 대단했어도 내가 온 이상……?!]

퍼엉!

그 때문에 일격을 얻어맞았다.

완전히 흑객에게만 정신을 팔고 있었던 카르삭은 머리를 강타하는 강한 충격에 사정없이 벽에 쑤셔 박혔다.

“무게란 무게 다 잡더니… 참 말 많네, 고놈.”

뿌드득. 뚝. 뚝.

주먹을 꺾으며 천마가 씨익 웃었다.

이제 자신이 나설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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