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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69화 (70/310)

69화. 무공학 수행평가 점수 공개 (2)

한편 그 시각.

팔락.

리그웨더는 2학년 3반의 평가 기록을 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수행평가는 다면적으로 이루어진다.

학관생들이 던전을 공략한 기록 외에도, 그들을 보고 평가한 조교와 교관들의 생각. 그리고 감점 및 가점의 근거들이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카르삭 3조 종합 수행평가>

-파티 리더: 당무련-방윤 공동.

-조직력 상. 판단력 상. 개별 무력 중하.

-가점 사항: 사상자 전무.

*(참고) 전위 무사들은 전투 중 파티원 보호에 성공했고, 후위 무사들은 변수를 최소화하며 역할 수행.

-감점 사항 : 방어에만 치중한 전략으로 화력이 약화됨.

*(참고) 4번째 광장, 엘리트 가고일 중 한 마리도 처리하지 아니함. 카르삭 왕릉의 붕괴가 없었다 하더라도, 전력상 최대 한 마리 사냥에 그쳤을 것으로 예상.

-최종 평가: 우수(80점)

최초 보고서: 허각 교관

최종 수정 보고서: 제운비 교두

“그래도 사상자는 없이 끝났네.”

리그웨더는 대견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3반의 경우가 특별한 거지, 보통 2학년 학관생 능력으로 카르삭 왕릉의 4번째 광장까지 간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사상자도 없다는 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기도 했다.

이 결과로 인원수가 다섯 정도 더 모였으면… 지금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을 터.

팔락.

“여긴… 서문영이구나.”

리그웨더는 파티 리더를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2학년 중 무과 수석. 서문세가 출신으로 교두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이었다.

<카르삭 2조 광장 수행평가>

-파티 리더: 서문영

-조직력 중. 판단력 중. 개별 무력 중상.

-가점 사항: 변칙적인 공격 전술이 훌륭함. 엘리트 가고일 한 마리를 반파함.

*(참고) 투지가 높고, 가고일을 상대로 뛰어난 전투력을 보임. 카르삭 왕릉의 붕괴가 있지 않았다면, 엘리트 한두 마리는 잡았을 것으로 추정

-감점 사항 : 부상자 4명 발생.

*(참고) 파티 전체가 서문영의 무력에 의존함. 전술상 힘을 한데 모으기가 어려움.

-최종 평가: 매우 우수(90점)

최초 보고서: 허각 교관

최종 수정 보고서: 제운비 교두

“서문영치고는 아쉬운 결과네.”

분석 아래에는 여러 방식으로 펼쳐진 전술 행동이 기술되어 있었다.

리그웨더는 그중 4번째 광장에서, 서문영과 종천도, 언규가 함께 시도했던 전술을 눈여겨보았다.

“좀 더 여유를 갖고 임했으면 좋았을 텐데…….”

전위 무사들의 능력이 다들 뛰어났기에, 그녀는 오히려 아쉬움이 들었다.

조교와 교관들의 평가를 보았을 때, 서문영은 개인으로 엘리트 가고일 한 마리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실전에서 가고일이 3마리였다는 것. 그리고 파티원 복이 없었다고 할까.

기습에 당한 후위 공격수들이 너무 삽시간에 무너졌고, 그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서문영이 저돌적으로 덤벼들었다.

그리고 무리하게 빨리 끝내려고 하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엘리트 가고일의 반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음.”

리그웨더는 잠시 눈을 감고 예전 서문영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스-----윽.

서문세가 사람들과 함께 온 그의 첫인상은 매우 절박해보였다.

아마도 한 가문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일 터.

“다음은…….”

리그웨더는 다음 장을 천천히 펼쳤다.

가장 기대되는, 그리고 의심되는 1조의 수행평가였다.

<카르삭 1조 종합 수행 평가>

-파티 리더: 운소령

-조직력 최상. 판단력 최상. 개별 무력 최상.

-가점 사항 : 광장의 가고일 모두 퇴치. 사상자 없음.

*(참고) 역할 분담이 매우 잘되어 있고, 또한 효율적이었음. 특히 몇몇의 능력은 동 나이대에 비해 월등함.

△운소령 무위: 초절정에 근접.

△필리아의 정령술: ‘중급’으로 추정.

△소진의 무위: 표적을 훌륭하게 맞혀 냄.

△이한의 무위: 절정, 그 이상.

-감점 사항 : 없음.

-최종 평가 : 만점(100점)

최초 보고서: 허각 교관

최종 수정 보고서: 제운비 교두

“과연. 맹의 군사인 제갈유진의 손녀구나.”

가고일들을 상대로 펼친 검술을 보자면, 흥미가 절로 돌았다.

뿐만 아니라, 엘리트 가고일을 상대로도 훌륭했다.

공격과 수비가 자연스러울뿐더러, 적절한 시점에서 펼쳐지는 무위.

중원어로 표현하기로 이런 걸 군계일학이라고 했었다.

“월녀검이라. 스파크 경이 떠오르는구나.”

리그웨더가 그라나다 대륙에서 보았던 소드 마스터.

본명보다 섬전(Spark)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했던 이.

그는 체구도 볼품없었고, 인상도 쥐를 닮아 추레했다.

하지만 그가 짧고 가는 세검을 들고 싸움에 나서면, 더 이상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못했다.

작아서 가벼운 몸을 나비처럼 포횰하게 띄우며, 그가 검을 휘두르면 사방에서 불꽃이 튀고 목숨이 사라졌다.

조교의 서술을 읽고 있노라면, 운소령이 마치 그런 검술을 쓰는 모양이었다. 가볍고, 빠르며, 수많은 칼 그림자를 쏘아 낸다.

비록 스파크처럼 일격 일격이 치명타를 주지는 못하지만, 이제 고작 2학년 학관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10년 안에 그를 따라잡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팔락.

“필리아가 정령술을 보였구나. 결국.”

다음 장에서 리그웨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관의 조교, 교관들 모두에게 숨기고는 있었지만, 리그웨더는 필리아가 정령술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피에 무엇이 깃들어 있는지도.

애초에 그녀는 지혜의 용이라는 골드 드래곤. 초월적인 존재의 눈을 피하기란 불가능한 것이었다.

특히나 이곳 천무학관, 용의 피를 뿌려 만든 성역 안에서라면 그녀는 마주치는 모든 이의 정보를 즉시 파악할 수 있었다.

이는 골드 드래곤 일족의 고유한, 가장 지혜로운 용이라는 이름을 얻게 만든 신비로운 권능이었다.

팔락.

그랬기에 그녀는 다음 장에서 조금 놀랐다.

“소진이 이런 활약을?”

소가상단의 둘째 아들. 막대한 기부금으로 허약한 체력에 대해 불문하는 조건으로 입학한 기부금 입학생.

물론 천무학관이 돈만 내면 아무나 받아 주는 곳은 아니었다.

리그웨더가 삼음절맥이라는, 소진의 체질을 한눈에 알아보았기에 입학이 허가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일은 예상외였다.

“소가백화점의 특제 석궁과 특제 백린탄으로 무장……? 아니야. 이런 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는데.”

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과거의 상념에 집중했다.

스----윽!

리그웨더의 눈꺼풀 안에 입학 전 면접 때 본 소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겁 많은 얼굴. 투지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눈동자.

허약한 몸에 오래도록 절망하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쓸모를 보이고 싶어 하는 간절한 표정.

이런 성정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천무학관에 보내기 전, 소가상단은 둘째 아들을 어떻게든 강하게 키우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썼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역효과만 불렀다.

수련이든 마음공부든 죄다 실패로 돌아갔고, 가뜩이나 의기소침한 소진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위험한 던전에서 활약을 한다는 건 확실히 사리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결과.

운소령 파티의 활약을 지켜본 조교는, 소진이 엘리트 가고일을 처리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확인했다.

“누가 영향을 주었을까?”

위기 상황에 처했다고 누구나 용감해지는 것은 아니다.

소진 같은 이는 목숨의 위기 앞에서, 용맹해지기는커녕 손발이 굳고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타입이었다.

재능은 있으나 딱 한 치가 모자라서 벽을 넘지 못하는 비운의 천재.

그런 소진이 벽을 넘었다.

그렇다면 이는 주변의 누군가가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뜻.

대체 누구일까. 운소령? 필리아? 두 소녀의 얼굴을 떠올린 리그웨더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납득했다.

둘 모두 인간의 기준으로는 상당한 미모를 갖추고 있었다.

“하긴. 십 대 소년의 연심(戀心)일 수도 있겠군.”

혈기방장한 십 대 소년이, 마음에 둔 소녀의 위기를 보고 사력을 다해 한계를 넘는, 진부한 이야기지만 종종 일어나는 일.

그게 이번 일의 변수라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다.

팔락.

“이 아이는…….”

마지막 장을 펼친 리그웨더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한. 소진과 같은 기부금 입학생. 하지만 그는 소진 같은 삼음절맥이 아니었다.

덕분에 신체 단련은 소진보다 나았지만, 그래 봐야 꼴찌 바로 앞.

중원 각지의 명문가나, 유서 깊은 문파에서 엄선된, 다른 학관생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심지어 소진처럼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기에, 더욱 바닥을 구르던 학관생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리그웨더 그 자신, 그녀가 이한에게서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불행의 별. 결국 깨어난 건가?”

그것은 신체도 체질도 아닌, 영적인 것에 가까웠다.

불행의 별.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를 얻을 수 없는, 주변의 악의적인 환경 속에서 결국 스러져 가는 운명.

차곡차곡 주변 사람들을 잃고, 절망하고, 결국에는 그 자신마저 죽는, 잔인한 운명에 짓눌려 버리는 이.

하지만 이 운명의 소유자 중에 간혹, 최후의 단말마를 터뜨리는 이들이 있었다.

블랙홀처럼 온갖 불행이란 불행은 전부 빨아들인 끝에, 기어코 그 불운을 터뜨려 버리는,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인물.

“부모를 모두 잃고, 가문도 파산했나…….”

인적 사항 보고서를 읽고, 리그웨더는 잠시 이 안타까운 운명을 가엾게 여겼다.

예로부터 불행의 별을 버텨 낸 이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대성한다.

하지만 그들의 광채는 짧고 덧없다. 대체로 1년. 혹은 2년. 그 안에 그들의 생은 끝난다.

놀라운 업적을 이루지만, 살아생전 평가받는 일은 없다. 그들이 치른 희생에 비하면 안타까운 일.

이한은 이제부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운명이다. 정확히는 이미 죽은 이의 운명이다.

그런 부조리를 묵과해야 했기에, 리그웨더는 살짝 자책감을 가졌다.

그런데.

“왜 기록이 없지?”

곧 어리둥절해졌다.

보고서에는 학관생 이한의 전술 기록, 엘리트 가고일과의 싸움 중에 어떤 능력을 발휘했는지, 어떤 수법을 썼는지가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

-엘리트 가고일 두 마리를 상대로, 일각 이상 버팀.

-미숙하지만 경공술에 대한 본능적 이해가 있음.

-…난전 중에 엘리트 가고일 한 개체를 파괴.

“이게 무슨 내용이지?”

잘 피했고, 도망 다녔고, 그러다 하나 죽였다. 끝.

학관생 1학년도 이런 알맹이 없는 보고서를 쓰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보고를 써 올린 것은 앞길이 유망한 마검사였다.

리그웨더는 보고서를 응시하다가 조교의 필체에서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결국 이렇게 적어 낸 주저함을 보았다.

조교 자신도 이 보고서가 말이 안 되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일 터.

“…잠시 무언가에 시선을 빼앗겼던 모양이야.”

리그웨더는 곧 전후 사정을 추리해 냈다.

운소령의 활약을 기술한 부분에서는, 필체가 흔들림 없이 쭉쭉 이어졌다. 확실히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눈앞에서 화려한 검술의 향연이 열리고 있으니 주의를 빼앗겼을 터. 그 잠깐의 찰나에 이한이 평범해 보이는 일격으로 엘리트 가고일을 쓰러뜨렸다면.

‘그렇다고 해도 2학년 학관생이 이런 무위를 보일 수도 있나?’

그녀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가고일은 위험 등급 5등급이며, 엘리트라면 6등급. 와이번과는 체급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 정도로 평가된다.

그런 가고일 둘을 상대로 일다경이란 시간을 버티고 이후, 조교가 시선을 빼앗긴 찰나, 한 마리를 처리했다.

이는, 무력만 놓고 보면 이한이 운소령보다 위란 뜻.

“이한이라…….”

리그웨더는 가만히, 공백투성이인 보고서를 보고 중얼거렸다.

똑똑.

그러기를 한참, 인기척에 그녀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흑객과 대면하게 되면 좀 더 알아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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