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카르삭 붕괴 (2)
천무학관 안전학무부.
“마교 출신? 그 흑객과 연관이 있다고?”
뇌천벽의 미간이 올라갔다.
보고를 듣던 중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온 것이다.
“예. 아마 이한은 그에게서 무공을 전수받았을 겁니다. 흑객은 용병 이력도 상당한 자이니, 그의 지도를 받아 실력이 급상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사를 맡았던 임유가 대답했다.
“…말이 되는군. 마교라… 과연. 그런 거라면 단시간에 성장할 수도 있지.”
사파 무공은, 나중에 부작용이 있을지언정 단기간에 급격하게 고수로 올라서는 것이 가능하다.
마교는 일단 정파는 아니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이한이 방윤을 격파한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정파 무공의 핵심은 안정성. 30년, 40년을 꾸준히 수련하면 사파가 결코 닿지 못할 지고의 경지를 향할 수 있다.
다만, 그렇기에 초반의 성장이 느리다.
아무리 명문 소림 출신이라 해도 방윤은 이제 고작 2학년, 이한의 급성장을 모르고 방심했다가 허를 찔렸다면, 당시의 패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면, 그 아이가 소림의 무공은 어찌 알았을까?”
다만 비무 당시 이한이 소림의 격산타우를 시전했다는 게 걸렸다.
이한이 마교의 절예를 익혔다면, 소림의 무공을 쓸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마교와 소림은 서로서로 극상성이니까.
“소림의 무공이 아니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격산타우는 분명 소림의 절기인데?”
“마교에도 원거리를 타격하는 격공장쯤은 있을 겁니다. 결과만 비슷하게 나오는 무공이라면 정파에도 여럿 있으니까요. 심지어 마교라면…….”
현시대에서 마교에 대한 정보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옛 문헌에 따르면, 마교는 과거 구파 일방과 오대세가를 모두 공포에 떨게 했던 무력 단체다.
멸문하긴 했어도 워낙 거대한 곳이었던 만큼 뭐가 더 숨어 있었는지 추측조차 어려웠다.
“흐음…….”
“이한이 쓴 무공이 뭐였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훨씬 고절한 무공이 천무학관에는 있습니다.”
과연. 그렇게 보면 일리 있는 말이다.
기실, 옛 마교의 무공에 대해선 중원에 그리 알려진 게 없다. 정확히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천무학관에서는 옛 정도 무림맹,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모든 무공을 집대성한 무학을 가르친다.
그리고 과거 맹위를 떨쳤던 사파의 무공 역시, 부분적으로 해석해서 가르치고 있다.
이미 손에 든 보물만 해도 감당하기에 벅차다. 그런데 멸문해 버린, 세력도 미약해진 마교 따위 굳이 연구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래… 그럼 이한이 강해진 비결을 알려면 결국 흑객이란 녀석을 포섭해야 한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장수를 잡으려면 먼저 말을 쏘아 맞히면 되는 법.
이한이 흑객에게 비전의 절기를 전수받았다면, 그냥 흑객만 포섭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 제자인지 은혜를 입은 것인지, 어쨌든 이한 역시 자동으로 딸려 올 테니.
문제는 흑객이 뇌천벽의 체육학과로 올 생각이 있냐는 것인데.
“좋아. 내가 직접 그 녀석을 만나 봐야겠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다른 교두들이…….”
“다른 교두들이 뭐? 이미 제운비가 데몬즈 루인 던전에 남궁호를 데리고 갔지 않은가! 몰라서 하는 말인가!”
“…….”
뇌천벽이 호통치자 임유는 입을 꾸욱 다물었다.
사실, 그 정보는 자신이 파악해서 가져온 것 아니던가.
“…그렇군요. 이미 중립이 유야무야 된 이상, 저희도 움직여야겠습니다.”
본래 학관생에게 조교 제의를 하는 것은, 4학년 2학기부터. 졸업반에게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규정일 뿐. 말로는 손을 대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들 자기 파벌에 들어오도록 손을 쓰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제운비가 대놓고 손을 쓴 정황이 역력한 마당에, 원래 규정이 어쩌니 저쩌니 하며 지키는 것도 바보 짓이나 다름없다.
“들어온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뇌천벽의 화가 가라앉을 때쯤, 임유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공학과가 관리하는 카르삭의 왕릉, 수행평가 던전이 이번에 무너졌다고 합니다.”
“…그 던전이 무너져?! 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보는 뇌천벽.
임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유는 아직 파악 중입니다. 현재 확인된 것은 무공학 교관 허각이 급보를 날려 왔고, 학과장을 포함해 교무처장과 부장, 주임 교두 몇 분이 그 던전으로 급파되었다는 정도입니다.”
“으음…….”
뇌천벽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가운데, 또 하나의 태풍이 더해진 것이다.
이 일이 어떻게 번질지, 어떤 변수가 될지, 당장은 눈 부릅뜨고 지켜볼 수밖에.
* * *
과르륵. 드득.
무너진 던전의 잔해를 밟으며, 많은 인원이 오갔다.
천무학관의 수뇌부라 할 수 있는 교무부 인원들이 대부분이 와 있었다.
“어떤 징조도 없이 무너졌다고 하셨소?”
스윽.
교무부장 이중구가 파괴된 가고일의 조각을 집어 들며 물었다.
“무너지기 며칠 전, 마력이 급상승한 징조는 있긴 했습니다.”
카르삭 왕릉의 키퍼, 허각이 옆에서 바로 답했다.
“가고일의 개체수가 늘어났다고 하셨지요?”
“예.”
“마력이 급상승하는 건 징조라고 보긴 어렵지요. 그건 오히려 무너지지 않을 이유가 되니까요.”
툭. 데구르륵.
별 특이점을 찾지 못한 이중구가 잔해를 내던졌다.
던전의 마력이 높아지면 몬스터들에게 변화가 생긴다. 각 개체가 강해지거나, 아니면 수가 늘어나거나.
그러면서 던전의 구조물도 더 견고해지니, 이렇게 무너지는 것과는 연관이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남 교관께서는 혹시 짐작되는 것이 있으십니까?”
이중구의 시선이 실전학 교관 남소천군에게 향하자 그 역시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날 같이 있긴 했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학관생들도 모두 밖으로 나간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아직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천무학관에서 파견 나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기보다 제운비, 그가 직접 이곳에 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은 좀 기다려 봅시다. 저희는 못 찾아도, 학과장님이라면 단서 정도는 찾으실 수 있을 테니.”
이중구는 조금 떨어진 곳에 시선을 두었다.
앞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직접 이동했던 그들이 있던 방향이었다.
* * *
두두둑, 두둑.
선두에서 부서진 잔해를 천천히 내려다보고 있던 금발 벽안의 여인이 있었다.
세 명의 노인이 그녀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교무처장 구용천과 실전학 교두 제운비.
그리고 이곳을 담당하는 총책임관인 무공학과 교두 최일이었다.
“짐작되는 것이 있으십니까?”
금발 벽안의 여인, 리그웨더에게 구용천이 조심히 말을 건넸다.
주변에 있는 거라곤 잔해뿐이지만, 그녀라면 조금이라도 단서라도 잡았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흠.”
그녀는 입가에 검지를 가져가 대더니,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앞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최일을 향해 되물었다.
“최 교두님은 생각은 어떠신가요?”
딱딱한 인상에 염소수염을 하고 한 노인.
무공학 교관 허각의 호출로 반나절 빨리 도착한 그는 이곳을 이미 둘러본 이후였다.
“주인이 없는 던전이 무너지는 이유는 두 가지라 알고 있습니다.”
그가 입을 열자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하나는 마력을 공급하는 마력원이 수명을 다 했을 경우. 둘째는 던전을 구성했던 주인이 어떤 계기로 사라졌을 경우.”
그는 부서진 잔해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카르삭 왕릉은 마력원이 줄어드는 현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승했지요. 작년 말부터 가고일의 개체수가 증가한 것도 그렇고. 붕괴 직전에는 가고일 두 마리가 합쳐 나오는 기형종도 나타났으니까요.”
그 말에 리그웨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하나군요. 던전을 구성했던 주인이 사라졌을 경우.”
“하지만 그게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카르삭 왕릉에는 던전 보스가 없었습니다.”
“…….”
“제가 타 학관에 연락해서, 알고 지내는 교두들에게 문의해 보았는데… 그들로서도 이런 현상은 처음 겪는 일이랍니다.”
최일의 대답은 사실, 이곳에 온 대부분이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정리가 되지 않기에, 직접 이곳을 조사하고 있는 것이고.
“그럼 제운비 교두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흠.”
제운비가 헛기침을 했다. 그 역시 리그웨더의 호출로 급히 이곳으로 와 있었다.
아무래도 던전의 경험이라면 그만한 인물이 없었으니.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대답도 역시나 예상한 답변이었다.
마력원으로 유지되는 몬스터들의 던전. 그곳이 이렇게 무너지는 이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저… 학과장님, 혹시.”
구용천이 리그웨더를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예, 말씀하세요.”
“학과장님의 마법, 존재의 사념을 끌어내는 그거라면,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싸이코메트리를 말씀하시는군요.”
싸이코메트리. 지난번 데몬즈 루인 던전 때, 그녀가 펼쳐 보였던 마법. 사물에 깃든 사념을 끌어내어, 과거를 볼 수 있는 이능이다.
원래라면 영감이 강한 특이 능력자만 가능하지만, 리그웨더쯤 되는 최고위급 마법사에게 간단한 이능 정도는 마법으로 따라 할 수 있었다.
“어렵네요. 사념이 깃든 대상이 필요한데. 지금 이 던전에는 그런 것이 없어요.”
그녀는 아쉬운 듯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혹 공간이 살아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완전히 다 붕괴되어 버렸어요. 이런 경우는 힘들죠. 당시에 어떤 사건이 있었든, 건물이 무너지는 충격이 사물에 깃든 사념을 다 덮어 버리거든요.”
“아, 그렇군요.”
말하자면 물체에 깃든 사념이란, 종이에 써진 글자와도 같았다. 리그웨더는 백지 위에 남은 흐릿한 얼룩이나 흔적, 그런 걸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건물 붕괴처럼 너무 큰 충격은, 종이에 통째로 먹물을 부어 버리는 것과 같았다.
주변 사물이 모두 붕괴의 순간만 기억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고위 마법사라 해도 읽기가 불가능하다.
“허허… 마법이라는 게 만능은 아닌가 보군요.”
구용천은 아쉬워했다.
“만능(萬能)할 수는 있지만, 전능(全能)은 아니에요. 그나저나.”
리그웨더는 이번엔 무공학 교두 최일을 보았다.
“혹시 이번 수행평가에 참가한 학관생들의 명단을 정리해 주시겠어요?”
“뭔가 짐작 가는 게 있으십니까?”
“아뇨. 그냥 한번 보려고 해요. 이번 수행평가 도중에 왕릉이 무너졌으니까. 평가 중이던 학관생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해서.”
최일은 잠시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지나친 억측입니다. 학과장님. 나름 한가락 하는 애들이라고 해도, 이제 겨우 2학년생들입니다. 그 애들이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말에 제운비와 구용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2학년 학관생들. 그중 두 팀은 엘리트 가고일 한 마리도 처치하지 못했다. 그나마 운소령 파티가 제법 성적을 냈지만, 특이종의 출현에 자칫 전멸할 뻔했다고.
이런 아이들이 무슨 수로, 수십 년간 존재하던 던전에 영향을 미치겠는가.
“혹시 몰라서요. 단서라는 건 그런 법이거든요.”
리그웨더는 조용히 주변을 눈에 담고 있었다.
무너져 내린 기둥. 부서진 돌 더미. 붕괴해 버린 카르삭의 왕릉 전체를.
“하나하나 봐선 알 수 없죠. 하지만 모으고. 모으고 하다 보면…….”
그리고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이며 몸을 돌렸다.
“조각에서 남겨진 흔적이란 게 보이게 되죠. 정말 재미있군요. 이번 일은.”
“…….”
그 의미는 구용천뿐만 아니라, 제운비와 최일 또한 알 수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