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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66화 (67/310)

66화. 카르삭 붕괴 (1)

천마는 카르삭을 날린 뒤, 빠르게 흑객의 몸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곧장 내력을 주입했다.

“마심섭혼공(魔心攝魂功).”

두둥!

“으아아악!”

흑객의 머릿속에 강한 울림이 전해졌다.

마심섭혼공,

본디 강한 최면으로 상대의 혼백을 제압하거나 조정하는 마안섭혼공에서 한 단계 발전한 마공.

섭혼술을 기반으로 하지만, 상대의 머리에 진기를 흐르게 함으로써 더 강한 자극을 주는 것이다.

이는, 흑객 속에 깃든 다른 자아를 잠재우기 위함이었다.

마족이라 불리는 녀석이 스스로 힘을 잃고 약해진 지금, 잠시 잠들었던 흑객을 꺼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끄르르륵…….”

흑객의 눈에 초점이 맺히는가 싶더니 다시 의식을 잃었고, 천마는 한숨 쉬며 손을 휘둘렀다.

“일단 급한 불은 껐고.”

[…이익!]

피윳!

부서진 벽 사이로, 빠르게 쏴붙인 카르삭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천마는 그걸 가볍게 쳐 냈다.

탱! 빠직!

화살이 두 조각이 나자 카르삭의 얼굴이 굳어졌다. 천마는 그를 보고 피식 웃었다.

“밑천 다 털었다. 언제까지 먹힐 줄 알았냐?”

[…어찌 내 권능을?]

카르삭은 놀람의 연속이었다.

분명 치명상을 입어 죽어 가야 할 녀석이 살아 있었다.

혈색은 완전히 돌아와 있었고, 아까는 없었던 여유까지.

하나같이 뇌리에 경종을 올리는 신호였다.

이어진 천마의 말은 확신을 더했다.

“거리를 무시하는 화살이라… 꽤 재미있는 공격이었어. 너도 재미 많이 봤겠고. 하지만 결국 시간은 못 넘던데?”

인과역전의 화살. 쏘면 반드시 맞는 공격.

하지만 천마가 보기엔 결국 공간을 뛰어넘을 뿐이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쏜다는 사실 이전에 맞힌다는 것이 정해지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극도로 빠른 데다, 공간을 무시하고 바로 직격하기에 그런 착각을 일으켰을 뿐.

“현상(現像)을 무시하는 기예는 애초에 탈마 이상의 경지고, 네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지. 환술을 적절히 잘 썼지만, 약점은 파악했고 이제 끝났다.”

[헛소리! 이… 익! 서먼 드래곤 투스!]

천마의 말에 카르삭은 벌컥하며 용의 이빨을 소환했다. 그리고 바로 쏘아붙였다.

“안 된다고 해도 그러네.”

[웃기는구나! 내 공격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

핑! 파바바밧!

뒤이어 연속으로 소환되는 네 개의 화살. 마력을 쥐어짜 내 펼친, 이제껏 그를 실망시킨 적 없는 필살의 기예였다.

[트레이스……. 헉?!]

뚝. 뚝. 파득.

하지만 이번만큼은 무위로 돌아갔다.

천마는 마탄을 단번에 부쉈고, 뒤이어 날아드는 네 개의 화살 역시 차례차례 박살 냈다.

콰창! 챙!

그 와중에 여력을 못 이긴 천마의 검이 부서졌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카르삭은 자기 공격이 어느 정도 위력을 지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조금 전 마계의 귀족.

뱀파이어의 공작조차 이 일격에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어. 어떻게…….]

“그냥. 터지기 전에 베어 버렸지.”

천마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벽력탄조차 격발 전에 부수면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천마의 검은 극쾌. 베는 순간 그대로 갈라 버리는 공격이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스스스스슥.

천마는 몸이 다섯 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환영이 아닌 모두 실체. 천마군림보였다.

이제껏 사용하지 않았던, 신법의 극의가 펼친 것이다.

“안 됐다만, 넌 상대를 좀 잘못 만났다.”

[우. 웃기지 마…….]

카르삭은 노호하며 활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터억.

[……!]

화살을 쓸 틈도 없이 다섯 명의 천마가 이미 카르삭의 가슴에 손을 대고 있었다.

“이미 다 봤다니까. 네 기술과 약점 전부. 아직도 모르겠냐?”

그건 분명 허상이면서.

동시에 실제였다.

흡혈귀의 공작이 보인 것과 비슷하면서 다른 종류의 기예였다.

[…….]

카르삭이 뭐라고 벙긋거렸지만, 천마는 듣지 못했다.

완전히 소음을 차단했기에.

“잘 가라. 그럼. 이제 가져가겠다. 너의 내공.”

파지지지직.

카르삭은 황급히 활을 움직이려 했지만, 꼼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천마의 손에서 흘러나온 뇌전의 힘이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퍼억.

그리고 진행되었다.

천마가 그의 마력을 가지고 가는 대법이.

“흡성대법!”

자자자자자자작.

괴이한 소음과 뇌전. 그리고 기이한 울음소리.

온몸이 상처로 범벅된 천마의 손을 통해, 카르삭은 모든 힘을 빼앗겼다.

* * *

[끄아아아아!]

끔찍한 비명이 사방을 울려댔다.

천마의 손에 모든 힘을 뺏긴 카르삭은 소환수가 파괴되었을 때처럼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뭐야? 내단이…….”

한데, 기운을 흡수한 천마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흡성대법으로 흡수한 내력은 고작 해 봐야 1갑자 정도.

좀 전에 신기에 가까운 마법을 부린 자라 여기기엔 얻은 내공이 턱없이 낮았다.

“마력이 아닌, 그저 기예였던가.”

그것 외에는 추측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저 불가사의한 활의 위력은 일종의 이능, 내공의 힘보다는 염력이나 정령 친화력처럼 타고난 재능이 발전된 힘인 듯했다.

“어?”

실망하던 천마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다.

풀썩!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바닥을 짚은 그는 자신의 몸을 한 번 훑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하아. 정말이지 이번에 정말 골로 가는 줄 알았군.”

내공을 회복한 것과 달리 몸 상태는 심각했다.

내상은 말할 필요도 없고, 카르삭의 화살에 맞으며 입은 관통상, 화상, 동상까지.

따져 보면 보통 사람이라면 움직일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몇 번이고 당했었다.

그래서 역혈신공, 반혼어심공에, 탈마에서나 쓸 수 있는 영원빙벽공까지.

자칫하면 육신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잠력을 끌어내서 계속 싸웠던 것이다.

더 싸웠다면 거의 일 년을 요양해야 했을 터.

그런데 위기는 이게 마지막이 아니었다.

구구구구궁.

“이런.”

천장에서 굵은 바위들이 하나씩 떨어진다.

무려 백여 장이나 내려온 이 공간이 주인이 사라짐으로 인해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 녀석아, 눈 좀 떠 봐라.”

천마는 느릿하게 걸어가 쓰러져 있는 흑객을 흔들어 깨웠다.

딱. 딱. 철썩! 철썩!

어쩌면 일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카르삭의 공간 화살에 심장이 관통당한 상처를, 흡혈 요괴가 들러붙어 운 좋게 살아났었던 몸이다.

정신이 저 흡혈 요괴에게 잡아먹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나마 도중에 자신이 개입하여 둘의 정신을 분리시키긴 했지만 아마 깨어난다면…….

“어? 제가 어떻게 여길…….”

‘천만다행이군.’

흑객이 정신을 차린 듯했다.

본래의 눈으로 돌아온 걸 확인한 천마는 속으로 한숨 돌리며 슬그머니 쥐었던 왼손 주먹을 풀었다.

“다 끝났어.”

“그 녀석을, 과연 천마님이 결국…….”

“좋아할 시간이 없다.”

천마는 고개를 들었다.

쿵. 쿠우우쿵.

천장에서 돌이 점점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딱 봐도 던전이 무너지려는 붕괴 직전의 조짐이었다.

“지금 올라가지 않으면 여기서 둘 다 죽는다.”

“어떻게…….”

“나야 모르지.”

천마는 씨익 웃었다.

일단 처리하기 했는데, 이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서질 않았다.

여차해도 자신만은 살아 나갈 수 있다 보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이다

흑객은 데굴데굴, 잠시 눈을 굴리더니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포탈이 있을 겁니다!”

“포탈?”

“네. 대개 던전 보스를 처치하면 외부로 나가는 길이 열립니다. 지난번, 데몬즈 루인 던전 때도 포탈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열리는 게 없는데?”

천마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포탈 같은 게 보이지 않는데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무너지는 동굴 속.

흑객의 얼굴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저거 아닙니까?”

때마침 지상 위에 벽 쪽에, 희미한 연기가 둥근 원을 그리는 모습이 그의 눈에 잡혔다.

본래 카르삭이 처음 등장했던 장소. 밝지는 않지만, 미약한 빛의 기운.

“어어어어!”

쿠쿠쿵!

그러던 그때, 거대한 돌덩이가 떨어지며 그들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천마님! 카르삭이 처음 나왔던 그 장소에 있습니다.”

“오냐. 단단히 잡아라.”

“어떻게 하시려고…….”

천마는 흑객을 낚아채고, 앞을 보았다.

완벽히 차단된 앞.

뒤도 그랬다.

거의 천마와 흑객 주변의 공간만 남기고 모든 게 차단되어 있었다.

“아, 가능할지 모르겠네.”

천마는 손에 마공을 끌어올렸다.

아마 며칠은 요양해야 할 터이지만, 방법은 없었다.

“열화폭렬공!”

콰콰쾅!

천마의 몸에 남아 있던 마지막 내력이 엄청난 불길과 함께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그리고 한순간, 완벽하게 생성된 통로 길.

이내 통로가 다시금 무너진 것을 본 천마는, 흑객을 낚아채고 미친 듯이 달려나갔다.

가까스로 천마와 흑객이 포탈 안으로 들어갔고.

구구구구궁!

잠깐, 고요함이 머물던 동굴 안은 완벽하게 가라앉으며 안에 있던 모든 것을 매장시켜 버렸다.

* * *

드드드드드…….

“이게 무슨 소리지?”

잠에 들려던 소진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거대한,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은 것이다.

“나왔어?”

임시 막사 밖을 나와 보니, 필리아와 운소령이 이미 그곳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무너지고 있어요.”

“뭐?”

필리아가 한 곳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짓을 따라 이동한 그곳엔 카르삭의 왕릉이 있었다.

드드드드득!

살벌한 광경이었다. 왕릉이라 불릴 만큼 거대했던 건물 일부가 무너져 있었고, 주변의 탑이 쩍쩍 쪼개어져 갈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쿠르르르릉!

왕릉 전체가 완전히 가라앉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소진은 기함했다.

잠든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건물 일부도 아니고 왕릉 전체가 이렇게 무너진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던전 보스가 있었던 것 같아요.”

“…뭐?”

운소령과 소진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더니, 입을 열었다.

“본래 던전은 던전 보스를 찾아내서 처리하면, 스스로 붕괴 되잖아요? 딱 그거 같은데.”

“……!”

그랬다.

당연한 소리를 소진도 운소령도 잠시 잊고 있었다.

던전은 마의 공간이다.

어떤 던전이든 그 주인이 없어지면, 완벽히 무너지게 된다.

달리 말하면, 애초에 주인이 없는 던전은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럼 주인은 누구지? 그리고 누구에게 죽임을 당한 거지?”

소진이 물었다.

그 물음에 운소령과 필리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카르삭 아닐까?”

“……?”

“그게 이름인지 호칭인지는 몰라. 다만 여기 던전 이름이 카르삭의 왕릉이잖아?”

* * *

같은 시각.

무공학 교관 허각은 남소천군과 함께 서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빨리 왕릉에서 조짐을 알아챘고, 무너지는 광경을 눈에 담고 있었다.

“트윈헤드 가고일이 튀어 나왔던 게 원인이었는지 모르겠군요.”

후배인 허각이 먼저 말을 건넸다.

오랫동안 잘 운영되던 카르삭의 왕릉.

학관생들의 경험을 위한, 수행평가에 유용하게 활용되던 던전이 사라지자 아쉬움이 절로 흘렀다.

“그놈들은 카르삭의 주인이 아닐세.”

남소천군이 고개 저었다.

“하면, 저 왕릉을 지탱해 주던 마력원에 문제가 생겼을까요?”

“글쎄. 그랬다면, 트윈헤드 같은 가고일 특이 개체가 튀어나오지 않았겠지.”

남소천군의 대답이 묘했다.

마치 뭔가 짐작 가는 것이 있는 듯한 말투였다.

“…설마.”

허각의 표정이 굳어졌다.

애써 부정하고 있었지만, 그 또한 짐작 가는 것이 있었던 터였다.

“주인이 있었다는 말입니까? 카르삭의 왕릉에?”

“그럴 리가. 이제껏 많은 이들이 살펴보지 않았나. 학과장께서도 보셨고.”

“하긴.”

허각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삭의 왕릉은 이미 공식적으로도 완료된 상태.

5번째 광장의 비밀을 모두 해석해 내진 못했지만, 확실한 건.

스스로 어떤 발동이 풀리는 그런 상황은 일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말이지.”

남소천군은 잠시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았다.

그는 천무학관을 대표하는 실전학 교관으로 수많은 던전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렇게 갑자기 무너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만에 하나 주인이 있었다고 가정해 본다면…….”

그는 어느새 진지한 표정으로 변해 허각과 시선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누가 그를 죽인 것일까?”

“…….”

“카르삭이란 게 이름인지 신분인지 나이인지도 모를 그 존재를 말이지.”

허각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 던전에 주인이 있었을 가능성.

그리고 그를 누군가 죽였을 가능성.

무엇보다 천무학관의 학관장도 풀지 못한 비밀을 풀고, 수많은 조교와 교관 모르게 이 던전을 클리어한 이가 존재할 가능성.

이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가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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