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선택과목 (1)
천무학관 2학년은 총 12개의 반이 있다.
이 중 6교시, 선택과목을 듣는 학관생들은 대부분 자신의 교과과정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선택한다.
그리고 3반 학관생들은 대부분 신체학, 던전 개요, 그리고 마법내성을 듣는다.
신체학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혹은 타인의 체질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학문이다.
던전개요는 던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건 사고와, 기관이나 몬스터의 습격에 대한 대비를.
그리고 마법내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미미한 저항력, 그것을 극대화시켜 일시적인 마법 면역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다.
하나같이 전사, 혹은 무인에게 유용한 과목.
2학년 3반은 마침 반원 대부분이 무투파였고, 그래서 이론마법학을 듣는 이가 없었다. 소진이 당황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 과목을 듣는 학생의 대부분은 ‘마법사’를 지향하는 2학년 4반이었으니까.
“여긴가?”
좀 늦게 도착한 천마는 커다랗고 둥근 건물 지붕에 감탄했다.
마법진을 입체로 새겨 넣은 건물 지붕.
그리고 주변을 온통 수정과 은으로 상감한 벽들은, 햇볕을 받아 광채를 뿜어냈다.
이 모든 것들이 온통 화려하기 짝이 없는 신비스러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오. 재질이.’
투웅.
벽에 손을 대 보니 가벼운 반발이 느껴진다.
마치 보호 마법에 부딪힌 기분이다.
“흥미로운걸.”
오랜만에 신나는 기분으로, 천마는 안으로 들어섰다.
마법 이론을 가르치는 장소는 ‘마법당’이라는 전용 공간이었다.
주 목적은 바로 마법의 시연과 수련.
그렇다 보니 이중으로 복합적인 마법의 지원이 걸려 있었다.
둥근 천장의 입체 마법진은 ‘성장’이나 ‘증폭’의 효과를 뿜어낸다.
미약한 마법의 기운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시전자가 작은 마나로도 바로 마법을 발현시킬 수 있게 하는 마법진.
“매직… 볼트!”
힘겹게 시동어를 외친 학관생의 손 앞에, 하얀 마법의 화살이 나타났다.
“합!”
쉬이익! 팍!
그리고 나타난 마법의 화살은 벽을 향해 날아가다가 훅, 하고 삽시간에 소멸되었다.
“잘했어요. 앞으로 열 번. 그 감각을 잊지 마세요.”
“네!”
쉬이이익!
마법 화살이 소멸된 위치에서 벽과 바닥의 마법진이 미미한 빛을 뿜어냈다.
이 또한 마법당의 설계였다.
벽의 기능은 천장의 강화와는 반대로 ‘억제’나 ‘약화’를 상시 발동시키는 것.
이제 막 눈을 뜬 마법 초보들에게 강화나 증폭만 주어지면 혹여 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다.
어설프게 발동한 마법이 마나의 폭주로 다른 사람을, 혹은 자기 자신을 부상시킬 수가 있으니까.
“파이어 볼트! 파이어 볼트! 파이어 볼트!”
펑! 피식. 펑! 피식. 펑! 피식.
한쪽에서는 화염 마법을 익히는 이가 끊임없이 불 화살을 쏘아 냈다.
무예만이 아니라, 마법 또한 끝없는 훈련과 숙달로 성장하는 법.
마법당 천장에서 뿜어지는 민감 버프. 그걸 받아서 마나 로드의 흐름을 몸에 익힌다.
그리고 끝없이 반복해서 완전히 몸에 그 감각을 새겨 버리는 것이다.
“헉… 헉… 좀 쉬어야겠다.”
있는 마나를 다 쥐어짠 학관생이 마법당 건물의 중앙으로 향했다.
웅웅웅웅.
휘황하게 빛을 발하는 바닥의 마법진. 그 한쪽에는 서역의 문자가 씌어 있었다.
-Recharge mode(충전 모드)
마법당 건물은 그 자체가 수많은 마법 기능을 새긴 거대한 아티팩트다.
특히 중앙의 마법진은 마법의 증폭, 융합, 소환 등. 온갖 강력한 지원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충전 모드가 켜져 있었다. 마나를 과하게 쏟아낸 학관생들을 급속히 회복시키기 위해.
“야, 요즘 재미있는 소문 같은 거 없냐?”
마나 고갈로 뻗어 버린 학관생 가운데, 한 청년의 목소리가 울렸다.
큰 키와 정감 가는 얼굴을 한 학관생으로 4반 부반장을 맡고 있는 서린(西燐)이었다.
“글쎄? 최근에 카르삭 무너진 것 말고는 뭐 있겠냐. 굳이 찾으라면… 아, 3반에 필리아가 사실 중급 정령사였다는 정도?”
툭툭.
서린 옆에서 다리를 들어 올리며 머리 베개 자세를 하는 청년.
항상 화제가 있으면 나서길 좋아하는 사중현(邪中玄)이란 자였다.
“3반이라… 운소령이 있는 그 반? 아… 걔는 가면 갈수록 이뻐지던데. 쩝…….”
“너도 참 여전하다. 크크. 그리 마음에 들면 찾아가서 고백하든가.”
그러자 그 뒷자리, 일행으로 보이는 경쾌한 목소리의 사내가 끼어들었다.
하백운(夏白雲)이다.
4반 반장으로, 특이하게도 1반부터 6반을 통틀어 선택과목을 듣는 유일한 반장이기도 했다.
물론 그만큼 실력이 뛰어났다.
마법 이론을 배우는 학관생들 중 마법 서클이 가장 높은 실력자다.
전체 수석인 운소령을 제외하고, 무과 수석이 서문영이라면 문과 수석은 바로 이자이기도 했다.
반장의 말에 사중현이 천연덕스럽게 말을 받았다.
“나도 그러고 싶지. 그런데 3반에 어마어마하게 예민하고 사나운 키퍼(Keeper: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있잖아.”
“서문영? 하긴. 꽤 성가신 놈이긴 하지.”
하백운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2학년 전체에서 서문영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무과 수석. 1학년 때 무예를 겨루는 무과 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거머쥐지 않았던가.
“몸만 튼튼한 무투파 놈은 진짜 골치야. 성미도 급해 가지고…….”
물론 하백운 역시 모자라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학식을 겨루는 1학년 문과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다만, 본인 스스로 1위라고 자랑하지는 않았다.
운소령처럼 시험 성적에서 이미 모두 만점을 받아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으니까.
“서문영 말 나오니까 하는 말인데, 반장. 언제쯤 나설 생각이야? 그 무식한 칼잽이가 날뛰는 걸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해?”
사중현이 짜증나는 얼굴로 툭, 내뱉었다.
기분 같아선 콱 밟아 버리고 싶은 상대였다. 서문영이 무과 학년 수석이긴 해도, 쪽수 앞에는 장사 없는 법.
2학년의 2등, 3등, 4등이 죄다 모여서 일치단결하면, 그놈도 쓴맛을 보게 될 테니까.
“걱정 마. 곧 반 대항전 예정 있잖아. 듣기로 이번에 3반이랑 붙는다던데? 그때 밟아 주지 뭐.”
“흐흐흐.”
하백운의 말에 바로 납득하는 학관생들.
개성 넘치는 3반과 달리, 4반 학관생들은 절대적으로 하백운의 지시를 따랐다.
한 명 한 명은 3반의 기재들에게 밀릴지 모르지만, 4반은 ‘서른 쌍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서로 죽이 잘 맞고 합이 잘 맞았다.
“역시, 반 대항전 하면 우리지.”
“응. 3반 녀석들. 자기들이 무공이 제일 뛰어나다고 뻐겨 대던데. 이번에 집단 전술로 아주 박살 내자고.”
“야, 야. 그때 서문영은 내가 맡을게.”
하백운의 말에 서린과 사중현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다들 2학년 3반이 학내에서 가장 우수한 반이라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개인으로서 뛰어날 뿐. 반 전체가 서로 협동하고 역할 분담이 우수한, 4반을 상대로 집단 전투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
마침 어찌어찌 경합을 벌일 일이 있을 때마다, 3반과 4반과의 대결은 무산되곤 했다. 그렇기에, 4반은 잔뜩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학년 최우수반’이라는 이름을 빼앗아 오기 위해.
“음… 재미있는 소문이라면 하나 있어.”
“뭐?”
하백운 옆에서 말없이 듣고 있던 청년.
특별히 제작된 외알 안경을 쓰고 책장을 넘기는 이경(李鏡)은 마법에 관해 도서관이란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비검대 서클장이 2학년 학관생 중 한 녀석을 찍었어. 그놈을 시원하게 밟아 버리는 사람에게는 ‘쿠엘레브레의 부츠’를 주고 ‘비검대의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더군.”
“뭐?”
“쿠엘레브레의 부츠?”
다들 눈빛이 반짝였다.
쿠엘레브레(Cuélebre). 와이번보다 몇 배는 강한 몬스터로 흔히 기룡이라 불리는 계열의 하나였다.
고룡보다는 한 단계 낮지만, 속도는 더 빠르다.
그리고 쿠엘레브레의 부츠란 이동 속도를 폭발적으로 올려주는 부츠로, 아이템 등급으로는 무려 10급으로 평해졌다.
금액만 해도 수만 골드라 평해지는 물건.
“아니, 잠깐. 그건 비검대 계승자에게 내리는 아이템 아냐?”
“그걸 풀어? 대체 그놈이 누군데?”
이들의 관심이 이제는 온통 한 녀석에게 쏠렸다.
대체 누구이기에 고작 2학년생이 비검대 서클의 표적이 된 건지. 무슨 원한을 샀길래 10등급 아이템까지 걸고 비검대가 이를 갈고 있는지.
“아니, 나는 왜 몰랐지?”
“오늘 알려 왔으니까.”
“아하.”
사중현은 이해했다.
이경은 3학년 서클 대부분이 탐내는 인재. 소통 또한 원활하여 누구보다 빨리 소식을 얻는 자였다.
“누군데? 아니, 어떻게 생겼는데?”
“…저기, 저렇게 생겼어.”
이경이 손가락질하자 주르륵 시선이 몰렸다. 마침 입구로 발을 들이는 학생, 이한에게.
“어……? 잠깐만.”
“쟤가 여길 왜 와?”
하지만 몰려든 시선은 뒤늦게 청년이 아닌 그 뒤로 쏠리고 말았다.
“쟤, 운소령이잖아!”
* * *
‘음, 어디에 앉아야 하나?’
생각보다 큰 공간에 잠시 주변을 둘러본 천마.
앉을 자리도 많긴 했지만, 보아하니 삼삼오오 모인 일행들이 한데 앉아 있는 듯했다.
그리고 소진의 말대로 3반 학관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뭐, 혼자 앉지.’
한구석 널찍한 자리를 발견한 천마가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앉으려던 순간.
털썩.
‘……?’
생각지도 못한 얼굴이 자신 옆에 따라 앉았다. 같은 반인 운소령이었다.
“운소령? 네가 여기 왜 있어?”
“왜? 문제 있어?”
선택과목. 그것도 마법 계열 수업은 3반 학관생들이 듣지 않는다고 소진에게 들었다.
그런데 반 내에서 항상 1등을 하는 운소령이 언제 따라왔는지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것이다.
“뭐야, 너 여기서 수업 들었냐?”
“아니.”
“……?”
알 수 없는 대답을 들은 천마가 약간 의아해하자, 운소령은 별거 아니란 투로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오늘부터 듣기로 했어.”
“…거참.”
천마는 고개를 저으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못난이하고 같이 다니면 피곤하기만 한데…….”
“뭐……?!”
울컥해서 노려보는 운소령.
하지만 천마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팔짱을 꼈다.
‘증조할머니 말씀만 아니었으면…….’
괜히 이를 가는 운소령.
원래라면 마법내성 수업을 들었어야 할 그녀가, 여기에 온 건 가문에서 내린 지시 때문이었다.
-이한이라는 아이를 잘 살피거라.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리고 누구와 접촉하는지를 특히.
별것 아닌 지시였는데, 은근히 수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한이 1학년 때와 달리, 완전히 천방지축이었던 것이다.
수시로 수업을 빼먹질 않나, 잠시 눈 돌리면 듣고 있던 수업에서 빠져나가질 않나.
마치 모난 공처럼, 다음 순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었다.
‘일단 소진과 친한 건 확인했고.’
그나마 몇 안 되는 이동 경로를 확보해서 다행이었다.
소진을 관찰한 끝에 이한이 이론마법학을 듣는다는 걸 알아냈고, 마법당에 들어서는 것까지 확인했으니까.
다만, 운소령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었다.
‘왜 마법 이론이지? 이제 와서?’
3반은 무투파 성향이다.
그래서 대부분 무예나 병기, 혹은 신체를 단련하는 쪽으로 방향이 흐른다.
특히 마법내성을 이미 익힌 학관생은, 마법에 대해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흥미가 없었다.
애초에 내성이란, 마법에 대한 장애이고 저항력이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미약한 마법 반응도 무효화시킨다.
그러니 마법 이론 수업을 들어 봤자 느는 건 교과서적 지식일 뿐, 하등의 쓸모가 없었다.
애초에 마법사가 못 되는데 마법 이론을 배워 뭘 하겠는가?
‘아니, 일단은 정보를 수집해야 해. 판단은 내가 할 일이 아니지.’
그녀는 증조할머니의 말씀을 머릿속에 새기며 조용히 수업을 기다렸다.
“자. 여러분. 다들 주목해 주세요.”
긴 금발을 한 마법학과의 조교가 목소리를 높였다.
레빈(Rabi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녀는 이번 이론마법학을 전담해서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오늘 수업은 공간 계열 마법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 고정’에 관한 내용입니다.”
레빈은 손에 든 짤막한 막대를 휘둘러, 허공에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빗. 빗. 빗.
그러자 허공에 희미한 빛의 글자가 나타났다.
-공간 이동의 매개체.
-공간과 시간의 고찰.
-힘: 벡터의 집중과 확산에 대해서.
-버블(Buble) 이란?
“워. 워. 빨라…….”
사박사박. 사각사각.
학관생들의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조교의 필체는 극히 빨랐다. 허공에 써진 빛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금방 사라진다.
때문에, 다들 필기를 하며 조교의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건 바쁘게 펜을 움직이던 운소령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디든 튀는 아이는 있는 법.
“필기 안 해?”
가만히 옆에 앉은 이한이 아무것도 않고 팔짱만 끼고 있자 운소령은 문득 의아해졌다.
“그런 거 왜 해?”
“무슨 소리야? 점수를, 수업을 들으려면 기록을…….”
“아, 괜찮아. 이미 다 아니까.”
턱.
운소령이 고개를 갸웃하자, 천마는 들고 왔던 책 몇 권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기본 마법 이론. 오는 길에 다 외우고 왔거든.”